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106)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06화(106/269)
106화 무승부로 해 드리겠습니다. (1)
그간 나름대로 수련을 해서 마나에 스며든 음습한 기운을 제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의식하지 않으면 알지도 못할 정도로 그 기운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마나의 성질이 변한 건 분명한데 말이지.”
그는 툴툴거리며 연무장으로 향했다.
마나를 몸에 둘렀는데도 블러드 퓌톤의 독은 결국 그 마나의 벽을 뚫고 지셀의 몸에 들어왔다.
아무리 소량이라도, 고작 해독초 몇 번 씹은 걸로 그 강력한 독이 다 사라질 리가 있나.
블러드 퓌톤의 독과 자신의 마나가 알 수 없는 상승효과를 일으킨 게 분명했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나.”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바로 블러드 퓌톤의 독을 직접 마셔 보는 것.
그때와 같은 조건을 만들어서 마나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이건 새로운 기회나 마찬가지야.”
지셀은 창고에서 몰래 가져온 작은 병을 슬쩍 흔들어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은 모두 잠든 새벽 시간.
일부러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몰래 나왔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도 아침에나 발견이 될 것이다.
지금 자신이 쓰러지면 펜리스 영지도, 페르디움도 순식간에 적들에게 짓밟힐 터.
함부로 목숨을 걸면 안 되는 상황이지만, 그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
지셀도 몇 번이나 신중히 고민하고 수도 없이 마나를 확인하며 성공할 가능성을 가늠해 보았다.
“양을 적당히 조절하면 죽진 않을 거야. 내 가설이 맞는다면 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으니, 해 볼 만한 도박이지.”
분명히 시간을 거슬러 돌아왔는데도, 전생보다 시간이 부족했다.
미래를 안다 해도 그건 그저 가능성에 불과할 뿐.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강해져야 한다.
그런데 마침 새로운 기회가 제 발로 찾아왔다.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지셀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어?”
그의 직감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끝도 없이 강렬하게 외치고 있었다.
이 독이야말로 너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에이, 설마 죽기야 하겠어?”
지셀은 불안감을 억누르며 약병의 뚜껑을 열었다.
작은 병에 담긴 독을 아주 조금 혀에 떨어뜨리자 지셀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하지만 그는 지체하지 않고 병의 내용물을 모조리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크윽!”
그의 안색은 순식간에 보랏빛이 되었다가, 곧 거무죽죽하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지셀은 이를 악물었다.
배 속을 칼로 난자하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근육도 마비된 듯 팔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금속이든 돌이든, 재질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물건을 부식시키는 강력한 독이다.
특수한 마법 처리를 한 병도 간신히 버티는 독을 몸 안에 생짜로 집어넣었으니…….
의지, 육체, 마나 중 하나라도 모자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신 차려야 한다!’
마나로 한번 걸러 받아들이는 것과 직접 마시는 건 차원이 달랐다.
지셀에게 마나가 없었다면 독이 혀에 닿는 순간 즉사했을 것이다.
구우우웅!
지셀의 마나가 몸을 가득 채운 독의 기운과 싸우기 시작했다.
세 개의 코어가 맹렬하게 돌아가며 마나를 뿜어내었지만, 독은 오히려 그 흐름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마나와 독은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듯 지셀의 몸 안에서 격렬한 싸움을 시작했다.
“크으으윽!”
지셀이 눈을 부릅떴다.
두 눈에서 핏줄이 터지고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내장이 상한 듯 입가에서도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온몸의 혈관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꽤…… 제법인데?”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지셀은 웃었다.
고통스럽지만, 그 이상으로 기대감이 차올랐다.
이거다. 바로 이 힘이다. 이 힘을 소화하기만 하면 그는 몇 배나 더 강해질 것이다.
“크으윽!”
새롭게 들어온 기운은 몸 안에서 발버둥 치며 밖으로 뻗어 나가려 요동치고 있었다.
혼미한 정신을 부여잡고 지셀은 마나 연공을 계속했다.
