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196)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96화(196/269)
196화 아주 좋은 선물을 보내 줬어. (1)
“와아아아! 펜리스 남작이 이겼다!”
속칭 ‘투자 피해자들의 모임’의 귀족들은 연회장에서 지셀의 승리 소식을 듣고 다 같이 환호를 내질렀다.
그들은 지셀이 어떻게 이겼는지, 운인지 실력인지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그냥 지셀이 이기고 안 망했다는 게 중요했다.
“대단합니다! 화장품은 건재해요!”
“돈을 더 넣어도 되겠어요!”
“그럽시다! 브랜포드 후작가가 보증하는데 뭐가 무섭겠습니까!”
사람 심리가 그렇다. 꼼짝없이 망했다고 생각하던 중에 예상외의 결과가 나오니 더 믿음이 생겨 버렸다.
연회장의 귀족들은 모두 로잘린에게 몰려와 추가로 투자를 하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로잘린은 당연한 결과라는 듯,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펜리스 남작의 뒤에는 브랜포드 후작가가 있으니까요. 전혀 문제없을 거라고 항상 말했잖아요?”
귀족들도 이제는 여유로운 미소로 답했다.
“그럼요, 믿고 있었지요.”
“변방의 작은 전쟁에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가 호재가 올 거라고 했잖아요. 호호호.”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로잘린은 티 나지 않게 식은땀을 흘렸다.
‘시발……. 살았다, 살았어. 진짜 뒤질 뻔했네.’
병이 나은 뒤로는 성질을 좀 죽이고 살아왔지만,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더니 절로 욕이 나왔다.
귀족들의 성화에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머리카락도 매일 뭉텅이로 빠지곤 했다. 욕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하마터면 또 밖에 못 나가고 집에 갇힐 뻔했어. 그런데 공성전을 이렇게 빨리 이기다니……. 진짜 알 수가 없는 사람이네.’
어떻게 이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행스러운 결과였다.
거기다 카발디 백작을 이김으로써 어느 정도 군사력도 보유하고 있다는 게 증명됐다.
아무리 굶고 있었어도 카발디 백작은 만만치 않은 귀족이었으니까.
‘휴, 그래도 공작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그 전에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카발디 백작은 공작파의 일원이라는 게 드러나 있는 자였다. 명목상 서로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지만, 뒤로는 분명 칼을 갈고 있을 터였다.
화장품 사업이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펜리스를 지켜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까지 끌려다닐 줄은 몰랐네. 조만간 펜리스에 찾아가서 화장품 제조 기술에 대해서 좀 물어봐야겠어.’
혹시 모르니 펜리스가 망해도 화장품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안 그러면 앞으로 또 사고가 났을 때 수습을 하지 못할 수도 있을 테니까. 이런 살 떨리는 경험은 정말 한 번으로 족하다.
로잘린이 속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메리엘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다가와 말했다.
“정말 다행이야! 오히려 잘됐지 뭐야? 투자를 더 하겠다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어.”
“하아, 네……. 다행이긴 하죠. 다들 이렇게 빨리 이길 줄은 몰랐으니까요.”
“그러니까 말이야. 동생이 자기 싸움 좀 한다고 매일 잘난 척했는데 그게 진짜일 줄은 몰랐지 뭐야?”
“뭐…… 항상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이니까요.”
치료받던 때를 돌이켜보면 확실히 그랬다. 무조건 다 자기 말이 맞고 무조건 다 자기가 옳다.
세상 살면서 그렇게 막무가내인 놈은 처음 봤는데, 나중에 보면 결국 그의 말이 맞는다는 점이 더 어이가 없었다.
진심이 가득 담긴 로잘린의 말에 메리엘은 더 크게 웃다가 문득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굳이 비싼 돈 주고 사람을 사서 보낼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렇지?”
“그러게요. 그 사람들은 잔뜩 돈만 받고 아무런 일도 안 하겠네요. 지금쯤 좋다고 돌아오고 있겠죠.”
로잘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펜리스 남작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서 사제와 해결사들까지 보냈다. 그런데 이제는 필요가 없는 일이 됐다.
그렇다고 환불해 달라고 할 수도 없다. 괜히 그랬다가는 이쪽 체면만 깎이고 안 좋은 소문이 돌 것이다.
‘하아, 하여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이라 불안하다니까. 쓸데없이 돈만 날렸네.’
그녀가 이렇게 의미 없이 돈을 날리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었다.
로잘린은 쓰린 속을 달래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수도에 승리 소식이 전해지기 전.
카발디 백작의 목을 날려 버린 지셀은 몸을 돌려 기사와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침묵이 내려앉은 전장을 보며 지셀은 피식 웃었다. 이제는 승리의 기쁨을 누릴 시간이다.
