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88)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88화(88/388)
88화. 잡았다. 요놈! (8)
진혁이 한참 일에 매진하고 있을 때.
평소에 교류가 없던 레지던트 3년 차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 선생. 힘든 건 없어?”
“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 식사는 잘 챙겨 먹고.”
“옙!”
조용히 어깨를 두드리고 가는 그.
그게 시작이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는 김영은.
술기를 가르쳐 줄 테니까 언제 한번 찾아오라는 레지던트까지.
선배 레지던트들의 시선이 따뜻하게 바뀌었다.
내부 고발로 오태상을 젖혔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되바라지진 않았다는 거지.’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진혁이 오태상을 찾았다.
“22세, 여환, Headache(두통) 주소로 내원했습니다. 지난 일주일간 제대로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Dehydration(탈수)외 다른 증세는 없습니다. 바이탈은 BP 115/83, rate 83, weight 43kg입니다.”
노티를 했건만 흠칫거리기만 하는 오태상.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아직도 멘탈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그 모습에 진혁이 먼저 말했다.
“IV(정맥 주사) 달고 레빈 튜브 삽관할까요.”
“그, 그래요.”
떨떠름한 대답.
진혁이 싱긋 웃으며 몸을 움직였다.
뭐, 뜻하지 않게 봐주긴 했지만, 소득이 많았다.
* * *
레빈 튜브(Levin Tube, 엘 튜브).
흔히 말해 콧줄이다.
식사를 하기 힘들어하는 환자나, 위에 가득 찬 가스를 빼낼 때 보통 사용한다.
멸균 처리가 된 수술용 장갑이 아닌 비멸균 장갑을 낀 진혁이 환자에게 다가갔다.
컨타미네이션(Contamination, 오염) 염려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환자분, 콧줄 삽관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조금 불편하실 거예요. 일단 여기서 수액까지 맞으시고 내과로 전원시켜 드릴 겁니다.”
거식증의 경계에 서 있는 환자.
삐쩍 말라 보였건만, 스스로 뚱뚱하다고 생각해 밥을 먹는 걸 꺼리고 있었다.
그 결과는 저체중과 탈수증.
“아프지 않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안 그래도 안 아프게 해 드릴 참이었습니다.”
진혁이 젤이 담긴 통을 흔들어 보였다.
리도카인(Lidocaine) 젤을 바르면 통증과 가려움증이 완화될 수 있었다.
“턱을 좀 당겨 보시겠어요?”
“이렇게요?”
“아뇨, 목은 숙이지 마시고 고개만요.”
환자가 진혁의 지시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자세가 나오질 않자 진혁이 그녀의 자세를 직접 교정했다.
“이렇게 하셔야 삽관이 쉬워요. 아프지도 않고요.”
“감사합니다.”
진혁이 오른손을 뻗어 환자의 코끝과 귓불, 다시 흉골의 검상돌기까지의 길이를 측정했다.
삽관할 엘 튜브의 길이를 가늠하는 행위였다.
그러고는 조용히 손가락 하나를 그녀의 콧구멍에 갖다 댔다.
“저, 이건 왜…….”
아직 22세인 여자 환자.
그녀의 얼굴이 달아오르자 진혁이 말했다.
“어느 콧구멍으로 넣을지 가늠하는 겁니다.”
“네?”
“숨이 잘 쉬어지는 구멍이 있거든요.”
“아.”
그녀의 한숨 같은 답변을 들으며 진혁은 손가락의 감각에 집중했다.
‘왼쪽에 넣어야겠네.’
이미 환자의 키에 맞게 55cm의 엘 튜브를 가져온 상황.
리도카인 젤을 듬뿍 바른 뒤, 그녀의 얼굴과 90도 각도로 엘 튜브를 집어넣었다.
하지만, 콧줄이 들어가질 않는다.
하비갑개(Inferior nasal concha)에 걸린 것이다.
코 내부에 존재하는 세 층의 구조물 중 아래코선반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잠시만요.”
진혁이 환자의 코를 왼쪽 손으로 짓눌렀다.
그러자 들창코처럼 코가 들린다.
이젠 일사천리다.
엘튜브를 쭉쭉 밀어 넣는다.
그렇게 20cm 정도 들어갔을 때.
“침을 삼켜 보시겠어요?”
꿀꺽.
환자가 침을 삼키는 순간.
