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199)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99화(199/269)
199화 오래오래 데리고 있어야지. (2)
북부 최대의 철광석 산지답게 카발디 백작령에는 다른 영지에서보다 제련소와 대장간이 많았다.
하지만 지셀에게는 그 정도도 성에 차지 않았다. 더 많은 제련소와 대장간이 필요했다.
지셀은 카발디 지역의 지도를 펼쳐 놓고 곳곳을 찍으며 말했다.
“이 위치에 제련소와 대장간을 빠짐없이 짓는다. 대규모 공업 단지를 여러 곳에 세우는 셈이지.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겨도 영지 전체의 생산성에는 차질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해.”
지셀의 말에 가신들은 깜짝 놀랐다. 그가 정한 곳이 많아도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수만 보면 무슨 북부 전체의 생산량을 그들 영지만으로 다 책임지려는 것만 같았다.
가신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너무 많지 않겠습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래야 내가 원하는 만큼 물량을 뽑아낼 수 있으니까.”
지셀의 대답에 클로드도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발디 백작은 영지의 병력에만 맞춰서 생산했으니까요. 멍청한 짓이었죠.”
카발디 백작은 딱 자신들이 소모할 수 있는 양만큼만 장비를 만들었다. 그 외에는 철광석 상태 그대로 가져다 팔았다.
그로 인해 엄청난 부를 쌓았지만, 그 이상은 발전할 수가 없었다.
오직 영지의 무장에만 신경을 썼기에 영지민들 대부분은 아직도 나무로 만든 도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지셀은 그걸 전부 뜯어고칠 생각이었다.
“앞으로 이곳은 철제 장비와 도구들의 주 생산지로 삼을 것이다. 철광석이야 이제 넘쳐나니까 우리 영지와 페르디움의 영지민들이 전부 무장을 할 수 있게 생산력을 끌어올릴 거야.”
가신들은 깜짝 놀랐다. 병사도 아니고, 영지민들이 전부 철제 무장을 할 수 있는 영지는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한 곳도 없었다.
“정말 그 정도로 뽑아내실 생각입니까?”
“그래. 그뿐만이 아니야. 철제로 바꿀 수 있는 도구들도 다 바꿔서 조금이라도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자고. 영지민들이 잘 사는 영지가 강력해지는 법이다.”
가신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판매하는 양이 많이 줄어들겠지만, 영주의 목표가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개인의 부를 쌓기보다는 영지를 발전시키고 생산력을 끌어올려야 앞으로의 전쟁에 대비할 수 있었다.
한 가신이 다른 걸 물었다.
“그러면 펜리스 지역은 어떻게 할까요?”
“거기는 꼭 필요한 만큼만 짓는다. 나머지 땅은 경작지로 채워 버려. 다른 시설들도 안 짓는 건 아니지만, 지역마다 특화된 생산품을 만드는 게 우선 목표다. 그 뒤에는 유기적으로 각 지역을 연결해서 발전하는 거지.”
사람들은 지셀의 생각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 뺏기지만 않는다면 지역 특산품에 한해서는 훨씬 더 높은 생산력과 속도를 갖출 수 있었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지?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도록 바로 움직이자고.”
“알겠습니다!”
가신들은 의욕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펜리스에서는 뭔가를 해 보고 싶어도 그러기 힘들었다. 식량을 제외하고는 모든 자원이 극도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광석을 넘치도록 얻게 되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곧 관리들은 영지 곳곳에서 인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제련소와 대장간 건설 작업에 참여하면 보수로 식량을 주겠다!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지원해라!”
식량을 준다기에 제법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대규모 시설들을 빠르게 건설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며칠을 모집해도 생각한 만큼 일손이 모이지 않자, 지셀은 인상을 찌푸리며 클로드에게 물었다.
“뭐야? 형편 안 좋아져서 놀고 있는 사람 많잖아? 왜 이렇게 모집이 늦어? 나는 늦는 거 싫다고 몇 번을 말했잖아.”
“그게……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 같습니다.”
“뭐? 무슨 믿음?”
“영주님에 대한 믿음이요.”
클로드의 말에 지셀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가 여신이야? 믿음을 신전에서 찾아야지 왜 나한테서 찾아?”
“……식량을 풀고 민심을 조금 안정시키긴 했지만, 이런 시기에 보수를 제대로 줄 거라는 믿음이 사람들한테 없습니다.”
“아, 그러니까 내가 돈이 없어 보인다?”
“정확히는 돈이 아니라 식량이지만……. 뭐, 비슷합니다.”
“어이가 없네.”
지셀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 늘어지며 혀를 찼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그간 너무나 착취당하고 살았으니, 이쪽에서 식량을 풀어도 쉽게 마음을 열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지금 이 북부의 ‘식량왕’을 어떻게 보고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거기에 룬스톤과 화장품까지 잘 팔리고 있어서 돈이 얼마나 많은데!
무척이나 분해하는 지셀의 표정을 보며 클로드가 슬쩍 말했다.
“원래 영주님 하시던 대로 강제 징집 들어갈까요?”
강제로 징집한다 해도 다른 영주들처럼 무보수로 부려 먹지는 않는다.
