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163)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63화(163/269)
163화 체질 개선에 들어간다. (2)
마나 집속진이 만들어지는 동안, 대부분의 용병들은 종신 계약으로 계약 내용을 변경했다. 새로 합류한 자들도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마나 연공법을 알려 주고 기사 작위까지 준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얘기 들었어? 영주님이 가문의 마나 연공법을 알려 준다는 소문이 있던데.”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비전 중의 비전이 마나 연공법인데 그걸 누가 알려 줘? 너 같으면 알려 주겠냐?”
“그래도 우리가 영지 전력이 될 텐데, 나름대로 쓸 만한 걸 알려 주지 않을까?”
“뭐, 우리가 익히기 쉬운 걸 골라서 알려 주겠지. 어차피 몇 년은 수련해야 하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말자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퍼질 만큼 용병들은 마나 연공법을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이들에게 걱정거리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영지민들은 잘 모르겠지만, 경험 많은 용병들은 다시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확신했다.
대영주인 데스몬드 백작이 페르디움 같은 작은 영지에 한 대 얻어터지고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럼에도 용병들은 목숨을 걸고 펜리스 영지에 남기를 택했다.
기사 작위와 마나 연공법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종신 계약으로 바꾸는 사이에도, 카오르와 켈베로스 용병단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씨……. 어떻게 하지? 제안을 받아들이면 평생 여기에 묶여 있어야 하는데.”
카오르는 단원들을 모아 놓고 머리만 벅벅 긁었다.
그의 실력이면 사실 어디를 가도 기사 작위 정도는 받아 낼 수 있었다.
용병으로서는 흔치 않게 마나도 익히고 있었고, 실력도 어지간한 기사보다는 뛰어났으니까.
하지만 딱딱한 생활도 싫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기에 용병으로 남았던 것이다.
“야,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거야? 마나 집속진이 완성되기 전까지 결정하라는데.”
카오르의 말에 몇몇 단원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희야 뭐…… 단장님 따라가는 거죠. 기사 그거 돼 봐야 뭐가 좋다고……. 좋긴 하겠지만.”
“마나 연공법도 뭐, 배우면 좋긴 한데…….”
“배운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뭐…… 대장 영주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들도 가문의 연공법을 가르쳐 준다는 소문은 믿지 않았다. 그냥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싸구려 연공법보다는 낫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
애초에 마나를 다루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싸구려 기초 연공법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태반이었다.
그래도 언제나 기상천외한 일들을 성공시켰던 영주가 호언장담했으니, 혹시나 정말 괜찮은 걸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긴 했다.
단지 그 기대가 불안감을 누를 정도로 크진 않았을 뿐이다.
카오르는 반응이 영 시원찮은 단원들을 괜히 한 번 더 떠보았다.
“여기 남고 싶은 사람은 남아도 돼. 켈베로스 용병단은 탈퇴하는 걸로 하고.”
그렇게 말해도 단원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애초에 켈베로스 용병단에서 탈퇴하려면 손모가지 하나는 두고 가야 한다. 괜히 저 말에 낚였다가는 더 피곤해진다는 걸 다들 잘 알았다.
“새끼들, 의리 있네. 그렇지, 용병이 의리 빼면 시체지, 시체.”
카오르의 말에 단원들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표정을 감췄다.
배신하면 시체로 만들어 주겠다는 말로 들린다.
‘나간다고 하면 지랄할 거면서.’
‘배신자니 뭐니 하면서 손목 하나 달라고 하겠지?’
‘아, 그래도 여기 있는 거 은근히 재미있긴 했는데.’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슬슬 퍼지는 걸 느끼고 카오르는 입맛을 다셨다.
예전 같았으면 종신 계약 제안이 왔을 때 바로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떠나기에는 어쩐지 아쉬웠다.
‘아, 뭐 때문에 이러지? 정이라도 들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정들 만한 이유가 없다.
영주부터 시작해 벨린다, 길리언, 클로드……. 하나 같이 죄다 이상한 놈들뿐이다.
이상한 놈들하고 어울리니 자신도 이상해진 것일까?
카오르가 해결되지 않는 고민으로 끙끙 앓고 있을 때, 단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솔직히 우리 여기 떠나면 또 북부에서 자잘한 의뢰나 받으면서 살 거 아닙니까.”
“그렇지, 그냥 그렇게 일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거지.”
“그런데 솔직히…… 여기 재미있지 않습니까? 대장 영주도 이상한데 재미있잖아요.”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펜리스 영지는 다른 영지와 궤를 달리하는 곳이다.
