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178)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78화(178/269)
178화 드디어 그 시기가 왔군. (1)
기사들이 훈련에 전념하는 동안 열기구의 보강 작업도 끝이 났다.
자존심을 한번 구겼던 갈바릭은 가슴을 탕탕 치며 호언장담을 했다.
“확실하게 보강이 끝났소이다! 이번에는 절대 사고 날 일이 없을 거요! 어디서 공격을 받거나 꼴통 같은 놈들이 이상한 짓만 안 한다면 말이오!”
과연 드워프들이 자존심을 바짝 갈아 넣었는지, 보강된 열기구는 무사히 비행을 마쳤다.
하지만 드워프들에게 맡긴 건 열기구뿐만이 아니다.
지셀은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도 바로 확인에 들어갔다.
“블러드 퓌톤으로 제작한 언더 아머는? 그것도 급하다고 했는데.”
“그건 다 끝났소이다. 자르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마법사들까지 엄청나게 고생했소.”
드워프들은 마법사들과 함께 블러드 퓌톤의 가죽으로 목과 가슴, 팔과 다리 등 중요한 부분을 가릴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
한정된 재료로 수백 벌을 만들어야 했기에 전신보다는 급소를 가리는 것에만 중점을 두었다.
갑옷 안에 받쳐 입으면 어지간한 병사들에게는 죽지 않을 것이다.
블러드 퓌톤의 가죽은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자르기가 무척이나 힘든 소재니까.
“역시 드워프들이야. 기사들이 쓸 갑옷도 다 끝났겠지?”
“부족한 수량은 다 채웠소. 차라리 그게 제일 쉽더군.”
갈바릭의 말에서는 절절한 진심이 묻어났다.
갑옷을 만드는 일이 정말로 제일 쉬웠다. 가장 많이 해 본 일이기도 했고, 이미 있는 갑옷을 정비하거나 부족한 수량만 채우면 됐기 때문이다.
지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들에게 보급할 기본적인 무구는 완성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준비가 다 끝난 건 아니다.
“열기구도 어떻게 보강해야 할지 알았으니 추가 생산을 해야지. 언제 적들이 쳐들어올지 몰라. 최대한 빨리 만들어야 해.”
드워프들도 늦게 도착했고, 중간에 자재가 부족했던 탓에 일을 시작한 날짜 자체도 지셀이 당초 계획했던 기간보다 조금 늦어졌다.
그런데 열기구를 보강하느라 시간을 또 잡아먹었다.
일정이란 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완벽하게 맞추는 건 쉽지 않다.
그런 것까지 고려해 일부러 시간을 촉박하게 잡았지만, 항상 시간에 쫓기는 지셀로서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일정이 마음에 안 드는 건 갈바릭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역사에 남을 만한 기구를 만들었는데, 좀 쉬었다 하면 안 되오? 일이 너무 많아서 다 죽게 생겼소이다! 자꾸 이러면 우리 파업할 거야! 노동자의 휴식 권리를 보장하라! 보장하라!”
“안 돼. 시간 없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대신 이번 일정만 맞추면 휴가 줄게.”
“휴가? 진심이오?”
휴가라는 말에 갈바릭이 눈을 빛냈다.
바빠서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상태에서 휴가라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뛰었다.
신분만 노예인 게 아니라 진짜 노예처럼 구르고 있는 그에게, 휴가라는 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얼마나 줄 생각이오?”
“일주일 주지. 우리 영지에서 휴가를 일주일이나 받는 건 흔한 일이 아니야.”
갈바릭은 바로 협상에 들어갔다.
“한 달 주시오!”
솔직히 지금 드워프들이 제일 일을 많이 하고, 중요한 일도 모조리 도맡은 건 맞기에 지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2주를 주지.”
“3주는 되어야겠소!”
“일주일을 주겠다.”
“왜 다시 줄어?”
보통 이러면 3주엔 안 맞춰 주더라도 2주보다는 더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협상법에 갈바릭이 당황하자 지셀이 툭 던지듯 말했다.
“사흘 정도로 할까? 안 쉬면 더 좋고.”
“……일주일 받겠습니다.”
갈바릭의 말투가 다시 공손해졌다.
일주일이라도 약속받아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눈물이 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2주라고 할 때 받을걸.’
그래도 일주일쯤 쉬면 숨은 돌릴 수 있을 거다. 일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지 않는다면.
휴가를 핑계로 일을 더 받기 전에 갈바릭은 잽싸게 도망가 버렸다. 지셀을 완전히 파악한 것이다.
갈바릭이 떠나자 지셀은 그간 이룬 성과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영지로 돌아온 뒤 정말 정신없이 움직이며 많은 것을 준비했다.
이주민이 유입되고, 거주지와 공방, 농경지가 확대되었다. 다른 시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드워프들이 들어온 뒤 다양한 장비와 도구들도 금세 양을 불렸다.
