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145)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45화(145/269)
145화 정말 좋은 기회라니까요? (3)
“후작님이 안 된다 하시니 에일즈버 백작가를 찾아가야겠네요. 그쪽에서는 흔쾌히 수락할 겁니다. 나중에 저한테 섭섭하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
브랜포드 후작이 이마를 짚었다.
‘하, 이 얄미운 새끼.’
이놈은 진짜 그럴 만한 놈이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로잘린도 지셀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렇게 된다면 에일즈버 백작가의 깃발이 왕국 전역에 휘날릴 거예요. 저희는 제 발로 굴러들어 온 기회를 차 버렸다고 비웃음을 당할 거고요. 세상에, 그런 망신이 또 어디 있겠어요? 가문의 위신도 생각하셔야죠.”
브랜포드 후작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두 사람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나마 아버지가 후견인이라서 남작님이 우리 쪽에 먼저 찾아오신 거잖아요. 모르시겠어요?”
“맞습니다. 좋은 기회를 후작님께 먼저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가씨께서 제 진심을 알아주시는군요.”
“아버지! 빨리 수락하세요!”
“후작님! 이런 기회 또 없습니다!”
브랜포드 후작의 얼굴이 점점 벌게지더니 결국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끄럽다! 둘 다 왜 이렇게 말이 많아!”
호통 소리 한 번에 지셀과 로잘린은 입을 바로 닫았다.
브랜포드 후작은 어지간해서는 이렇게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여기서 더 건드리면 오히려 안 좋은 효과만 나올 터였다.
“후…….”
한숨을 크게 내쉰 브랜포드 후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로잘린에게 말했다.
“네가 알아서 해라. 단, 문제가 생기면 나이가 더 차기 전에 혼사를 진행하겠다. 이게 너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다.”
“알겠어요!”
로잘린이 부채를 접어 내리고 만면에 웃음을 내보였다.
상재가 검증된 그녀가 밀어붙이는 이상 게임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브랜포드 후작은 지셀을 돌아보며 강조했다.
“이번에는 당장 큰돈이 필요해서 그런 줄로 생각하겠다. 만약 허튼수작을 부리거나 후작가에 손해를 끼친다면 재미없을 줄 알아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난 이만 가서 쉴 테니 나머지는 둘이 알아서 해라.”
브랜포드 후작은 몸을 돌려 그대로 나가 버렸다.
스스로 결정한 일인데도 여전히 뭔가 억울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 역시 저놈한테 당한 거 같은데……. 끄응, 오늘따라 머리가 너무 아프군. 더 생각하지 말자.’
후작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며칠간은 계속 속이 쓰릴 거 같았다.
털레털레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벨린다와 클로드가 소리 없는 환호를 내질렀다.
기쁨에 차 발을 동동 구르던 두 사람의 어깨가 툭 부딪혔다.
“뭐예요? 안 떨어져요? 어딜 달라붙어요?”
“헐, 내가 더 기분 나쁘거든?”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 서로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뒤편에서 조용히 지셀을 응원하던 길리언은 혀를 차며 둘의 어깨를 붙잡고 강제로 멀리 떨어뜨렸다.
브랜포드 후작이 나가고 얼마 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지셀과 로잘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셀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로잘린을 돌아보았다.
“아가씨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습니다.”
로잘린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 저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요.”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품 공급에는 문제없겠죠?”
“네, 돌아가는 즉시 설비를 늘릴 겁니다.”
“좋아요. 왜 갑자기 그런 큰돈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로잘린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말을 멈췄다. 그녀는 지셀의 얼굴을 꼼꼼히 뜯어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예를 들면 시한부 판정을 받고, 돈이나 실컷 쓰다 죽으려고 한다거나…….”
지셀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저 건강합니다.”
“아, 알겠어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어요.”
지셀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브랜포드 후작의 딸이 아니랄까 봐 이쪽도 의심이 참 많다.
그래도 한번 결정하면 머뭇거리지 않고 화끈하게 밀고 나가는 게 로잘린의 장점이다.
두 사람은 바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지셀의 이름 밑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고 나서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라도 도와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앞으로 잘해 봐요.”
