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156)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56화(156/269)
156화 이 몸이 해결하겠다. (2)
페르디움의 총관 호메른은 오랜만에 우아한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평화롭구나.”
작금의 페르디움은 역대 최고로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즈발터와 란돌프는 북방 요새로 출정을 나갔다. 너무 오래 비워 두면 야만인들이 그 틈을 노리고 쳐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방 요새로 출정하는 것은 병사들에게도, 그들을 이끄는 지휘관들에게도 고난이었다. 영지가 가난한 탓에 목숨을 걸고 야만인들과 싸우다 온 사람들은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했다.
제대로 된 보급도 없이 빈손으로 요새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낯빛은 항상 거무죽죽하게 죽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출정은 지금까지와 달랐다.
식량부터 장비까지 모든 게 충분했기에 요새로 향하는 사람들도 안색이 밝았다.
‘매년 이렇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니, 정말 좋구나.’
지셀에게 받은 룬스톤으로 겨우 숨을 돌린 지 얼마나 지났다고 왕실에서도 지원을 받았다.
비록 페르디움에서는 그 지원금의 절반밖에 못 받았지만, 항상 가난에 허덕이는 처지에서는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재무관인 알버트는 돈 계산을 하는 즐거움에 빠져 집무실 밖으로 나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참, 대공자가 이렇게까지 해낼 줄이야. 내가 너무 미워만 한 거 같구나.’
호메른은 지셀이 어렸을 때를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다.
지셀은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의형제의 아들이자 영지의 후계자였다. 친조카보다 더 조카 같은 아이였다.
그렇기에 지셀이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지셀이 영지의 후계자답지 않게 망나니처럼 사고만 치고 다니니, 예뻐했던 마음도 싹 사라져 버렸다.
그리도 아끼던 아이를 어느 순간부터 끔찍하게 싫어하고 미워했다.
‘그래, 워낙 비범한 아이라 그랬을 거야. 우리가 이해를 못 한 거지. 이렇게 영지를 위하는 마음이 크고, 능력이 출중할 줄 알았으면 누가 미워했겠어? 욕심은 좀 많은 거 같지만, 그것도 다 아직 젊어서 그런 거지.’
호메른의 마음속에 가득 찬 미움이, 봄 햇살을 받은 눈처럼 사르르 녹기 시작했다.
아직 지셀의 전부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하는 짓 하나하나가 너무 위험하고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잘 풀린 셈이다.
룬스톤과 왕실 지원금까지 얻고 나서야 겨우 다른 영지와 비슷한 수준이 되긴 했지만, 어쨌든 페르디움은 점점 더 형편이 나아지고 있었다.
‘그래, 부족한 부분이야 앞으로 잘 가르치고 이끌면 되겠지. 어른의 역할은 그런 거 아니겠는가? 아직 젊어서 혈기가 넘치는 걸 테니까.’
호메른은 인자하게 웃으며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셀을 훌륭한 후계자이자 영주로 만들기 위해 교육하던 나날들이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그렇게 이끌어 주면 된다.
그 지랄 맞은 성격만 고치면 훌륭한 영주가 될 것이다.
‘어차피 페르디움 영지를 이어받을 사람이니까. 우리 다시 잘 지내보자꾸나. 지셀.’
미움이 점점 사라지니 마음도 더없이 평화로워졌다.
‘이렇게 평화로운데 왜 그간 모르고 살았을까? 미워하면 내 마음도 아픈 것을.’
깨달음을 얻은 호메른은 지셀에 대한 기대와 애틋함을 마음속에 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영지 시찰을 나가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동쪽 마을부터 둘러보겠다.”
호메른의 명에 기사와 병사들이 바로 채비를 마쳤다.
영주 대리는 책임이 무거운 자리다. 영주가 자리를 비운 만큼 더욱더 신경 써서 영지를 돌봐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페르디움에 걱정할 일이 있긴 할까? 마음이 편할 수밖에 없었다.
호메른은 말을 타고 가면서도 한껏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정말 평화롭구나.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 눈부신 햇살, 지저귀는 새들, 나무가 다 없어져 버린 숲……. 아니, 저게 뭐야? 저거 왜 저래? 나무 다 어디 갔어?”
동쪽 마을로 가는 길에 작긴 하지만 숲 하나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나무들이 전부 베여 밑동만 남아 있었다.
호메른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숲이 왜 저렇게 됐어?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건 아니지? 이, 일단 빨리 가 보자!”
가까이 다가갈수록 환상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숲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초토화되어 있었다.
“숲지기! 숲지기는 어디 갔느냐! 이게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냐고!”
