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35)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35화(235/269)
235화 먼저 쳐야겠습니다. (2)
즈발터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물었다.
“우리가 먼저 치자고?”
“네. 항상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순 없지 않습니까?”
“네 마음은 잘 안다. 우리도 같은 마음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땅은 넓고 부족은 너무 많아. 당장 우리의 전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다시 기다리겠다는 겁니까?”
“그게 최선이다.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던 6개 부족은 이미 없어졌어. 그놈들이 없으면 상황은 크게 나아질 것이다.”
즈발터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는 안다.
하지만 지셀은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인근의 부족이 없어져?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다른 놈들이 그 자리에 눌러앉아 극성을 부리며 이곳을 괴롭힐 텐데.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후방을 안정시켜야 했다.
“저도 완전히 토벌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러기에는 수도 너무 많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까요. 저희도 그놈들을 다 잡아 족칠 만한 여유는 없습니다. 대신 당분간은 이곳에 얼씬도 못하게 혼을 좀 내 주려고 합니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 자칫 잘못하면 야만인들이 반발하며 다시 뭉칠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이쪽이 위험해진다.”
작은 부족들을 하나하나 쓸어 버리는 건 어려울 게 없다. 하지만 이번처럼 야만인들이 연합을 하게 되면 큰 곤욕을 치르게 된다.
전력이 부족한 페르디움으로서는 야만인들이 대규모로 모일 위험을 최대한 피하는 게 맞았다.
즈발터가 걱정 어린 말투로 달랬지만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식량난이 심해진 건 야만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다고 저놈들이 가만히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결국 이대로 두면 일부는 뭉쳐서 또다시 쳐들어올 겁니다.”
“으음…….”
즈발터는 반박하기 어려워 침음만 흘렸다.
야만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소수 부족 단위로 꾸준히 약탈을 시도할 것이다.
그게 계속 막힌다면 또다시 대규모로 뭉쳐서 몰려올 수도 있었다.
요새가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번처럼 전선이 뚫려 버리면 왕국 안에서 야만인들이 설치게 된다는 것이다.
피해를 본 다른 영지들은 전부 페르디움에 책임을 물을 게 뻔했다.
‘하아, 언제나 같은 고민을 하게 되는구나.’
한 영지에서 전부 책임지고 막기에는 너무나 힘이 들었다. 그것도 가난하고 가진 게 별로 없는 페르디움 같은 영지라면 더욱더 어렵다.
왕국 차원에서 도와주면 좋으련만, 다들 욕심을 부리고 권력 다툼만 하느라 바빴다.
“끄응…….”
즈발터는 고민에 빠졌다.
역대 페르디움의 전략은 항상 같았다. 길목을 막고 방어하는 것.
그게 가장 효율적이라서가 아니다. 애초에 나가서 움직일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이 갑자기 먼저 쳐들어가자고 하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셀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정말 나가서 싸워도 되는 걸까?’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불안감이 먼저 들었다. 안정과 유지를 추구하는 즈발터의 성격과는 영 맞지 않는 방책이었다.
머뭇거리는 즈발터에게 지셀이 자신의 신조를 말해 주었다.
“아버지도 기사라 잘 아실 겁니다. 싸움에서 먼저 때리는 것과 맞는 것, 어느 쪽이 더 유리합니까?”
“그야……. 먼저 때리는 게 유리하기는 하지.”
즈발터는 클로드처럼 ‘선빵 필승’ 같은 천박한 말은 쓰지 않았다. 그는 품격 있는 북방의 귀족이었으니까.
하지만 지셀은 품격 따위는 집어던지고 현실을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먼저 맞기만 했습니다. 덕분에 계속 가난해졌고요.”
그 말에 즈발터가 발끈했다. 아버지한테 대놓고 맞았다고 하다니!
“어허! 우리도 반격해서 결국 다 막지 않았느냐. 뭐, 가끔 지금처럼 우회한 놈들 때문에 놓친 적도 있지만……. 그건 너도 알다시피 전선을 길게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셀은 그런 변명은 듣지 않았다. 중요한 건 매번 이쪽이 먼저 당하기만 했다는 거다.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도 합니다. 그래도 복수를 안 하니 계속 건드리는 거죠. 전 그런 거 못 봅니다. 이제 참지 않아도 되니까 가는 겁니다.”
“…….”
즈발터는 생각했다. 도대체 이 성질은 누구를 닮았을까?
‘제 엄마를 닮은 게 분명해. 내 성격은 아니야. 난 이렇게 독하지 않다고.’
즈발터가 대답하기도 전에 같은 안전주의자인 클로드가 끼어들었다.
“전 반대입니다.”
“넌 또 왜?”
