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86)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86화(86/388)
86화. 잡았다. 요놈! (6)
CS가 비인기과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개업도 할 수 없었고, 잠도 잘 수 없었으며, 자기 생활도 없었다.
그 영역은 공고하냐.
그것도 아니었다.
어느덧, CV(심장내과)에서 경피적 수술의 영역까지 침범해 오고 있었고.
폐식도 파트와 소아 심장 파트는 몰라도, 심혈관 파트는 점점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었다.
뭐, 그뿐이면 다행이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사망 선고는 흉부외과의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음에 상처를 입는 거다.
거기에 더해, 올라갈 자리가 없다는 것도 컸다.
교수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개업할 수 없으니 손이 덜덜 떨려 더 이상 수술을 할 수 없을 때까지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씩 지원자가 줄기 시작했다.
미달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던 애들도 도망가기 시작한 것이다.
한동수는 이런 상황이 싫었다.
아니, 안타까웠다.
당장 환자가 죽어 가고 있는데, 수술할 사람이 없다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래서 이런 회의를 더 참지 못하는 걸 수도 있었다.
동영상만 보면 따라 할 수 있다는 천재가 있는데 그런 천재를 징계한다고 하니, 말이 안 되지 않던가.
한동수는 공정의 육모방망이를 든 채, 휘두를 타이밍만 바라봤다.
바바리안이 방패를 든 것처럼, 머리를 쓰는 거다.
그런 그의 눈에 내과 계열의 하모니는 같잖아 보였다.
“사칭. 사칭이라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맞습니다. 어디 감히 인턴 주제에 교수를 사칭한답니까!”
“이번 일은 논의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턴이 교수를 사칭한 만큼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부원장의 선창에 내과 계열 의사들이 후창을 하자 곧장 반박이 터져 나왔다.
“사정이 있었겠지요.”
“맞습니다. 괜히 사칭한 건 아닐 겁니다.”
“허허, 별일 아닌 일로 이렇게 모일 이유가 있겠습니까.”
애써 사건을 무마하려는 외과 계열 의사들.
그들의 논리는 궁색했다.
그러자 부재일이 쐐기를 박았다.
“별일이 아니라니요. 환자를 기만한 일입니다.”
“……허허.”
“그것도 아직 보드(전문의)도 따지 못한 인턴이 한 일입니다. 언론이나 다른 병원에서 알면, 우리 병원의 위신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이 계속될수록 궁색한 표정을 짓는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사실, 보수적인 병원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이진혁에게 안 좋게 흘러가고 있을 때.
한동수가 귀를 후비적거리며 끼어들었다.
물론, 보이지 않는 육모방망이를 손에 꽉 쥔 채였다.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한 교수, 그 자세 좀 어떻게 하면 안 되나?”
다짜고짜 자세를 지적하는 부재일.
한동수가 여전히 삐딱한 자세로 답했다.
어차피 사이가 좋지 않은 내과 계열과 외과 계열이었다.
“저는 이 자세가 정자세입니다. 지금 잠도 못 자고 며칠째 수술만 하다가 왔습니다. 근데 자세까지 바로 할까요?”
“끄응.”
부원장이 한동수를 상대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소화기내과장이 강경한 어조로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는 거짓말을 해선 안 됩니다.”
“어, 지금 그거 거짓말인데?”
“뭐! 한 교수, 지금 나한테 반말하는 거요?”
“이야, 달을 가리키니까 손가락을 가지고 뭐라 하시네.”
“하, 참.”
소화기내과장마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섞기 싫어했다.
그러자 한동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 매일 거짓말을 합니다.”
“?”
“맨날 ‘오늘은 일찍 들어갈게’라는 말을 하죠. 하지만, 보다시피 매일 병원에서 잡니다.”
“그게 이거랑 같습니까?”
“와이프한테도 하는 거짓말을 환자한테는 왜 못 하는 겁니까?”
“허허, 참.”
다들 기막힌 얼굴을 했다.
하지만 한동수는 흔들림이 없었다.
“자자. 하기 싫을 때는 피곤하다고도 하는 법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와이프한테 다들 한 번씩은 해 보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그런 말이 왜 나옵니까?”
