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53)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53화(253/269)
253화 아주 미치도록 멋진 곳이지. (3)
카오르는 숫자를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었다.
“1만?”
지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카오르는 불신 가득한 어조로 되물었다.
“……진짜 10만 마리요?”
끄덕끄덕.
카오르는 불같이 화를 내었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10만 마리라니! 어떻게 몬스터를 그렇게 잡아요? 그렇게 잡을 수 있는 곳이 있습니까? 아, 좀! 장난치지 말고 솔직히 말해 달라고요!”
“왜 없어? 있잖아. 몬스터가 끊임없이 나오는 곳.”
“그딴 게 어디 있……. 어? 혹시?”
“그래, 네가 생각하는 거기 맞아. 유명한 데.”
카오르는 잠시 넋이 나간 표정을 짓다가 다시 물었다.
“거기 몬스터가 많다고 소문이 나긴 했지만 …… 정말 10만 마리나 있어요?”
“그럼, 그러니까 이렇게 오랫동안 난리가 난 거지. 한 번에 그만큼 나오진 않아도 꾸준하게 계속 나오니까 숫자는 충분히 채울 수 있어.”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라고요?”
“하루에 100마리씩 잡으면 몇 년 안 걸려.”
“…….”
“더 빠르게 하고 싶으면 천 마리씩 잡든가.”
“…….”
카오르는 할 말이 없었다.
자신도 미친개라 불릴 정도로 정상은 아니지만, 눈앞에 있는 영주는 그냥 자신과 종족 자체가 다른 거 같았다.
침묵하는 카오르를 보며 지셀이 말을 이었다.
“뭐, 그 정도로 목숨 걸고 노력할 자신 없으면 조용히 가서 수련이나 해.”
못 한다고 하면 창피하다. 사나이 카오르는 바로 고개를 오만하게 쳐들었다.
“할 수 있거든요?”
“아니야, 생각해 보니까 안 되겠다. 좀 위험하긴 해. 너 싸움 못 하잖아.”
카오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다. 그는 바로 발끈했다.
“저 싸움 잘합니다!”
“길리언 이겨?”
“……아마? 이길걸요?”
“뭐, 그렇다면야……. 그럼 나랑 같이 가자. 겸사겸사 가죽도 구해 오고.”
“영주님이 왜 갑니까?”
삐딱한 카오르의 대답이 지셀이 픽 웃었다.
“너 혼자 보내면 금방 죽을 거 같아서. 거기 상당히 위험한 곳이거든. 너 싸움 못 하잖아.”
“……잘한다니까요.”
“그래, 어쨌든 가서 적응만 좀 도와주고 난 돌아올 테니까 바로 움직이자고.”
갈 때는 같이 가는데 올 때는 영주 혼자 돌아온다고 하니 카오르는 살짝 불안해졌다. 사실 낯선 곳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우리 둘만 갑니까?”
“아니, 허약하고 게으른 놈들은 다 데리고 가야지.”
지셀이 다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 * *
영지에서 피를 토하며 수련을 하던 기사들 중 50명이 갑자기 차출됐다.
지셀과 길리언은 그간의 성과와 수련 상태를 보고 그림자 산맥에 갈 사람을 고르고 골랐다.
기사들 중 실력이 가장 떨어지거나, 갈수록 요령을 피우고 나태해지는 자들이었다.
기준이 다양하다 보니 기사들은 정확히 어떤 이유로 자신들이 뽑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가는데 우리만 뽑은 거지?”
“잘생긴 순으로만 뽑은 건가?”
“너 얼굴을 보면 그건 아닌 거 같아.”
웅성거리는 기사들 사이로 지셀이 와서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몬스터를 사냥하러 간다.”
기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아직 제대로 들은 게 없었다. 수련하다가 갑자기 끌려왔으니까.
“마수의 숲으로 가는 겁니까?”
예전 룬스톤을 얻을 때 같이 갔던 용병이 물었다. 그는 조금 긴장한 기색이었다.
같이 갔던 용병들 절반 이상이 죽었던 험난한 여정이었다. 살아 돌아오고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지긴 했지만, 그 지긋지긋하고 끔찍했던 기억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지셀은 고개를 저으며 여유롭게 말했다.
“아니, 그곳은 아니다.”
“그럼 어디로 가는 겁니까?”
“영지에 가죽이 부족해서 몬스터가 많은 곳으로 간다. 튜리안 왕국의 그림자 산맥. 진짜 가볍게 갔다 오는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지셀의 기준으로는 정말 가벼운 일이었다. 전생에서도 용돈벌이 삼아서 심심할 때마다 몸 좀 풀러 자주 가 봤으니까.
“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지셀의 모습에 기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그림자 산맥의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몬스터가 수상할 정도로 끊임없이 나오는 위험한 곳.