다들 넘치는 보수를 받게 되면 불만도 금세 사그라질 것이다.
그런데 지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지금은 사람을 전보다 훨씬 더 많이 고용해야 하잖아? 영지도 넓어지고 공사 규모도 더 커졌는데, 불만을 품고 일하면 오히려 더 손해야. 전시라면 모를까 지금은 채찍을 쓸 단계가 아니거든.”
“그러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강제로 모으는 게 제일 빠릅니다.”
“강제로 일을 하면 효율이 떨어지는 법이다. 나는 평화주의자라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 의욕을 가지고 해야 효율이 팍팍 오르지.”
‘평화주의자는 무슨, 나야말로 어이가 없네.’
클로드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강제로 일을 하는 관리들이 듣는다면 억울해서 죽을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지셀은 거만하게 다리를 꼬며 말했다.
“선금으로 줘.”
“네?”
“시작부터 화끈하게 가자고. 오는 족족 선금으로 두 달 치 식량을 나눠 줘. 기분 좋게 먼저 받고 일하라고 해.”
“식량만 받고 대충 일하거나 도망가는 놈도 있을 텐데요.”
“그런 놈은 그냥 죽이면 돼. 어쨌든 그렇게 하면 소문은 빨리 날 거다.”
“진짜요? 진짜 그렇게 다 풉니다?”
“아, 그러라니까. 우리 식량 남아돌잖아? 쓸 때는 팍팍 쓰라고. 대신 경고 확실히 하고.”
“하긴, 보기만 해도 토할 거 같을 정도로 남아돌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클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영지에서는 엄두도 못 낼 방법이지만, 이렇게 하면 확실히 인부는 빨리 모을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는 짠돌이 같은데 필요할 때 통 크게 쓰는 건 진짜 따라잡을 수가 없네.’
아무리 남아돈다 하더라도 지금 시기에 식량은 금보다도 가치 있는 자원이다.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먼저 나눠 준다는 걸 보면 확실히 그릇이 비범…….
‘아닌가? 저거 왠지 표정이 분하고 억울해서 잘난 척하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지셀의 표정이 아주 미묘하다. 기분 나빠하는 거 같으면서도 무척이나 거만해 보인다.
괜히 말 걸면 이쪽 복장만 터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클로드는 고개를 몇 번 저으며 모른 척 자리를 떴다.
곧 지셀의 명령에 따라 대규모로 식량이 풀렸다. 이번에는 민심 안정용, 생색내기가 아니라 진짜로 먼저 주는 대가였다.
거기에 첩보관인 로웰이 소문을 퍼트리며 여론까지 동시에 조작했다.
“이런 시기에 정말 식량을 보수로 준다고? 이게 가능한 건가? 진짜 소문처럼 식량이 엄청 많은가 봐!”
“새로 오신 영주님이 북부의 ‘식량왕’이래. 원래 계시던 곳은 동네 똥개들도 우리보다 잘 먹는다더라.”
“이 정도로 나눠 주면 무조건 믿고 따라야지! 카발디 백작하고는 전혀 다른 분이라고!”
사람들 사이에서 예전과는 달라질 거라는 기대감이 조금씩 피어났다.
단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좋은 징조였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니 인부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대장간과 제련소뿐 아니라 급히 필요한 시설과 거주지들도 동시에 작업이 시작되었다.
“자자, 빨리 시작해라!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의욕 넘치는 클로드는 지셀의 말버릇을 그대로 써먹으며 인부들을 독려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자원 확보와 자재 운반 등 다방면의 작업이 필요했다.
곧 카발디 영지의 숲과 산이 헤집어지고 사방에서 자재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그 많은 공사에 매번 반드시 투입되는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드워프들과 마법사들이었다.
갈바릭은 우울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휴가 정말 행복했는데……. 쉬고 왔지만 더 격렬하게 쉬고 싶다.”
알포이 또한 다를 게 없었다.
“내 안의 불꽃은 다 사그라들었어……. 난 이제 의욕이 없다고…….”
잠깐의 달콤한 휴식을 취했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지셀이 원하는 수준으로 제련소와 대장간을 세우려면 드워프들이 주도해야 한다. 건설 속도를 높이려면 마법사들도 꼭 참여해야 했다.
그나마 공사에 익숙해진 덕분에 건설 속도는 예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빨랐다.
인부들도 넘쳐나니 작업을 끊임없이 계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하나 문제가 있었다. 인부야 넘쳐나게 많지만, 관리를 하며 지휘할 사람이 현저하게 부족했다.
당연히 마법사들과 드워프들이 공사 감독 일까지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 팔이 떨려서 이제 못하겠다고! 잠 좀 푹 자자! 이제 정말 쓰러질 거 같아! 아니, 난 이미 죽어 있다!”
가장 체력이 약한 알포이와 마법사들이 결국 드러누웠다. 내내 마법진을 새기고 마법을 사용하니 몸이 견뎌 낼 리가 없었다.
넘치는 열정과 의욕으로 버티던 바네사도 마법진을 새기다가 졸아 버릴 정도였다.