세 개의 코어가 기운을 어떻게든 통제하려 하는 지셀의 의지와 맞물려 맹렬하게 돌아갔다.
구우우웅!
독을 휩쓸고 소용돌이치던 마나는 어느새 독과 하나가 되었다.
지셀은 아주 조금이지만 마나의 양이 늘어난 걸 확실히 느꼈다.
쓸모없는 건 모두 타 버리고 순수한 힘의 정수만 그의 몸에 남은 것이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예상대로 그의 마나는 블러드 퓌톤의 독과 융화되어 독의 기운을 흡수했다.
흡수된 기운이 그의 회복력이 높아진 것에 일조한 모양이었다.
독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으니까.
“늘어난 건 좋은데…….”
마나 양이 늘어난 것도, 회복력이 높아진 것도 당장 몰아치는 기운을 가라앉히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조금만 더!’
폭발적으로 몰아치던 마나는 점점 독과 융화되며 그 성질이 변해 갔다.
언제 정신을 잃어도 이상할 게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지셀이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였다.
구우우웅!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고통을 버티던 그의 안색이 조금씩 원래의 빛을 찾아 가기 시작했다.
‘성공……인가?’
마나에 남아 있던 독의 기운도 완전히 사라진 듯, 마비되었던 몸도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셀은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마나를 최대한 몸 안으로 갈무리하며 서서히 마나의 흐름을 가라앉혔다.
독 기운이 사라졌다고 안심하고 기절했다간 폭주하는 마나에 그대로 온몸이 찢겨 나갈 것이다.
모든 힘이 가라앉고 나서야 그는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됐다……. 성공했어!’
성공했다는 확신이 들자 긴장이 확 풀려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희미해져 가는 정신을 붙잡아 둘 기력도 없었다.
지셀은 연무장 한가운데에 누운 채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얼마나 지났지?’
지셀이 서서히 눈을 떴다. 기다렸다는 듯 벨린다가 울먹이며 외쳤다.
“도련님!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완전히 시체 꼴이잖아요! 얼굴 핼쑥해진 것 봐!”
벨린다는 항상 이른 아침부터 연무장을 점검하고 지셀이 수련에 전념할 수 있게 준비한다.
연무장에 쓰러진 지셀을 제일 먼저 발견한 모양이었다.
지셀은 힘겹게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은 침대에 누워 있고, 영지의 주요 인물들이 죄다 그 주변에 모여 있었다.
“뭐야, 무슨 큰일이라고 다들 모여 있어?”
길리언이 심각하게 되물었다.
“영주님, 혹시 블러드 퓌톤의 독을 마시셨습니까? 연무장에서 독이 담겨 있던 병을 발견했습니다.”
“어, 그렇지. 좀 짜릿하더라고. 매운맛이야.”
지셀이 별거 아니라는 어조로 내뱉었다.
그 대답에 방에 모인 모든 이들이 입을 쩍 벌리고 황당해했다.
본래도 블러드 퓌톤의 독은 강력하기로 유명하다.
마수의 숲에 살던 놈의 독이니 알려진 것보다도 훨씬 더 독성이 강할 터.
그걸 무슨 음료수 마시듯 마셔 놓고 맛 평가까지 해 대다니.
벨린다가 화를 참느라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
“대체 왜 그러신 거예요?”
“그냥 수련한 거야, 수련.”
“독을 마시는 게 무슨 수련이에요! 페르디움 가문의 마나 연공법은 독 같은 걸 쓰지 않는다고요!”
세상에는 독을 마시며 수련하는 마나 연공법도, 독을 사용하는 마법사들도 있기는 있다.
보통 독 내성을 기르고 그 기운을 사용하는 자들이 그런 식으로 수련한다.
하지만 독을 쓰는 사람들도 강력한 독부터 무식하게 마시는 게 아니라, 아주 미약한 독부터 단계를 올린다.
지셀처럼 극독을 홀라당 삼키는 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변명에 결국 벨린다는 참고 참았던 말을 내뱉었다.
