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113)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13화(113/269)
113화 인생 한 번 더 걸어 볼까? (1)
이제 남은 건 대량으로 생산한 뒤 제대로 상품화시키는 것뿐이다.
“일단 이걸 열심히 저어라.”
인부들은 지셀이 시킨 대로 추출물을 열심히 휘저었다.
한참을 저으며 식히자, 추출물은 점점 점도가 높아졌다.
지셀은 손가락으로 그걸 살짝 퍼서 비벼 보았다.
추출물은 녹아들듯 순식간에 피부에 흡수되었다.
인부들이 지셀 곁에 슬금슬금 다가와 물었다.
“그, 그게 뭡니까? 영주님.”
다른 영지였다면 평민인 이들이 감히 영주에게 말을 걸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아니, 애초에 말 걸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지셀이 털털한 모습으로 영지민들과 격식 없이 대화해 온 덕분에, 간단한 질문 정도는 다들 부담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몸에 바르는 약인가요?”
“향기가 무척이나 좋습니다요.”
지셀은 뿌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아, 모르는가? 이건 ‘에센스’라고 한다. 약초에서 좋은 성분만 뽑아 농축한 것이지.”
“그걸 어디에 씁니까?”
“귀족들이 피부 관리할 때 쓰지. 미용에 목숨 거는 인간들이 많거든.”
“……아, 예.”
인부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러려니 고개를 주억였다.
귀족들이나 쓰는 물건을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보통 귀족들은 약초와 과일의 좋은 성분을 뽑아내어 바르거나, 얼굴에 증기를 쐬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부유한 가문이라면 신성력이나 마법을 쓰기도 하고.
하지만 대부분은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꾸준히 하면 피부가 좋아지기는 하지만, 들이는 돈과 시간에 비하면 효과가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제품은 다르다. 피부가 안 좋을수록 효과가 극적으로, 빠르게 나타난다.
“후후, 이건 이제 귀족들의 필수품이 될 거다.”
지셀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귀족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외모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깨끗한 피부는 부의 상징이기도 해서, 조금이라도 미용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 유행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전생에는 이 제품이 대륙을 휩쓸면서 델파인 공작가가 엄청난 돈을 쓸어 담았다.
“테스트를 좀 해 봐야겠네.”
직접 써 본 바로는 전생에 봤던 것과 똑같아 보였다.
그래도 정말 효과가 있는지 확인은 해야 했다.
“역시 벨린다가 평가를 제일 잘해 주겠지?”
벨린다는 은근히 꾸미는 걸 좋아한다.
피부 미용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라, 북부의 가난한 영지에서 일하는 하녀장치고는 피부가 희고 고운 편이었다.
지셀은 낮고 널찍한 유리병에 에센스를 담아 벨린다를 찾아갔다.
“벨린다, 이거 줄게. 한번 얼굴에 발라 봐.”
“이게 뭔데요?”
“화장품이야, 화장품. 피부에 아주 좋은 거야.”
“어머, 진짜요? 어디서 샀어요? 이런 거 엄청 비싼데……. 저 주려고 사신 거예요? 어디 제품이에요?”
벨린다는 깜짝 놀라 질문을 쏟아 냈다.
지셀은 돈을 팍팍 쓰는 듯하면서도, 사치품에는 극도로 돈을 아꼈다.
옷도 대충 입고 다니고 잘 꾸미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런 비싼 화장품을 사 왔다고? 그것도 귀족들이나 쓰는 제품을?
‘지금까지 키운 보람이 있네…….’
조금 감동했던 벨린다는 이어진 대답에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아 버렸다.
“이거 내가 만들었어.”
“…….”
지셀은 뭐가 문제냐는 듯 당당했다.
벨린다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저기, 도련님. 화장품은 아무거나 사용하면 안 되는 거 모르세요?”
“알지. 그래서 효과 확실한 거 만들어 왔다니까?”
“저는 도련님한테 화장품 만드는 법 같은 거 가르쳐 준 적 없는데, 대체 어디서 배운 거예요!”
벨린다는 지셀이 어렸을 때부터 그를 가르쳐 왔다.
하지만 연금술을 비롯해 약재를 다루는 법을 가르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뜬금없이 화장품이라고 가져오면 그걸 누가 믿겠는가?
“아무거나 발라서 피부가 엉망이 되어 버리면 되돌릴 수도 없는 거 아시죠?”
피부 미용에 드는 돈이 워낙 비싸다 보니 조금이라도 싼 재료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많았다.
