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131)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31화(131/269)
131화 결과로 보여 주면 돼. (5)
“쿨럭! 컥!”
로잘린은 눈이 풀린 채 연신 피를 토했다.
벨린다와 웬디가 힘을 풀었음에도 그녀는 더 이상 발버둥 치거나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흐느적거리며 입가에서 피만 토해 낼 뿐이었다.
“그만해……. 미친놈아…….”
가느다랗게 중얼거리고 로잘린은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벨린다가 다시 다급하게 외쳤다.
“도련님!”
“알아, 거의 끝나 가.”
지셀은 소량의 마나로 찢어진 마나 로드를 감싸 보호하는 식으로 조치했다.
다른 사람의 몸에 마나를 남겨 두면 그 사람의 마나와 충돌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도가 없었다.
용병왕 시절, 상황이 급박할 때는 가끔 이런 식으로 치료하기도 했다.
상황이 지금보다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후…….”
지셀은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치료는 여기까지다. 더 진행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아가씨! 아가씨!”
지셀이 물러나자마자 집사와 사용인들이 우르르 로잘린 곁으로 달려갔다.
집사는 입 안에 고인 피까지 모두 빼내고 닦은 뒤에야 분노에 찬 눈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치료입니까! 정말 아가씨를 죽일 셈입니까!”
피를 토한 건 몸속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도대체 얼굴을 고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속을 뒤집었단 말인가?
‘멈춰야 한다. 이대로는 아가씨의 목숨이 위험해!’
“제가 후작님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쯤에서 멈추십시오!”
“그럴 순 없어.”
“그만하십시오!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집사가 난리를 치는데도 지셀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표정으로 반문했다.
“당신이 후작보다 위인가?”
“뭐, 뭐라고요?”
“후작이 허락했는데 멈추긴 누구 마음대로 멈춰?”
“아니, 하지만…….”
“어차피 아가씨는 이 상태로 두면 오래 못 산다.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방해하지 마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그리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지셀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왜 상관이 없어? 이번 일에 얼마나 큰 게 걸려 있는데.”
“이이이익!”
집사에게는 이 일을 멈출 권한이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분노를 토해 내는 게 전부였다.
지셀은 시끄럽게 떠드는 집사를 무시하고 로잘린의 얼굴에 화장품을 발랐다.
가면을 다시 씌우는 동안에도 그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숨만 몰아쉬며 누워 있을 뿐.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던 지셀은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치료는 이제 멈출 수 없다.”
몸속을 헤집을 대로 헤집어 놓았다. 만약 이대로 멈춘다면 몸 상태는 치료를 시작하기 전보다 더 심각해질 것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끝까지 가 보는 수밖에.
* * *
다음 치료가 시작되기 전, 집사는 씩씩거리며 기사단장을 찾아갔다.
‘위험한 놈이다. 실패했을 때도 순순히 잡힐 놈 같지 않아. 망나니라는 소문이 괜히 난 게 아닌 거지. 사고를 치기 전에 단단히 대비를 해야겠어.’
집사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사고가 터지면 바로 지셀 일행을 제압할 수 있게 준비해 두기로 했다.
“톨레오 경! 잠시 시간이 되십니까?”
“오, 무슨 일이십니까?”
후작가의 기사단장 톨레오는 집사를 정중하게 맞이했다.
대외적인 직급은 자신이 더 높아도 브랜포드 후작의 심복을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었다.
집사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아가씨를 치료하러 온 사람에 대해서 할 말이 있습니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아무래도 대비를 조금 강화해야 할 거 같아서 말입니다.”
톨레오는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미 일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서 병사를 배치하지 않았습니까?”
“그걸로는 조금 부족할 거 같습니다. 저택의 경비를 강화하고 기사들을 빌려주십시오.”
“흠, 그건 너무 과하지 않겠습니까?”
집사는 고개를 저으며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아가씨가 피를 토했다는 말을 듣고 톨레오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펜리스 남작이 비록 망나니라 하나 그 수하들은 이번에 전쟁을 경험하고 승리한 자들입니다.”
“고작 변경의 작은 다툼이었을 뿐입니다.”
“이 늙은이의 감이라 해 두지요. 몇몇은 기세도 좋고, 후작가의 위세를 보고서도 별로 주눅이 들지 않은 것 같더이다.”
집사가 진중한 어조로 경고했다.
“흠, 북부의 촌놈들이라 이곳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알겠습니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저택을 포위하겠습니다. 실력 좋은 놈들도 몇 명 뽑아 가까이 붙여 주고요.”
“고맙습니다. 그럼 전 다시 아가씨께 가 보겠습니다.”
떠나는 집사의 뒤에서 톨레오가 조용히 손짓했다. 그 신호를 보고 기사 네 명이 자연스럽게 집사의 뒤를 따라갔다.
그때를 기점으로 저택의 경비는 더욱더 강화되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도망치지 못할 정도로.
* * *
지셀이 다시 로잘린의 방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집사가 기사들을 끌고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지셀이 입가에 비웃음을 띤 채 물었다.
“방해할 생각인가?”
“위험하면 바로 개입할 생각입니다.”
“치료 중에 방해하면 아가씨의 목숨이 위험할 테니 잘 판단해라.”
집사는 이를 갈았다.
마나를 넣어서 치료하는 중에는 건들면 안 된다.
한마디로 그 시간 동안은 아가씨가 인질이나 마찬가지란 뜻이었다.
지셀은 집사가 무슨 반응을 보이든 아랑곳하지 않고 방 안에 들어갔다.
