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0)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0화(20/269)
20화 변수가 필요해. (5)
콰앙!
길리언은 그대로 정면을 향해 거대한 방패를 던져 버렸다. 달려오던 자들은 방패에 맞은 충격에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아직 남아 있는 암살자들도 질린 듯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크윽! 정보와 다르지 않나!”
암살자들을 이끄는 중년 남자가 크게 외쳤다.
이런 실력자가 있는 줄 알았다면 인원을 더 끌고 왔을 것이다.
분명 일행 전부가 일반 기사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 들었는데, 이러다 한 사람한테 전부 당할 판이다.
“젠장! 전부 몰아쳐라!”
중년인의 외침에 모두가 검을 뽑아 들고 길리언을 향해 몰려왔다.
그를 지나쳐야 지셀을 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허접한 놈들 주제에…….”
짧게 중얼거린 길리언이 마차 옆에 붙어 있는 한 손 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망설이지도 않고 적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콰직!
“으아아악!”
도끼가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한 사람의 머리가 쪼개져 나갔다.
검을 들어 올리면 검과 함께 머리가 쪼개졌다. 피하려 하면 도끼도 방향을 틀며 따라왔다.
길리언은 양 떼들 사이에 들어간 한 마리 사자와 다름없었다.
“이, 이놈! 죽어라!”
기회를 엿보던 암살자 하나가 동료의 죽음을 틈타 길리언에게 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턱!
“허, 헉!”
길리언은 맨손으로 그냥 검을 잡아 버렸다.
그의 손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어, 어떻게…….”
암살자는 얼이 빠져서 대응도 하지 못하고 길리언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지셀 일행을 중급 기사 수준으로 산정하고,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자들만 데려왔다.
그런데 마나를 두른 칼날을 그냥 손으로 잡아 버리다니. 눈앞의 괴물이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경지에 있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상 생각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콰지직!
길리언이 손에 힘을 주자 암살자의 검이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넋이 나간 암살자의 머리에 그대로 도끼가 떨어졌다. 암살자는 차디찬 시체가 되어 길리언의 발치에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암살자들은 주춤주춤 다시 뒤로 물러났다.
암살자들을 이끄는 중년인 역시 더 이상 달려들지 못했다.
이번 작전은 실패였다. 저 괴물 같은 자가 버티고 있는 이상 지셀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후, 후퇴한다!”
중년인이 소리치자마자 암살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누구 마음대로!”
어느새 말을 잡아 탄 길리언이 그들을 쫓았다.
길리언이 벨트에 차고 있던 단검들이 주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암살자들에게 날아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암살자는 단 한 명만 남겨 놓고 모두 쓰러졌다.
남은 한 명과의 거리는 이미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 자칫하면 놓칠지도 모르는 상황.
길리언은 마지막 남은 한 명을 향해 손에 들고 있는 도끼를 던졌다.
퍼억! 푸욱!
도끼가 암살자의 머리에 꽂히는 순간, 단검 하나가 그의 심장을 꿰뚫고 지나갔다.
길리언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눈을 마주친 벨린다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그녀의 로브 안에서 튀어나온 단검의 끝에는 가느다란 실이 달려 있었다.
벨린다가 손짓하자, 암살자의 심장을 뚫은 단검이 빨려 들어가듯이 로브 안으로 되돌아갔다.
“저 아니었으면 놓칠 뻔했네요.”
길리언은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내 도끼가 먼저다.”
“제 단검이 먼저거든요?”
벨린다가 톡 쏘아붙였다.
길리언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쓰러진 암살자에게 다가가 목에서 도끼를 뽑아내었다.
그러고는 지셀에게 다가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전부 처리했습니다.”
“수고했어.”
지셀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뒤에서 벨린다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길리언을 노려보고 있었다.
성에서는 항상 깐깐하고 도도한 표정으로 돌아다니던 벨린다가 길리언 앞에서는 열을 내며 방방 뛰는 게 재미있었다.
‘벨린다가 제대로 임자 만났군.’
멀뚱히 서 있던 수행 기사들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지셀을 호위하겠다고 같이 온 건데 할 일이 없어지니 좀 창피했다.
‘저 정도면 페르디움에서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거의 없겠어.’
그들도 다른 영지의 기사들에 비하면 강한 편이지만, 길리언은 정말 차원이 달랐다.
수행 기사들은 길리언을 흘깃대며 저들끼리 소곤거렸다.
“분명 라타토스크 용병단 단장이라고 했지?”
“그래, 나도 들어 본 적은 있어.”
“어쩐지, 보통 사람이 아니었네.”
“공자님은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간 거지?”
라타토스크는 타국에서 활동하던 용병단이지만, 그들도 이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정도로 유명했다.