기사단 훈련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지셀이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 돈을 불리고, 사람들이 몸을 갈아 넣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힘을 합한 덕분에 평범한 영지의 발전 속도를 몇 배나 뛰어넘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한가?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부족하다.’
만약 다른 영지였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발전을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싸워야 할 강력한 적이 있는 지셀에게 그런 마음은 사치였다.
지금도 지셀의 재산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지만 거둬들이는 세금은 거의 없었다.
펜리스 영지의 생산품이라고 해 봐야 화장품이 전부였다. 공방에서 생산되는 것은 대부분 전쟁 물자고, 식량도 다른 데 팔지 않고 오히려 사들이는 중이다.
초급 기사들이 순식간에 늘어났지만, 달리 말하면 군사력 또한 기사단 하나가 전부다.
수천, 수만의 병력을 가진 대영주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셀은 쉴 수가 없었다.
‘절대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피해를 최소화해야 해.’
지금 펜리스 영지는 극단적으로 개발을 추구하고 있어, 한 번만 삐끗해도 무너질 것이 확실했다.
클로드의 말처럼 이런 아슬아슬한 상태로는 정상적인 영지라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무척 중요했다.
완벽한 승리, 아니면 완벽한 패배.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충분한 전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기려면, 적이 예측할 수도 없는 위험한 작전을 감행해야 한다.
‘준비는 거의 다 끝났다. 싸워야 할 시기도 곧 올 거야.’
생각을 정리한 지셀은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더워지는군.’
아직은 다들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북부는 본래도 날씨가 변덕스럽게 바뀌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를 겪고 온 지셀은 지금의 날씨 변화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때가 가까워졌음을 느낀 지셀은 가신들을 소집해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지금 하고 있는 공사는 당분간 전부 멈춘다.”
모두가 당황해서 서로를 돌아보았다.
시간이 없다고 재촉할 때는 언제고, 이젠 또 공사를 멈추라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안 해도 돼서 좋은 기분보다는 또 무슨 사고를 칠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클로드가 겁먹은 어조로 조심스레 물었다.
“갑자기 공사를 멈추라뇨? 다음 이주민들을 받으려면 거주지 작업은 더 속도를 내야 합니다.”
“아예 그만둔다는 게 아니야. 드워프들은 열기구 제작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모두 수로와 저수조 건설 작업, 저수지 확장 작업에 투입한다.”
클로드와 가신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수로와 저수지는 농사에 꼭 필요한 시설이기도 하고, 예전부터 지셀이 몇 번이나 강조했었기에 새로운 경작지를 작업할 때도 제일 먼저 처리했던 작업이었다.
수로와 저수지는 굳이 늘리지 않아도 충분히 현재 생산량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영지의 작업 현황을 꿰뚫고 있는 클로드가 다시 물었다.
“지금도 혹시 모를 재난에 대비해서 여유분을 충분히 갖춰 둔 상태입니다. 이곳뿐만 아니라 각 마을의 공동 수조에도 물을 저장해 두었고요.”
그 말에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고 있지만, 전생에 이곳 상황을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기록으로만 봤을 뿐.
직접 체감해 보지 않은 사건은 무조건 기록으로 예상한 것보다 더 크게 준비해야 한다.
“여유 있어서 나쁠 건 없잖아? 이미 기반은 닦아 둔 상태니 늘리는 건 어렵지 않고 말이야. 주변 강줄기를 모두 끌어 쓴다 생각하고 작업해. 하는 김에 페르디움에도 자금과 인부를 지원해 줄 테니 몇 개 더 만들라고 해.”
그 말에 클로드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물러났다.
물을 다스리는 건 영주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특히 북부와 같이 척박한 곳이라면 중요성은 더 커진다.
과할 정도로 해도 나쁠 건 없다는 뜻이다.
지셀은 클로드에게 물었다.
“식량 상황은 어떻지? 계속 구매하고 있나?”
그 말에 클로드가 아주 질렸다는 표정을 대놓고 지었다.
그놈의 식량 얘기는 회의 때마다 들었다. 이제 식량의 ‘식’자만 나와도 토할 거 같았다.
“창고가 터질 거 같아서 계속 확장 중입니다. 식량이 너무 남아돌아서 돌아다니는 동네 개들하고 고양이들까지 살이 뒤룩뒤룩 쪘을 정도입니다. 이번 수확까지 끝내면 영주님은 북부의 식량왕으로 불릴 겁니다.”
영지민들이야 항상 굶다가 배불리 먹게 되었으니 사기도 높아지고, 영주를 칭송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클로드의 입장에서는 그저 좋다고 넘어갈 수만은 없었다. 너무 많은 돈이 식량 구매로 쓰이고 있다. 이제는 돈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클로드도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수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많은 식량이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많아도 너무 많았다. 양으로만 따지면 10년도 넘게 성에서 버틸 것이다. 그전에 썩어서 다 버리겠지만 말이다.
