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179)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79화(179/269)
179화 드디어 그 시기가 왔군. (2)
아멜리아는 악티움 상단의 상단주, 콘라드의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번에도 펜리스에서 식량을 요청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그 정도로 펜리스와 페르디움의 상황이 안 좋은가?”
“그건 아닐 겁니다. 이미 북부의 영주들이 지원해 준 것도 있고, 친왕파에서도 지원을 받지 않았습니까? 굳이 예측해 보자면 이주민들 때문에 미리 확보하려는 거 같습니다.”
“친왕파가 얼마나 지원해 줬지?”
“갑자기 결정된 일이라 정확한 수량은 알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브랜포드 후작이 나선 거니 올해를 넘기기에는 충분할 겁니다.”
콘라드는 펜리스와 거래를 하면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아멜리아에게 보고했다. 이번 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식량을 팔았을 때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상황을 살필수록 뭔가 이상했다.
친왕파에서 꽤 지원을 많이 받았을 텐데도, 여전히 식량을 미친 듯이 사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부의 식량 가격이 오를 정도로 식량을 사 가는 양이 늘어나니 보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멜리아는 눈을 내리깔고 고민에 잠겼다.
‘이번에는 무슨 생각인 거지?’
곧 수확기가 다가온다. 아무리 척박한 북부라도, 수확기 직후에는 식량 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미 충분한 식량을 보유한 지셀이 그 잠깐도 기다리지 못하고, 가격이 오를 정도로 계속 사들이고 있는 이유가 신경이 쓰였다.
“다른 상단들의 행보는 어때?”
“신이 나서 식량을 팔고 있습니다. 곧 가격이 떨어질 게 분명하니까요. 그전에 한몫 잡아 보겠다는 심산이죠.”
다른 지역의 상단들이 식량을 팔 때 반드시 들르는 지역이 바로 북부다.
운송비를 제하더라도 이곳에서는 다른 곳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예년보다 가격이 더 올랐으니, 상인이라면 누구나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게 뻔했다.
잠시 침묵하던 아멜리아가 다른 걸 물었다.
“요새 날씨는 어떻지? 올해 농사가 어떨 거 같아?”
“작년보다는 조금 더 건조해지기는 했지만,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런 날씨는 자주 있었으니까요.”
“흠…….”
북부에는 흉년이 자주 드는 편이었지만, 레이폴드와 데스몬드는 그런 일이 드물었다.
흉년이 들어도 다른 영지에 내다 팔 여유분이 없는 정도일 뿐, 영지민들은 굶을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콘라드도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대답을 듣고도 한참을 고민하던 아멜리아는 곧 고개를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
“식량 판매는 중지하도록. 펜리스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전부. 일단 따로 쌓아 두도록 해. 아무도 모르게 말이야. 다른 지역의 상단에서 들어오는 것도 여력이 되는 대로 사 두고.”
갑작스러운 명령에 콘라드는 살짝 당황하며 답했다.
“곧 수확을 시작하면 가격이 금방 떨어질 겁니다. 지금 팔아야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것이야 비축해 두면 그만이지만, 다른 상단의 것까지 구매하는 건 손해가 큽니다.”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혹시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언제부터 내 말에 토 달면서 일했지?”
“……죄송합니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잔뜩 굳은 콘라드의 얼굴을 보고 아멜리아는 혀를 찼다. 제법 아끼는 수하이니 이 정도는 설명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확인할 게 있어.”
“무엇을 말입니까?”
“그놈이 지금까지 성공한 게 단순히 운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실력으로 얻은 결과인지 말이야. 손해는 감수할 테니 얘기한 대로 진행해.”
“……알겠습니다.”
콘라드는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아멜리아는 한번 결정을 하면 어지간해서는 뒤집지 않는 사람인 걸 잘 아는 탓이다.
아무리 아끼는 수하라 하더라도, 그녀가 결정한 일에 토를 달며 선을 넘으면 목숨으로 죄를 물은 적도 많았다.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따라야겠지만, 큰 손해를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 콘라드는 속으로 혀를 찼다.
