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15)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15화(215/269)
215화 기부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1)
포리스코는 거만한 표정을 내비치며 지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 애송이가 요새 한창 뜨고 있는 북부의 신성이란 놈인가? 젊은 놈이 브랜포드 후작 덕분에 허명만 얻었구나.’
그도 전쟁 소식을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뭄 덕분에 운 좋게 이겼다는 의심이 떠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놈이었으면 에일즈버 백작 부인과 브랜포드 영애가 사제까지 급히 구해서 보내진 않았을 테지.’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보인다. 포리스코가 딱 그랬다.
지셀을 무시하는 귀족들의 뒷담과 척박한 북부 출신이라는 사실은 선입견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브랜포드 후작과 에일즈버 백작 부인이 아니었으면 감히 날 만나지도 못할 놈이지.’
거기에 포리스코는 교단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있다.
교단의 주교라면 웬만한 귀족들도 한 수 접어주어야 하는 위치이니, 애송이 남작 정도는 우습게 볼 만도 했다.
하지만 포리스코가 지셀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화장품이나 파는 천박한 놈……. 그 화장품 때문에 우리 수입이 줄어들었잖아!’
미의 여신을 모시는 쥬아나 교단은 지금까지 신성력으로 많은 귀족들의 미용 관리를 도맡으며 기부금을 쓸어 담아 왔다.
그런데 훨씬 싼 값으로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 화장품이 나왔으니 교단의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포리스코의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도 줄었으니, 첫 만남부터 노골적으로 좋지 않은 표정을 내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도 지셀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상자 하나를 건넸을 뿐이다.
“펜리스 남작입니다. 파견해 주신 피오테 사제님이 영지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건 그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포리스코는 상자를 슬쩍 열어 안에 가득 찬 보석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이런 선물은 익숙하지만, 역시 선물은 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은 법이다.
지셀에 대한 불만감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이미 에일즈버 백작 부인께서 기부를 많이 하시긴 했는데……. 이렇게 또 주시는 걸 보면 원하는 게 있으신가 봅니다?”
과연 뇌물 한두 번 받아 본 솜씨가 아니다. 뭔가를 받으면 뭔가를 줘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지셀도 살짝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 아무래도 저희 영지가 형편이 어려워 힘든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힘으로 영지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보려 합니다.”
“호오, 그러니까 새로운 교구를 그곳에 만들어 달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영지에 제대로 된 교단이 아직 들어서지 않아서 말입니다.”
“북부는 쥬아나 님을 믿는 자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여신을 따르는 자가 많지 않습니까?”
쥬아나는 풍요와 생산, 경제, 공정, 재능, 체제 등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또한 아름다움과 사치도 상징해서 귀족과 상인, 관료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달리 말하면 척박한 북부의 사람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다는 뜻이었다.
포리스코의 물음에 지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래 봤자 다들 겉핥기식으로 믿고 있을 뿐입니다. 진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피오테 사제님이 영지에 있으니 쥬아나 님을 따르는 신도들도 금세 늘어날 것입니다.”
절반 정도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피오테의 신성력을 겪은 영지민 중에서 개종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포리스코는 진한 비웃음을 보였다.
‘어휴, 북부의 촌놈이 신성력 맛을 보고는 눈이 뒤집혔구나.’
주교로서 이런 수작을 부리는 시골 영주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영지에 사제가 한 명만 있어도 삶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사제의 수가 극도로 적은 탓에 결국은 귀족만의 전유물이 되겠지만 말이다.
포리스코는 짐짓 생각하는 척하더니 툭 하고 한마디를 던졌다.
“뭐, 교구까지는 힘이 들고, 쥬아나 님의 신전을 하나 지으면 봉사를 할 수도사와 전도사 정도는 몇 명 보내 주겠습니다.”
‘어디서 그런 수작으로 사제를 냉큼 데려가려고 해?’
뇌물을 먹었으니 작은 부탁 하나 정도는 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피오테를 거기에 계속 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밖에 나갔다 왔으니 경험도 좀 쌓았겠다. 여기저기 굴리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오는데 말이야.’
사제는 귀하니만큼 하나하나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피오테의 지위가 더 올라가기 전에 최대한 많이 뽑아 먹어야 했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자신을 따르는 사제가 많아야 교단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셀은 살짝 실망한 어투로 말했다.
“그러면 피오테 사제님을 저희 영지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게 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흐음, 뭐 알박기가 아니라면…… 크흠흠, 내가 무슨 말을. 정식으로 발령내는 게 아니라면 약간의 기부로 3개월 정도는 더 있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기부라……. 알겠습니다.”