“아, 말 구했잖아요! 왜 일부러 또 싸우냐고요! 평소 생활에 자극이 그렇게 부족하세요? 지금도 충분히 우리는 다이내믹하게 살고 있거든요?”
“그러면 그냥 내버려 두자고?”
“요새 근처에 큰 마을을 형성하고 사람들을 모으면 됩니다. 예전에야 먹여 살릴 방법이 없으니 못 했어도, 지금은 식량이 넘쳐나니 가능하거든요.”
지셀의 주장도 이해는 하지만, 클로드도 굳이 더 싸울 필요까진 없다는 즈발터의 의견에 동의했다.
인근의 야만인들은 사라졌으니 당분간은 이쪽을 공격할 부족도 없을 것이다. 혹여 다른 부족이 연합해 온다 해도 그들이 오기 전에 준비를 다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안 싸우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뭐 하러 싸운단 말인가?
옆에서 듣고 있던 란돌프도 말했다.
“그게 나을 거 같습니다. 야만인들이 또 연합한다는 보장도 없고, 혹시나 연합한다 해도 자기네들끼리 싸우느라 시간이 걸릴 테니 마을을 새로 만들 시간은 충분합니다.”
그러자 페르디움의 다른 가신들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을 피하지는 않지만 굳이 시비를 걸 마음은 없는 것이다.
그들이 그간 야만인들과의 전투에서 느낀 피로감은 그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지셀은 모두를 둘러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고민하는 듯한 모습에 클로드가 자신감을 얻고 다시 밀어붙였다.
“어때요? 제 생각이 괜찮죠? 말도 2천 필이나 넘게 구했고, 안전하게 사람들도 보호하고!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
‘전쟁에 끼기 싫다고요…….’
클로드는 마지막 속마음을 숨긴 채 말했다. 그러자 지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싫어.”
‘왜 이 새끼는 항상 사람 말을 안 들을까?’
속마음을 숨긴 클로드가 소심하게 물었다.
“……왜요?”
“아예 여기를 다시 칠 엄두도 못 내게 해야지.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말도 2천 필 정도로는 부족해.”
지셀은 정말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의 성격에 이 정도로 끝낼 거면 아예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3개월 안에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얻어야 해.’
발루아 남작의 내전이 시작되면 아멜리아는 한동안 이쪽에 신경을 쓰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오래 비울 수는 없었다.
해럴드와 공작가가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암살 시도를 역으로 이용해 큰 손해를 입혔으나 데스몬드는 대영지인 만큼 회복도 빠를 터였다. 3개월 이상 시간을 끌어서 좋을 건 없었다.
‘앞으로 벌어질 내전에 집중하려면 이곳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어. 확실하게 기강을 잡고 가야지. 우리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서 벌벌 떨 정도로.’
후방을 안정시켜야 정말 필요할 때 페르디움의 군대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병력이 비어 있는 틈을 타 야만인들이 몰려오게 둘 수는 없었다.
단호한 지셀의 대답에 즈발터가 답을 알면서도 넌지시 물었다.
“내가 반대해도 따로 갈 거지?”
“그럼요, 대신 도와주시면 훨씬 더 일이 편해지겠죠. 기마병과 페르디움의 기사들이 꼭 필요하거든요.”
아무래도 펜리스의 기사들은 야만인들보다 기마술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페르디움의 기사들과 기마병들은 야만인들 못지않게 기마술이 뛰어나다.
다들 이곳에서 그저 수성만 한 게 아니라 야만인들과 추격전도 벌였기 때문이다.
즈발터는 한숨을 푹 쉬더니 곧 각오를 단단히 굳히고 말했다.
“그래,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패자.”
어차피 말려도 듣지 않을 아들이다. 그럴 바에는 조금이라도 더 성공 확률을 올리는 게 나았다.
그 소식에 기뻐한 자들은 오히려 페르디움의 기사와 병사들이었다.
“드디어 그놈들을 조지러 가는구나!”
“으하하하! 잘 됐습니다! 매번 막고 쫓기만 하던 거 지겨워 죽을 뻔했는데!”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혼쭐을 내 줄 테다!”
다들 신이 나서 몸을 들썩거릴 정도였다.
그나마 부족한 병력을 조금이라도 아껴 보겠다고, 페르디움은 한 번도 선제공격을 한 적이 없었다.
완전한 토벌이 아닌 이상 몇 번 이겨 봐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셀이 무려 400명이나 되는 기사들을 끌고 왔다. 이 정도면 작은 부족 몇 개 정도는 아예 증발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참에 야만인들을 잡아 죽이게 도와주면 안 되겠냐고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릴 정도였는데, 지셀 쪽에서 먼저 가자고 하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대공자님과 함께라면 어려울 게 없지!”
“그럼, 그 미친 마나 연공법을 만든 사람이니까!”
“이번에는 잘 따라 보자고!”