콘라드가 쓰린 속을 부여잡고 물러난 뒤에도 아멜리아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지셀……. 이번에는 무슨 꿍꿍이인지 한번 지켜보도록 하지.’
* * *
3천 명분의 보급품을 준비하라는 말에 클로드가 배를 잡고 웃었다.
“영주님! 우리 병력은 기사를 포함해도 500명밖에 없습니다! 3천이라니요. 으하하하! 웬디야, 집사장이 숫자는 제대로 안 가르쳐줬나 봐! 아악!”
벨린다한테 한 대 얻어맞고 나서야 진정한 클로드는 아픈 눈두덩을 비비며 다시 물었다.
“진짜 3천 명 맞습니까?”
“응.”
“우리 병력은 그만큼이 안 되는데요?”
“전에도 말했잖아. 내가 알아서 구해 오겠다니까.”
“어디서요? 페르디움에는 그만한 병력도 없지만, 있다 해도 북방 경계 때문에 뺄 수가 없을 텐데요.”
“아, 괜찮아. 빌려줄 곳 많아. 곧 여기저기서 빌려준다고 할 거야.”
“끙……. 또 시작이시네.”
특별한 관계이거나, 마땅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야 병력을 빌려주는 영주는 없다. 영지민까지 넘겨주었던 친왕파도 병력만큼은 지원을 안 해 주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영주는 병력을 구할 수 있다고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얘기하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 따지는 것조차 피곤해진 클로드는 확인차 물었다.
“그런데 우리 수성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제 착각이었나요?”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그 열기구 때!”
클로드는 소리 높여 따지다 말을 멈췄다.
생각해 보니 영주가 그런 말을 한 적은 정말 없었다. 혼자서 그냥 설레발치면서 그렇게 믿었을 뿐이다.
“……네, 그냥 제 착각이었네요. 그러면 병력은 언제 빌려 오실 겁니까?”
“곧. 거의 다 됐다. 조금만 더 기다려.”
클로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영지에 돌아왔을 때부터 말하던 그놈의 ‘시기’가 다가온 모양이었다.
도대체 어떤 시기이기에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건지 두 눈 똑바로 뜨고 확인할 생각이었다.
만약에 별게 아니면 정말 온 힘을 다해서 놀려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정말 3천의 병력을 빌려 올 수만 있다면…….’
엉터리라고는 해도, 잠깐이나마 기사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원이 어림잡아 4백 명이다.
거기에 3천의 병력이 추가된다면 승산이 대폭 올라갈 것이다.
‘물론 카발디 백작이 이쪽 머릿수에 겁먹고 농성에 들어가면 그때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클로드는 복잡해지는 생각을 끊어 내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어떤 것도 확실치가 않았다.
“알겠습니다. 일단 3천 명에 맞춰서 출정 준비를 마저 해 놓겠습니다. 식량은 넘쳐나니 큰 문제 없을 겁니다.”
“좋아,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으니 다들 맡은 임무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라.”
가신들은 고개를 숙이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영주의 말투를 듣자니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출정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영주가 이것저것 준비시키고, 병력을 빌려 온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자세한 내용을 들은 적이 없다 보니 그저 모든 게 혼란스럽고 믿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까라면 그냥 까는 거지. 총관 정도나 되니까 영주 앞에서 깐족거리는 거다.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지셀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될 거다.’
지셀이 예상한 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펜리스 영지의 사람들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야? 요새 왜 이렇게 덥지?”
“요 몇 년간 이 정도로 심한 적은 없었는데?”
“이러다 가뭄이 심하게 오는 거 아니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날씨에 민감하다. 날씨는 그 해의 수확량이 얼마나 되는지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공기가 뜨거워지고 건조해지자 영지민들은 덜컥 겁을 먹었다.
언제나 굶고 살다 이제 겨우 배를 채운 이들에게 가뭄은 악몽 같은 기억을 되살리는 최악의 재난이었다.
다들 얼굴에 걱정이 가득해서는 매일같이 경작지를 둘러보기 바빴다.
그러나 그 걱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 괜한 걱정이었네. 그냥 좀 더운 것뿐이었나 봐. 몸이 허해졌나?”
