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95)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95화(95/388)
95화. 죽음이 예정된 환자 (5)
이틀 후, 레지던트 휴게실.
술기 연습을 하는 이들로 한참 시끄러웠다.
“야, 근데 웃기지 않냐?”
“뭐가?”
“아니, 그렇잖아. 너무 타이트하게 돌리는 거 같아서 오프도 되돌린 거잖아. 근데 술기 연습을 하라는 게 말이 되냐고.”
“뭐,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어. 분원에서 유 선생도 올라온다잖아.”
“대타라도 와서 다행이지.”
오태상의 빈자리를 메꿀 유호진의 전배.
그에 관한 이야기가 한참 계속됐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화제를 전환했다.
“근데 이진혁은 잘하려나? 요즘 집에도 안 간다며?”
“잘하긴 뭘 잘하겠어.”
“?”
“애들한테 물어보니까 하루 종일 논문만 본다던데? 그것도 정신과 논문만.”
그 말에 다들 놀란 기색을 띠었다.
술기 연습은 안 하고 논문만 본다니.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뭐?! 왜?”
“디아이(DI, 약물 중독) 환자가 고등학교 후배래. GI(소화기내과)로 트랜스퍼시켰는데도, 아직 미련이 남았나 보더라.”
“그래? 그러다가 대회 나가서 망신만 당하는 거 아니야? 병원장님이 이진혁은 꼭 출전시키라고 했다며.”
“뭐,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한참 시끄럽게 떠들며 손을 놀릴 때.
핸드폰을 확인한 누군가가 기함했다.
“대박! 이진혁이 박태준이랑 붙었다는데?!”
“뭐!?”
“지금 GI 레지던트 휴게실이래!!”
“진짜?”
“그렇다니까. 봐 봐.”
그가 핸드폰을 들어 소화기내과(GI) 레지던트가 보낸 문자를 보여 줬다.
[긴급! 이진혁이랑 태준 선배랑 한판 하고 있다. GI 레지던트 휴게실로 올라와!]문자를 확인한 이들이 기가 막히단 얼굴을 했다.
술기 연습을 하거나 퇴근을 할 것이지.
소화기내과는 왜 올라갔단 말인가.
“당장 치프한테 보고해!!”
레지던트 휴게실이 뒤집혔다.
* * *
최예린의 주치의는 박태준.
자신을 보자마자 성질을 냈기에 감히 PSY(정신의학과)에 컨설트를 하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 이틀 동안 끈질기게 기다렸다.
외래를 보는 교수들이 ‘지정의’로 실무를 맡은 ‘주치의’인 레지던트를 감독하는 구조.
교수 중 누군가는 최예린의 상태를 확인하고 컨설트를 지시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예린의 차트는 변하지 않았고.
피지컬 케어만 주구장창 이뤄졌기에, 결국 진혁이 움직였다.
소화기내과 병동에 들러 직접 최예린을 설득할 생각이었고.
그녀가 거부할 걸 대비해, 김상혁의 동기인 이도운에게도 콜을 했다.
그런데, 최예린의 병실 앞에서 하필 박태준과 맞닥뜨렸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여길 왜 올라왔냐니까!”
“……환자가 걱정돼서 올라왔습니다.”
“결국, 날 못 믿어서 올라왔다는 말이네.”
“그건 아닙니다.”
“야. 이진혁이. 똑바로 대답 안 해?! 너도 내가 우습냐?! 내가 우습냐고!!”
거듭된 추궁.
진혁이 숫제 입을 닫았다.
제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무작정 GI 레지던트 휴게실로 끌고 온 박태준.
뭐라 말한다 한들 그의 흥분을 가라앉히긴 힘들어 보였다.
그 모습도 고까웠을까.
박태준이 다시 소리쳤다.
“넌 니가 잘난 줄 알지?”
“…….”
“유명해지니까 뭐라도 된 거 같지? X 까라고 그래. 어디서 인턴 주제에 깝치고 있어. 어!”
“…….”
“그래 봤자 너도 소모품이라고. 소모품!!”
박태준은 연신 진혁을 몰아붙였다.
그러자 문밖이 시끄러워졌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달려온 이들이었다.
“와. 작정했네. 작정했어.”
“그러니까 인턴 주제에 왜 올라오냐고.”
“그래도 좀 심하지 않아?”
“뭐, 지난번 일로 쌓인 게 많은가 보지.”
“말려야 할 거 같은데.”
