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195)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95화(195/269)
195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3)
지셀은 아멜리아 덕분에 지금까지 공작가와 해럴드의 압박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해럴드가 지셀을 본격적으로 노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그 결정에 해럴드의 가신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해럴드는 공작가가 그를 믿고 북부의 총괄을 맡길 정도로 뛰어난 자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공작가의 명령을 스스로 거부한 것이다.
가신 중 한 명이 식은땀을 흘리며 되물었다.
“펜리스와 페르디움의 멸망을 최우선으로 하란 말씀입니까?”
“그래, 현재 아멜리아의 반란을 준비하는 데 쓰이는 자금과 병력, 자원들은 모두 펜리스 남작을 공격하는 쪽으로 돌린다. 아멜리아도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하니, 꼭 필요한 것만 검토해서 지원해 주도록 해라.”
가신들은 그의 결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요즘 들어 펜리스 남작이 잘나가고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멜리아 쪽 계획과는 중요성을 비교할 수가 없었다.
“만약 아멜리아가 반란에 실패하면 큰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현재 그쪽에는 북부제일검이라 불리는 위르겐 단장을 상대할 자가 없고, 병력도 반란에 성공하기에는 현저하게 부족한 상태입니다. 정말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꼬인 매듭부터 풀고 간다. 그놈을 내버려 둔다면 북부의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다. 레이폴드 백작도 가뭄 때문에 군대를 일으키기 힘든 상황이니 그놈부터 처리하는 게 낫다.”
“펜리스 남작은 레이폴드 백작에 비하면 아직 약소한 자입니다. 차라리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어서 빨리 아멜리아의 반란부터 마무리를 지으…….”
“그만.”
해럴드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가신은 바로 입을 닫았다. 한 마디만 더 꺼냈다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목이 날아갈 게 분명했다.
해럴드는 다시 가신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놈부터 짓밟겠다. 모두 그리 알고 준비해라.”
이제 예전과는 다르다. 해럴드는 지셀을 나중에 처리해도 되는 운 좋은 애송이가 아니라, 당장 처리해야 하는 확실한 ‘적’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그 인식에 맞춰 지금의 판세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철광석을 그놈이 차지하게 둘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전력 수급에 큰 차질을 빚을 것이다. 당장 카발디 백작에게 보낼 식량과 지원군을 준비해라.”
“지, 지금 말입니까? 분명 공작가가 친왕파와 협상을 하고 있을 겁니다. 섣불리 움직이시는 것보다 협상 결과를 보시고…….”
“늦어. 지금 당장 준비해라.”
“아, 알겠습니다.”
살기까지 느껴지는 해럴드의 눈빛에 부관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포우드 백작이 예측한 것처럼 해럴드는 빠른 판단을 내렸다.
그건 이제 지셀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여유 있게 준비할 수는 없었다. 당장 잠깐이라도 버틸 수 있게 일단의 병력과 식량을 준비하는 게 전부였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영주님.”
지휘를 맡은 에머슨이 해럴드의 앞에서 경례를 올렸다.
그는 기병 중대의 지휘관으로서 기동전에 일가견이 있다고 알려진 명성 높은 인물이다.
만약 빅토르가 없었다면 페르디움 공방전의 사령관 자리는 에머슨이 차지했을 것이다.
이런 자를 아끼지 않고 보낼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
해럴드는 비장한 얼굴로 에머슨에게 말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최대한 빠르게 식량을 카발디 성에 전달해라. 버티기만 하면 곧 2차 지원군을 보내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기필코 성공하겠습니다.”
“믿겠다.”
에머슨은 1천 명의 군대와 식량을 이끌고 빠르게 달렸다.
펜리스군에 비하면 열세긴 하지만, 카발디군이 제때 성안에서 호응만 해 준다면 합류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해럴드는 일단 합류하고 나면 양쪽의 머릿수가 비등해지니 적들도 섣불리 전면전을 벌이려 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쉬지 말고 달려라! 카발디군이 무너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에머슨은 작전이 성공할 것을 의심치 않았다.
