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3)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3화(23/269)
23화 미친놈아 그걸 왜 해! (3)
즈발터는 물론 다른 가신들까지 다 있는 자리였지만, 정말 큰소리가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마수의 숲을 건드리는 건 지셀이 이전에 친 사고들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거기 들쑤셔 봤자 몬스터만 튀어나올 텐데 뭐 하러 들어가! 완전 손해라고! 왜 가만히 내버려 두는지 몰라?”
호메른의 입에서 예의고 뭐고 말아 먹은 험한 말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하지만 대공자에 대한 예의 같은 걸 생각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알버트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손익을 따지고 들었다.
“그곳은 몬스터가 너무 많아 쓸모없는 곳이라 판명 났습니다. 개척을 해 봤자 얻는 이득보다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크다는 말입니다.”
“대공자님이 자신의 실력을 너무 자만하는 거 같습니다. 설마 케인 공자를 이겼다고 본인이 정말 강해졌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허, 이거 참.”
란돌프까지 입을 모아 반대하자 지셀은 속으로 혀를 찼다.
반대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반응이 생각보다 훨씬 단호하다.
‘에잉, 내 이럴 줄 알았다.’
아버지의 의형제인 세 사람이 모두 반대해서야 허락받는 건 불가능했다.
지셀이 대답 없이 가만히 있자, 호메른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대체 왜 그렇게 이곳저곳 들쑤시지 못해서 안달입니까!”
“형님,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란돌프가 그의 옷깃을 붙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호메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동안 저놈이 무슨 짓을 해 왔는지 잊었나? 적어도 한 영지의 대공자라면 사고는 치지 말아야지!”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군량을 몰래 팔아서 그 돈으로 도박을 하지 않나! 기분이 안 좋다고 성문에 불을 지르려다가 잡히질 않나! 고기를 먹고 싶다고 군마를 잡아먹고, 전설의 검을 만들겠다면서 기사들 갑옷을 죄다 녹여 버리고!”
호메른의 말이 이어질수록 지셀의 표정이 점점 묘해졌다.
‘내가 저렇게까지 했었나.’
하도 오래된 일이라서 잊고 있었다.
“그 외에도 대공자가 친 사고가 한둘이야? 그런데 이번에는 뭐? 마수의 숲? 도대체 얼마나 큰 사고를 치려고! 절대 안 돼!”
지셀은 모른 척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기억이 안 나는 걸.’
이들에게는 고작 몇 년, 몇 달 전의 일이겠지만 자신에게는 오래전의 일이다.
그래도 사고를 많이 쳤었다는 기억은 있었기에,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 믿죠?”
어떻게든 분위기라도 풀어 보려고 살짝 미소까지 지었지만, 역효과였다. 호메른이 제 목 뒤를 잡고 비틀거렸다.
“억, 어윽. 이 꼴통…… 지금 웃음이 나오…….”
가만히 두 사람의 공방을 지켜보던 즈발터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마수의 숲을 개척해서 돈을 벌려는 것이냐?”
“맞습니다. 지금 영지에서 돈이 될 만한 건 숲의 자원밖에 없습니다.”
“그래, 이미 선대부터 검토했던 일이다. 하지만 돈이 되는 자원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병사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어. 설령 정보가 있다 해도 지금은 그럴 만한 여력도 없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영지의 힘을 쓰지 않고, 제가 해 보려고 합니다.”
지셀 또한 영지의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꼭 그곳을 개척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야 영지가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다.’
전생에서도 페르디움 영지는 가난 때문에 결국 망할 때까지 주변 영지에 휘둘렸다.
지금도 당장 적들이 돈줄을 막아 버리면 그것만으로도 휘청댈 게 뻔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대비하려면 어떻게든 돈이 나올 구멍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미래를 모르는 즈발터에게는 통하지 않는 이유였다.
“돈도 병력도 없는데 뭘 어떻게 한다는 거냐?”
그러자 지셀은 가신들을 모두 한번 둘러본 뒤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돈과 병력은 제가 마련하겠습니다. 어차피 영지에 돈 없는 거 알고 있습니다. 단지 영지 내에 주둔지를 건설하고 병력을 모집하는 권한만 허락해 달라는 겁니다.”