“한 번도 안 그래 본 사람 있습니까!! 전 매일 거짓말을 한다니까요. 피곤해 죽겠는데 봉사할 시간이 어딨답니까!!”
평소에도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는 함의.
의사의 품격을 떨어트릴 만한 주제였기에, 다들 혀를 찼다.
그러자 한동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의사들의 55% 이상이 환자를 대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누가 그런 거짓말을 합니까!”
“맞습니다!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허허, 한 교수. 대참하셨으면 대참자답게 조용히 좀 있으세요!!”
“격이 떨어지니까 그냥 조용히 좀 하세요!!”
쏟아지는 비난들.
한동수가 귀를 후비적거렸다.
“하버드 의대에서 발표한 논문인데요?”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진다.
공정의 육모방망이를 휘두른 탓이다.
드루와, 드루와!!
풀스윙을 한 번 날린 한동수가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끝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물론, 싸움의 끝에 자신도 다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들을 지켜야 했다.
아무리 27번째 아들이라고 하지만, 아들은 아들이지 않던가.
* * *
좌중이 싸늘해진다.
껄렁한 자세와 양아치 같은 말투에 방심하다 일격을 당한 탓이다.
한동수가 싱긋거리며 웃었다.
“하버드 의대에서 의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해서 발표한 겁니다. 정식으로 등재도 되어 있습니다.”
“…….”
“아, 다들 어디 가셨나, 왜 이러실까.”
“끄응. 한 교수, 체면 좀 차리시게.”
누군가의 말에 한동수가 갑자기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말했다.
“이거 혼잣말입니다. 혼잣말.”
“?”
“아따, 어른 싸움에 어린애를 끌고 온 게 누군데 이러시나.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그렇지. 참 내.”
부우웅-.
다시 한번 육모방망이를 휘두른다.
파벌을 이뤄 싸우는 양쪽을 향한 공정의 방망이였다.
“이봐! 한 교수!!!”
“허허, 참!!”
“품위를 지키세요!!”
방망이에 한 대 맞은 이들이 소란을 피웠지만, 한동수는 귀를 후비적거렸다.
뭐, 틀린 말을 한 게 없지 않던가.
그때였다.
소화기내과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환자한테 희망을 주려고 거짓말을 한 게 아닙니까.”
“맞습니다. 환자가 먼저 포기할까 봐 그런 말을 하는 게지요.”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한 법입니다!”
다시 쏟아지는 반박.
한동수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게 그거랑 뭐가 다릅니까?”
“허허, 다르지요. ABGA가 무슨 캔서(Cancer, 암)라도 되는 줄 알겠습니다.”
“당장 손모가지가 날아갈 뻔했지요. 지금 작은 병변은 병이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이봐요! 한 교수!!”
“자료를 보아하니, ABGA에 벌써 여섯 번이나 실패한 환자였습니다. 그 정도면 조직이 허혈되거나 괴사될 수 있다는 걸 모르시는 분이 여기 있습니까!”
다시 한번 육모방망이를 휘두른다.
부우우웅.
또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이들.
다들 노려보는 게 느껴졌지만, 한동수는 거리낌이 없었다.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망해 가는 과였다.
지금 40대인 이들이 50살이 되고, 60살이 되면 수술할 사람도 없을 게 분명했다.
원래 뒤가 없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었다.
* * *
한동수가 이진혁을 탐한다는 건 병원에 전부 알려진 사실.
그가 개싸움을 벌이자, 오지호가 개입했다.
“자자, 우리끼리 이러지 말고. ER의 입장도 들어 봅시다.”
“입장이라고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당장 징계위원회를 소집하시지요.”
“허허, 부원장님. 발언 기회는 주시지요.”
이어지는 병원장과 부원장의 기 싸움.
타이밍 좋게 박영진이 나섰다.
“우선, 이진혁 선생에 대한 관리 책임이 제게 있는바, 심심한 유감을 표명합니다.”
“허허, 과장님이 잘못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게 다 이진혁이 제멋대로 날뛰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관리 책임은 저한테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민원을 제기한 환자한테 당장 사과하라고 시켰습니다.”
한동수와 달리 계속 자책하는 박영진.
그 모습에 내과 계열 의사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의문도 잠시.
박영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잠시 브리핑을 하도록 하지요.”
“?”