납이나 수은 따위를 얼굴에 바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냥 효과가 없는 걸로 끝나면 다행이었다. 피부가 더 나빠지거나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 죽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돌팔이 약제사들이 귀족의 얼굴을 고름투성이로 만들었다가 목이 달아나기도 했다.
“역시 안 바를래요. 저 지금도 피부 좋거든요?”
마나를 다루면 조금이나마 회복력이 좋아지고 노화가 늦어진다.
벨린다도 마나를 다룰 정도의 실력자라 피부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그래도 관리하면 지금보다 더 좋아질 테니, 지셀은 조금 더 밀어붙였다.
“이거 바르면 그거보다 더 좋아진다니까? 막 얼굴에서 빛이 날 거라고. 한번 믿어 봐!”
“싫어요! 피부 망가지면 신성력이나 마법으로도 고치기 힘들다고요.”
신성력도, 마법도 부르는 게 값이라 아무나 쓸 수 없었다.
쓴다고 무조건 효과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질병을 치유하고 재생력을 높이니 부수적인 효과로 조금 상태가 좋아지는 정도였다.
“마음만은 고맙게 받을게요. 그런데 저는 진짜 못 바르겠어요. 피부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아니, 왜 안 믿어? 나 몰라? 농사도 끝내주게 성공했잖아!”
지셀이 툴툴댔다.
한번 시험해 보지도 않고 퇴짜를 놓다니.
빈말이라도 발라 보겠다고 해 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에 대한 대답은 벨린다가 속 시원하게 해 줬다.
“그때야 믿든 안 믿든 그냥 지켜보면 되는 거였잖아요. 이건 제 얼굴로 실험을 해야 하는 건데, 누가 나서겠어요?”
하긴, 그냥 속으로 욕하며 결과를 지켜보는 것과 자기 얼굴로 실험하는 건 차이가 컸다.
피부 관리 쪽은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정말 되돌릴 수 없으니까.
“음…….”
지셀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바르라고 억지로 떠넘겨도 아마 몰래 버리겠지.
자신은 새로운 힘 때문에 재생력이 더 좋아져서 피부가 너무나 매끈하다.
워낙 잘 만든 제품이니 이걸 쓰면 피부가 좋아지긴 하겠지만, 극적인 효과가 보이진 않을 거라는 뜻이다.
역시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 하나.
벨린다가 도망치듯 떠나고 나서도 지셀은 한참 주변을 서성였다.
지나가던 웬디가 그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지셀이 반색하며 그녀를 손짓해 불렀다.
“어이, 웬디. 마침 잘 만났다. 선물 하나 줄게. 이거 발라 봐.”
“이게 무엇인가요?”
“피부에 아주 좋은 크림이야. 내가 만들었어. 한번 써 봐. 나 믿지?”
“제가 지금 바빠서……. 죄송합니다.”
웬디의 신형이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니, 이게 마나까지 써서 도망갈 일이야? 어차피 클로드한테 갈 거면서.”
지셀은 혀를 차며 클로드를 찾아갔다.
집무실로 들어가자마자 웬디가 기둥 뒤로 숨는 게 보였다.
하는 수 없이 클로드에게 넘기니, 클로드가 화장품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뜯어보았다.
“그러니까 이게 우리 영지의 특산품이 될 거라고요? 피부 미용을 위한 화장품이?”
“그렇지. 귀족들이 엄청나게 좋아할 거야. 없어서 못 살 정도가 될걸?”
“흐…… 흐흐흐.”
클로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내기할 각이 섰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귀족 자제들과도 친분을 나누었다.
그렇기에 귀족들이 피부 미용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고 있었다.
귀족들은 효과 좋은 화장품을 하나 알게 되면 보석을 궤짝으로 내서라도 사려고 한다.
하지만 화장품은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니다.
의학, 약초학, 연금술을 통달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 수 없었다.
‘영주님은 책을 안 읽어. 공부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이지.’
집무실에 꽂혀 있는 책이라고 해 봤자 군사학 몇 권이 전부다. 그마저도 먼지가 쌓여 있다.
그런 사람이 화장품을 만들었다니, 엉터리가 분명했다.
클로드는 내심을 감추고 조심스레 물었다.
“으음, 이게 특산품이라……. 다른 영지에는 없는 거 맞아요?”
“그럼, 내가 최초로 만들었으니까.”
‘역시!’
영주가 처음 만들었다는 말은 진짜일 거다.
최근에 이런 물건이 나왔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으니까.
‘이게 팔릴 리가 없지.’
약학이고 뭐고 아는 게 없는 영주가 직접 만들었다는데, 효과가 있을 리가 없다.