공성전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특히나 포위한 채로 시간을 끈다면 더 그렇다.
데스몬드 백작령과 카발디 백작령은 그리 멀지 않은 데다 해럴드의 결정이 빨랐던 점도 있는 만큼, 카발디군이 굶어 죽거나 항복하기 전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기대는 영지 밖으로 나서자마자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이, 이게 무슨…….”
카발디 백작령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목에 최소 5천 명은 되어 보이는 대군이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브랜포드 후작이 보낸, 루타니아 왕국군 제2군단의 병력이었다.
당황하는 에머슨의 앞으로 누군가가 말을 타고 다가왔다.
“이게 누구신가? 북부에서 명성 높은 에머슨 경이 아니신가?”
싱글벙글 웃고 있는 자는 2군단의 사령관인 도렌 자작이었다.
그는 브랜포드 후작의 명령으로 데스몬드 인근에서 주변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최악의 경우 데스몬드 백작을 치기 위해서 말이다.
잠시 당황한 에머슨은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2군단장님을 뵙습니다. 한데 카르데니아 북쪽을 지켜야 할 2군단이 왜 저희 영지 인근까지 와 있는 겁니까? 이건 관례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러는 경은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시는 것이오?”
“저희는…… 기동 훈련 중이었습니다.”
“이것 참 공교롭구려! 우리도 여기서 훈련 중이었는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희는 들은 얘기가 없습니다!”
에머슨은 노골적으로 인상을 썼다.
아무리 왕국군이라 해도 다른 영주의 근거지에 함부로 군대를 이동시킬 수는 없다.
그건 싸우자고 대놓고 위협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흐음, 경께서 조금 오해가 있는 모양이외다.”
도렌 자작이 정중하게 말했다.
왕국의 군단장이라도, 데스몬드 백작령의 기사이자 지휘관인 에머슨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데스몬드 백작은 강대한 위세를 자랑하는 귀족이다.
대신 그는 여유로운 웃음과 함께 품에서 서류 하나를 꺼냈다.
“왕실의 재가를 받은 정식 훈련이오. 아직 데스몬드 백작께 전달이 안 된 모양이구려. 왕국군의 정식 훈련에는 협조하기로 합의가 되어 있지 않소이까?”
“이, 이익…….”
에머슨은 이를 갈았다.
이건 친왕파의 수작질이 분명하다. 카발디 백작을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게 하려고 이런 꼼수를 쓴 것이다.
“그러면 일단 길을 비켜 주십시오. 저희도 마저 훈련을 마쳐야겠습니다.”
“어허, 그건 좀 곤란하외다. 이미 이 인근은 우리가 통제하고 있소이다. 괜한 충돌이라도 일어나면 서로 불편할 테니 며칠만 양보하시오.”
“군단장님!”
“나도 명령받고 하는 건데 사정 좀 봐주시오. 훈련 하나 제대로 못 하면 나 옷 벗어야 한다니까? 이제 자식 놈이 아카데미에 들어가는데 학비가 얼마나 비싼지……. 어휴, 요새 돈 때문에 자식 키우기가 참 힘들어. 쯧쯧쯧.”
능글능글한 도렌 자작의 대답에 에머슨은 가쁜 숨만 내쉬었다.
당장 친왕파와 싸울 게 아니라면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데스몬드 백작에게 전령을 보냈다.
하루가 꼬박 지난 뒤에야 급하게 전령이 달려와 도렌 자작에게 서신 하나를 내밀었다.
분노의 협박이 가득한 서신을 본 도렌 자작은 곤란한 표정으로 턱을 긁적였다.
“허어, 데스몬드 백작께서 화가 많이 난 모양이구려. 이거 우리도 계속할 수가 없겠는데?”
도렌 자작 혼자서는 북부의 대영주인 데스몬드 백작을 감당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나도 왕실의 재가를 받아야 하니까 연락을 좀 보내겠소.”