지셀이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고 하자 포리스코가 살짝 당황하며 물었다.
“벌써 가시게요? 기부는 안 하고? 피오테 바로 보내시려고요?”
“아닙니다. 기부를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요. 제가 곧 준비를 해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 말에 비로소 포리스코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여신께서는 신실한 신도를 좋아하십니다. 내 남작님의 믿음과 성의를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준비해서 오셨으면 합니다.”
펜리스 남작이 식량과 철광석을 잔뜩 손에 쥐었다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포리스코는 내심 얼마나 대단한 선물이 들어올지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지셀은 신전에서 나서자마자 바로 로웰에게 말했다.
“시작하자. 준비한 대로 움직여. 확실히 할 수 있지?”
“그럼요, 그게 제 전문입니다.”
“좋아, 저 욕심만 많은 새끼를 아예 정신 못 차리게 해 주자고. 천국으로 보내 주자.”
“알겠습니다. 정말 천국에 있는 기분일 겁니다.”
로웰과 병사들은 식량을 잔뜩 가지고 수도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지셀은 전에 사 놓았던 까마귀 저택에 묵으며 사용인들에게도 이것저것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포리스코는 무척이나 불쾌해하며 지셀을 욕하기 시작했다.
‘기부하겠다던 놈이 왜 아직도 안 찾아오는 거야? 시건방진 촌놈 같으니라고. 피오테는 바로 복귀시켜야겠어.’
정식으로 발령을 내 주지 않으니 돈이 아까워서 포기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쪼잔한 놈 같으니라고……. 사제를 오래 붙잡고 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그나저나 돈이 더 필요한데 어쩌지? 여기저기에 기름칠할 곳이 많은데 말이야.’
포리스코는 요새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빠져있었다. 대주교와 대립하고 있었는데 점점 세가 밀려 파문 위기까지 몰렸기 때문이다.
조만간 대주교가 총회를 열어 자신을 쳐 낼 거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여기저기 다른 주교와 귀족들에게 뇌물을 바치며 여론을 돌려 보려 했지만, 상황이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젠장! 다 같이 처먹으면서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내가 조금 더 많이 먹었을 뿐이잖아!’
뒤꽁무니로 먹은 건 다들 똑같다. 하지만 세가 밀리니 그게 약점이 되고 말았다.
펜리스 남작에게 얻은 뇌물도 비슷한 곳에 쓸 계획이었다. 하지만 찾아오지도 않으니 글렀다.
포리스코는 몇 번 혀를 차고 지셀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그는 근심 가득한 얼굴을 애써 피고 웃으며 성사가 열리는 강당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지나갈 때마다 신전의 사용인들이 자신을 보며 수군거리는 게 눈에 걸렸다.
‘뭐지? 왜 저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 마치 신기한 걸 보는 듯한 눈이 아닌가?’
의아한 일이었다. 평소에 자신을 보는 시선에서는 두려움과, 그 속에 숨겨진 은근한 멸시가 느껴졌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때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괜히 찝찝해서 걸음을 빠르게 하는데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저분이…… 그렇대.”
“그동안 일부러…… 그렇게 숨기고…….”
“소문이 벌써 다…… 갑자기 오늘 아침부터…….”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러 숨겼다는 말과 소문이 갑자기 퍼졌다는 말만은 알아들었다.
‘뭐지? 대주교가 벌써 움직인 건가? 이제는 바깥의 여론까지 조작하는 거야? 날 확실하게 죽이려고? 어떡하지? 파문당하면 난 진짜 죽는다. 대주교를 먼저 죽이든 내가 죽든,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해.’
혼란스러운 상태로 하는 둥 마는 둥 성사를 마친 포리스코는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요 며칠간 몸도 무겁고 귀찮아서 신전 안에서만 먹고 자기만 하며 빈둥거렸다. 그러니 제대로 된 사정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신전 기사 몇 명을 대동한 채 밖으로 나간 포리스코는 이전과 무언가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포리스코 주교님이다!”
“아아, 우리가 그동안 저분을 오해했지 뭐야.”
“빈민가의 성자님이시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시끄럽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에는 자신이 지나가도 모두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피해 다녔던 사람들이었다.
신성력도 돈 많은 귀족들에게만 쓰고, 아프고 힘든 사람들은 아예 외면했기 때문이다.
어찌나 노골적으로 사람들을 차별하고 뇌물을 받았는지 ‘탐욕의 사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그는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저런 하찮은 것들과 여신의 선택을 받은 자신은 다른 인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라고? 빈민가의 성자? 내가?’
