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1)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1화(21/269)
21화 미친놈아 그걸 왜 해! (1)
지셀 일행은 영지로 돌아오자 후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외유는 짧았지만, 밖에서는 아무래도 페르디움에서처럼 마음을 놓고 편하게 있을 수 없으니까.
오직 길리언만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영지 이곳저곳을 둘러볼 뿐이었다.
영주 성으로 향하는 사이, 지셀이 길리언에게 물었다.
“이곳이 페르디움 영지야. 직접 본 소감이 어때?”
“……괜찮은 거 같습니다.”
“아니, 아니. 그런 형식적인 대답 말고. 외부인이 봤을 때 어떤지 평가를 솔직히 듣고 싶은데?”
길리언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그 자신도 모시는 자의 비위를 맞추는 말만 하는 건 선호하지 않았다.
“……가옥이 전부 구식이고 낡았습니다. 보수가 되는 거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만큼 영지가 가난하다는 뜻이겠지요.”
레이폴드는 북부에서 가장 부유한 영지다.
비록 길리언 본인은 딸을 치료하느라 전 재산을 쓰고 가난하게 살기는 했지만, 레이폴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오며 가며 본 게 있다.
용병으로 일하던 시절에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많은 영지를 직접 보았다.
그런 길리언이 보기에 페르디움 영지는 그냥 가난한 시골 촌구석 영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셀은 화난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정말 가난한 영지지. 영주도, 영지민들도 모두 돈이 없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형편이니까.”
“젊은 남자들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면 발전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겠죠.”
“그래. 이유는 알고 있나?”
길리언은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페르디움 영지는 북방의 야만인들 때문에 항상 전쟁 중이나 마찬가지라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징집이 자주 이뤄질 테고, 젊은 사람이 부족할 수밖에 없겠지요.”
“잘 아는군.”
지셀은 쓴웃음을 지었다.
“영지에서 가장 발전하기 마련인 영주 성 인근도 이 정도야. 다른 마을들은 말할 것도 없지.”
“음…….”
“농사를 지을 사람들이 없으니 세금은 줄어들고 영지는 더 가난해지고. 악순환의 반복이야.”
길리언은 지셀의 말을 듣고 영지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페르디움의 상황은 완전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었다.
세금을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데 영지와 군대가 멀쩡하게 돌아갈 리가 없다.
지셀은 천천히 말을 몰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돈이지. 기사들과 병사들의 장비는 노후화되는데 돈이 없으니 바꿀 수가 없어. 보급도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말이야. 아마 다른 영지들이 지원해 주지 않았다면 진작 망했겠지.”
“상황이 좋지 않군요.”
“그래, 이대로 가다가는 싸워 죽는 것보다 굶어 죽는 게 더 빠를 거야.”
전생의 지셀은 그저 가난한 영지에서 태어났다고 불평하기 바빴다. 그게 얼마나 철없는 행동이었는지 이제는 알고 있다.
“사실 일 년 내내 싸우는 건 아니야. 일정 주기로 막고 몰아내기만 반복하는 거지. 문제는,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군대에 가 있는데도 그렇게 유지만 하고 있다는 거야.”
“그렇다고 군대를 없앨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맞아, 돈 나올 구석이 없는데 군대는 유지해야 하니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지.”
길리언의 생각으로는 단순히 지형적인 문제만은 아니었다.
페르디움 영지는 날씨도 조금 선선한 정도이고, 농사를 짓기에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는 게 문제였다. 모든 노동력이 전쟁에 소모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셀은 야만인들 외에 다른 문제점 또한 입에 올렸다.
“오면서 영지 북서쪽에 붙어 있는 숲을 봤지? 마수의 숲이라고 불리는데 알고 있나?”
“예, 몬스터로 가득 찬 숲이라고 들었습니다.”
“언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그쪽에서도 군대가 경계를 서고 있어. 결국 거기서도 전쟁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군대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자원이 소모되니까.”
가뜩이나 돈도 없고 사람도 적은데, 그나마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군대로 들어가 경계만 서고 있다.
이럴 바에 차라리 모두 돌격해서 시원하게 싸우다 죽는 게 낫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돈을 잡아먹는 게 군대다.
지금이야 다른 영지의 지원으로 어떻게든 유지하고 있다지만,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길리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었다.
“다른 영지에서 지원을 더 받는 건 어떻습니까? 돈이나 식량 말입니다. 그걸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면…….”
“그들은 우리 힘이 강해지는 걸 원하지 않아. 정말 딱 군대가 겨우 유지될 정도로만 지원을 해 주지. 영지민에게 베푸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야.”
길리언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셀이 특이한 거지, 보통 귀족들은 자기 영지민들의 생활조차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자들이 남의 영지민들을 먹여 살리는 데 자기 재산을 퍼 줄 턱이 없었다.
그저 누군가는 여기를 지켜야 하니 마지못해 조금씩 지원해 주는 정도일 것이다.
그나마 북부 사람들이 성정이 강한 편이라 이런 가난 속에서도 버티고 있을 뿐이다.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까?”
지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모두 이 악순환을 끊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끊지 못했어. 애초에 돈이 없으니 다른 걸 시도해 볼 여력이 없었지.”
“힘든 상황이군요.”
“땅이 메말라도 한 방울의 물만 있으면 새싹이 피어날 가능성은 생기는 법이야. 하지만 그 한 방울의 물조차 없는 게 우리 영지의 현실이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다른 영지에서 기사 서임을 받는 게 공자님한테 더 나을 거 같습니다. 영지를 물려받아도 고생만 할 게 분명합니다.”
길리언이 답답해진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지셀은 씩 웃음을 지었다.
“내가 해결할 거야.”
“네? 공자님이 말입니까?”