“군단장님! 당장 길을 비켜 주십시오!”
“허어, 나도 그러고 싶은데 이게 다 절차가 있어요, 절차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까? 나 옷 벗으면 경이 책임질 거요? 경이 우리 딸 아카데미 학비를 대신 내줄 것도 아니지 않소?”
웃기는 소리다. 군단장이 왜 군단장이겠는가. 지휘관의 판단으로 훈련을 멈출 수 있고, 당연히 길을 비켜 주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에머슨이 계속 항의했지만 도렌 자작은 한결같았다.
“나도 빨리 돌아가고 싶소이다. 참 우리 행정관들은 일 처리가 늦어. 이거 빨리 조직 개혁해야 한다니까? 아무튼 아직도 답변이 안 왔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오.”
이딴 실랑이로 무려 닷새의 시간을 보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이미 카발디 백작령에 충분히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분노에 찬 에머슨은 강제로 뚫고 가기로 결심했다.
후에 큰 사달이 나겠지만 그에게는 해럴드의 명을 수행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마지막 통보를 위해 도렌 자작을 다시 만났을 때, 한 병사가 급하게 달려와 외쳤다.
“펜리스 남작이 카발디 성을 점령했습니다!”
‘끝났구나.’
눈을 감은 에머슨에게 도렌 자작의 능글맞은 혼잣말이 들려왔다.
“아휴, 이거 자꾸 뭐라고 하니 불편해서 훈련도 못 하겠네. 그냥 돌아가야겠다.”
‘죽이고 싶다.’
에머슨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 *
지셀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은 수도에도 빠르게 전달되었다.
연일 모여서 답도 안 나오는 대책을 논의하던 친왕파의 귀족들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놀라서 입을 닫았다.
특히 왕국군의 총사령관인 모리스 맥쿼리 후작은 큰 충격을 받았다.
“벌써…… 이겼다고? 그 오리 같은 애송이가? 흑마법이라도 쓴 거야?”
카발디 백작이 누구인가? 병사들의 무장 하나만큼은 북부 최고라 불리는 강자 중의 한 명이었다.
아무리 식량이 부족해 전력이 줄었다지만 이렇게 빨리 점령에 성공하다니!
포위로 굶겨서 이겼다 하기엔 소식이 너무 빨랐다.
“어, 어떻게 벌써 이겼다는 것이냐? 카발디 백작이 이렇게 빨리 항복을 했다고?”
모리스가 보고를 올리는 기사에게 물었다. 하지만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자세한 정황은 더 파악해 봐야겠지만, 카발디 백작이 항복한 게 아니라 싸워서 성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이미 빠르게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허어…….”
모리스의 탄식과 함께 주변에 있던 귀족들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펜리스 남작이 그렇게 군사적 역량이 뛰어났단 말입니까? 공성전을 이렇게 빨리 끝내다니요! 그것도 카발디 백작을 상대로 말입니다!”
“이번에도 운이 좋았던 것 아니겠습니까? 카발디군은 굶주려서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을 겁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페르디움 공방전에서도 펜리스 남작이 크게 활약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대로 붙었으면 펜리스 남작이 이겼을 리가 없어요.”
귀족들의 의견은 삽시간에 반으로 갈렸다. 지셀이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으니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한 가지 사실에는 동의했다.
“어쨌든 잘된 일입니다! 당장은 공작가가 개입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습니까?”
“맞습니다! 이렇게 되면 북부에서 우리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허허허, 펜리스 남작이 아주 큰 일을 했어요. 다른 영주들이 알게 되면 친왕파도 공작가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겁니다.”
귀족들은 공작가와 싸움을 피하려고 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좋아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공작가가 개입해서 일이 커지진 않을지, 왕실과 자신들의 재산을 투자한 펜리스 남작이 크게 패하고 북부에서의 영향력을 잃진 않을지 걱정이 컸다.