“밀이 아주 그냥 쌩쌩한데? 곧 다시 수확할 수 있겠어.”
영주가 만든 괴물 밀은 날이 덥든 건조하든 상관없이 아주 우람하게 잘 익어 있었다.
솔직히 지금 당장 수확해도 괜찮아 보일 정도였다.
얼마 전에 수로 정비도 다시 한 덕분에 물을 대는 것 또한 별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펜리스 영지와 다르게 다른 영지는 곳곳에서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정보 수집을 담당하고 있는 로웰은 매일같이 대전에 나가 주위 영지의 상황을 보고했다.
“날씨가 심상치 않습니다. 큰 가뭄이 올 징조로 보입니다. 각 지역의 영주들도 다들 걱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초기에는 조금 우려스럽다는 수준으로 보고가 끝났다. 거기다 밀도 잘 자라고 있으니 가신들은 날씨 문제를 크게 체감하지 못했다.
저수지와 저수조에는 아예 강줄기를 끌어와 물을 가득 채워 놓았으니 물 걱정도 없었다.
다들 그냥 날씨가 좀 더운 걸 가지고 로웰이 호들갑을 떠는 줄로만 여겼다.
하지만 로웰의 보고는 날이 갈수록 과격해져 갔다.
“강의 수위가 빠르게 낮아지고 있습니다! 작물들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상단들이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식량이 모자라는 모양입니다.”
“시, 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심각해진 보고 내용에 가신들은 입을 쩍 벌리고 지셀을 바라보았다.
펜리스 영지는 식량을 쌓아 둘 곳이 부족해 창고까지 대규모로 증축했는데, 다른 영지에서는 식량이 모자라서 난리란다.
정말로 흉년이 들었다면 그럴 만도 했다. 이미 북부의 모든 식량은 펜리스 영지에서 웃돈까지 주고 다 빨아들인 상태니까.
다른 상단이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펜리스에서만 지내는 가신들은 로웰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바로 전날만 해도 식량을 너무 많이 쌓아 둬서 ‘다 먹지도 못하고 썩어서 버리게 생겼다’ 하며 영주를 욕했는데, 갑자기 전국에 식량이 모자라게 되었다니?
‘우리는 괜찮은데?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영주가 거짓말하라고 시켰나?’
‘상태가 안 좋은 작물들도 가격이 폭등했단 말이지. 설마 진짜 가뭄이 들었단 말인가?’
반신반의하던 가신들은 며칠 뒤 새로 올라온 보고에 확신하게 되었다.
“각지의 기근석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가뭄이 확실합니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가뭄을 알리기 위해 강에 박아 놓은 기근석이 모습을 드러냈다면, 강물까지 바닥을 보이고 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이 정도의 가뭄은 척박한 북부에서도 수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재난이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북부 외 다른 지역도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
“왕국 전역이…… 이상 기후가 왕국 전역을 덮쳤습니다. 정상적으로 작물을 수확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루타니아뿐만 아니라 우리 왕국에 인접한 타국의 영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악의…… 가뭄입니다.”
이 정도면 단순한 흉년이라 넘길 수가 없었다.
가뭄으로 왕국 전역에 흉년이 드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었다.
가신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펜리스에는 식량도 잔뜩 쌓여 있고 물도 너무 많아서 도무지 체감이 안 됐는데, 다른 영지는 전부 가뭄 때문에 난리가 났다고 한다.
영주가 악바리처럼 사람들을 굴렸던 게 꼭 이 사태를 예견하고 그랬던 것 같았다.
클로드는 당혹감과 불안감으로 손을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
“여, 영주님, 이게 무슨 일이죠? 어떻게 된 겁니까? 설마 진짜 가뭄이 들 거라고 예상하신 겁니까?”
모두가 클로드의 말에 동감하며 지셀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영주가 한 일은 어디서 주워들은 게 있었다거나, 운이 좋았다는 정도로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날씨를 예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미래를 예견하는 건 전설에나 나오는 예언자에게나 가능한 일이었기에.
모두가 놀라는 와중에도 지셀은 턱을 괴고 눈을 감은 채 웃기만 했다.