마치 다짐 같기도 한 말이었다. 길리언이 반문하자 지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반드시 영지의 가난을 끊어 낼 거야. 한 방울의 물이 아니라 비가 되어서 말이지.”
길리언은 단순히 젊은 패기에서 나오는 헛된 꿈이라 생각했다. 누가 봐도 지금 상황에서 영지를 살리기란 불가능해 보였으니까.
그러나 지셀은 정말로 페르디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확신이었다.
* * *
지셀은 영주 성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온 걸 확인하고 바쁘게 움직였다.
“벨린다, 길리언과 레이첼이 묵을 곳을 준비해 줘. 곧 아버지를 만나러 갈 거야. 치료도 매일 해야 하니 약재도 좀 구해 주고.”
“알겠어요. 저도 밀린 일들을 처리해야겠네요.”
지셀은 길리언을 바라보았다.
“길리언, 당분간은 성에 묵도록 해. 곧 머물 만한 거처를 마련해 주지.”
“감사합니다.”
지셀은 수행 기사들도 수고했다며 치하하고, 길리언을 대동한 채 아버지를 찾아갔다.
‘이게 얼마 만인 거지?’
페르디움 대공자로서는 몇 달 만에 보는 것이지만, 용병왕에게는 수십 년의 세월을 돌아와 겨우 다시 만나는 아버지였다.
지셀은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 서서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가신들과 회의하는 중인지, 페르디움 백작의 피곤한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병력을 감축해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상태를 유지하기는 빠듯할 거 같습니다. 지원금이 줄어들었습니다.”
재무관 알버트가 무미건조한 어조로 답했다.
잠깐 침묵이 흐르고, 곧이어 기사단장 란돌프의 무거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알버트 형님, 여기서 더 줄이면 전선을 제대로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기사단장인 란돌프는 전선을 유지하고 야만인들과 싸우는 데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답답한 심정을 담아 물었다.
“어디에서 지원금을 줄인 겁니까? 차라리 레이폴드에 지원을 더 요청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곳이라면 분명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란돌프의 말에 총관 호메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힘들 거 같다. 지금 감축해야 하는 이유가…… 지원금을 가장 많이 보내던 레이폴드에서 지원을 줄였기 때문이야. 자세히 알아보니 레이폴드 백작이 군비를 더 늘렸다고 한다. 병사들을 모으고 식량을 비축하는 거 같다.”
란돌프가 조금 놀랍다는 듯 되물었다.
“레이폴드 백작이 왜 군대를 키운다는 겁니까? 북부에서 전쟁을 할 만한 곳이 여기 말고 또 어디 있다고요.”
“모르겠다. 우리야 항상 북방 요새에만 신경을 쓰니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가 어렵지.”
“병력을 줄일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간 야만인들한테 당할 거요. 지금 남은 기사도 서른 명이 안 됩니다. 돈이 없으니 다 떠나고 쟈말이나 필립 같은 배신자가 나오는 겁니다.”
란돌프가 강경하게 주장했지만, 알버트는 여전히 감정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기사단 전력도 감축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북방의 전선도 축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란돌프는 분통이 터진다는 듯 크게 외쳤다.
“형님! 전선을 줄이면 막고 있는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저기 구멍 난 곳으로 야만인들이 들어올 겁니다!”
그 말에는 다들 할 말이 없는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주요 가신들이라고 해 봤자 총관과 기사단장, 재무관 정도였다. 가난한 영지지만 그래도 이들이 똘똘 뭉쳐 지금까지 어떻게든 이끌어 왔다.
호메른, 알버트, 란돌프가 페르디움을 이끌어가는 중심이자 실세인 것이다.
문 앞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지셀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길리언에게 말했다.
“이거 좀 창피하네. 영지 사정이 워낙 안 좋아서 말이지. 다른 영지랑은 분위기가 좀 다르지? 다들 아버지랑 의형제인 분들이야.”
“괜찮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영지가 유지되고 있는 게 신기했는데, 그나마 사람들이 끈끈하게 이어져서 가능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 저분들도 의리와 충성으로 지금까지 고생하며 버티고 있는 거지. 다들 좀 꼬장꼬장해도 좋은 분들이야.”
‘나를 원수처럼 보긴 하지만.’
지셀은 뒷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가 워낙 사고만 치고 다니니 세 사람과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지셀은 문을 열기 전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제 저 꼬장꼬장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
“들어가지.”
그는 대전의 문을 힘주어 열었다.
머리가 반쯤 벗어진 총관 호메른, 언제나 표정이 심각한 재무관 알버트, 그리고 수염이 덥수룩한 기사단장 란돌프.
페르디움 백작과 연배가 비슷한 그들은 지셀을 보자마자 인상부터 찌푸렸다.
하지만 지셀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순간부터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버지!’
그의 아버지, 즈발터 페르디움은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고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셀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다른 세 사람도 반가웠지만, 아버지는 조금 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삶에서는 가출한 뒤 아버지를 보지 못하게 되어, 얼굴조차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다시 아버지를 보게 되니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가문을 떠나갈 때는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치기 어린 생각이었다.
지셀은 가문이 멸망하고 나서야, 지금껏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하게 되는 고통과 괴로움을 느낀 후에야,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
지셀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지만, 차마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수고하셨다고, 잘 다녀오셨냐는 인사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떨리는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즈발터가 지셀의 심정을 알 리가 없었다. 그는 아들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자 살짝 긴장했다.
‘왜 저러지? 또 사고 쳤나? 눈가는 왜 저렇게 쓸데없이 촉촉하고?’
잠시 기다려도 지셀이 말이 없자 즈발터가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크흠, 나갔다 왔다고 들었다. 레이폴드 백작 영애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