하지만 결과가 좋은 방향으로 나온 덕분에, 친왕파 귀족들도 조금은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게 아니었을까요? 공작파 귀족들의 위세가 높다 하지만 역시 패는 까 봐야 아는 거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카발디 백작도 북부의 강자라는 소문만 요란했지, 사실 별거 아니었던 거지요.”
“하긴, 펜리스 남작이 이길 정도면 우리도 한번 해볼 만했을 거 같습니다. 북부가 그리 잘나가는 곳은 아니지 않습니까? 허허허.”
친왕파의 귀족들은 화기애애한 웃음을 지으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펜리스 남작의 승리를 보니 자신들도 공작가와 싸워 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브랜포드 후작은 그들을 보며 한심하다는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쯧쯧, 벌써 저리 호들갑들이라니. 지금 그렇게 좋아할 때가 아니거늘. 저리 쉽게 웃음이 나온단 말인가?’
데스몬드 백작이 군을 움직였다는 보고도 같이 들어왔다. 만약 미리 왕국군을 움직여 저지하지 않았다면 일이 엄청나게 커졌을 것이다.
브랜포드 후작의 선견지명 덕분에 당장 전쟁이 커지는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데스몬드 백작은 공작가와 같은 편이 확실하군. 그동안 참 뻔뻔하게도 굴었어.’
그간 확실한 증거가 없어 의심만 해 왔지만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큰 소득이다. 누가 적인지 확실히 아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전략에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데스몬드 백작을 보면 알 수 있듯, 공작가의 손은 왕국 전역에 뻗쳐 있었다. 이제는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아마 친왕파 내부에도 배신자가 있을지 몰랐다.
‘델파인 공작……. 데스몬드 백작까지 품었다면, 정말 끝까지 갈 생각이구려.’
브랜포드 후작은 그의 오랜 친우이자 정적인 델파인 공작을 떠올렸다.
공작가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공작가의 참모인 라울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델파인 공작은 카발디 백작에게는 아예 관심조차 없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긴 하군.’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것도 10년이 넘었다.
그 후로 공작은 자신의 영지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오직 공작저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할 뿐이었다.
그런 상태가 오래가니 공작은 허수아비고 모든 권한은 라울이 멋대로 휘두른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하지만 브랜포드 후작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델파인 공작은 누군가에게 휘둘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젊었을 적부터 오랜 시간 그를 보아 온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칩거하고 있는지, 10년을 넘게 친우로 지냈고, 다시 10년을 넘게 대립한 브랜포드 후작도 짐작하지 못했다.
다만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무심하면서도 무언가를 원하는 그 모순적인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브랜포드 후작은 머릿속에서 애써 잡념을 털어 내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
언젠가 공작가가 칼을 뽑을 것은 분명했다. 지금까지는 그걸 겨우겨우 견제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 와중에 지셀의 활약은 친왕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주었다. 소심했던 친왕파 귀족들에게 약간의 자신감까지 붙어 버렸다.
주제도 모르는 자만은 경계해야겠지만, 결국 싸워야 한다면 겁을 먹는 것보다는 자신감을 보이는 게 훨씬 나았다.
‘그놈 덕분에 우리의 분위기도 조금씩 변하긴 하는구나. 그리 나쁜 거 같지는 않아.’
그 생각까지 이르자 후작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지셀의 후견인이 된 뒤, 그는 그간 살면서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을 여러 번 느끼게 되었다.
‘그나저나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는 여전하군. 그런 방법으로 병력을 모은 것도 놀랍지만, 공성에 이렇게 빨리 성공하다니. 앞으로 필요한 걸 요구하면 더 지원해 줘야겠어.’
브랜포드 후작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창 저들끼리 떠들던 친왕파의 귀족들은 그 모습을 보고 놀라 입을 다물고 말았다.
딸이 치료됐을 때도 전혀 웃지 않았던 브랜포드 후작이었다. 그렇게 얼음장 같던 사람이 펜리스 남작의 소식을 듣고 웃고 있다니?
모든 귀족이 신기하다는 듯,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