“감사합니다. 아가씨가 제 후원자라는 게 정말 든든하군요.”
전에 했던 감사 인사는 그저 인사치레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진심이었다.
사실 지셀도 30만 골드라는 거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에 크게 부르고 서로 이견을 조율하면서 넘겨주는 지분을 늘리거나 투자 금액을 줄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로잘린이 끼어든 덕분에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다.
‘최상의 결과다. 내 기대 이상이야. 이 정도면 당분간은 충분하다.’
이제 사업적으로도 엮여 버렸으니 후작가는 자신에게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거기다 30만 골드까지 굴러들어 왔다. 이거면 다음 계획을 급속도로 앞당길 수 있었다.
지셀은 저절로 치켜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누르며, 악수를 청하는 로잘린의 손을 마주 잡았다.
* * *
화장품 판매를 다시 시작한다는 소식이 수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판매가 재개되는 날, 귀족들은 병사들까지 대동하고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저번처럼 허무하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들어간다!”
“어서 앞을 치워라! 우리가 먼저다!”
“밀리지 마라! 힘으로 밀어붙여!”
자존심 강한 귀족들은 저번의 실패를 교훈 삼아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제 이건 화장품 자체를 구할 수 있는지를 떠나서, 귀족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각 귀족이 데려온 병사들이 서로 몸싸움하며 힘으로 정문을 밀어붙였다. 공성전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끼기기긱! 콰앙!
사람들이 너무 몰리자 저택의 문이 버티지 못하고 결국 넘어갔다.
“문이 열렸다! 들어가라!”
“저놈보다 먼저 들어가라! 늦으면 용서하지 않겠다!”
“어서 밀어 버리란 말이다!”
넓은 정원으로 들어온 그들은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펜리스 남작만 안 건드리면 된다. 자기네들끼리 먼저 사겠다고 싸우고 제압하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귀족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정원은 곧 대규모 격투장으로 변했다.
“으아아! 밟지 마!”
“내버려 두고 달려라! 저택까지 먼저 가!”
“저놈들부터 잡아라!”
지셀과 일행들은 멀찍이서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어차피 자신들의 힘으로는 저 자존심에 미친 귀족들을 통제할 수 없다.
말린다고 저기에 끼어들었다가는 통제는커녕 같이 신나게 주먹질을 하게 될 것이다.
지셀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옆에 있는 로잘린에게 말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가씨.”
“알겠어요.”
로잘린은 오연하게 턱을 들고 싸움판을 향해 걸어갔다.
한창 주먹질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왠지 모를 으스스한 분위기를 느끼고 하나둘 싸움을 멈췄다.
정신을 차려 보니 무기를 든 병사들이 잔뜩 모여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다.
“어, 뭐야?”
“펜리스 남작의 병사들인가?”
“언제 이런 병력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귀족들은 병사들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로, 로잘린 브랜포드?”
“브랜포드 후작 영애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당황스러움과 의아함에 흥분이 가라앉고 나서야, 그들은 자신들을 포위한 병사들의 갑주에 박힌 문장을 발견했다.
“저건 브랜포드 후작가의 문장인데?”
귀족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로잘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버지와 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펜리스 남작에게 위탁을 받아, 오늘부터는 브랜포드 후작가가 이곳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귀족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지금 병사들을 이끌고 브랜포드 후작가를 습격한 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물쭈물하는 사람들을 보며 로잘린이 말했다.
“모르고 그러셨던 거 같으니 이번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모두 순서를 지키세요.”
소란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아무리 귀족들이 제멋대로 군다 해도 로잘린을, 그 뒤에 있는 브랜포드 후작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분위기가 한결 가라앉고 나자 귀족들은 로잘린의 얼굴을 힐끗힐끗 훔쳐보았다.
연회에서 그녀를 본 사람도 있지만, 소문만 들었을 뿐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깨끗하고 빛이 나는 피부. 피부병 때문에 숨어 살았던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미모였다.
‘정말이다. 정말 다 나았어.’
지방에서 올라온 어떤 귀족이 대담하게 물었다.
다소 실례되는 질문인 건 알지만 정말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정말 화장품으로 병을 치료하신 게 맞습니까?”