그런데 크게 겁이 나진 않았다. 소문만 들었을 뿐, 실제로 겪어 보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나름대로 전쟁을 겪으며 실력도 꽤 늘었고, 승리했다는 자신감도 늘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헌터도, 요새도 많다고 들었다. 몬스터? 그까짓 것 영주랑 같이 가면 몇백 마리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많이 가는 거 아닙니까? 이 정도면 몇천 마리도 잡겠는데요?”
“가죽이 좀 많이 필요한가 봅니다?”
“어휴, 가서 몸 좀 풀고 와야겠네.”
기사들은 긴장이 풀려 마구 웃었다.
저 괴물 같은 영주만 해도 어마어마한 전력인데, 거기에 기사가 50명이나 간다? 몬스터들은 그냥 씨가 마르는 거다.
웃고 떠드는 기사들을 보며 지셀도 미소를 지었다.
“그런 자신감들 아주 좋아. 그냥 빨리 많이 잡으러 가는 게 맞아. 소풍 가듯이 가면 된다고.”
기사들의 분위기가 더욱더 화기애애해졌다.
마침 요새 죽어라 훈련만 하느라 힘들었다. 거기다 같은 수련만 반복하니 지겨워서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밖에 나가서 몬스터들 좀 잡고 여행도 하다 오면 스트레스가 확 풀릴 거 같았다.
‘이런 꿀맛 같은 기회가 올 줄이야. 역시 사람은 밖에 자주 나가서 놀아야 한다니까.’
‘후후후, 내가 실력이 뛰어나서 뽑았나 보군. 하긴, 이 몸이 아니면 빨리 잡을 수가 없겠지.’
‘내가 너무 열심히 해서 잠깐 쉬게 해 주는 건가?’
다른 기사들은 뽑힌 기사들을 무척 부러워했다.
‘내가 저놈보다 더 강한데!’
‘내가 더 열심히 했는데!’
‘좋겠다! 놀러 가고, 몬스터 몇 마리 잡고 여행도 다녀오고! 맛있는 것도 먹겠지?’
자신들도 데리고 가 달라고 떼쓰고 난리를 피우고 싶지만, 괜히 특별 교육을 받고 싶지 않아서 꾹 참았다.
물론 모두가 부러워한 건 아니다. 지셀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몇몇 기사들은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주가 직접 간다고? 그럼 같이 안 가는 게 낫지.’
‘힘들어도 그냥 여기서 훈련받는 게 나아.’
‘같이 밖에 나가면 죽을 수도 있는 거야.’
기사들이 무장을 챙기고 채비를 갖추자 클로드가 와서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간단한 건조 식량만 챙겼습니다. 도착하시는 시간에 맞춰 보급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차질 없이 진행하라고. 데스몬드랑 아멜리아 쪽도 감시는 쉬지 말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콩이 좀 데리고 와. 이제 그거 타고 다닐 거야.”
“……콩이가 뭡니까?”
“검정콩이 말이야. 내가 새로 얻은 말.”
클로드가 사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발 이름 좀 바꾸시면 안 됩니까?”
“왜? 이쁘잖아? 귀엽잖아?”
그러자 주변에 있던 가신들도 모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깡패 같은 말에 그딴 귀여운 이름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진짜 이름 바꾸셔야 합니다. 주변에서 모두 비웃을 겁니다.”
“영주님이 전장에서 타는 말의 이름이 그게 뭡니까? ‘콩이를 타고 나타났다!’ 이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영주님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그런데 제발 이름만은 직접 짓지 말아 주세요.”
가신들은 울상을 지었다. 막 나가는 건 다 좋지만 이건 진짜 아닌 거 같았다.
“으음…….”
가신들의 박력에 지셀도 한걸음 물러났다.
미래의 일은 확신이 있으니 밀어붙였다. 싸움 등 자신 있는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다들 이렇게 한마음으로 반대하니 정말 자신이 이름을 못 짓는 건지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다.
전생에도 자신이 이름을 지으면 용병들이 배를 잡고 비웃은 일이 간혹 있긴 했다. 무식한 놈들이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몇 대 때리면 다들 좋다고 하긴 했지만.
그때처럼 가신들을 패기는 좀 그렇다. 용병들과 다르게 비웃는 것도 아니고, 제발 하지 말라고 사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대부분 허약한 놈들이라 몇 대 때리면 바로 죽어 버릴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적당히 양보해 주기로 했다.
끌려온 콩이를 보며 지셀은 잠시 고민했다. 멋진 이름을 지어야 한다.
전생에 자신의 칭호가 무엇이었는가? 바로 대륙 7강이자 용병들의 왕이었다. 그러니 말 이름에도 왕이 붙는 게 나을 거 같았다.
‘말왕?’
이상하다. 아무리 자신이 이름을 귀찮아서 대충 짓는 성격이라도 말왕은 좀 아닌 거 같았다.
“이놈 엄청 빠르잖아. 스피드왕 어때?”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지셀은 다시 말을 훑어보았다.