별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지셀은 그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린 뒤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모습을 본 기사들이 가장 먼저 지셀의 곁으로 달려와 환호했다.
“이겼다! 우리가 승리했다!”
“카발디 백작을 죽였다!”
“와아아아아!”
살아남은 병사들도 마음껏 기쁨을 내보였다. 고요했던 전장은 순식간에 펜리스군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지셀은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좋아, 한 번 겪어야 할 경험으로는 아주 적당했어.’
이번 전쟁에서의 승리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단지 철광석 때문만이 아니다.
기사들은 목숨을 걸고 지옥 같은 훈련을 겪었다. 하지만 그런 반쪽짜리 힘이 전장에서 통할지는 경험해 보지 못했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했어도 두려움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두려움을 자신감으로 바꾸는 건 바로 자신에 대한 확신이지.’
북부의 강자라 불리는 카발디 백작을 압도적인 힘으로 제압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얻은 자신감은 기사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느새 가면을 벗고 다가온 벨린다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다행이에요. 우리 쪽 피해도 거의 없어요. 병사들 사기 올라간 거 보이세요? 금방 영지에 적응할 거 같아요.”
“그래, 병사들한테도 아주 중요한 전쟁이었으니까.”
갑자기 펜리스 영지로 넘어와, 오자마자 참전하게 된 병사들의 두려움은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전쟁을 통해 그들은 자부심을 품고 영지에 더욱더 충성을 바칠 것이다.
벨린다는 연신 지셀을 칭찬하기 바빴다.
“우리 도련님은 정말 못 하는 게 없으시다니까. 앞으로 우리 도련님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그냥 바로 아몬드 백작인가 뭔가 하는 놈 잡으러 갈까요? 호호홋.”
전쟁에 적극적으로 반대할 때는 언제고, 이기니까 태도가 싹 바뀐다. 깔깔거리며 호들갑을 떠는 그녀의 모습에 지셀이 픽 웃었다.
‘과묵하게 적 모가지 따고 다닐 때랑은 너무 다르다니까.’
보면 볼수록 신기하긴 하다. 지셀은 이 기회에 은근하게 물었다.
“처음 보는 기술을 쓰던데 그런 건 어디서 익힌 거야? 우리 어머니 가문에서 익힌 건가? 엄마도 그런 거 쓸 줄 알았어?”
그러자 벨린다가 새침하게 지셀을 흘겨보며 답했다.
“어머, 여자의 과거는 묻는 게 아니라고 제가 몇 번이나 가르치지 않았던가요? 다른 데서 그러면 쪼잔하다고 욕먹으니까 잊지 마세요. 아셨죠? 저는 이만 정리 좀 하러 가 볼게요.”
벨린다가 능청스러운 대답을 남기고 슥 사라지자, 지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길리언도 다가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뒷일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휴식을 취하시지요.”
짧지만 진심이 담긴 한마디였다. 여전히 한결같은 남자다.
“그래, 길리언도 수고했어. 적당히 전장을 정리한 뒤에 영주성으로 이동하자.”
엄청난 파괴력을 보이는 길리언 덕분에 작전이 더 수월해졌다. 이 남자를 얻은 건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카오르도 건들거리며 다가와 잘난 척하기 바빴다.
“영주님아, 내 실력 잘 봤죠? 내가 제일 성벽에 빨리 오른 거 봤음? 크, 내가 이렇게 강하다니까.”
지셀은 혀를 차면서도 맞장구를 쳐 주었다. 좀 하자가 있긴 하지만 전쟁 때는 쓸모 있는 놈이긴 하니까.
“너 오늘은 싸움 좀 하더라? 수련 열심히 했나 봐?”
“저 원래 싸움 잘 잘합니다!”
퉁명스럽게 자기 어필을 한 카오르가 곧 다시 낄낄대며 말했다.
“그나저나 우리 대장 영주님은 참 운도 좋아. 어떻게 식량을 잔뜩 사니까 가뭄이 딱 온대? 하여간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라니까.”
지셀을 꽤 보아 온 카오르도 이번만큼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운이 아니라면 도무지 설명이 안 됐기 때문이다.
점성술을 익혀 별을 보고 맞췄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지만, 카오르는 절대 믿지 않았다.
‘그런 거 공부할 사람이 절대 아니야. 머리 아프다고 첫 장에서 덮을 게 분명해.’
과연 사냥개다운 후각이었다. 지셀은 카오르의 시건방진 눈빛을 보고 픽 웃었다.
‘뭔 생각하는지 뻔히 보인다.’
