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158)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58화(158/269)
158화 이 몸이 해결하겠다. (4)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이렇게들 열심히 움직이는 거였다.
만약 대영주인 데스몬드 백작과 싸워야 한다는 걸 지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집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도망갈 것이다.
하지만 자기 집을 갖고 생활이 안정되고 나면 사람들의 반응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자기 재산을 지키고 싶어 할 거야. 다른 영지에서는 우리 영주님처럼 잘 대해 주지 않을 테니까. 펜리스 영지를 지키려고 싸울 수밖에 없겠지. ……설마 그걸 노린 건 아니겠지?’
지셀이 그런 걸 노리고 시작한 건 아니다. 그저 영지 발전에 필요했기 때문에 진행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이 겹쳐 의외로 좋은 결과를 냈다.
클로드는 감탄 반, 의심 반 섞인 눈빛으로 지셀을 뜯어보다 걱정 어린 말을 내뱉었다.
“일단 당장 목재 문제는 해결됐지만……. 몇 달 뒤면 또 비슷한 문제가 생길 겁니다. 목재 말고 다른 자재들도 점점 부족해지고 있어요.”
“그래도 당장 작업에 필요한 양은 확보됐잖아. 다른 건 또 구해 오면 되지. 목재 말고 부족한 게 뭐가 있지?”
“당연히 철이죠. 여기저기에 들어가니까요. 일단 전쟁 준비가 시급하니 대부분 병장기를 만드는 데 쓰고 있습니다만…… 영지민들의 생활용품이나 건물을 만드는 용도로 떼어 둔 분량은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철광석은 확보하기 어렵겠지?”
“네,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게 철광석이니까요. 북부에서 유통되는 수량 대부분을 카발디 백작이 통제하고 있다 보니…….”
지셀은 몇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중얼거렸다.
“그래, 슬슬 다음 단계로 갈 준비를 해야겠네.”
“네? 무슨 준비요? 지금도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뭘 또 준비해요?”
클로드가 기겁하며 묻자 지셀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없으면 구해 와야지. 특히 철은 전쟁에 필수 자원이니까.”
“나무야 페르디움에서 베어 왔다지만, 철광석은 어떻게 구해 오시게요? 거기도 철광산은 없잖아요.”
“괜찮아, 나한테 다 계획이 있어. 조만간 얘기해 줄게.”
“아, 계획이요……. 네, 그러시겠죠.”
클로드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지셀에게는 언제나 계획이 있었다.
그 계획이라는 게 남들이 보면 정말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것이라 문제였다.
‘제발 이번에는 목숨을 거는 계획이 아니게 해 주세요. 우리 영주님이 상식적인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클로드는 속으로 여신께 열심히 빌었다.
* * *
영지가 바쁘게 돌아가는 동안, 지셀이 찾던 전생의 수하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용병, 병사, 도축업자, 사형 집행인, 사냥꾼……. 직업도 특기도 가지각색이었다.
형편이 안 좋아 험한 일을 하던 이들은 클로드의 고용 제의를 흔쾌히 수락했다.
영주가 좋은 보수와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는데 안 가는 게 이상했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명단을 훑어보던 클로드가 지셀에게 살짝 물었다.
“주신 정보가 전부 다 맞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들어맞았다더라고요. 어떻게 이 사람들 위치하고 신상 명세를 아신 겁니까? 다들 영주님이 누군지도 전혀 모르던데요.”
클로드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시골에만 처박혀 사는 귀족 도련님이 대체 어떻게 다른 왕국의 도축업자를 알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클로드가 여러 번 물어도 지셀은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뭐, 어쩌다 보니 알게 된 거야.”
전생에 알았다고 솔직히 말해 봐야 어차피 믿지도 않을 테니 지셀은 매번 두리뭉실하게 넘어갔다.
이러니 클로드의 의심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한 점은 그 사람들이 올 때마다 지셀이 무척이나 반가워했다는 점이다.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 들어온 사람들을 맞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왔구나! 정말 반갑다! 보고 싶었어!”
도착한 사람들은 영주의 과한 환대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좋은 조건에 나름대로 기대감을 품고 온 건 사실이지만, 처음 만나는 영주가 이렇게까지 반가워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떨떠름한 사람들의 반응을 볼 때마다 지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어이없어할 거 아는데, 너무 반가워서 참을 수가 없네.’
전생에나 서로 사선을 넘나들며 친해졌지, 지금은 생판 남이다.
하지만 지셀이 언제 남의 시선에 신경 썼던가? 좋은 건 좋은 거라고 합리화하며 반가운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했다.
지셀 옆에서 미친놈 보는 듯 경멸 어린 표정을 짓고 있던 클로드가 말했다.