“도련님, 설마 죽고 싶어서 그래요?”
“뭔 소리야.”
“죽고 싶은 게 아니면 그걸 퍼다 마실 리가 없겠죠! 요새 일이 좀 많아서 갑자기 머리가 홱 돌아 버린 거예요? 아니면 아멜리아 아가씨가 그리워져서 세상 살기가 싫어졌어요?”
“아니, 거기서 그 여자 이름이 왜 나와? 나 이제 그 여자 안 좋아한다니까!”
“그럼 뭔데요! 진짜 내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쪽팔릴 바에는 차라리 죽겠다는 거냐고요!”
“뭐? 내가 왜 내기 때문에 죽어?”
지셀이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벨린다의 말에 동의하는 듯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영주가 내기에서 질 거 같으니 창피함을 견디지 못하고 독을 마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클로드가 흐느적거리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그는 분한 표정을 지은 채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고심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무승부로 해 드리겠습니다. 없던 일로 할 테니 일이나 조금 줄여 주시죠. 그래도 은인인데 죽음으로 몰아가다니, 마음이 불편해서. 어휴.”
“이게 뭔 개소리…….”
지셀이 황당해하며 험한 소리를 짓씹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들 눈빛이 촉촉해져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알포이도 우거지상을 하고서는 주절거렸다.
“영주님이 죽으면 저도 곤란하니 그냥 없던 일로 해 드리죠. 에잉.”
어처구니가 없어진 지셀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아니, 다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지금 결과가 코앞인데 무슨 판을 엎어?”
벨린다는 속상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괜히 자존심 세우지 말고 받아들이면 좋잖아요.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세요? 답답해 죽겠네!”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숨이 턱 막혀 와 지셀은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한 건 자신이었다.
“아, 됐다고! 다들 가서 일이나 해! 내기는 그대로 진행한다!”
그러자 클로드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변명조로 말했다.
“난 할 만큼 했다? 영주님이 거절한 거야.”
알포이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분명 말했다. 내 탓 아니야.”
꼴을 보아하니,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내기를 취소하라고 협박한 모양이었다.
하긴 영주가 독을 마셨으니, 그 죄를 덮어쓸까 봐 무서웠겠지.
지셀은 헛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저어 사람들을 내쫓았다.
“자, 나 일어났으니까 이제 돌아들 가. 시간은 금이라는 말도 못 들어 봤어?”
“도련님, 그래도 조금만 더 쉬고 생각해 봐요. 네? 지금 독 기운이 안 빠져서 머리도 잘 안 굴러가죠?”
벨린다가 달래듯 말했다.
독을 마신 후유증으로 제정신이 아니라서 내기를 포기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영주님, 집사장의 말이 맞습니다. 조금 더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길리언도 나서서 말렸지만, 지셀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일을 시작했다.
누워 있을 시간도 아깝다. 움직일 수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 움직여야 한다.
“끄응, 이거 몸이 말이 아니군. 독이 어지간히 강했던 모양이야.”
그는 해골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삐쩍 마른 몰골이었다.
마치 생명력을 무언가에 뺏긴 것처럼.
지셀은 삐거덕거리면서도 영지를 돌아다니며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갑자기 변한 영주의 모습을 보고 영지민들이 놀랐다.
“뭐, 뭐여? 영주님 얼굴이 왜 저래?”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러는 거 아냐?”
“죽을병에 걸린 거 아냐? 우리 영주님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지.”
영지민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셀이 죽은 뒤에 올 다음 영주는 아마 절대 지셀처럼 잘 베풀지 않을 테니까.
영지민들의 걱정과 달리 지셀은 힘든 몸을 간신히 가누면서도 싱글벙글 웃었다.
“힘이 느껴져. 내 안에서 강대한 힘이 넘쳐흐르……. 콜록! 콜록! 으…… 피도 넘치네?”
“도련님, 좀 쉬시라고요! 피곤하니까 헛소리도 나오잖아요!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는 거예요!”
벨린다가 지셀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쏟아 낸 것은 물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