수선스럽게 떠드는 이들 사이로 누군가가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ER에 연락했으니까 데리러 오겠지. 박 선생이 끌고 오자마자 연락했으니까 지금쯤 뛰어오고 있을걸?”
“괜히 일이 커지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조용히 데리고 가겠지.”
그들은 곧 있을 파란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원래 상대가 반응이 없으면 더욱 열받는 법.
진혁이 침묵으로 일관하자, 박태준은 더 흥분해 날뛰었다.
“왜 X 같냐?”
“…….”
“다른 과 레지던트가 지랄하니까 X 같냐고.”
“…….”
“이제 대답도 안 해!!”
“죄송합니다.”
“죄송? 지금 그게 죄송하다는 표정이야!”
무슨 말을 해도 씨알도 안 먹히는 상황.
진혁은 그의 폭언을 묵묵히 감내했다.
지금은 1998년.
전국 어디서나 폭언과 폭행이 난무하던 시기였다.
이는 보수적인 서열 문화도 한몫했지만, 환자의 목숨과 액팅이 연계되어 있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실수 한 번으로 환자의 생명이 아작 날 수도 있는 곳이 병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옥상에서 벌어지는 빠따 세례.
청진기로 뺨을 맞은 인턴.
정형외과의 수술 도구 중 하나인 해머(Hammer)로 엉덩이를 맞은 전공의까지.
쪼인트는 일상이라고 할 정도로 별의별 일이 다 있는 것이다.
‘뭐, 멱살을 잡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인 건가.’
순간 진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2025년에도 없어지지 않았던 병원 내 악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오해한 박태준이 대노했다.
“이 새끼가 웃어?! 지금 내가 웃겨? 왜 말로 하니까 우습냐? 너 내가 못 때릴 줄 알아?”
“그게…….”
“지금 촬영 중이니까 못 때릴 거라고 생각했구나! 그러니까 웃었지! 그치? 안 보이는 곳을 때리면 그만이야!!”
퍼억!
“윽!”
정강이를 걷어차인 진혁이 얕은 침음성을 토해 냈다.
거기에 더해.
발길질이 한 번 더 날아온다.
퍼억!
같은 곳을 한 번 더 까다니.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진혁이 뭐라 항변하려던 찰나.
덜컹!
굳게 닫혀 있던 문이 갑자기 벌컥 열리자, 박태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예상치도 못한 인물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 * *
불과 7분 전.
업무를 보던 박영진이 흠칫 놀랐다.
김상혁이 다급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지?”
“과장님, 그게…….”
“편하게 말해.”
김상혁이 말을 흐리자 박영진이 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보고를 망설이는 이유.
그건 보고할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나, 일이 커질 걸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 선생에 관한 일입니다.”
“이 선생이 또 사고라도 쳤나?”
“그게 그러니까…….”
김상혁의 설명에 박영진이 벌떡 일어났다.
안 그래도 이진혁을 잘 지켜보라는 병원장의 지시가 있었다.
그뿐이랴.
자신도 이진혁이 더는 구설수에 휘말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상혁에게 이진혁의 동향을 수시로 보고하라고 지시했고.
김상혁이 모든 동향을 파악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 장길만에게도 언질해 두었다.
심지어 장길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겨 분원에서 유호진까지 불러들였다.
하지만 사달이 났다.
감히 인턴 주제에 타과 레지던트와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그것도 적진이나 다름없는 소화기내과에서.
* * *
흉신이 현세에 강림하면 저런 얼굴일까.
박영진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정강이를 부여잡고 있는 진혁을 본 순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했기 때문이다.
‘이 새끼가 감히!’
일이 커지기 전에 잠재울 생각이었거늘.
감히 주머니 속 사탕을 깨부수려는 놈이 있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과, 과장님.”
“감히 내 밑에 있는 애한테 손을 대!!”
“그, 그게 아니라.”
“내가 지금 잘못 봤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아, 아닙니다.”
박태준이 말을 더듬었다.
자신은 고작 바이스 레지던트(R3).
박영진은 한 과를 맡은 과장.
그 지위만 따지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아니, 그 지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진혁이 ER 소속이라는 게 문제였다.
“왜 우리 애한테 손을 댔지?! 내가 우습게 보였나!!”
“!”
“우리 ER이 만만하다 이건가!!”
“그, 그게.”
“제대로 대답해야 할 거야!”
“!!”
“뻔히 촬영 중인 걸 알면서도 감히 네까짓 게 우리 애한테 손을 대!!!”
“죄, 죄송합니다.”
연신 노성을 터트리는 박영진.