길리언이 그런 용병단의 단장이었다니 놀라우면서도, 실력을 생각하면 그런 배경이 있을 만도 하다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셀은 내심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실력은 꼬리가 붙었을 때 이미 봤지만, 길리언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모습은 그도 처음 보았다.
‘소문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
길리언은 지셀이 전생에 타국에서 용병 일을 할 때, 소문으로만 들었던 인물이었다.
지셀과는 같은 왕국, 인접한 영지 출신이라며 동료나 선배들이 길리언에 대해 이야기해 주곤 했다.
이번 생에 기회가 되면 그를 꼭 영입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시기도 좋고 운도 좋았다.
그 당시에는 소문이 부풀려졌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실력이 소문 이상이었다.
‘빠르게 움직이길 잘했어.’
덕분에 아주 든든한 패를 얻게 되었다.
아멜리아에게 돈도 뜯어내고 충직한 수하까지 얻었으니 이번 외유는 정말 성공적이었다.
지셀은 길리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준 뒤 일행에게 말했다.
“아멜리아가 암살자를 고용했나 보군. 그 여자 꽤 집요한데 말이야.”
전생에서도 아멜리아는 끈질기게 지셀을 방해했다. 잡아 죽이려고 해도 번번이 빠져나가는 통에 전쟁을 치르는 내내 귀찮았다.
물론 이번 생에는 아멜리아를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녀와는 계속 부딪힐 수밖에 없는 관계니까.
벨린다가 암살자들의 시체를 하나하나 뒤적거렸다. 뭘 하나 했더니, 소속을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암살자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겠어?”
시체 몇 구를 확인한 벨린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빨 세 개가 그려진 문신을 보니 ‘살쾡이 밀매단’이에요. 레이폴드에서 꽤 세력이 큰 길드죠.”
“살쾡이 밀매단? 이상한 이름이군.”
“밀매업자들하고 도적들이 모여서 만든 길드예요. 천박하고 거친 놈들만 가득하죠. 암살 말고 밀매업과 마약 판매도 하거든요. 한마디로 더럽게 나쁜 놈들이란 거죠.”
“벨린다는 성에만 있으면서 그런 건 어떻게 알아?”
지셀이 묻자, 벨린다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뭐, 예전에 성에 들어오기 전에 우연히 알게 된 거예요. 어쨌든 집요한 놈들이니 영지로 돌아가도 안심할 수만은 없겠네요.”
“그렇군. 아멜리아가 독한 놈들을 썼나 보네. 기회가 되면 그곳도 손봐 주도록 하지.”
지셀의 살생부에 ‘살쾡이 밀매단’의 이름이 추가되었다.
분명 아멜리아는 레이폴드에 있는 범죄자 길드들을 수족으로 부리고 있을 것이다.
살쾡이 밀매단뿐 아니라 다른 범죄 길드도 언젠가는 다 박살을 내야 했다.
‘그건 그렇고 벨린다는 어떻게 저런 걸 아는 거지?’
벨린다는 우연히 알았다고 했지만, 지셀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지셀은 어느 영지에 어떤 길드가 있는지 잘 몰랐다. 이 시기 이후로는 타국에서 지냈고, 범죄자 단체와 얽힌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용병 일을 하며 지냈던 그조차도 그런데, 하물며 성에서만 지내는 벨린다가 길드 이름과 성격, 세력 범위까지 알고 있는 건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벨린다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군.’
자신의 가정 교사이자 하녀장, 그리고 어지간한 기사들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것 정도.
그게 전부였다.
‘뭐, 이제 볼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알아가 보자고.’
지셀은 벨린다에 관한 의문을 머릿속 한구석으로 밀어 넣고, 당장 급한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바로 습격자들의 시체에서 돈이 되는 물건과 무기들을 모조리 수거하는 일이었다.
가뜩이나 궁핍한 영지에 돈 들 곳도 많은데, 하나라도 챙길 수 있는 건 챙겨야지 않겠는가.
* * *
숲에서 암살자들을 물리치고 다시 이틀 정도를 이동한 끝에, 일행은 드디어 페르디움 영주성 인근에 다다랐다.
멀리 익숙한 페르디움 성의 모습이 보였다. 왠지 반가운 마음이 물씬 들었다.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좋구나.’
전생에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이미 가문은 멸망한 상태였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데에서 오는 그 절망은 겪어 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그 뒤, 지셀은 정착하지 못하고 마음 둘 곳도 없이 평생을 떠돌아다녔다.
삶이 언제나 고단했고,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늘 불안하고 서러웠다.
그때와는 달리 페르디움이 건재한 모습을 보니 감회가 깊었다.
지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한번 굳은 결심이 피어올랐다.