다행히 로잘린은 불쾌해하지 않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남작님께서 치료해 주시기도 했지만, 이 화장품 덕이 커요. 그래서 후작가에서 화장품 관리를 맡기로 했어요.”
그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은 아니지, 어쨌든 효과는 입증된 제품이니까.’
로잘린의 대답에 귀족들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눈에 보이는 증거도 있는 데다, 브랜포드 후작가가 판매를 맡았다고 하니 신뢰가 끝없이 올라간다.
‘비싸긴 하지만 살 수 있을 때 잔뜩 사야겠다. 마누라도 좀 갖다줘야겠어.’
‘인기가 너무 좋으니까 언제 물건이 동날지 몰라. 미리 사 뒀다가 더 비싸게 팔 수도 있겠어.’
‘후, 저걸 바르면 난 더 잘생겨지겠지?’
촤르륵!
로잘린이 부채를 넓게 펴며 부드럽게 말했다.
“자, 이제 줄을 서야겠죠?”
그 한마디에 귀족들이 바로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다소 시간은 걸렸지만 모두가 질서정연하게 차례를 지키며 화장품을 구매했다.
가뜩이나 사람이 많이 모였는데 로잘린까지 나서자 첫날부터 매출이 어마어마했다.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방긋방긋 웃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수량은 충분하니까 먼저 사려고 다투실 필요 없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줄을 서 주세요.”
어차피 브랜포드 후작가의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 난리를 칠 수 없다.
그러니 귀족들이 굳이 힘들게 나와서 줄을 설 필요도 없었다.
줄 서기 싫은 귀족들은 다시 사용인만 보내기 시작했고, 까마귀 저택은 평화를 되찾았다.
“이야, 저택은 조용해졌는데 화장품은 미친 듯이 팔려 나가네요.”
클로드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지셀은 고개를 끄덕이며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지분을 약간 넘기긴 했지만 필요한 돈도 챙기고 귀찮은 일도 맡겼다.
게다가 로잘린은 아주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지, 직접 홍보까지 해 가며 화장품 팔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투자금을 빨리 회수하고 싶어서인지,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그런 건지. 어쨌든 덕분에 다른 이권 단체들도 함부로 눈독 들이지는 못하겠군.’
브랜포드 후작이 후견인인 걸 뻔히 알면서도 지셀의 저택에서 난리를 쳤던 것처럼, 화장품에 군침을 흘리는 놈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돈에 미친 놈들이라면 지금도 어떻게든 뺏고 싶어서 머리를 굴리고 있을 테지만, 로잘린이 버티고 있는 한 섣불리 욕심을 부리긴 힘들 터였다.
‘델파인 공작 때문에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그거야 나중 일이고.’
갑작스러운 계획 변경이었지만 오히려 여러모로 더 잘 풀렸다.
이제 남은 건 마음 편히 돌아가는 일뿐이다.
“우리는 이제 돌아가자. 가는 길에 영지에 필요한 자재들도 사 갈 거니 목록 작성해 놔.”
“알겠습니다.”
클로드와 측근들이 짐을 챙기고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지셀도 수도의 유력 귀족들을 찾아가 적당히 작별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브랜포드 후작가에서는 좋은 소식도 들었다.
“도와주신 일들은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영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약속한 대로 페르디움에 대한 1차 지원 준비가 끝났으니 같이 떠나는 게 어떤가?”
“그렇습니까? 그러면 같이 가겠습니다.”
지원 부대와 함께 가면 속도가 더 늦어지겠지만 상관없었다.
지원품을 어떻게 분배할지 자신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으니 오히려 더 잘된 일이었다.
“성문 밖에 대기 중이니 함께 출발하면 될 것이다. 왕실과 각 가문에서 병사를 보내 주었으니 호위도 걱정할 필요 없다.”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셀은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건넸다.
지원을 받는 건 좋은 일이지만,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이루어진 일이니 굳이 자세까지 낮춰 가며 감사 인사를 할 필요는 없었다.
과연 성을 빠져나오니 지원품들을 실은 수레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식량과 군마, 병장기들이 가득 채워져 있는 장관에 지셀의 측근들은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