그의 분노는 대단했다.
충돌의 끝이 폭행이라니.
이제 선을 넘은 건 박태준이었다.
그렇게 박영진이 연신 고성을 내지르자.
휴게실 안쪽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던 레지던트들까지 달려왔다.
보는 눈이 갑자기 더 많아진 상황.
졸린 눈을 비비는 이들을 보며, 박영진이 목소리 톤을 바꿨다.
“이진혁 선생의 뒤를 캐다가 일이 엎어지니까 억울했나? 억하심정에 때린 게 아니냐 이 말이야!”
“!”
“그랬군. 역시 억하심정 때문이었군. 우리 애가 박 선생한테 뭘 잘못했다고 이랬겠나. 역시 그것뿐이야.”
순식간에 사적 보복으로 프레임을 잡는 박영진.
박태준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매장당할 판이었다.
“아닙니다!! 이진혁 선생이 저를 믿지 못하고 올라와서 사소한 다툼이 있었던 것뿐입니다!”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하는군.”
“사실입니다!”
“그래? 이제 막 병원에 들어온 인턴이 소화기내과에 대해 뭘 안다고 올라왔다는 거지?”
“그, 그건.”
“어폐가 있는 변명 잘 들었네. 정식으로 문제 삼을 거야!”
사적 보복으로 공론화시키겠다는 말.
박태준은 연신 억울하다고 소리쳤다.
그 모습에 박영진의 시선이 진혁을 향했다.
“이 선생이 말해 보지. 박 선생이 한 말이 사실인가?”
* * *
공이 자신에게 넘어오자 진혁이 박영진을 직시했다.
완전히 굳어 있는 얼굴.
꿈틀거리는 미간.
날카로운 눈빛까지.
사고 치지 말라고 경고했던 그때와 똑같았다.
하지만, 잘만 하면 부원장에게 복수하고, 자신의 뒤를 캤던 박태준도 날릴 기회.
‘프레임까지 잡아 주는데 가만있을 순 없잖아?’
내심을 숨긴 진혁이 곧장 연기를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과장님.”
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사죄로 돌아오자 박영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원하던 대답이 아닌 것이다.
“사실이냐고 했거늘. 그게 무슨 소리지!”
“죄송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진혁.
박영진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거기에 더해, 연출이라는 걸 모르는 구경꾼들까지 수군거렸다.
“갑자기 사과는 왜 하는 거야?”
“뭐, 일을 키우고 싶지 않나 보지.”
“진짜 못 믿어서 올라온 건가?”
“와. 인턴이 무슨 레지던트를 의심하냐.”
진혁의 사과를 제멋대로 해석하는 이들.
그들의 대화를 들은 박영진이 재차 따져 물었다.
“죄송할 짓을 했나?”
“주제넘게 타 과에 올라와서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왜 괜한 일을 만들었지? 내가 경고했을 텐데.”
“최예린 환자가 고등학교 후배라서 그랬습니다.”
“뭐?”
“또다시 자살을 기도할까 봐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상담을 권유하고자 GI에 올라왔습니다.”
순간 정적이 흐른다.
진혁이 말한 속사정이 더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곧, 이를 지켜보던 이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정적을 깼다.
“뭐야. 진짜야? 그럼 박 선생이 사고 친 거잖아.”
“디아이(DI, 약물 중독) 때문에 입원한 것도 맞잖아.”
“아직 만으로는 17살이라고 했는데……. 고등학교 후배라서 신경 쓰였나 보네.”
연신 술렁이는 이들.
동요가 심해지자 박태준이 악을 썼다.
“거짓말입니다!!”
마지막 발악 같은 외침.
박영진이 냉소했다.
“거짓말이다?”
“그런 의도였다면 처음부터 말했어야 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이다?”
“네!”
너무도 단호한 대답.
그 모습에 진혁이 어이없어했다.
최예린의 병실 앞에서 마주친 박태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바로 GI 레지던트 휴게실로 자신을 끌고 오더니 제멋대로 다그치기 바빠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믿는 사람도 많았다.
이곳은 그의 본진이나 다름없는 소화기내과 병동.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그러니까.”
“후배인 건 확실한 거야?”
“일부러 폭행을 유도한 거 아니야?”
“이건 정당방위라고. 정당방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같은 과 레지던트를 옹호하는 그들.
서로의 주장이 엇갈릴 때.
거짓말처럼 이도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혁의 요청에 달려온 게 분명한 상황.
이젠 쐐기를 박을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