“이걸로 마지막이군요. 명단에 적어 주신 128명 중에, 여기까지 오겠다고 수락한 사람들은 92명입니다.”
“정말 더 올 사람은 없나?”
“네, 아예 못 찾았거나, 찾았어도 안 오겠다고 거부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래……. 전부 다 못 데려와서 아쉽긴 하네.”
“이 정도만 해도 기적입니다. 영주님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 먼 곳까지 온 건 다들 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이죠.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힘든 사람들만 쏙 골랐습니까?”
클로드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대부분은 약간의 돈만 줘도 고민 없이 고향을 떠나올 정도였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알았는지도 궁금했지만, 어쩌면 이렇게 죄다 형편이 안 좋을 수가 있는지도 신기했다.
지셀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사는 게 쉽지 않으니 다들 그렇게 목숨 걸고 살았던 거지.”
“네?”
“그런 게 있다. 더 올 사람 없으면 모두 불러 봐. 한 번 더 봐야겠다.”
“알겠습니다.”
금세 소집된 사람들을 보고 지셀은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일부나마 이렇게 모여 있으니, 마치 전생의 용병단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한 명 한 명 볼 때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이렇게 보고 있자니 가슴 속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울컥 치밀어올랐다.
‘너희들과 다시 함께할 수 있다니…….’
용병왕이라 칭송받긴 했지만, 지셀이 거느렸던 용병들 모두가 충성스럽고 의리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용병들의 특성상 거칠고 지저분한 녀석들이 대다수였다.
그렇기에 명단을 작성할 때도 심혈을 기울였다.
기억이 나는 수하 중에서도 추리고 추려 최종적으로 뽑은 자들.
바로 지셀이 마지막까지 생사를 함께했던, 진짜 ‘동료’라 부를 수 있는 자들이었다.
용병 주제에 돈보다 의리를 택한 한심한 녀석들.
죽음을 앞에 두고도 도망가지 않았던 화끈한 녀석들.
마지막 전투에서 다 같이 죽어 버리고 말았지만…….
이들이 있었기에 자신은 복수를 꿈꿀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지셀은 천천히 다가가 그들을 한 명씩 안아 주며 말했다.
“미안하다.”
사람들은 당황했다. 저 영주는 처음 왔을 때부터 이상하게 굴더니, 사람들을 다 불러 놓고 또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다.
‘이 영지……. 괜찮은 건가?’
사람들이 불안해하거나 말거나 지셀은 한 명 한 명 꼭 안아 주며 사과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들에게 고마운 만큼 미안함도 컸다.
자신을 돕다가 목숨을 잃어서가 아니다. 죽음은 용병으로 사는 이상 언제나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죽느냐다.
‘우리는 실패했었다.’
미안한 것은 단 하나. 복수심에 불타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조급하게 전쟁을 진행했던 것뿐이다.
대륙을 질타했던 최강의 용병단은 지셀의 조급함에 휘말려 전멸하고 말았다.
‘미안하다.’
이들의 용맹과 긍지는 적들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지셀의 용병단은 그 어떤 명예로운 흔적도, 이름도 남기지 못했다.
남은 것은 패배자라는 낙인과 조롱뿐.
물론 지금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들을 이끌었던 자로서, 덧없이 스러져간 그 시절의 동료들에게 꼭 사과를 건네고 싶었다.
용병들의 왕으로서 이들에게 건네는 마지막 사과였다.
그리고 이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두 번의 패배는 없을 테니까.’
그래, 이제 그런 실패는 없다.
이들은 전생보다 더 빠르게 강해질 것이고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될 것이다.
자신이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이다.
지셀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픽 웃었다.
잠시 옛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올랐지만, 감상에 빠지는 건 여기까지다.
빠르게 마음을 정리한 지셀은 사람들에게 앞으로 그들이 해야 할 일과 얻을 수 있는 혜택 등을 얘기해 주었다.
“자세한 얘기는 미리 다 들었을 것이다. 너희들에게 약속한 대로 높은 보수를 보장하고, 주거지도 마련해 주겠다.”
힘들게 살아왔기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누구보다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주민들과 달리 이들은 모두 펜리스의 상비군으로 고용이 되었다.
데려올 때부터 다른 영지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약속한 만큼, 다들 기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셀은 대략적인 설명을 끝내고 그들을 담당할 자들을 소개해 주었다.
“총관인 클로드는 먼저 만나 봤으니 알 테고…… 이쪽은 길리언이다. 앞으로 너희들의 훈련을 맡을 교관이지.”
길리언은 소개해 준 지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앞으로 나와 사람들을 휙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피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그는 긴장감을 감추며 내심 혀를 찼다.
눈앞에 있는 자들은 기존의 용병들과 근본적으로 분위기가 달랐다.
