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160)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60화(160/269)
160화 먼저 때리는 게 낫다니까? (2)
“이것 봐라? 아무튼 요즘 사람들은 믿음이 없어, 믿음이.”
떨떠름한 주변의 반응에 지셀은 혀를 찬 뒤 말을 이었다.
“난 내가 지휘한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상당히 오만한 말이었다. 어떠한 명장도 그런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셀은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용병왕의 칭호를 받은 뒤 정말 단 한 번도 전쟁에서 패배한 적이 없었으니까.
마지막 전쟁에서 목숨을 잃긴 했지만, 그건 과거로 돌아왔으니 무효다.
자신만만한 지셀의 말에 벨린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풋 웃었다.
‘아유, 우리 도련님 귀여워라. 전쟁 딱 한 번 해 보고서는……. 뭐, 이겼으니 틀린 말은 아니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1전 1승 0패니까 어쨌든 거짓말은 아니다.
아니꼽긴 하지만, 어쨌든 지셀의 공식적인 전쟁 승률은 100%였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챈 지셀은 입맛을 다셨다.
‘아, 이거 진짠데. 나 백전백승인데 믿지를 않네.’
클로드는 잠시 애잔한 눈으로 지셀을 바라보다 말했다.
“영주님이 싸움은 좀 하신다는 얘기는 몇 번 들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쳐들어가실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주민 중에서 전투가 가능한 사람들을 죄다 뽑아도 천 명이 넘지 않을 겁니다.”
말이야 수천 명이 들어왔다고 하지만, 노약자들을 제외한다면 실제로 싸울 수 있는 인원은 얼마 되지 않는다.
클로드가 말한 천 명도 예상 최대치일 뿐이었다.
“그들을 다 병사로 삼는다 해도,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로는 오합지졸일 뿐입니다. 그런 병력으로 어떻게 전쟁을 합니까?”
“확실히, 아무리 내가 강해도 그런 병력으로는 조금 힘들긴 하겠지. 못 이길 건 없지만……. 굳이 희생을 많이 낼 필요도 없으니까.”
“예,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은 다음 기회에…….”
“아니지. 부족한 병력은 내가 알아서 구해 올게. 그리고 지금 우리한테 있는 전력을 수천 명과 맞먹을 정도로 강하게 키우면 되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클로드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게 가능하면 다른 영주들이 왜 병력을 늘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겠는가.
특히나 지금처럼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해도 강해지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가 반박하려고 입을 열기 직전, 지셀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먼저 울려 퍼졌다.
“펜리스 기사단을 창설한다.”
모여 있던 가신들은 순간 자기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의심하며 눈만 껌뻑거렸다.
기사가 한 명도 없는데 기사단을 창설한다니, 그간 들은 개소리 중에서도 가장 참신한 개소리였다.
기사란 무엇인가?
전쟁의 판도를 뒤바꿀 수 있는 일종의 전투 병기였다.
각 진영에 기사가 얼마나 있고 얼마나 수준이 높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갈리곤 했다.
그런 기사들이 최소 수십은 모여야 기사단이라는 이름을 달 수 있었다.
그렇기에 ‘기사단’은 영지의 저력을 과시하는 수단이자 무력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전쟁 준비를 하자던 지셀이 갑자기 기사단이라는 말을 내뱉으니, 다들 어안이 벙벙해질 만도 했다.
‘아니, 개나 소나 모아 놓고 이름만 붙인다고 기사단이 되는 줄 아는 건가?’
‘최소한 마나는 다룰 줄 알아야 기사로 인정받는데, 우리 영지에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영주님이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기사단은 보통 백작령 이상 되는 대영지에서나 운영하고, 대부분의 영지에는 기사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은 그저 소수의 기사들만이 영주를 보필할 뿐이었다. 남작령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기사는 무척 고급 전력이기에 돈이 많다고 쉽게 구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 전력을 유지하는 비용도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펜리스에도 정식으로 기사 서임을 받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클로드는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기사가 없는데 기사단을 어떻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이제부터 만들어야지. 지금 있는 용병들과 이번에 합류한 자들을 전부 기사로 만든다. 물론 용병들은 원하는 자들만 새로 계약하고, 기사 서임도 시켜야겠지.”
“기사를…… 만든다고요?”
“그래, 두 달이면 충분히 만들 수 있어.”
‘기사가 무슨 제빵소에서 찍어 내는 빵도 아니고…….’
마나를 제대로 쓸 줄도 모르는 이들을 어떻게 두 달 안에 기사로 키운단 말인가?
“아니, 최하급 기사라도 최소한 마나를 다뤄야 기사로 인정받는 건데……. 어? 설마?”
클로드의 머릿속에, 예전에 엄청난 비용을 들여 만들었던 마나 집속진이 떠올랐다.
당시엔 괴물 밀알을 만드는 데 쓰긴 했지만, 그건 원래 기사들을 수련시키는 데 쓰는 물건이었다.
