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16)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6화(16/269)
16화 변수가 필요해. (1)
“페르디움 쪽은 실패했습니다.”
“뭐?”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남자가 수하의 보고를 듣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이름은 해럴드 데스몬드.
데스몬드 백작령의 주인이자, 델파인 공작의 밑에서 북부의 전복을 꾀하고 있는 자였다.
“디갈드 영지랑 영지전을 붙이려고 했었지. 그걸 실패했다고?”
“그렇습니다.”
“호위 기사까지 포섭했는데도 실패했다니. 기사단장에게 걸린 건가?”
페르디움은 돈도 없고, 인물도 없는 영지였지만 그나마 페르디움 백작과 기사단장인 란돌프는 높이 쳐 줄 만했다.
해럴드의 물음에 부관은 조금 난감한 듯 우물쭈물하며 답했다.
“기사단장은 페르디움 백작과 함께 출정을 나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부관은 해럴드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소문으로는 호위 기사 둘이 영애를 납치하려다 걸려서 페르디움 대공자에게 죽었답니다. 프랑크는 행방불명되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페르디움 대공자…… 그 사고뭉치 망나니? 그놈이 정식 기사를 이겼다고? 설마 프랑크도 그놈한테 당한 건가?”
“지셀은 그 정도 실력이 없습니다. 아마…… 호위 기사 둘이 서로 백작 영애를 차지하려다가 상잔했을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해럴드는 곧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걸 보고라고 하는 건가. 아마? 예상? 그깟 영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제대로 파악을 못 한단 말이야?”
말이 이어질수록 해럴드의 온몸에서 사나운 기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현장이 완전히 불타 버려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벌벌 떠는 부관을 바라보던 해럴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주와 기사단장은 출정 나가서 없고, 기사와 병사도 적은 영지다. 그런 곳에 프랑크를 보내고, 호위 기사들까지 포섭했지. 그랬는데도 겨우 여자애 하나를 못 죽여?”
해럴드가 짜증스럽게 언성을 높였다.
“그러고서는 정작 한다는 말이, 그 한심한 페르디움 대공자가 기사를 죽였다더라? 언제부터 내 부관이 그런 정보 하나 똑바로 못 알아 오는 쓸모없는 놈이었지?”
부관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빌었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시면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그런 쉬운 일도 실패한 주제에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해럴드는 코웃음을 쳤다.
그 우스운 소문대로 페르디움의 대공자가 뜻밖의 변수일 가능성은 지극히 적었다.
그렇다면 저 부관의 능력이 기대 이하이거나…… 일을 대충 진행한 것이 분명했다.
어느 쪽이든, 그런 수하는 필요 없다.
딸랑, 딸랑.
해럴드가 책상 위에 있는 종을 집어 두어 번 흔들자 기사 두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창백해진 부관을 무감정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처리해라.”
“사, 살려 주십시오!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제발! 제발! 으아아아!”
부관이 끌려 나가며 발악했지만, 해럴드는 신경 쓰지 않고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레이폴드 쪽에 신경 쓰는 것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페르디움 따위가 거슬리게 하다니.”
해럴드는 지금 아멜리아의 반란 계획에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었다.
정보에 의하면 레이폴드 백작은 조용히 식량을 비축하고 병력을 늘리는 중이었다.
‘그쪽이 더 힘을 키우기 전에 아멜리아가 성공해야 하는데 말이지.’
그렇다고 페르디움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문득 묘하게 찝찝한 기분이 들어 해럴드는 미간을 좁혔다.
“지셀 페르디움…….”
지금까지는 안중에도 없었던 인물이라 더 거슬렸다.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면 이렇게까지 기분이 더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을 더 보내야겠군.”
결국 고민 끝에 해럴드는 페르디움 영지에 첩자들을 더 투입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 * *
“도련님, 도대체 무슨 일이었어요?”
“뭐 그냥 사랑싸움이지. 아멜리아가 날 너무 사랑하나 봐. 이놈의 인기란.”
벨린다가 거만한 표정을 짓는 지셀을 쏘아보았다.
“도대체 아멜리아 아가씨한테 돈은 왜 달라고 한 거예요?”
“돈을 써야 할 일이 좀 있는데, 주위에 돈이 많은 사람이 아멜리아밖에 없었어.”
“아하, 그래서 돈 많은 약혼녀한테 돈을 뜯어 왔다?”
벨린다가 미친놈 보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지셀을 흘겨보았다. 그가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허, 나 그런 남자 아니야. 다 이유가 있다니까.”
“대체 무슨 이유인데요?”
“전생에 아멜리아가 나를 많이 괴롭혔거든. 그 빚을 지금 받는 거지. 이를테면 보상금이랄까.”
“…….”
진실이지만 그런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정말 말 안 해 주실 거예요?”
“아니, 진짜라니까?”