진혁이 다시 엘 튜브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침을 삼키는 과정에서 후두개가 후두를 덮는 순간을 이용한 잔기술이었다.
엘 튜브가 식도 안쪽으로 들어간 상황.
이젠 속도전이다.
최대한 빠르게 넣어야 구역감이 덜 하고 아프지도 않았다.
슥슥.
슥슥.
빠르게 움직이던 진혁의 손이 멈췄다.
“다 됐습니다. 잠시만요. 확인 좀 할게요.”
혹시라도 폐로 엘 튜브가 삽관됐다면, 음식물이 엉뚱한 곳으로 들어갈 터.
엘 튜브에 50cc 주사기를 연결한 뒤, 공기를 밀어 넣으며 청진을 시도했다.
하지만, 환자의 상복부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너무 짧았나.’
진혁이 청진기를 벗은 뒤 다시 엘 튜브를 밀어 넣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행하는 방법 중 하나.
그러고선 다시 청음을 했다.
꾸르륵.
꾸르륵.
그제야 위에 공기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잘 들어갔네. 이 정도면 X-ray는 찍지 않아도 되겠는데.’
이젠 마무리를 할 차례.
휴지로 엘 튜브에 묻어 있는 젤을 닦아 낸 뒤, 빠지지 않도록 테이프로 고정했다.
“환자분, 불편하다고 콧줄을 당기시면 안 됩니다. 안 그래도 움직일 때 조금씩 밀려 나올 수 있거든요.”
진혁이 그녀에게 단단히 주의를 준 뒤 곧장 자리를 떴다.
환자가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었다.
* * *
진혁은 정말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방송 탓인지, 가까운 병원에 가도 될 환자도 아신 병원 ER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복은 진짜 타고나는 건가.’
그렇게 한창 일하고 있을 때.
김현수가 눈에 들어오자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의문도 잠시.
오태상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김 선생, 비켜!”
“예.”
“환자분, 괜찮으십니까?”
“으으으……. 아파. 아프다고.”
“어디가 아프세요?”
“배가 아프다니까!”
극심한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
오태상의 고개가 휙 하니 돌아갔다.
“피버(열)는?”
“39.5도입니다.”
“39.5도?!!”
곧 차트를 확인한 오태상의 표정이 굳어졌다.
업도미널 페인(Abdominal pain, 복통)을 주소로 내원한 환자.
간헐적인 통증을 호소했기에 X-ray를 찍었다.
그 결과 장에 변이 차 있는 걸 확인하고 글리세린 관장을 실시했지만, 여전히 복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장에 변이 찬 게 원인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한 거야!!’
피버 또한 처음 내원했을 때보다 더 높아진 상황.
오태상이 고성을 내질렀다.
“업도미널 페인(복통)이 계속됐는데 왜 보고를 안 했어!!”
“그, 그게…….”
“똑바로 말 안 해!?”
“죄, 죄송합니다.”
일단 사과부터 하는 김현수.
오태상은 분노로 인해 몸이 덜덜 떨렸다.
안 그래도 간신히 살아남은 상황.
거기에 더해, 이진혁의 눈치까지 보고 있었다.
또다시 문제가 생긴다면 끝이건만, 김현수가 사고를 친 것이다.
“이 자식이! 아……!”
화를 내려던 찰나, 오태상의 몸이 흠칫거렸다.
김현수가 보고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 48세, 남환, 업도미널 페인(Abdominal Pain, 복통)을 주소로 내원한 환자입니다. 아까 보고 드리고 안티(항생제) 슈팅했는데, 피버(열)가 잡히지 않습니다.
– 이따가 체크할게요.
– 저 그게.
– 이따가 체크한다고요!
– 23번 베드입니다.
– 알겠으니까 가 봐요.
‘혹시 그 환자가 이 환자?’
오태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환자의 베드 번호는 23번.
김현수가 보고했던 그 환자가 맞았다.
‘시발, X 됐다.’
오태상이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 * *
김현수는 억울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억울했다.
분명 환자의 상태를 보고하지 않았던가.
안 그래도 3개월 동안 ER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있었는데, 오태상까지 뻔뻔하게 나오자 너무도 분했다.
하지만 뭐라 항변할 수도 없었다.
그저 침묵, 또 침묵할 뿐이었다.
그들 사이에 이진혁이 끼어든 건 그즈음이었다.
“일단 X-ray를 다시 찍어 봐야 할 거 같습니다. 빤빼(Panperitonitis, 범발성 복막염)일 수도 있습니다.”