가신들이 몇 번이나 말려도 지셀이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니 이 부분은 더 말해 봤자 피곤할 뿐이었다.
지셀은 고개만 몇 번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3천 명의 병력에 맞춰 보급을 준비해라. 곧 출정할 것이다.”
그 말에 클로드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지의 병력은 급조한 기사단을 합해도 500여 명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우리 영주님, 산수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구나!’
* * *
펜리스 영지에서 대규모로 식량을 사들이고 있다는 소식은 해럴드의 귀에도 들어갔다.
“뭐? 지셀 그놈이 계속 식량을 구매하고 있다고?”
“네, 덕분에 북부의 식량값이 많이 오른 상태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오는 상단들의 식량들까지 마구잡이로 구매하고 있습니다.”
부관의 보고에 해럴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하하, 멍청한 놈! 곧 수확이 끝나면 가격이 내려갈 텐데, 그것도 못 기다린다는 건가! 룬스톤과 화장품으로 돈 좀 벌었다고 아무 생각 없이 쓰는구나!”
“아무래도 전에 농업을 개선한다고 영지를 뒤집더니, 오히려 수확량이 줄어든 모양입니다. 거기에 이주민까지 몰려오니 식량이 굉장히 부족한 거 같습니다.”
“당연하지.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예상했던 결과지. 굶기 싫으면 식량을 계속 구매해야 할 거다.”
지셀이 영지를 봉쇄한 덕분에 아직은 펜리스 영지의 식량 생산량에 관한 소문이 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들 지셀의 농업 개선이 실패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수확량 증가는 나조차 성공하지 못한 문제인데 그런 애송이가 성공할 리가 없지.’
해럴드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가뜩이나 거슬리던 놈이 큰 손해를 보았다 생각하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부관에게 물었다.
“우리 식량은 여유분이 얼마나 남아 있지?”
“저번 전쟁 때 보급은 디갈드가 맡았었기에 아직 충분합니다. 이번에 수확까지 하면 꽤 많이 남을 겁니다.”
“좋군. 그러면 우리 영지의 여유분도 이번에 비싸게 팔아 치워라. 그 건방진 놈한테 손해 좀 단단히 끼쳐 줘야겠어.”
“알겠습니다. 우리 걸 먼저 구매하도록 상단들에게 손을 좀 쓰겠습니다.”
부관의 말에 해럴드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데스몬드는 레이폴드와 함께 북부 최고의 식량 생산량을 자랑하는 영지이다.
주 수입원 중의 하나가 식량 판매였으니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하늘이 돕는군. 저번 전쟁 때문에 예산이 빠듯했는데 말이야.”
해럴드가 보기에는 정말 하늘이 도운 기회였다.
페르디움에 패배한 여파가 아직도 남아 있는 상황에서, 다시 전력을 정비하고 아멜리아를 지원하느라 돈을 어마어마하게 쓰고 있었다.
그뿐인가? 북부의 영지들을 손에 넣으려고 뿌리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니 아무리 데스몬드 영지라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공작가와 카발디 백작이 지원해 주지 않았다면 무장을 다시 맞추지도 못했을 것이다.
가장 주력 상품인 식량은 수확기가 다가오니 비싸게 팔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이런 천금 같은 기회가 올 줄이야.
부족한 자금도 채우고 지셀에게 손해도 입힐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역시 그간 성공했던 건 그저 운이 좋아서였군. 애송이 주제에 너무 설치긴 했지. 현실의 벽에 부딪히니 한계를 보이는군. 식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고 있으니 화장품 따위의 사치품이나 만들고 수도에 놀러 갔겠지.”
해럴드는 공작가도 극찬한 화장품을 애써 폄하했다. 그는 그래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식량만 휘어잡으면 모두의 숨통을 압박할 수 있어. 이 북부에서는 식량이 가장 중요하다. 화장품 따위보다 훨씬.”
북부의 식량 상황은 데스몬드와 레이폴드가 좌지우지한다.
다른 지역에서 구해 오면 운송비가 붙어 훨씬 더 비싸지니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식량으로 전부 목을 죄고 싶지만, 경쟁자인 레이폴드가 있어 그 방법은 쓰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멜리아의 반란만 성공하면 북부의 식량은 우리가 완전히 쥘 수 있다.”
약점이 잡힌 북부의 영주들은 싸우지도 않고 무릎을 꿇을 것이다.
그렇기에 공작가와 해럴드도 아멜리아의 반란에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만 아니었다면 지셀 따위, 진작에 어떤 명분이든 만들어서 쓸어 버렸을 것이다.
“후후, 지금은 식량을 팔아 줄 테니 배불리 먹고 있어라. 때가 되면 잡아먹어 줄 테니.”
해럴드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느낌이 아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