레이폴드 성을 나서는 동안 벨린다는 내내 지셀을 추궁했다.
하지만 벨린다가 아무리 닦달해도 지셀의 입에서는 제대로 된 설명이 나오지 않았다.
‘말한들 믿겠냐고.’
미래에 아멜리아가 페르디움의 적이 될 거라고 얘기해 봐야 미친 사람 취급이나 받을 게 뻔했다.
그렇다고 아멜리아의 치부를 알려 그녀의 계획을 망쳐 버리기도 곤란했다.
그랬다가는 델파인 공작가에서는 바로 그녀를 버리고 다른 장기 말을 찾을 것이고, 지셀로서는 대비하기가 지금보다 더 힘들어진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이점을 이용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이용하는 편이 나았다.
벨린다는 역시나 전혀 믿지 않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네, 그렇다고 해 두죠. 그나저나 그렇게 돈을 뜯어 와도 괜찮은 거예요? 레이폴드 백작님이 알게 되면 문제가 생길 텐데요.”
지셀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아. 아멜리아는 절대 말 못 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으음, 지금은 비밀. 나중에 알려 줄게. 어쨌든 슬슬 다음 일을 해 보자고.”
벨린다는 예상하지 못한 말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음 일이요? 바로 돌아가지 않으시고요?”
지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멜리아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벨린다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귀족들의 음험한 행동 방식에 관해서는 잘 안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 그들에게 칼이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사람을 보낼 수도 있겠네요.”
“그래, 대비해야지.”
전생에 이미 아멜리아를 겪을 대로 겪은 덕분에, 지셀은 그녀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성격에, 절대 그들이 이대로 멀쩡히 돌아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 쪽에도 변수가 필요해. 아멜리아에게 살짝 혼란을 줘야겠어.”
“변수요?”
“우리와 함께할 사람. 그리고 앞으로도 힘이 될 사람.”
“그게 누군데요? 아는 사람이 있어요?”
“일단…… 이곳에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해.”
벨린다는 당혹스러워하며 되물었다.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아요?”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말이야. 일단 찾아보고 없으면, 그때 다른 다음 방법을 생각해 보자.”
“정말, 무슨 생각인 건지……. 그래서, 그 사람 이름이 뭔데요?”
“길리언.”
지셀은 일행들과 함께 길리언이란 자를 찾아 여러 곳을 돌며 수소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 한 명이 그의 소재를 찾아왔다.
“역시 이 근처에 있었군. 가 보자.”
지셀은 마음이 다급해져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길리언은 그가 타국에서 용병 생활을 할 때 소문으로만 전해 들은 인물이었다.
듣기로는 한동안 레이폴드에서 지내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다행히 아직 죽기 전이군.’
그가 자살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망적이었기 때문이다.
지셀은 성 외곽에 있는 허름한 집 앞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가세가 완전히 기울었네.’
집은 곧 무너질 것처럼 허름했다. 위치만 동떨어져 있다 뿐이지, 성 반대쪽 빈민가에 있는 집들과 그리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계십니까!”
수행 기사가 큰 소리로 외치며 문을 두드리자, 잠시 후 한 남자가 나왔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고생을 많이 했는지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수염이 눈에 띄었다.
관리를 안 하는지 머리와 수염은 제멋대로 자라 지저분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눈은 퀭해서 썩은 생선의 눈처럼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갈라지고 힘없는 목소리에 벨린다와 수행 기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벨린다와 수행 기사들이 보기에 길리언은 폐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겨우 이런 사람을 그렇게 열심히 찾은 거야?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사람에게는 기세라는 게 있다.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일반인이라도, 보는 순간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길리언은……. 퀴퀴하게 풍기는 술 냄새는 그렇다 쳐도, 뻗어 오는 기도가 시장통의 건달만도 못했다.
벨린다는 길리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지셀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썼다.
‘그냥 짐꾼으로 쓸 생각인가? 그럴 거면 노예나 하인을 구하는 게 더 나을 텐데.’
체격과 근육이 좀 쓸 만해 보이기는 하지만, 피곤함에 찌든 표정과 축 처진 어깨를 보면 짐꾼 일도 할 수는 있을지 의심이 들었다.
다른 일행이 의구심과 실망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을 때, 지셀만이 웃었다.
“길리언, 당신을 만나러 왔다.”
“제게 무슨 볼일이 있으십니까.”
길리언은 지셀이 나이가 어려 보여도 일단은 존대하며 정중하게 대했다.
옷차림도 평민들과는 다르고 수행하는 기사들과 하녀까지 있으니, 한눈에 귀족임을 알아본 것이다.
“지금 꽤 힘든 상황이지? 내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
지셀의 말에 길리언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젊은 귀족 나리가 심심하신 모양이군. 그런 겉멋은 다른 곳에서나 부리시오.”