순간 정신을 차리는 둘.
환자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진혁의 말을 믿는 건 아니었지만, 당장 조치를 취해야 했다.
* * *
진혁이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오태상이 떨리는 얼굴로 촉진을 시작했다.
X-ray도 찍고 CT도 찍을 예정이었지만, 일단 환자 상태를 가늠하려는 거다.
“환자분, 어디가 아픈지 말씀 좀 해 주십쇼.”
“다 아프다니까.”
“잠깐 촉진해 보겠습니다.”
“아아악!”
“잠시만, 잠시만요. 조금만 참으세요!”
“으윽!!!”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
특히 배꼽 아래쪽의 하복부에 통증이 심한 듯했다.
‘큰일이다. 방치하고 있는 동안 더 안 좋아졌어.’
김현수는 자신에게 노티했다는 이유로.
자신은 박영진에게 혼날까 봐 전전긍긍하느라 환자를 체크하지 못했건만.
상황이 점점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 *
경증 환자가 갑자기 중증으로 전환되는 일은 흔히 발생할 수 있었다.
X-ray를 다시 찍어 본 결과, 상황이 심각했다.
흔히 말하는 기계적 장폐색(Mechanical obstruction)이었다.
수술 후 장의 유착, 탈장, 장 중첩 등 기계적인 원인에 의해 장관 내강이 물리적으로 막힌 것이다.
거기에 더해, CT 결과는 더 심각했다.
‘하복부에 농양(Abscess)까지 보인다. 큰일이다!’
국소 복막염을 동반한 천공(장기에 뚫린 구멍).
천공에 따른 급성 충수염.
거기에 소장 폐색증(SBO)부터 장회전이상증까지 의심됐다.
오태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김현수, 히스토리 테이킹 제대로 안 했어? 수술 이력이 있는 걸 왜 체크 안 했어!!”
“그, 그게.”
“제대로 말해!”
“히스토리 테이킹은 했습니다. 분명히 반발통(Rebound tenderness)과 압통만 있었지,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여전히 김현수를 몰아붙이기에 바쁜 오태상.
그 모습에 진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천공성 충수염에 기인한 급성 화농성 복막염이다. 나머지는 너무 시간을 지체해서 탈이 난 거다.’
진혁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당장 GS(일반외과)를 콜해야 할 거 같습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오태상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당장 응급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환자가 죽을 수도 있었다.
* * *
ER의 콜에 움직인 건 GS의 치프 유진태였다.
후배 레지던트를 내려보내도 됐지만, 그는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방송에 나올 수도 있단 말이지.’
물론 유진태도 환자 상태에 대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 그렇지 않은가.
이미 내원한 지 오래된 환자.
한창 촬영 중이라는 이유로 더욱 신경 쓰고 있을 게 분명했고.
응환(응급 환자)을 놓쳤을 리 없었다.
그래서 덜컥 외과장한테 보고까지 했다.
좋은 케이스가 있다고.
당장 이번 건부터 촬영하자고.
그런데 ER에 내려와 보니.
상황이 심각했다.
아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됐다.
“어떤 미친놈이……. 헙.”
순간 저도 모르게 나오는 욕설.
카메라를 의식해 억지로 말을 삼켰지만, 유진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거기에 더해, 외과장의 연락을 받은 박영진까지 그 모습을 드러냈다.
* * *
하얗게 질린 오태상의 표정을 통해, 박영진은 일이 잘못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곧, 차트를 확인한 박영진이 유진태를 바라봤다.
“누가 집도하기로 했지?!”
“허인태 교수님이 하시기로 했습니다.”
“과장님께 당장 전화드려! 직접 집도해 달라고 말씀드려!”
“그, 그게…….”
“왜? 말하기 어렵나? 내가 당장 전화하지. 뭣들 하나! 당장 환자부터 옮기지 않고!”
빠른 판단과 지시.
안 그래도 카인(Car-In, 수술실로 옮기는 행위) 준비를 마친 이들이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박영진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새 차트를 확인해 환자를 방치했다는 걸 확인한 상황.
반드시 그를 살려야 했다.
“최 과장님. 지금 환자를 올려보냈습니다만, 직접 집도해 주셔야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지금 상황이…….”
한참 상황을 설명한 박영진이 차가운 얼굴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과장실로 돌아갔다.
환자의 생사에 따라 또다시 큰 파동이 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