지셀은 이제야 깨달았냐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나야 강제로 익히게 하면 돼.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는 게 어려운 거지, 최하급 기사 정도면 빨리 키울 수 있거든. 내가 직접 마나 연공법도 가르쳐 줄 생각이다.”
“안 돼요!”
그때, 벨린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지셀의 말을 끊었다.
지셀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어우, 깜짝이야. 왜?”
“페르디움 가문의 마나 연공법을 가르치려는 거잖아요!”
그녀가 알기로 지셀이 익힌 마나 연공법은 페르디움 가문의 것밖에 없다.
가문의 연공법은 함부로 유출하면 안 되는 것이 이 시대의 상식.
하지만 지셀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럴 생각인데, 그게 뭐 어때서? 기사를 만들려면 당연히 마나 연공법이 필요하잖아.”
“그건 가문의 비전이잖아요! 왜 비전이라고 하겠어요!”
마나 연공법은 가문의 일원이거나, 가주의 허락을 받은 자가 아니면 누구도 배울 수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유출할 수도 없다.
마나 연공법이야말로 가문과 영지의 무력과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셀은 쓸데없는 명예니, 권력이니 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위기가 코앞인데 그런 걸 핑계로 아끼다가 다 죽으면 말짱 헛일이다.
“가문의 비전이라도 필요하면 다 써먹어야지. 당장 강력한 전력을 만들어야 하잖아?”
“그래도 그 연공법은 페르디움 가문의 것이라고요. 함부로 유출하면 안 되는 건 잘 아시잖아요?”
“어차피 방계 쪽으로도, 아니면 개인적으로 들인 제자를 통해서도 조금씩 흘러나가고 있잖아. 뭘 새삼……. 애초에 요즘 기사들이 다 귀족인 것도 아니고. 걔들도 어느 가문 연공법 훔쳐 배운 거 아니겠어?”
“그, 그거랑은 다르죠! 그건 소수라고요!”
마탑에서 하듯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연공법 전수가 이루어질 때도 있고, 재능있는 자라면 평민에게도 충성 서약과 비밀 서약을 받고 알려 주기도 한다.
철저한 비밀 엄수를 조건으로 걸어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퍼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셀처럼 대놓고 뿌리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였다.
“도대체 가문의 비전을 동시에 수백 명에게 알려 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여기.”
“…….”
너무나도 당당한 지셀의 태도에 말문이 막혀 벨린다는 허탈한 한숨만 흘렸다.
‘어렸을 때는 참 쪼잔해서 걱정이었는데, 통이 커져도 너무 커진 거 아니야?’
당황하던 벨린다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바로 있는 듯 없는 듯 언제나 지셀의 뒤를 지키는 퍼거스였다.
퍼거스의 공식 직함은 무려 영주의 호위 기사였다.
물론 실제로 호위 업무는 다른 사람이 맡고 있지만, 그래도 퍼거스는 영지의 어른으로 대접받고 있었다.
애초에 그에게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주가 매일 직접 마나까지 돌려 주며 건강을 챙길 정도로 아끼는 사람에게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지금도 퍼거스는 대전에서 지셀의 옆에 앉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벨린다는 잽싸게 퍼거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도 페르디움을 오래 섬겨 왔던 사람이니 분명 반대할 것이다.
“영감님! 도련님 좀 말려 봐요! 가문의 연공법을 막 뿌린다잖아요!”
하지만 퍼거스는 벨린다의 기대를 무참히 배신했다.
“허허, 우리 도련님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퍼거스는 지셀이 뭘 하든 그저 흐뭇했다.
지셀이 영주가 되어 영지를 운영하는 것도 예쁘고, 영지를 위해 이렇게 사람들을 모아서 회의를 하는 것도 예뻐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벨린다는 확실히 깨달았다.
‘글렀어! 저건 늦둥이 손자 보는 할아버지의 미소잖아! 도련님이 수염을 죄다 뽑아도 예쁘다고 할 단계에 이르렀어!’
물론 전쟁을 벌이는 것만큼은 퍼거스도 반대했다.
“하지만 도련님, 전쟁은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위험한 일입니다.”
지셀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고개만 대충 끄덕였다.
그러자 퍼거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렸을 때부터 봤기에 지셀이 저럴 때는 말을 죽어도 안 듣는 걸 알기 때문이다.
퍼거스의 지원을 받고 지셀이 더욱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폈다.
벨린다는 다른 논리로 공격을 시도했다.
“비밀 서약을 받고 가르친다고 쳐요. 그걸 익히는 게 쉽진 않잖아요? 적어도 몇 년은 수련해야 하는데, 어떻게 두 달 만에 마나를 익히고 사용해요?”
정론이었다. 안타깝게도 마나 연공법은 알려준다고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나는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치고 누구나 극소량이라도 지니고 있지만, 그걸 느끼고 제어하는 건 재능과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셀은 그것도 문제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괜찮아. 내가 개량하면 돼. 바네사처럼 강제로 익히게 하면 되니까.”
“마나 연공법을 강제로…… 익히게 한다고요?”