그 말에 재무관인 알버트가 잽싸게 물었다. 철부지 대공자가 알아서 돈을 마련한다니 궁금증이 든 것이다.
“대공자님이 무슨 돈이 있습니까? 개척이라는 건 푼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압니다. 어쨌든 돈은 제가 알아서 마련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그 돈을 어떻게…… 허허.”
감정 기복이 적은 알버트도 결국 헛웃음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지셀이 말하는 꼴을 보니 돈 개념이 없는 게 분명해 보였다.
‘어디서 강도질이라도 할 셈인가? 저놈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인데.’
알버트가 뭐라고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호메른이 울부짖듯이 외쳤다.
“그냥 제발 가만히 계십시오! 도대체 얼마나 저희를 더 피곤하게 하시려는 겁니까! 그냥 가만히 계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 제발요!”
호메른의 절규에 공감한 다른 가신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지셀은 팔짱을 끼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 이거 허락받기는 글렀네. 쯧.’
곤란함에 저도 모르게 취한 행동이었지만, 그걸 본 사람들은 더욱 눈살을 찌푸렸다.
‘저, 저 예의 없는 놈. 대공자라는 작자가 저렇게 천박해서야.’
사람들이 인상을 쓰거나 말거나 지셀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꼭 해야 하는 일인데 말이지.’
저들이 바라는 건 명확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안 하고 얌전히 있는 것이다.
물론 지셀도 일하는 것보다는 노는 게 편하다. 그렇지만 영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페르디움에 닥쳐올 미래를 알고 있는 건 자신뿐이니까.
‘음, 그래도 반응이 너무 안 좋은데?’
가신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싸늘한 눈으로 지셀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수의 숲을 개척하겠다는 것도 터무니없지만, 그 말을 한 게 신망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대공자였다.
대체 뭘 보고 그를 믿어 주겠는가.
그리고 아무리 형편없고 보기 싫은 놈이더라도,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위험한 곳에 영지의 후계자를 보낼 수는 없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차가운 반응을 보고 지셀은 설득이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 전생이었으면 그냥 죄다 족쳤을 텐데.’
용병왕 시절에는,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놈들은 죄다 공평하게 허리를 꺾어 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결국 지셀은 가신들을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떻게 행동하든 고깝게 보는 사람들에게 말을 얹어 봐야 의미 없는 일이었다.
지셀은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아버지 쪽을 바라보았다.
즈발터는 피곤함을 견디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눈두덩이를 주무르고 있었다.
‘내 아들이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모르겠구나.’
언제나 자신을 슬슬 피해 다니던 녀석이 제 발로 찾아와서 그래도 좀 흐뭇했는데, 어떻게 그 감정이 채 몇 분도 못 가는지 모르겠다.
기껏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큰 사고를 칠 테니 적극적으로 허락해 달란다.
사고 칠 걸 예고하는 대범함은 북부 사람답지만, 그 대범함을 좀 다른 방식으로 보여 주면 안 되었던 걸까.
‘차라리 다른 놈이 말했으면 감옥에라도 가둘 텐데. 진짜 자식이 뭔지.’
그래도 일단 허락을 구하러 왔으니 답은 해 줘야 했다.
즈발터는 한숨을 내쉬고,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허락할 수 없다. 괜히 숲을 건드려서 몬스터들이라도 튀어나오면 영지의 피해가 커진다.”
“뭐,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어허! 안 된다니까! ……응? 알겠다고?”
“네, 허락 안 하신다면서요.”
“그, 그래.”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지셀의 모습에 즈발터는 조금 당황했다.
‘저놈이 순순히 받아들인다고? 왜?’
지셀은 저렇게 말을 잘 듣는 성격이 아니었다.
말로 해서 알아듣는 놈이었으면 사고뭉치 망나니라 불릴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놈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니.
즈발터와 마찬가지로 가신들 또한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다들 오랜만에 봐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하하하.”
지셀은 씩 웃은 뒤, 미련 없다는 듯 깔끔하게 몸을 돌렸다.
불안해진 호메른이 다급하게 그의 뒤에 대고 외쳤다.
“대공자님! 이번에도 사고 치면 정말 탑에 감금할 겁니다! 명심하십시오! 이번에는 모든 가신이 동의할 겁니다!”
“네, 네. 그러시든가요.”