이들은 미친개 소리를 듣는 광견단보다도 거친, 굶주린 짐승에 가까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피곤해지겠군.’
이런 놈들을 휘어잡고 따르게 하려면 한동안은 무수한 폭력과 기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지셀은 연달아 다른 수하들도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벨린다. 성의 집사장이다. 너희들의 생활과 편의를 책임질 사람이니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을 하도록.”
“잘 부탁드려요. 아휴, 다들 한가락 하게 생겼네.”
길리언과 달리 벨린다는 사나운 기세를 마주하고도 싱글벙글 웃었다.
그녀로서는 지셀 대신 싸워 주고 힘써 줄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으니 나쁠 게 없었다.
“그리고 이쪽은 카오르. 용병이고, 일단은 영지의 치안을 맡고 있는 친구다.”
카오르는 건들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렇게 끝나면 좋았겠지만, 그도 길리언과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게 문제였다.
평소에도 지랄 같은 성격을 자랑하던 그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가 없었다.
“이 동네 미친개가 나다. 사고 치지 말고 알아서 눈 잘 깔고 다녀라. 불만 있으면 언제든지 덤비고. 아주 작살을 내 줄 테니까.”
도발적인 발언에 바로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길리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벨린다는 창피하다는 듯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모인 이들도 다들 거칠게 살아오며 쓴맛 신맛 다 본 사람들이다.
영주 앞이라 바로 반발하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기분이 나쁜 것을 숨기지 않고 험악한 기세를 피워 올렸다.
찌릿한 살기가 주변에 감돌자 카오르가 헛웃음을 지었다.
“어처구니가 없네. 당장 해보겠다고? 그래, 처음 만나면 서열 정리를 해야지. 덤벼, 이 새끼들아. 누가 먼저 할래?”
카오르도 살기를 내뿜으며 앞으로 나섰다.
용병들의 세계에서 서열은 오직 힘으로 결정된다. 카오르가 용병인 걸 안 이상 다른 이들도 거칠 게 없었다.
덩치도 좋고 인상도 더러운 몇 명이 앞으로 나서며 지셀에게 물었다.
“오자마자 싸우는 건 좀 민망하긴 한데…… 한번 해봐도 되겠습니까?”
“허락만 하시면 저희끼리 순번을 정하겠습니다.”
“혹시 이기면 저놈이랑 자리 바꿔 주십니까?”
만만치 않은 반응에 카오르도 사납게 웃었다. 요새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아주 좋은 전개다.
이럴 때는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 몇 놈 늘씬하게 두들겨 패면 다들 알아서 바짝 엎드릴 것이다.
“어이, 대장 영주님. 어차피 교육이 필요하잖습니까. 제가 알아서 확실하게 교육 좀 시키겠습니다. 맡겨 주시죠?”
카오르의 말에 분위기는 더 과열되었다.
가장 먼저 나섰던 남자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오자마자 사람 죽여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네.”
“너처럼 주제도 모르고 덤비는 애들이 먼저 죽어 나가더라. 너 마나는 쓸 줄 알고 개기는 거지? 약한 놈 괴롭히기 싫은데 말이야.”
카오르가 건들거리며 말했다.
마나를 쓸 줄 아는 자는 대부분이 기사다. 그리고 그런 실력이 있었으면 여기에 올 리가 없다.
한 마디로 기선 제압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오히려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마나 없으면 싸움질 못 하나? 너 용병이라며? 그럼 마나 없이 ‘모리아나의 인정’으로 싸우면 되겠네. 아주 코앞에서 갈기갈기 찢어 줄게.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도망가라.”
“이 새끼가…….”
카오르가 인상을 구겼다. 그 이름을 들으니 지셀에게 실컷 얻어터졌던 아픈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바짝 얼굴을 들이대며 살기를 줄기줄기 내뿜었다.
지셀의 허락만 떨어진다면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 판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길리언은 살기가 뿜어져 나오자 인상을 확 찡그렸다.
“이놈들이 감히 영주님 앞에서…….”
아무리 막 나가는 놈들이라지만 영주 앞에서 함부로 살기를 내뿜다니.
지셀이 항상 털털하게 넘어가서 그렇지, 무척이나 무례한 행동들이었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죄다 훈련장으로 끌고 가서 버릇을 고쳐 줘야 한다.
“네놈들 당장 나를 따라…….”
길리언이 나서려던 찰나, 가만히 있던 벨린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
“으아아아! 이제 도저히 못 참아! 우리가 무슨 산적 패거리야? 왜 보자마자 싸움박질부터 하는데!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할 거 아니야! 이 진심으로 형편없는 것들아!”
그녀가 그간 참고 참아 왔던 분노가 불꽃처럼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