뭐라 말해야 할까? 내가 사실은 미래를 안다고?
실제로 그리 말할 수는 없겠지만, 상상만 해도 재미있었다.
지셀이 웃기만 하자 클로드가 대답을 재촉했다.
“아니, 웃고만 있지 마시고요! 가뭄이 들 걸 도대체 어떻게 안 겁니까?”
한참 뜸을 들이던 지셀은 툭 하니 던지듯 답했다.
“날이 더워서.”
“네?”
“날씨가 너무 더우면 가뭄이 오잖아. 얼마 전부터 계속 더웠고. 아니야?”
“아니, 그냥 날씨가 덥다고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준비를 시킨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아, 더운데 어쩌라고. 난 더운 거 싫다고.”
“…….”
지셀의 억지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날씨가 좀 덥다고 혼자 호들갑을 떨며 준비한 게 우연히 맞아떨어졌다는 뜻이지?’
걱정을 심각하게 달고 사는 사람이나 가능할 법한 발상이다.
이것도 믿기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미래를 예견했다는 것보다는 그나마 신빙성이 있었다.
만약 그 예상이 틀렸다면 펜리스 영지는 썩은 식량을 잔뜩 떠안고 큰 손해를 볼 뻔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욕이 나오지만 말이다.
잠시 사람들의 침묵을 즐기던 지셀이 로웰에게 물었다.
“페르디움의 상태는 어떻지?”
“어, 음……. 다른 곳과는 좀 다릅니다.”
“자세히 말해 봐.”
로웰은 보고서를 뒤적거리더니 짜게 식은 표정으로 답했다.
“페르디움의 총관 호메른 남작은 영지 상황을 보고받더니…….”
“받더니?”
“흠흠. ‘아, 올해도 농사 망쳤네. 그런데 어차피 우리는 매년 농사 망쳤잖아? 지금은 식량 많으니까 괜찮아. 떨어지면 대공자한테 또 달라고 하지 뭐.’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 그쪽 저수 상황은 어떻지?”
“저수량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마수의 숲에서 흘러나오는 강줄기와 저희가 만들어 준 저수조 덕분에 그럭저럭 버틸 만한 모양입니다. 다른 영지보다는 상태가 낫습니다.”
“좋아, 큰 문제는 없을 거 같군.”
페르디움은 원래도 없이 살던 곳이라 이번 가뭄도 ‘항상 이랬는데’ 하는 정도로 넘길 수 있었다.
가뭄이 길어지면 물이 부족해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솔직히 저수조나 수로를 더 많이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페르디움은 아버지의 영지니 참견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페르디움이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는 걸 확인하고 안심한 지셀은 다른 걸 물었다.
“다른 영지들의 상황은?”
“최악입니다. 레이폴드와 데스몬드는 평년 대비 절반도 수확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그나마 그쪽은 비축해 둔 게 꽤 있을 테니 버티겠지만…… 다른 곳에서는 아사자가 속출할 거라 예상됩니다.”
“흠, 그건 안타까운 소식이로군.”
“다들 식량을 구하려고 난리입니다. 지금 팔면 열 배 이상의 가격을 받을 겁니다.”
로웰의 말에 가신들은 모두 눈을 빛냈다.
원래부터 식량 생산성이 좋지 않은 북부다. 이 가뭄을 버텨 낼 리가 없었다.
반면 펜리스에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많은 식량이 쌓여 있다. 게다가 곧 괴물 밀을 심어 둔 밭에서 또 엄청난 양의 식량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 기회를 잘만 이용한다면 어쩌면 왕국에서 제일을 다투는 부자 영지가 될지도 모른다.
가신들의 희망 어린 눈빛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팔 생각이 없다.”
클로드는 문득 지셀이 매번 읊었던 ‘시기’라는 말을 떠올렸다.
“영주님 혹시…… 전쟁을 하기 좋은 시기라는 게…….”
작물이 말라비틀어지고 있으니, 카발디 영지에서도 병사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할 것이다.
굶주린 병사들은 사기가 떨어져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게 뻔했다.
지셀은 씨익 웃으며 답했다.
“그래, 드디어 그 시기가 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