‘반드시 지켜 낼 것이다.’
페르디움 영지가, 그의 가문이 두 번 다시 멸망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 * *
챙그랑!
“어떻게! 어떻게 하나도 못 죽일 수가 있어!”
아멜리아가 집어 던진 찻잔이 산산조각 나며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냐앙!
바스테트도 아멜리아를 따라 하듯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베르나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런 둘의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경고조차 되지 않았을 거야. 더 우습게 보였으면 보였지.”
냐앙!
아멜리아의 눈은 실핏줄이 다 터져 붉게 물들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늘 우아하고 냉정하던 그녀라고는 상상도 못 할 모습이었다.
베르나프는 제법 충격을 받았다.
‘저래도 예쁘다니!’
뭘 해도 예뻐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처음 봤다. 정말 무서웠다.
지금 아멜리아에게 진정하라는 소리를 했다간 바닥이 아니라 그의 머리로 찻잔이 날아들 것이다.
그는 입을 굳게 닫았다. 그러자 바스테트가 그를 혼내듯이 외쳤다.
냐앙!
‘저 망할 고양이. 자기가 무슨 내 윗사람인 줄 알아. 아오……. 저 고양이 새끼는 날 잡아서 반드시 치워 버린다.’
아멜리아는 좋지만, 그를 제 밑으로 보고 그녀와 똑같이 행동하는 바스테트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명예를 땅에 떨어트려도 유분수지. 아주 진창에 넣고 굴리는구나.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서른 명이나 갔다면서 하나도 못 죽여? 지셀, 그 새끼가 날 얼마나 우습게 보겠어.”
냐앙!
“시끄러워, 바스테트!”
아멜리아가 노려보자, 바스테트는 바로 고개를 숙이고 베르나프의 뒤로 후다닥 숨었다.
‘쌤통이다.’
얄밉게 굴던 고양이가 혼나자 베르나프는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화살이 살짝 돌아간 틈을 타 살짝 고개를 숙이고 답했다.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수행 기사들의 실력이 뛰어났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지셀 일행에 길리언이 합류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꼬리로 붙여 놓았던 자도 잡혔고, 습격하라고 보낸 암살자들이 죄다 전멸했으니 그들에게 소식을 전할 자가 없었던 것이다.
아멜리아가 핏발이 선 눈으로 베르나프를 노려보았다.
“페르디움 영지를 찾아가서라도 지셀을 죽였어야지. 하긴, 그 보잘것없는 놈 하나 죽이지 못한 쓰레기들이 뭘 하겠어.”
베르나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레이폴드 영지를 빠져나가는 지셀을 공격하는 것과 페르디움 영지 안에 있는 지셀을 공격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아무리 허접한 영지라 해도, 지셀은 페르디움의 대공자다. 영지의 주요 인물을 근거지에서 죽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해서 배후가 밝혀지면 정말 영지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것은 아멜리아 역시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단지 분노에 휩싸여 내뱉은 말일 뿐이었다.
“일단 살쾡이 새끼들은 대기시켜 놔. 언제든지 바로 움직일 수 있게. 방법은 내가 찾아볼 테니까. 그때는 똑바로 하라고 전해.”
아멜리아는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더 이상 날 우습게 만들었다간 어떻게 될지 기대해도 좋아. 베르나프 너도 말이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냉정한 그녀의 말에 항상 총애를 받던 베르나프는 급 우울해졌다.
“……알겠습니다. 제대로 준비시키겠습니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바스테트를 안아 들고 말했다.
“저 한심한 놈들보다 차라리 바스테트 네가 싸우는 게 낫겠다. 그때 그냥 위험을 감수하고 지셀을 죽일 걸 그랬나? 쓸모 있는 놈들이 없구나.”
야오옹.
큰소리에 꼬리를 말았던 것은 기억도 안 나는지, 바스테트가 아멜리아의 품에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그 모습을 고깝게 바라보던 베르나프는 순간 바스테트와 눈이 마주쳤다. 왠지 비웃는 듯 보여 속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저 새끼 저거 지능 높아. 분명해.’
혼만 실컷 나고 고양이한테까지 능욕당한 베르나프는 씁쓸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파혼까지 할 건데 그런 놈을 뭐 하러 신경 쓰는지.’
2만 골드는 그냥 파혼 선물로 준 셈 치고 손을 떼는 게 낫지 않은가.
하지만 이미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아멜리아는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멍청한 새끼, 하필 왜 저 여자를 건드려서.’
암살자들이 모두 시체로 돌아왔음에도 베르나프는 지셀이 끝내 죽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멜리아가 원하는 건 결국은 모두 이루어진다. 그건 베르나프에게 절대적인 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