“PPT를 틀어 주겠나.”
“예, 과장님.”
오퍼레이팅을 맡은 직원이 미리 건네받았던 PPT를 켰다.
그와 동시에 통화 녹음 파일이 재생됐다.
그리고 그 순간, 희비가 엇갈렸다.
그냥 욱하는 마음에 올린 민원이란다.
처치에도 이상이 없었고.
민원을 올린 당사자 또한 별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전화를 해서 확인했단다.
녹음 파일의 재생이 끝나자 박영진이 싸늘하게 냉소했다.
“병원은 그 어느 곳보다 컴패니언십(Organizational Companionship, 조직 동료 의식)이 중요한 곳입니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각기 다른 과에 속한 전문의들이 협진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
“그런데, 동료의 약점을 캐기 위해 오래전의 일을 파헤친 의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건 바로 소화기내과 소속 박태준 선생이더군요.”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내과 계열 의사들.
다들 천장을 올려다보거나, 먼 산을 보듯 흐리멍덩한 표정을 지었다.
대세가 기울었다는 걸 직감한 탓이다.
거기에 더해.
병원장인 오지호가 책상을 내리쳤다.
콰앙.
“인턴이 잘하고 싶은 욕심에 과욕을 부렸습니다! 잘못한 것은 맞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한답니까!!”
“맞습니다! 당장 박태준 선생을 징계해야 합니다!!”
“무슨 이런 비열한 짓거리를 벌인답니까!!”
“최소한의 선이라는 게 있는 겁니다!”
뒤집히는 프레임.
그리고 뒤바뀌는 공수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동수가 귀를 후비다가 트림했다.
“꺼억.”
프레임 뒤집기는 대성공이었다.
* * *
부재일이 마지막 발악 같은 말을 내뱉었다.
“확인 전화를 해 본 거겠지요.”
그러자 그를 옹호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맞습니다! 팩트 체크는 기본 아닙니까.”
“교수 사칭이 더 잘못한 일입니다!”
그들을 보던 오지호가 싱긋거렸다.
책상을 내리치던 때와 한결 다른 태도다.
“우리끼리 싸울 필요는 없겠지요. 이사장님께 보고합시다.”
“아, 아니!”
“허허, 병원장님.”
“뭘 이런 걸 보고한답니까.”
갑작스러운 내과 계열 의사들의 태세 전환.
그 모습에 오지호가 냉소했다.
“잘잘못을 가려 보자 이겁니다. 우리끼리 싸워 봤자 감정만 상할 게 아닙니까!”
끝까지 갈 기세.
부재일이 턱살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굳이 이런 일로 이사장님 심기를 어지럽혀서야 되겠습니까?”
“인턴이 감히 교수를 사칭한 게 아닙니까!”
제 말을 거꾸로 되받아치는 오지호.
부재일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자 박영진이 오퍼레이팅을 하던 직원에게 다시 한번 눈짓했다.
또다시 재생되는 통화 녹음.
되레 진혁을 걱정하는 최준만의 목소리에 부재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없던 일로 하시지요.”
“그냥 없던 일로 하자?”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예상과 달리 속 시원하게 대답하는 오지호.
부재일의 눈에 의아함이 서렸다.
‘이대로 물러난다고?’
의문도 잠시.
오지호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오퍼레이팅을 하던 직원이 PPT를 띄운다.
내과 계열의 반대에 부딪혀 승인되지 못한 안건.
NS(신경외과)에서 요구한 신규 의료 장비 구매 리스트였다.
“자자, 지난번 회의 때 미처 처리하지 못한 안건이 하나 남아 있지 뭡니까.”
“이, 이건.”
“우리 NS에서 장비가 없어서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다지요.”
“병원장님!!”
“긴말할 것 없이 투표로 정하지요. 반대하시겠습니까?”
능글스럽게 웃는 오지호.
그의 의도는 분명했다.
공개 검증을 수용하면서 NS에 진 빚을 이제라도 갚겠다는 뜻이었다.
“자, 반대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보시지요.”
“…….”
“그럼 통과된 것으로 알겠습니다.”
냉큼 숟가락을 올려 실속을 차리는 오지호였다.
뜻하지 않게 진혁의 일로 큰 이득을 본 오지호가 어떻게 나올지는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