성자라는 칭호는 아무한테나 붙는 게 아니다.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어 주고 희생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칭호였다.
그리고 포리스코는 자신과 성자라는 이름은 세상의 끝과 끝만큼 거리가 멀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는 말단 사제 때 봉사 시간을 채우려고 억지로 갔을 때를 빼고는, 단 한 번도 빈민가에 간 적이 없었다.
자신처럼 고귀한 사람이 그런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 왜 간다는 말인가?
하지만 저런 소리를 듣고도 확인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비, 빈민가로 가 보자.”
사람들의 눈빛과 대우가 달라졌다. 기분이 이상하다. 절로 목소리가 떨렸다.
“마차를, 어서 마차를 준비해라.”
빈민가는 수도 외곽에 있어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그의 비대한 몸으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빈민가에 도착한 그는 다시 한번 놀랄 만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오오, 성자께서 오셨다!”
“포리스코 주교님이 오셨다!”
“우리의 구세주가 드디어 나타나셨다!”
빈민들이 시끄럽게 떠들더니 점점 몰려들었다. 잠깐 움찔한 그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신전 기사들도 미소만 지을 뿐 다가오는 빈민들을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 뭣들 하느냐…… 당장 저놈들을…….”
포리스코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모든 빈민이 바닥에 엎드리며 예를 올렸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교님!”
“주교님 덕분에 제 손자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간 주교님을 욕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주교님의 깊은 뜻을 몰랐습니다!”
누군가는 흐느끼고 누군가는 찬양을 올렸다. 심지어 어떤 노인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포리스코의 발에 입을 맞췄다.
사람들의 경배를 받은 포리스코는 순간 등줄기를 스쳐 가는 강렬한 쾌감을 느꼈다.
‘이, 이거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한 것이었어! 나에게 부족한 건 이것이었다!’
사제의 신분 때문에 결혼도 하지 못했다. 다른 귀족들처럼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지도 못했다.
좋은 옷과 좋은 음식, 좋은 잠자리를 즐기며 살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무리 뇌물을 받고 재산을 쌓고 쌓아도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 노는 것도 주변의 눈치를 보며 몰래몰래 놀아야 했다.
하지만 이것을 보라! 모든 사람들이 진실로 자신을 추앙하고 경배하고 있다.
‘마치 신이 된 기분이로다!’
포리스코는 자신의 마음에 드디어 무언가가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명예, 진실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권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
포리스코는 새로운 탐욕에 눈을 뜬 것이다.
만족스럽긴 하지만, 여전히 이들이 자신을 칭송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 했다.
“왜, 이자들이 나에게 왜 이러는 것이냐?”
신전 기사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제 와서 모르는 척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수도에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습니다. 어찌 그간 그런 깊은 뜻을 숨기셨단 말입니까?”
신전 기사의 눈빛에도 존경이 가득했다. 포리스코는 머리를 세차게 저으며 다시 물었다.
“어, 어떤 소문이 났다는 말이냐?”
“그간 주교님께서 악착같이 재산을 모은 것이 다 이때를 위해서 그런 거라는 소문입니다. 여신의 계시를 받아 가뭄이 올 것을 예견하시지 않았습니까?”
“내, 내가? 계시를 받았다고?”
여신의 계시는 오직 성녀만이 받을 수 있다.
남자인 자신이 계시를 받는 건 말도 안 된다. 계시는커녕 개꿈도 꿔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신전 기사는 이제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 계시를 통해 재산을 모으고 그 재산으로 식량을 사서 이렇게 빈민가에 나눠 주셨지 않습니까. 가뭄으로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주교님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신의 말씀이다 보니 비밀로 하셨던 것도 다 이해합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포리스코의 재산은 살아남기 위한 뇌물로 열심히 쓰고 있다.
아침마다 줄어드는 비밀 창고의 재산을 보며 얼마나 속이 쓰렸던가.
그리고 요즘 같은 시대에 빈민가에 전부 나눠 줄 만큼 많은 식량을 어디서 구한다는 말인가?
“내, 내가 어디서 식량을 사?”
“펜리스 남작이 주교님의 요청으로 어마어마한 식량을 가지고 수도에 오지 않았습니까? 본 사람들이 많습니다.”
‘펜리스 남작!’
그 이름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만간 큰 기부를 하겠다고 하더니 갑자기 사라진 놈. 왜 여기서 그놈의 이름이 들린단 말인가!
포리스코가 복잡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가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왔다.
“어떻게……. 기부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포리스코 성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