로잘린은 평소처럼 발광하지도 않고 그냥 침대에 상체를 기대고 앉아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빈 허공만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지셀이 무심하게 말했다.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잘 버티셔야 합니다.”
벨린다와 웬디가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로잘린에게 다가갔다.
평소처럼 붙잡으려고 할 때, 로잘린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잠깐.”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어떻게 하냐는 듯 지셀을 바라보았다.
지셀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그들을 뒤로 물렸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묻고 싶은 게 있어.”
“무엇입니까?”
“이 치료……. 죽을 수도 있지?”
지셀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못 버티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단지 고통스러운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말하자 집사와 기사들의 얼굴이 분노로 물들었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숨기고 치료를 시작했단 말인가!
‘네놈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아라.’
집사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숨을 가다듬었다.
반면 로잘린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웃기는 상황이다. 죽기 싫어서 치료를 거부했는데, 죽을 수도 있다니.
아버지는 자신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허락을 했다.
눈앞에 있는 의사란 놈은 하기 싫다는 데도 끝까지 하겠단다.
“그런데…… 지금 치료를 안 해도 어차피 죽는다고?”
“그것도 맞습니다. 몸이 점점 약해져 나중에는 거동도 힘들어질 겁니다.”
그녀는 지셀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사기꾼 같아서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
“믿지 않으셔도 사실입니다.”
지셀은 굳이 그녀를 설득할 생각이 없었다.
미래에 죽는다고 아무리 말해 봤자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왜 가문과 목숨까지 걸고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물어보지 않을게. 어차피 아버지한테 원하는 게 있으니 내 병을 이용하는 거겠지.”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치료를 버틸 수 있을까? 아까도 난 분명 죽을 뻔했는데?”
“의지만 있으면 버틸 수 있습니다.”
무작정 정신력으로 버텨 보라는 뜻이 아니다.
그녀는 전생에 이 치료를 견뎌 내었다. 더 조잡하고 더 고통스럽고 더 오래 걸리는 치료를 말이다.
분명 버틸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게 지금은 드러나지 않아서 문제지.
로잘린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버티지 못하면 죽는 거고?”
“매우 높은 확률로요.”
“기절이라도 시키고 하는 건 어때?”
“그럼 더 높은 확률로 죽습니다.”
의식을 잃은 채로 진행하다가는 갑작스럽게 숨이 끊어질 수도 있다.
반드시 깨어 있는 상태에서, 본인의 의지로 버텨야 한다.
“……말은 참 쉽네.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사흘 지났습니다.”
“사흘, 사흘이라…….”
고작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그렇다면 이 짓을 열흘이나 넘게 더 해야 한다는 거 아닌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러면 시작하기 전에 몸이 괜찮은지나 확인해 봐. 나는 아직도 속이 안 좋은데 정말 치료해도 되겠어?”
지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평소처럼 의자를 끌어 옆에 앉아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눈을 감고 천천히 마나를 흘려보내 꼼꼼하게 몸 안을 살폈다.
‘나쁘진 않군.’
응급처치가 잘 통했는지 상태는 그럭저럭 괜찮아져 있었다. 이 정도면 이 악물고 악으로 깡으로 버틸 만했다.
‘평소와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군. 어차피 벗어날 수 없으니 생각이 바뀐 건가?’
차라리 반항을 포기하고 얌전히 믿고 따라와 주면 좋으련만.
시간이 조금 빠듯하긴 하지만, 로잘린만 버텨 주면 완치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오늘은 잘 넘어갔으면 좋겠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지셀도 한 번 치료할 때마다 진이 다 빠지고 있었다.
그 정도로 이 치료 방식은 엄청난 집중과 심력을 소모하는 것이다.
지셀이 천천히 마나를 거두며 손을 떼려 하는 그때였다.
로잘린은 자유로웠던 오른손을 옆에 있는 큰 베개 밑으로 밀어 넣었다.
“응?”
너무 몰입하느라 순간 그 움직임을 놓쳤던 지셀이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로잘린의 손에 들린 화려한 단검이 그의 관자놀이를 향해 빠르게 꽂혔다.
“도련님!”
“영주님!”
“으허헉!”
그 순간, 벨린다와 길리언, 가까이 있던 집사마저 기겁하며 소리쳤다.
툭.
지셀은 가볍게 손가락 사이로 단검을 붙잡고 수하들을 돌아보았다.
“뭐? 왜?”
“아니……. 조심하시라고요.”
“에이, 내가 이런 공격에 당할 사람인가.”
로잘린이 이를 갈며 말했다.
“화장품도 만들고, 마나도 다룰 줄 알고, 검술도 익힌 거 같고……. 당신, 의사 주제에 별걸 다 할 줄 아네?”
지셀이 어깨를 으쓱하며 젠체했다.
“제가 좀 다재다능합니다.”
“마지막 경고야. 이딴 치료는 그만해. 이건 치료가 아니라 고문이야.”
“아가씨의 병은 이렇게 치료해야 합니다.”
“치료? 이 짓을 계속하다가는 정말 죽고 말 거라고!”
두 사람은 말을 멈춘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주변 사람들도 두 사람의 대치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흠?’
지셀은 가면에 가린 로잘린의 눈을 보고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두 눈에는 살의와 광기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지셀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죽기 싫다는 분이 항상 머리맡에 칼을 품고 계셨군요.”
“…….”
“사실은 이렇게 살기 싫은 게 아닙니까? 이런 꼴로 사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계신 거잖습니까.”
“…….”
로잘린의 입매가 기이하게 비틀렸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