영주인 지셀도 다른 귀족들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가끔 막무가내에 꼴통처럼 굴기는 하지만, 같이 지내기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건 확실했다.
카오르가 더 말해 보라고 눈짓하자 단원은 용기를 내어 말을 이었다.
“최소한 여기 있으면 싸움질은 원 없이 할 수 있을 거 같거든요. 그냥 빈둥빈둥 시간 보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그 말도 맞다. 데스몬드와의 두 번째 전쟁도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고, 지셀의 성격상 그 뒤로도 여기저기 사고 쳐서 계속 싸움이 벌어질 게 뻔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2차 마수의 숲 개척도 예정되어 있다.
펜리스만큼 빅 이벤트가 끊임없이 벌어지는 곳은 없었다.
카오르가 솔깃한 표정을 짓자 단원은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그리고 북부에서 의뢰를 받고 다니다 보면 대장 영주랑 싸우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요. 그때는 다른 쪽에 붙어서 싸워야 하는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아, 그건 좀.”
카오르는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고 말았다.
‘저 꼴통 영주랑 싸우라고?’
다른 놈은 무섭지 않은데 이상하게 지셀만은 꺼림칙하다.
죽을 때까지 얻어맞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다시 싸우는 걸 본능이 거부했다.
그렇다고 재미있는 전쟁 의뢰를 받지 않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 다시 펜리스 쪽에 붙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카오르는 팔짱을 끼고 고민에 잠겼다.
힐끗 단원들을 바라보자 모두 기대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 새끼들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한번 피식 웃은 카오르는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사실 이미 마음은 기운 상태였다.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고민하는 척한 거지.
앞으로 더 재미있는 일들이 가득할 이 영지를 떠나면 평생 후회할 터였다.
“좋아, 까짓거 우리도 기사 하자!”
“오오오!”
카오르의 선언에 모두가 환호를 내질렀다.
떠돌아다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평생 그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분위기 딱딱한 영지에 갇혀 사는 것보다는 이곳에 남는 게 훨씬 좋았다.
거기에 마나 연공법까지 가르쳐 주고 기사 작위까지 준다는데 거절하면 바보다.
영지가 작고 약한 건 흠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다른 곳에서는 이런 조건으로 받아 주지도 않을 테니까.
카오르는 오만하게 말했다.
“기사단장은 이 몸이 할 테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
“길리언 교관은요? 그 아저씨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하! 그거야 실력으로 뺏으면 되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영감 정도는 순식간에 끝낼 수 있어. 그러니까 기사단장은 바로 이 몸이다.”
“우와아아! 펜리스 기사단장 카오르!”
모두가 다시 환호를 내질렀다.
카오르가 멋져 보인다거나, 정말로 그가 길리언을 이길 거라 믿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재미있는 싸움 구경을 할 거 같아서였다.
자칭 펜리스 기사단장 카오르는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번쩍 들어 올렸다.
* * *
“기사단장은 나다.”
지셀의 말에 카오르는 눈만 껌뻑이다가 물었다.
“제가 아니고요?”
“응, 아니야.”
“무슨 영주가 기사단장을 직접 합니까?”
“나는 다 직접 해.”
“아니, 직접 하지 마시고 저 달라니까요.”
“지금은 내가 하는 게 편해. 나중에 병력 더 늘어나고 새로 편제할 때 결정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지셀이 혀를 차며 말하자 카오르는 일단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 그때는 저 주시는 겁니다?”
“상황 보고. 경쟁자가 많아서 네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런데 너 싸움 잘 못 하지 않아?”
도발적인 말에 카오르가 삐딱하게 선 채로 투덜거렸다.
“저 싸움 잘합니다!”
“그러니까 그때 가서 보자고. 다른 사람들도 마나 익히고 실력을 본 뒤에 말이야.”
“그때 가도 다를 거 없을 겁니다.”
“그래, 그래. 기대할게. 어쨌든 결정 잘했어. 앞으로도 우리 잘해 보자고.”
카오르가 지셀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종신 계약까지 마친 것을 기점으로, 켈베로스 용병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셀은 카오르의 어깨를 두드리며 책을 두 권 건네주었다.
“함께하기로 했으니 선물을 줘야겠지? 이거 받아.”
“이게 뭡니까?”
“우리 가문의 마나 연공법과 검술서다. 물론 내가 어느 정도 너한테 맞게 개량을 좀 했지. 아마 지금 익히고 있는 것보다 쓸 만할 거야.”
“헐.”
카오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셀을 바라보았다.
기사단장 자리 내놓으라고 찾아왔는데 이런 선물을 줄 줄이야.