호메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숲을 관리하는 자가 잽싸게 나타났다.
“초, 총관님 오셨습니까.”
“이게 무슨 일이냐! 누가 감히 이렇게 베어 갔단 말이냐! 당장 고하지 못할까!”
어떤 영지든 숲을 함부로 훼손하는 것은 중범죄로 취급한다.
특히 북부같이 척박한 지역에서는, 숲과 산의 자원에 기대어 사는 경향이 크기에 더 민감하게 관리하는 편이다.
안 그러면 가뜩이나 부족한 영지의 재정에 큰 타격이 올 테니까.
페르디움에서도 숲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따로 사람을 붙여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이렇게 간도 큰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숲지기는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바로 범인을 말해 주었다.
“대공자님이 와서 다 쓸어 갔습니다!”
“뭐? 대공자가? 그놈이 자기 영지 두고 왜 여기 나무를 베 가?”
“대공자님 영지에 목재가 부족해서 좀 빌려 가겠다고…….”
“억, 어억!”
호메른은 갑자기 혈압이 올라 목뒤를 붙잡고 비틀거렸다.
‘역시 그 새끼는 정상이 아니야.’
아무리 아버지의 영지라고는 해도, 목재가 부족하다고 다른 영지를 털어 가다니!
당장 잡아서 주리를 틀어야 했다.
“이, 이 미친놈은 어디 있느냐! 어디 있냐고!”
그러자 숲지기가 슬그머니 일어나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열심히 도망가고 있는뎁쇼.”
과연 저 멀리 목재를 잔뜩 실은, 엄청난 수의 수레들을 끌고 가는 무리가 보였다.
도망가는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펜리스의 깃발까지 펄럭이면서 말이다.
“자, 잡아……. 당장 저놈 잡아아아아아아!”
그 말을 끝으로 호메른은 코피를 흘리며 기절해 버렸다.
혈압이 너무 올라 몸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의식을 잃으며 호메른은 생각했다.
‘다시 잘해 보기는 개뿔…….’
미워, 너무 미워 죽겠어!
그렇게 페르디움의 숲 하나가 지셀에게 완전히 털리고 말았다.
* * *
“우, 우와. 저게 다 뭐야?”
영지민들은 줄줄이 들어오는 수레들을 보고 넋이 나갔다.
그렇지 않아도 목재가 다 떨어져 공사가 늦어진다는 소식은 다들 알고 있었다.
아무리 영주가 돈이 많아도 이번에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기가 막히게 해결한 것이다.
목재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허겁지겁 달려온 클로드도 그 광경을 보고 넋이 나갔다.
‘양이 어마어마하잖아? 거의 작은 숲 하나 정도는 밀어 온 거 같은데? 형편도 안 좋은 페르디움에서 이렇게 많은 목재를 선뜻 내줄 리는 없고…….’
털어 온다고 호기롭게 나가더니 진짜로 털어 온 게 분명했다.
‘와, 진짜 뒤가 없는 사람이구나. 저 인간하고 계속 어울리면 나도 제명에 못 죽겠다.’
아무리 급하고 중요하다 해도 이렇게 상식 밖의 일을 벌이다니!
나중에 페르디움에서 따지고 들 게 분명했다.
잠깐 앞일을 걱정하던 클로드는 곧 무언가를 깨닫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지. 우리 덕분에 왕실에서 지원도 받고 있는 건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 서로 돕고 삽시다. 호메른 총관님.’
클로드는 그냥 마음 편히 지내기로 했다. 이미 벌어진 일로 고민해 봐야 소용없으니까.
반면 영지민들 사이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영주님이 아버지의 영지를 털어 왔다는데?”
“지금 페르디움 백작님이 북방으로 출정을 나갔다더라. 그래서 아직 모르는 거래.”
“쯧쯧, 나중에 큰 사달이 나겠구먼. 부자지간에 전쟁까지 나는 거 아닌지 몰라.”
영주가 이 동네 소문난 불효자라는 건 익히 들어 왔지만, 설마 아버지의 영지를 털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다들 불안해하며 별일이 없기만 바라고 있었다.
클로드는 낯빛이 어두워진 영지민들을 다독여 작업을 재개했다.
“자자, 멈춰 있던 작업을 재개한다. 인부들 다시 소집해.”
자원이 부족해 공사가 중단되었던 탓에 일정이 많이 미뤄졌다.
다시 인부들을 모집하고 공사를 재개한대도 이미 날아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게다가 집을 짓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최대한 간단하게 짓는다 해도 생활에 꼭 필요한 부엌이나 화장실 같은 시설은 다 들어가야 했다.