뭐라 한마디 하려는 찰나, 다른 기사들이 달려와 자기 자랑을 시작했다.
“내 칼질 한 번에 열 놈 목이 날아간 거 봤수?”
“고작 그거야? 너 오늘 힘도 안 뺐으니 불침번 좀 서야겠다. 난 한 번에 100명 죽였는데.”
“하, 너희들 정말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난 혼자 500명 죽였어. 다친 건 손가락 하나뿐이지.”
다들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허세를 부려 댔다. 대부분이 용병 출신답게 허풍들이 장난 아니었다.
지셀이 그런 분위기를 즐기며 기사들을 치하하고 있을 때, 사라졌던 벨린다가 다시 나타났다.
“도련님, 누가 찾아왔어요.”
“누구? 카발디의 가신들인가?”
“아니요, 수도에서 왔다는데요?”
“수도에서?”
이제 막 전쟁을 끝내고 포로 확보와 무기 수거 등의 전장 정리를 하는 중이다.
벌써 승전 소식을 듣고 누가 찾아오기엔 이른 시기였다.
지셀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다가왔다.
탄탄한 체구와 많은 흉터가 눈에 띄는, 용병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였다.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저는 맥스라고 합니다. 해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 총 10명의 해결사와 사제 한 분이 같이 왔습니다.”
그의 뒤에 따라와 있던 한 무리의 사내들이 지셀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해결사? 그냥 용병이라고 하지 뭘 또 거창하게 포장하고 그래.”
맥스는 대답하기 난처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지셀이 쯧쯧 혀를 차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
“에일즈버 백작 부인과 브랜포드 후작 영애께서 보내셨습니다. 상황을 보고 영주님께서 위험에 빠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구출하라고 하시더군요. ”
이거 참 고마운 일이다. 화장품 사업 때문에 그런 거겠지만, 어쨌든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큰돈까지 써서 사람을 보내지 않았는가.
“흐음, 그런데 너무 늦게 온 거 아니야? 이미 우리가 이겼는데.”
그러자 맥스가 조금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희도 위험도를 고려해서 최대한 길을 재촉했는데 이렇게 빠르게 전쟁이 끝날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래, 뭐……. 살다 보면 조금 늦을 수도 있지.”
“그래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저희는 그럼 다시 돌아가서 이 기쁜 소식을 의뢰인 분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맥스가 기쁘게 웃으며 다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말 위험한 일이었는데 별문제 없이 끝나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건 지셀을 모르고 하는 생각이었다.
“어디 가?”
“네? 이제 상황이 종료됐으니 다시 돌아가서 의뢰인 분들께 보고를…….”
“무슨 소리야. 누구 마음대로 종료야? 돈을 받았으면 돈값은 하고 가야지.”
맥스가 당황해서 지셀에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말 그대로야. 용병이면 용병답게, 의뢰비만큼 돈값을 하라는 뜻이지.”
“저희는 용병이 아니라 해결사…….”
“쓰읍, 그게 그거잖아?”
“크흠흠, 저희의 임무는 남작님이 위험할 때 무사히 구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승리하셨고 무사하신 것도 확인했으니 저희 임무는 끝난 거죠.”
“나 위험했었는데 왜 구출 안 해 줬어?”
“어, 아니, 그게, 그…….”
맥스를 비롯한 해결사들은 당황했다. 도착했더니 이미 전쟁이 끝나 있었는데 구출이고 뭐고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그런 사정은 지셀이 알 바 아니었다. 돈값을 했냐 안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아, 얘네 사기꾼인가 보네.”
지셀이 손짓하자 주변에 있던 기사들과 병사들이 바로 해결사들을 포위했다.
“돈값 하기 싫으면 일단 나한테 환불해 주고 위약금도 물고 가. 안 그러면 재미없을 거야.”
맥스와 해결사들은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사기꾼으로 몰리고 포위까지 당했다. 기분 좋게 돌아가려고 했는데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뭐, 뭐야? 이거 미친놈인가? 무슨 귀족이 이렇게 막무가내야? 이런 건 뒤에서 조용히 잘 이야기해도 되잖아? 그리고 위약금하고 환불 비용을 왜 지가 받겠다는 거야?’
당황하는 맥스를 보며 지셀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돈을 받았는데 아무 일도 안 하고 돌아간다? 그런 건 이 동네에 있을 수가 없어. 그리고 나는 사기꾼한테 무척 단호한 사람이야.”
돈을 받았으면 제대로 돈값을 한다. 그건 용병왕의 철칙이자 신념이기도 했다.
그는 제 발로 찾아온 좋은 노동력들을 그냥 돌려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