카오르는 싸구려 마나 연공법을 익혔지만 특출난 재능과 독기, 목숨을 건 실전으로 나름대로 경지에 올랐다.
싸구려 연공법만으로도 어지간한 기사들을 뛰어넘었으니, 자부심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승의 마나 연공법에 목마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실력이 늘면 늘수록 벽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체계적인 지식 없이 감각적으로 익힌 자의 한계였다.
그래서 더 싸움을 즐겼고 위험한 곳을 찾아다녔다.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 카오르에게 지셀이 건넨 책은 어둠 속에서 내려온 한 줄기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저, 저한테도 줄 줄은 몰랐습니다.”
길리언이나 자신 같은 경우는 이미 기사와 비슷한 수준에 올랐기 때문에 다른 용병들에게만 연공법을 알려 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지셀은 놀라는 카오르를 보면서도 자기 할 말만 이어 갔다.
“그간 보니 안 좋은 버릇도 많고 몸의 밸런스가 무너져 있더라. 마나를 제대로 쓰려면 몸 전체를 활용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서 균형이 무너진 거야. 검술도 실전으로 익혀서 번뜩이는 재치는 있지만 기본기가 현저히 부족해. 내가 준 걸 열심히 익히면 금방 벽을 넘을 수 있을 거다.”
“……왜 저한테 이렇게 해 주시는 겁니까?”
카오르는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지셀이 넘겨준 건 천금을 줘도 구하기 힘든 것들이다.
아무리 페르디움 백작령이 우습게 보인다고 해도 그건 외적인 환경 탓이었다.
‘페르디움 백작가의 연공법과 검술만 놓고 보면 절대 다른 곳에 비해 떨어지지 않아. 애초에 페르디움 백작도 상급의 기사로 평가받고 있고.’
페르디움이 북방을 지킬 수 있는 저력은 이 마나 연공법과 검술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겨우 몇 번 같이 싸웠다고 줄 만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심지어 같이 싸운 것이 용병 계약 때문이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저 돈 받고 할 일을 다 했을 뿐이다.
의아해하는 카오르에게 지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싸움 못 하잖아. 어디 가서 얻어터지지 말라고 준 거다.”
카오르는 발끈하려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슬금슬금 책들을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자존심 때문에 좋아하는 티를 안 내고 싶었지만, 기쁜 마음을 숨기기가 힘들었다.
웃으면 안 되는데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카오르는 입술을 꽉 깨물고 괴상한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저 싸움 잘합니다만……. 어쨌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으흐흐흐.”
“그래, 익히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아마 열심히 해야 할 거다. 다른 사람들한테 따라잡히기 싫으면 말이야. 재능있는 친구들이 많거든.”
“크흐흐, 제까짓 놈들이 그래 봤자죠. 덤비는 놈은 죄다 박살을 내 주겠습니다.”
빨리 돌아가서 익히고 싶은 마음에 카오르는 건성건성 고개를 숙이고 잽싸게 몸을 돌렸다.
원래 예의가 없는 놈이라 지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지금 어떤 마음일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집무실의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은 카오르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왠지…… 코가 시큰거렸다.
어렸을 적 가족을 잃고, 먹고살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왔다.
‘나한테…… 이렇게까지 잘해 준 사람이 있었나?’
없었다. 그는 죽이지 않으면 죽여야 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더 잔인하게, 더 미친놈처럼 굴었다. 그러지 않으면 밑바닥 인생인 카오르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어찌 보면 세상에 대한 불만이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몰려오는 생소한 감정을 누르려고 카오르는 이를 악물었다.
‘그냥…… 전쟁에서 써먹어야 하니까 알려 주는 거야. 앞에서 싸워야 하니까.’
애써 지셀의 뜻을 폄하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란 걸 카오르도 잘 알고 있다.
누구도 화살받이에게 이런 보물을 나눠 주지 않는다.
돈 몇 푼 쥐여 주고 전쟁터에 내몰면 그만이니까.
카오르와 지셀은 애초에 그런 관계였다.
‘젠장…….’
마수의 숲에서도, 전쟁에서도, 그 어느 곳에서도 지셀은 용병들을 소모품으로 대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살리려 했고, 언제나 가장 위험한 곳에 서 있었다.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지언정, 적어도 치졸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까짓것, 끝까지 한번 같이 가 봅시다.’
머뭇거리던 카오르는 손잡이를 놓고 지셀을 돌아보았다.
의아해하는 지셀의 얼굴을 가만히 보던 카오르는 천천히 허리를 깊게 숙였다.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건네는 감사의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