시간을 단축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공사 현황을 심각하게 지켜보던 클로드가 결국 지셀을 찾아갔다.
“문제가 있습니다.”
“아, 이번에는 또 뭐! 너는 맨날 뭐가 그렇게 문제야? 일부러 문제를 만들어 오는 거 아냐?”
“제가 만드는 건 아닌데요.”
“문제가 아닌 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진짜 문제가 아닐까?”
“하, 영주님이 항상 현실과 거리가 먼 계획을 짜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닙니까?”
분통을 터뜨리는 클로드에게 지셀이 혀를 차며 물었다.
“문제가 뭔데? 목재도 구해 왔는데 이번엔 뭐가 부족해?”
“시간이요.”
“그건 원래도 부족했던 건데 뭘 또 새삼스럽게 문제래?”
“그거하곤 다른 문제라니까요. 아무래도 거주지 만드는 작업은 도저히 일정을 못 맞출 거 같습니다.”
“왜?”
“지어야 할 집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 마을에서 동시에 공사를 진행해야 하잖아요. 인부들도 최대한 모집해 봤지만, 여전히 인력이 부족합니다.”
그 말에 지셀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금 몰려온 사람만 수천 명이다. 노약자나 병자들을 제외한다 해도 꽤 수가 많을 텐데, 인력이 부족하다는 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력이 왜 부족해? 사람 엄청 많은데?”
“제대로 된 기술자와 목수들이 부족합니다. 집이 뭐 아무렇게나 벽돌 갖다 붙인다고 뚝딱 나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음, 그러니까 힘쓸 사람은 많은데 어디다 힘을 쓸지 지시할 사람이 적다는 거지?”
“네, 그러니까 지금은 인부들을 더 추가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담당자 혼자서 수십 채씩 맡아 볼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기술자 없이 인부들만 데리고 지을 수도 없었다. 빈민들이 대충 짓고 살았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그런 집은 비바람만 불어도 무너져 버릴 것이다. 괜히 자재만 낭비하는 꼴이다.
“음…….”
지셀도 팔짱을 끼고 고민에 잠겼다.
인부를 아무리 많이 투입해도 집을 지을 줄 모르면 소용이 없다.
더 효율적인 작업 방식이 필요했다. 담당자 한 명이 지금보다 더 많은 집을 맡을 수 있게 말이다.
잠시 고민하던 지셀이 혼자서 중얼거렸다.
“아, 방법이 하나 있긴 있는데…….”
“네?”
“으음, 집은 그렇게 안 하려고 했는데. 어쩌면 그게 나을지도…….”
“네? 뭐가요?”
“별수 없지. 거주지부터 안정시켜야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법이니까. 거주지 문제는 이 몸이 해결하겠다.”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드는 지셀에게 클로드가 물었다.
“영주님…… 설마 집도 지을 줄 아세요? 그런 기술은 또 언제 배우셨어요?”
“옛날에 건설 쪽에 몸담은 적이 있거든. 그래도 짓는 것보다 부수는 걸 더 잘하긴 해.”
클로드는 영주가 또 허풍을 친다고 생각했다. 페르디움 망나니의 소문이 근방에 자자한데 건설 쪽에 몸담기는 뭘 몸담았다는 말인가?
“……영주님 한 분이 작업에 참여하신다고 집이 막 늘어나진 않을 텐데요.”
“생각난 게 있어서 해 보려고. 시범 마을을 하나 지정해서 직접 진행해 봐야겠다. 건축가들하고 목수들 죄다 불러. 너도 따라와라.”
클로드는 우거지상이 되어 지셀을 따라나섰다.
이번에는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일지 걱정부터 앞섰다.
지셀의 소집령이 전해지자 각 구역의 공사를 감독하고 책임지는 실무진들이 모두 모였다.
사람들을 둘러보며 지셀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더 많은 인부를 투입해 빨리 지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건축 방법을 알려 주겠다!”
“오오!”
모두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지셀을 바라보았다.
방법이 조금 이상하기는 해도 영주는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왔다.
특히나 농사와 화장품은 아예 세상에 없던 기술을 선보인, 어마어마한 업적이었다.
그런 영주가 알려 주는 새로운 건축 방법이라니! 기대가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었다.
초롱초롱한 사람들의 눈빛을 보며 지셀이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집을 아주 크게 지으면 되잖아!”
“…….”
기대로 빛나던 사람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무표정해졌다. 차갑게 굳은 시선들을 마주하고 지셀은 잽싸게 말을 정정했다.
“어떤 집인지 직접 보여 주지. 이제부터 내가 작업을 지휘하겠다!”
그는 전생에서 봤던, 새로운 개념의 집을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