그의 말에서는 신경질적인 날카로움과 비웃음이 묻어 나왔다.
말 한마디로 태도가 휙 변하는 예민한 성정에 벨린다와 수행 기사들은 인상을 썼다.
하지만 지셀은 개의치 않았다.
“내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어.”
“됐으니 그냥 돌아가시오. 그러잖아도 피곤한 삶이라 애송이 도련님 장단에 맞춰 놀아 줄 여유는 없소.”
길리언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평민이 감히 귀족에게 범해서는 안 될 무례였다.
수행 기사 하나가 검을 쥐고 앞으로 나섰다.
“상당히 무례한 놈이로구나.”
길리언은 잠시 몸을 돌려 기사의 검을 노려보더니, 큭큭 웃으며 제 심장을 가리켰다.
“죽이고 싶으면 죽여라. 그럴 강단은 있나? 여기가 심장이니까 제대로 한번 찔러 봐.”
“이놈이!”
수행 기사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지만, 차마 검을 휘두르지는 못했다.
겁을 먹거나 덤벼 오지도 않고 그냥 죽이라는 태도에 되레 찔끔한 것이다.
지셀은 괜찮다는 듯 웃으며 기사들을 뒤로 물렸다.
“에이, 서로 초면인데 다들 그리 험악하게 굴지 말고. 길리언, 난 정말로 네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
길리언은 퀭한 눈으로 지셀을 돌아보았다.
낙천적으로 보일 만큼 밝은 표정. 그 눈에는 올곧은 자신감이 들어차 있었다.
‘이상한 귀족이로군.’
귀족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분위기와 권위를 따지지 않는 태도를 보니 옛 지인들이 떠올랐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들어오시오.”
길리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간 일행은 바로 코부터 막고 말았다. 벨린다는 속으로 혀를 차며 집 안을 둘러보았다.
‘하아, 거지 소굴이 따로 없네.’
얼마나 청소를 안 했는지 곳곳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고, 볕이 안 드는 방구석에는 곰팡이까지 피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집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온갖 무기들이었다.
‘대장장이인가?’
큰 체격이나 집안 곳곳에 널린 무기들을 보면 꽤 그럴듯한 추리였다.
하지만 이 상황에 굳이 대장장이를 수소문해 가며 찾을 필요가 없다.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했다, 앞으로 어쩔 거다, 왜 말을 안 해 주시는 거야.’
벨린다는 불만스럽게 입을 삐죽였다. 지셀이 자세한 얘기를 안 해 주니 추측밖에 할 수 없었다.
“이쪽이오.”
그들은 길리언을 따라 작은 침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엘레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소녀가 수척한 얼굴을 내비치며 잠들어 있었다.
“내 딸이오.”
길리언의 딸을 본 벨린다와 기사들이 흠칫 놀라 한 걸음 물러났다.
빛바랜 갈색 머리카락은 만지면 바스러질 정도로 푸석해져 있었고, 입술은 죄다 갈라져 터진 상태였다. 그야말로 시체에 가까운 모습.
침대보 곳곳에 묻어 있는 핏자국들과 빠진 손톱이, 소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짐작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소녀의 얼굴과 몸 곳곳에 보이는 붉은 반점이었다.
벨린다는 자신도 모르게 지셀의 팔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도련님!”
지셀은 천천히 벨린다의 손을 잡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고 있어.”
“도련님, 물러나세요. 도련님이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왜 길리언이 저런 상태인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불치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딸, 그들을 경멸하거나 피하려는 사람들의 태도, 보이지 않는 희망.
서서히 죽음에 가까워지는 딸과 함께 그도 죽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벨린다의 행동을 보고 길리언이 흐린 웃음을 토해 내었다.
“도와준다더니 내 딸이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찾아온 것이오?”
“아니, 알고 있다.”
“알고 있다면 얘기가 빠르겠군. 내 딸은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렸소.”
“세간에 알려진 치료법이 없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지.”
당연한 듯 내뱉는 어조에 길리언이 인상을 쓰며 으르렁거렸다.
“그런데도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한 건가? 무슨 의도로 나한테…….”
벨린다가 길리언의 말을 끊으며 지셀의 앞을 막았다.
“공자님, 그만 물러나세요!”
목소리가 컸다. 그녀가 공자님이란 호칭을 썼다는 건 정말로 화가 났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지셀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괜찮아, 저건 전염병이 아니야. 이미 헛소문이라고 밝혀졌잖아?”
“그래도 물러나세요! 조심해서 나쁠 것 없잖아요!”
“아니, 전염병이 아니라니까.”
벨린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셀이 무엇을 믿고 저리도 자신만만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어지는 말은 더욱더 놀라웠다.
“나는 저 병의 치료법을 알고 있어.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치료법을 아는 건 세상에 오직 나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