“그래. 아버지와 페르디움의 기사들도 내가 개량한 것을 익히게 될 거야. 페르디움 가문의 마나 연공법은 이제 버린다. 그거 생각보다 별로거든. 가문의 선조들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벨린다는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아, 미쳐 버리겠네. 그게 말이 되냐고!’
지셀의 뜻은 이해했다. 법도며 명예며 따져 봐야 죽으면 소용없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건 가능성의 문제였다. 두 달 안에 수백 명이 기사급으로 마나를 다루게 한다고?
고금을 막론하고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거기다 오랜 시간 북부의 최전방을 지켜 온 가문의 마나 연공법을 비하하는 것도 모자라 개량까지 하겠단다.
그냥 개량하는 것도 아니고, 짝퉁을 만든 뒤에 원본을 없애 버리겠다니!
“도련님이 마나 연공법을 다 뜯어고치겠다고요? 잘못하면 큰일 나요. 그건 엄청난 천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요!”
왜 유명한 마나 연공법의 창시자가 전부 희대의 천재나 영웅들이겠는가.
마나 연공법은 최소 수십, 수백 년을 내려오며 완성된 수련법이기에, 그 정도 천재가 아니고서야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된 연공법을 익히면 폐인이 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
“왜? 나 어렸을 때는 나더러 막 천재라고 몇 번이나 칭찬했었잖아?”
“그건 도련님이……!”
벨린다는 말을 하려다가 퍼뜩 멈췄다. 사람들 앞에서 이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도련님이 처음으로 바지에 오줌을 안 쌌을 때 자신감을 얻으라고 과장한 거란 말이에요!’
지셀은 걱정하는 벨린다를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데 말이지.’
전생에 그는 대륙에서 가장 강하다는 일곱 명 중의 하나였다.
인간을 초월하는 경지에 올랐었고, 수도 없이 마나 연공법을 뜯어고쳐 수하들에게 던져 줬었다.
“걱정하지 마. 바네사가 마나를 느낄 때도 내가 도와줬던 거 알잖아. 내가 잘 개량할 수 있다니까? 나 못 믿어?”
확신 어린 어조에 벨린다는 순간 설득당할 뻔했다.
‘하긴, 도련님의 마나 연공법은……. 비슷한 면이 있긴 하지만, 분명 페르디움 가문의 것과는 달랐지.’
믿어야 하나 고민하던 벨린다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마구 저었다.
원래 나쁜 남자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나 못 믿어?’였으니까.
“그거랑 이거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바네사는 마나만 없었을 뿐이지 마탑에서 몇 년은 수련한 천재였다.
마나에 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용병들을 가르치는 것과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도련님이 마나 운용 능력이 뛰어나고 특별한 재주가 있는 건 알겠지만……. 이번 건 진짜 말이 안 돼. 지금은 자기 능력에 취한 거야. 하는 일마다 결과가 좋으니 미쳐 버린 거라고!’
세상에 기사가 무슨 빵도 아니고 두 달 만에 찍어 내겠다니!
그게 가능했으면 이미 페르디움은 지셀이 태어나기도 전에 왕국을 차지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클로드가 냉큼 끼어들었다.
“영주님,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지금 엄청나게 급한 상황에 부닥쳤고, 할 일이 많습니다. 애초에 데스몬드 백작과의 전쟁 얘기도 영주님이 먼저 꺼내셨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전쟁 준비도 하고 영지 개발도 하려면 돈이 엄청나게 들겠죠?”
“어마어마하게 들겠지. 번 돈부터 앞으로 벌 돈까지 다 써도 모자랄걸?”
“그런데 그 비싼 룬스톤을 안 팔고 마나 집속진에 쓰는 게 말이 됩니까! 두 달 만에 기사들을 뽑아내지 못하면 돈도 시간도 날리는 거라고요!”
클로드는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간 영주가 보인 성과도 인정하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까지는 인정한다.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더 믿어 봐도 되지 않겠냐고?
‘웃기는 소리! 한 번만 실수해도 다 죽는다!’
자기 목숨이 걸린 일인데, 비상식적인 제안에 그렇게 쉽게 동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부터 돈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준비를 잘해도 전쟁에서 버틸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다.
상대는 북부의 최강 자리를 놓고 다투는 데스몬드 백작이었으니까.
두 달의 기간과 어마어마한 자금을 날릴지도 모르는 지셀의 계획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었다.
“만약에 실패하면 더 위험해지는 거라고요! 제발 상식적으로 준비하면 안 될까요?”
클로드의 외침에 동의하듯 다른 사람들도 간절한 눈빛으로 지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셀은 심드렁하게 우길 뿐이었다.
“된다니까? 나한테는 그게 상식이라니까? 내가 언제 헛소리하는 거 봤어? 나 그런 사람 아니야.”
순간 모두의 시선이 지셀에게 집중되며 주위에 적막이 흘렀다.
이 영지에서 헛소리를 제일 잘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영주가 최고일 것이다.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헛소리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지셀이 다시 한 마디 중얼거렸다.
“어이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