지셀은 돌아보지도 않고 어깨를 으쓱하며 그대로 나가 버렸다.
대전에서 조금 멀어지자 그는 따라 나온 길리언을 바라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분위기가 안 좋아서 소개도 못 했네. 내가 여기서는 인기가 별로 없거든.”
사실 다른 곳에서도 인기가 없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듯, 길리언은 고개를 저으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괜찮습니다. 공자님이야말로 괜찮으십니까? 마수의 숲은 위험해서 허락하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너무 실망하지 마시지요.”
“내가 왜 실망해?”
지셀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누가 봐도 순순히 마음을 접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태도였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말에 길리언은 충격을 받았다.
“허락이야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거지. 나도 허락받으러 간 건 아니야. 허락을 받든 못 받든 무조건 진행할 생각이었거든.”
“네? 그냥 진행한다고요?”
“그래. 지금은 그냥 예의상, 혹시나 하고 말해 본 거야. 허락을 못 받았으니 이제 강제로 진행할 수밖에 없네.”
“공자님, 안 됩니다. 영주님께서 직접 하지 말라 명하신 일입니다.”
영주가 하지 말라는데도 밀어붙였다가 들키면 아무리 지셀이라 해도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다른 것도 아니고 사병을 모으는 일이 아닌가.
길리언이 걱정스럽게 만류했지만, 지셀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성공하면 그만이지. 결과로 말해 주면 돼. 답은 정해져 있거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뻔뻔하게 장담하는 지셀의 태도에 길리언은 말문이 막혔다.
도무지 이 막 나가는 공자가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돈도, 병력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지셀이 피식 웃었다.
“아, 길리언은 모르는구나. 나 돈 좀 있어. 아마 우리 영지에서는 내가 제일 부자일걸?”
“네?”
“부자 약혼녀가 파혼 선물로 돈을 좀 많이 줬거든. 그 돈으로 개척 사업을 시작할 거야. 물론 첫 수익이 생길 때까지는 최대한 아껴 써야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여자군.”
“파혼 선물이라고요……?”
길리언이 다시 한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파혼은 귀족 세계에서 엄청난 불명예였다. 그런데 파혼을 당해 놓고 당당한 것도 모자라 뿌듯해하다니.
‘이, 이게 털털한 건지…… 그릇이 큰 건지…….’
조금 전 분위기를 보면 영지의 다른 사람들은 파혼이 됐다는 사실도 모르는 거 같았다.
아직 정식으로 파혼 절차가 진행된 건 아니기에 일어난 상황이지만, 두 사람이 결혼할 리는 없으니 파혼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런데도 지셀은 파혼하기로 했다는 소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다.
길리언은 더 놀라지도 못하고 입만 딱 벌렸다.
“병력은…… 용병을 모집하지.”
“용병 말입니까?”
“당장 개척에 필요한 병사들을 지원받을 수 없게 됐으니 용병을 써야지. 내가 멋대로 군대를 조직할 수는 없으니까.”
“얼마나 모집할 생각이십니까?”
“이백 명.”
지셀은 길리언의 물음에 마치 미리 준비한 듯 막힘없이 대답했다.
길리언이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이백 명이라면 소규모 영지전도 가능할 만한 수였다.
“정말 개척을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다른 사람들이 반대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게 중요한 거지.”
지셀이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길리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가신들이 그를 두고 사고뭉치에 망나니라 비난했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듯한 기분이었다.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가 말린다고 지셀이 들을 것 같지 않았다.
평생 갚아야 할 은혜를 입고 그를 모시기로 맹세했으니 최대한 지켜 주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잘 지켜 드리겠습니다.”
“그거 듣기만 해도 든든하군. 일단 용병부터 모아 보자고.”
“한꺼번에 이백 명이나 모은다면 어중이떠중이들이 섞일 수밖에 없습니다.”
길리언의 우려 섞인 말에 지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하지만 그 숲을 개척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하니 어쩔 수 없어. 쓸 만한 놈들은 따로 구해야지.”
“쓸 만한 놈들이라면…….”
“이 북부 지역에서 소규모 용병단 중 가장 실력이 좋은 곳이 어디지?”
길리언은 잠시 고민하다가 곧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 미친개들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셀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래. 켈베로스 용병단. 미친개들한테 목줄을 채워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