설령 정말로 효과가 있더라도, 이름도 모르는 촌구석 영지에서 나온 화장품을 어떤 귀족이 믿고 써 주겠는가?
백 번을 다시 생각해 봐도 망할 게 뻔했다.
클로드는 노예 계약을 취소할 생각에 희희낙락한 마음을 숨기고 짐짓 울상을 지었다.
“제 얼굴을 곰보로 만들려고 그러시는 거죠? 밖에도 못 나가고 일만 하게 하려고요. 아니, 어차피 지금도 노예인데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겠어요?”
“이거 진짜 효과 좋다니까! 나 못 믿어? 농사도 성공시켰잖아!”
“그건 별개지요. 분야도 완전히 다르고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아무도 이런 건 안 쓸걸요? 뭘 믿고 쓰겠어요.”
도발적인 말투에 지셀이 ‘이놈 봐라?’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러면 내기할래? 정말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말이야.”
“아, 나 도박 끊었는데……. 몇 년이요?”
“지난번에 말했잖아. 20년. 대신 내가 지면 10년 깎아 주고, 거기다 5천 골드도 얹어 줄게.”
“으음…….”
클로드는 잠시 고민했다.
엉터리인 게 분명하지만, 판돈이 세니 살짝 겁이 났다.
‘부담을 좀 줄여야겠다.’
“좋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뭘 기다려?”
“저랑 같이 내기할 사람 좀 데리고 오겠습니다.”
클로드는 잽싸게 알포이를 찾아갔다.
알포이는 그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클로드의 내기에 휩쓸려 손해를 봤다는 원망이 가시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클로드는 사나운 눈빛을 가볍게 흘려보냈다.
몇 번 투덕거리다 보니, 알포이가 꽤 만만해진 것이다.
“뭐야? 왜 왔어?”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들어 볼래?”
“꺼져, 네 말 안 들어.”
“어허, 그러지 말고 좀 들어 봐. 좋은 기회가 왔어. 노예 탈출의 기회.”
“노예…… 탈출? 좋은 기회?”
“그래, 영주님이 특산품이랍시고 화장품을 직접 만들었는데…….”
클로드는 자신이 아는 점과 추측한 바를 열심히 얘기하며 알포이를 설득했다.
“마탑에서도 이런 거 시도한 적 있지?”
“……하긴 했었지.”
마법 연구에 돈이 많이 들다 보니, 마탑은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편이다.
당연히 화장품을 만들어 보겠다고 시도하는 마탑도 많았다.
일단 성공만 하면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는 분야니까.
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성과를 낸 곳은 없었다.
그 마탑에서도 실패할 정도로 효과적인 화장품을 만드는 일이 어렵다는 뜻이다.
클로드가 뱀 같은 혀를 현란하게 움직였다.
“마탑에서는 어땠어? 쓸 만한 걸 만들었나?”
“6서클이신 탑주님도 화장품은 못 만드셨어. 고급 비누는 만드셨지만.”
“똑똑하기로 유명한 마법사들과 연금술사들도 못 만드는 걸 우리 영주님이 혼자 만들었단다. 이게 가능한 일 같아?”
알포이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 만드는 건 정말 말도 안 돼. 누구한테 도움이라도 받은 거 아니야?”
“누구 도움을 받았겠어?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우리 영주 말고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한테 찾아갔겠지.”
“…….”
“어때? 인생 한 번 더 걸어 볼래?”
“난 도박 끊었는데…….”
클로드가 하찮은 것 보듯 알포이를 내려다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겨우 한 번 해 놓고 끊긴 뭘 끊어? 도박은 일단 시작하면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야.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베팅하는 게 인생이라고.”
“으음…….”
잠시 고민하던 알포이가 곧 굳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번에는 진짜 너 믿고 걸어 본다.”
“날 믿지 말고 너 자신을 믿어. 네가 지금까지 쌓아 온 지식과 경험을 믿으란 말이야. 넌 마탑의 후계자고, 이 영지 최고의 마법사지. 넌 언제나 최고야, 브로.”
클로드가 주먹으로 알포이의 심장께를 툭 쳤다.
괜히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알포이가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난 알포이.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도박쟁이들치고는 상당히 거창한 대화였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마법사들은 두 사람의 대화에서 사나이들의 뜨거운 우정과 열정을 느꼈다.
“우리도 끼워 줘! 다 같이 힘을 모으자고!”
“좋아, 다 같이 가자! 이번에야말로 영주님의 허세를 완전히 박살 내는 거야. 우리는 승리한다!”
클로드와 스물여섯 명의 마법사는 비장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클로드를 호위하다가 그 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게 된 웬디만 질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