이들은 페르디움 공방전에서 지셀이 얼마나 활약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성과가 운이 아니었다는 건 카발디를 점령한 것으로 증명했다.
거기에 이번 전투에서도 엄청난 실력을 보여 주었다. 지셀의 전쟁 실력 하나만큼은 이제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펜리스 기사들의 실력도 확실하게 보았다. 그 엿 같은 마나 연공법을 익힌 게 분명했다.
일단 숫자가 깡패라고 저 인원이 다 같이 돌격하면 어지간한 놈들은 버티지도 못할 것이다.
펜리스와 페르디움 연합군은 바로 출정 준비를 마쳤다. 준비할 것도 크게 없었다. 요새를 거점 삼아 움직이면 된다.
갑옷을 입고 위엄 있게 나온 즈발터에게 지셀이 말했다.
“제가 군을 이끌고 갔다 오겠습니다.”
“뭐? 왜? 나는? 나 준비 다 했는데?”
“누군가는 이곳을 지키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다른 부족이 움직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끄응…….”
즈발터는 지셀을 흘겨봤다. 말이야 저렇게 하지만 자기 혼자 지휘하려고 핑계 대는 게 티가 난다. 왠지 소외감이 느껴졌다.
‘여보, 왜 그렇게 빨리 가서…….’
마누라라도 있었으면 둘이서 알콩달콩 여기서 기다릴 텐데.
“에휴, 너 알아서 해라. 네가 언제 내 말을 들었냐.”
즈발터는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혹시 모르니 누군가 요새에 남아 있기는 해야 한다.
총지휘관은 지셀이다. 이제 페르디움의 기사단장인 란돌프보다 신분도 높고 가문의 후계자라 명분도 충분했다.
지셀은 말에 올라타자마자 손을 들며 외쳤다.
“출발한다! 내 뒤를 빠르게 따라와라!”
펜리스의 기사 400명에 페르디움의 기사 20명, 기마병 200명은 바로 가장 가까운 야만인 부족의 근거지를 향해 움직였다.
야만인들은 계절이 바뀌거나 주변 상황이 달라지면 바로 거점을 옮긴다. 그렇기에 지금 확실히 파악된 곳부터 빠르게 밀어야 했다.
두두두두두!
6백 마리가 넘는 말이 한꺼번에 달리니 땅이 울리고 흙먼지가 무수하게 피어올랐다.
그때, 그들의 목표가 된 야만인들은 평화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아! 약탈 나가고 싶다!”
“얼마 전에 다른 놈들이 연합해서 호구 놈을 치러 갔다던데?”
“우리도 거기 낄 걸 그랬나?”
“크히힉! 잘도 끼워 주겠다. 우리랑 사이도 안 좋은데 하겠냐? 그 새끼들끼리 먹겠지.”
“그래도 요새 식량이 부족해. 다른 놈들을 털든지, 루타니아로 들어갈 다른 길을 찾아 보자고.”
그렇게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중 부족의 대전사가 크게 외쳤다.
“사냥 갈 시간이다! 모두 모여!”
이들이 꼭 약탈로만 먹고사는 건 아니다. 인근의 산과 숲을 돌아다니며 몬스터와 짐승을 잡기도 한다.
하지만 사냥감의 수는 한정되어 있으니, 다른 부족과 만나면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수의 숲 인근을 차지하고 있는 대부족 정도는 되어야 그런 부분에서 조금 자유로웠다.
작은 부족들은 대부족 전사들의 눈을 몰래 피해 목숨을 걸고 마수의 숲에 들어가곤 했다.
마수의 숲은 페르디움을 넘어 북방의 대지까지 일부 차지할 정도로 넓었기에, 일단 들어가는 걸 들키지만 않으면 사냥감을 구하기는 차라리 쉬웠으니까.
“어? 저거 뭐야?”
“어떤 놈들이 몰려오는 거지?”
“저, 적이다! 전투 준비해!”
사냥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던 야만인들은 갑자기 자신들 쪽으로 몰려오는 군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다른 부족이 쳐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전원이 빛나는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자들을 확인한 야만인 전사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
“요, 요새 놈들이다! 저놈들이 왜? 왜 갑자기 여기에 온 거지?”
한 번도 먼저 온 적이 없던 호구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처음 겪는 일에 그들은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이쪽으로 쳐들어온 적이 없던 놈들이라 대비할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전투 준비도 제대로 못 하고 엉망으로 흩어지는 야만인들을 보며, 지셀이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더 이상 호구 취급을 당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니, 그런 결심은 아주 예전부터 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봐주고 있었을 뿐.
이제 저들에게 그간 자신들을 약탈하고 괴롭힌 대가를 받아낼 시간이다.
지셀은 창을 비스듬히 들며 외쳤다.
“모두 쓸어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