서로 회복 마법을 써 주며 버텨 봤지만, 화염 계열 학파의 마법사들이라 회복 마법의 효과는 미미했다.
“우, 우리도 좀 쉬어야겠는데? 너무 피곤해서 근육이 말을 안 들어.”
드워프들도 결국 망치를 놓았다.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마법사들이 푹 퍼졌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던 지셀은 드워프들까지 쓰러지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어쩔 수 없지. 이제 비밀 병기를 사용할 수밖에.”
“비밀…… 병기? 그게 뭔데……요?”
알포이가 눈을 찌푸리며 묻자 지셀은 뒤를 돌아보며 손짓했다.
몇 걸음 뒤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던 한 사람이 푹푹 한숨을 내쉬며 걸어 나왔다.
그를 보고 알포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새로 온 사제? 저게 무슨 비밀 병기야?”
피오테는 지셀에게 잡힌 뒤 그간 영지의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치료하며 지냈다.
의사가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그만큼 많은 사람을 돌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신실한 사제인 그는 여신의 은총을 베푼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했다.
하지만 지셀은 그가 어느 정도 환자들에게 익숙해지자마자, 곧바로 공사장까지 그를 끌고 왔다.
사제의 분홍색 머리카락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알포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 설마…… 지금 신성력으로 우리를…….”
지셀은 대답 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포이는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하, 하지 마! 그냥 좀 쉬게 해 달라고! 억지로 회복시키지 말고!”
“시작하자고, 친구.”
지셀의 말에 피오테는 거무죽죽한 낯빛으로 마법사들에게 다가갔다.
요새 신성력을 너무 많이 써서 좀 쉬고 싶었다. 그런데 좀 찰 만하면 여기저기 불려 다니니 진짜 죽을 맛이었다.
천성이 순하고 심약한 피오테는 지셀의 말을 거절하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파아아악!
곧 피오테의 손에서 환한 빛이 퍼졌다.
신성력의 진정한 효과는 바로 재생력과 활력의 증가다. 이를 통해 외상을 치료하고 병을 이기는 힘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재생력과 활력의 증가는 무엇보다도 피로 해소에 아주 효과가 좋았다.
신성 치료를 받은 알포이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으아아아아! 개같이 부활! 이게 뭐야! 신성력을 이딴 데 쓰지 말라고!”
흑마법사가 시체를 일으키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사제가 쓰는 힘은 신성력이고, 시체가 아니라 시체가 되기 직전의 노예라는 작은 차이만 있을 뿐.
이런 일은 영지 곳곳에서 일어났다.
드워프들도 이를 갈며 다시 일어났고 다른 주요 관리들과 기술자들도 다를 게 없었다.
피오테를 얻음으로써 지셀은 기존의 인력만으로도 더 많은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공사 시간도 대폭 단축할 수 있었다.
아, 쓰러져도 일으켜 세우는데 어쩔 거냐고.
물론 그 반동은 모두 한 사람이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영주님……. 이러다가 나 죽어…….”
지셀에게 시달리며 신성력을 과하게 사용하다 보니 피오테는 툭하면 코피를 흘리며 기절하기 일쑤였다.
말단 사제인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신성력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이쿠, 우리 작고 소중한 사제님이 죽으면 안 되지! 어서 사제님을 회복실로 모셔라!”
지셀의 호들갑에 사용인들이 피오테를 최고급 회복실로 데려갔다.
이곳은 바네사와 마법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방이다. 바로 피오테 한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신성력보다는 훨씬 떨어지지만 비슷한 효과를 내는 회복 마법, 최적의 온도를 유지하는 마법, 정신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마법 등 좋다고 소문난 마법은 전부 걸려 있었다.
거기에 먹는 것도 매 끼니 최고급 재료로 요리하고, 최고급 약재를 섞어 넣었다.
이 영지에서 영주보다 더 사치스러운 대접을 받는 자가 바로 피오테였던 것이다.
어마어마한 돈과 룬스톤이 들었기에 처음에는 가신들도 반대했었다. 하지만 지셀은 한 마디로 일축했다.
― 이게 시간을 더 아끼고 돈을 더 버는 일이다. 이 사제님은 앞으로 매우 중요해질 거거든.
영지의 모든 관리와 기술자들에게 이런 걸 만들어 줄 수는 없지만, 한 사람 정도라면 감당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다른 자들을 끝없이 회복시킨다.
“무한 노동이라니. 하, 이건 정말 대단해.”
기적이 따로 있나? 이런 게 바로 여신의 기적이지.
이건 지셀이 처음 피오테를 얻었을 때부터 계획했던 일이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제를 이런 식으로 대할 수는 없다. 애초에 교단은 영지와 독립적으로 운영되니 전속 사제를 구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아주 순진한 말단 사제가 운 좋게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흠, 조만간 교단에 선물을 보내야겠네. 계속 잡아 두려면 적당한 이유를 좀 붙여야겠어.”
지셀은 그를 쉽게 놔줄 생각이 없었다. 피오테는 이제 이 영지의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이니까.
그가 있어야 개발 속도가 지금처럼 유지될 터였다.
“최대한 오래오래 데리고 있어야지.”
지셀은 만족스럽게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