검은색의 갈라진 근육과 갈기가 참 멋지다.
말도 제가 멋진 줄은 아는지 갈기로 한쪽 얼굴을 가리고 한 번씩 고개를 휙 저으며 넘기곤 했다.
“좋아, 검은색이니 넌 이제부터 흑왕이다.”
클로드가 가만히 보고 있다가 물었다.
“말 따위한테 정말 왕이라는 이름을 붙인다고요?”
“그래. 내가 타고 다닐 건데 그 정도는 붙여줘야지. 어쨌든 이제 귀찮으니까 반론은 그만 받겠다. 이 정도면 충분해. 그리고 애칭은 여전히 콩이다. 알겠어?”
가신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타협해 준 것만 해도 어디인가.
그래도 흑왕이란 이름은 좀 위엄이 있어 보였다. 공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불리고 기록이 남으면 된다.
‘애칭은 제발 혼자 있을 때만 부르십쇼.’
흑왕도 새로 받은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이빨을 내보이면서 푸륵거렸다.
말 이름이 걸린 실랑이가 끝나자 길리언이 와서 물었다.
“정말 제가 안 가도 되겠습니까?”
“응, 기사들하고 병사들도 계속 훈련시켜야 하니까. 금방 돌아올 테니 괜찮아.”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길리언이 인사를 하자 지셀은 옆에 있는 아렐에게 말했다.
“내가 다녀올 때까지 기본 수련을 게을리하지 마라. 마나 연공법은 체력이 어느 정도 크면 가르쳐주겠다. 그때까지 길리언의 말을 잘 따르도록.”
“알겠습니다!”
아렐은 고개를 넙죽 숙였다. 그는 지금 영지에서 잘 먹으며 체력 훈련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몸이 워낙 허약해 일단은 기본적인 체력을 다지고 훈련에 익숙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야만인 토벌 중에 갑자기 주워 온 시골 소년이지만 영지 사람들은 아렐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다. 지셀의 제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벨린다도 아렐을 지셀의 동생처럼 끔찍하게 챙기니 다들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 잘 다녀오세요. 어휴, 요새 일이 바빠서 못 따라가니 걱정이 한가득하네요. 끼니 거르지 마시고요.”
“그래, 걱정하지 마. 금방 다녀올 테니까.”
지셀의 실력을 알게 된 벨린다는 이제 예전만큼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물론 실력과 별개로 저 성격 때문에 여전히 걱정되는 건 변함없었지만.
적당히 인사가 끝나자 지셀과 기사들은 바로 출발했다. 카오르는 길리언의 옆을 지나며 속삭였다.
“내 말 똑똑히 기억해 둬. 내가 다시 돌아오면 그땐 영감을 부숴 버리겠어.”
“…….”
길리언은 이번에도 못 들은 척 무시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주먹부터 날려서 반 죽여 놨을 텐데 지셀의 앞이라 그냥 무시하는 것이다.
카오르도 본능적으로 그걸 아는지 언제나 다 같이 있을 때만 시비를 걸었다. 단둘이 있을 때 시비를 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자신을 무시하는 건 언제나 열 받는반응이다.
‘크윽, 두고 보자! 빨리 10만 마리 채워서 반드시 꺾어 버릴 거야.’
열이 오른 카오르와 함께 지셀과 기사들은 튜리안 왕국으로 향했다.
기마술 훈련을 명목으로 쉬지 않고 움직인 덕분에 그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튜리안 왕국의 그림자 산맥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와…….”
“여기가 말로만 듣던 그림자 산맥…….”
“정말 엄청나구나.”
높이 솟아오른 산맥은 그 이름에 어울리게 주변에 깊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기사들은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들에 덮인 산맥은, 짙은 어둠에 윤곽선이 모두 일그러진 것만 같았다.
그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는 이 산맥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강조하는 듯했다.
산맥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서야 기사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조금 정정해야 했다.
‘이거…… 놀러 온 게 아닌 거 같다.’
‘내가 잘생겨서 온 것도 아닌 거 같다…….’
‘예감이 좋지 않아.’
튜리안 왕국에는 그림자 산맥을 따라 요새가 여럿 지어져 있다. 이 요새들은 몬스터가 가장 많이 몰려오는 곳에 지어졌다.
그 때문에 요새 뒤에는 혹여나 요새가 뚫렸을 때 도시를 지키기 위해 장벽들이 세워져 있었다.
산맥을 전부 장벽으로 감싸는 건 불가능하기에, 몇몇 도시로 가는 길목만 막는 형태였다.
요새도, 장벽이 없는 곳으로 몬스터들이 들어오면 헌터들이나 왕국군이 나가서 처리했다.
그 틈으로 내려오는 몬스터는 요새나 장벽이 세워진 주요 거점에 내려오는 것보다는 적었기에 아직 큰 문제는 없었다.
지셀과 기사들이 향한 곳은 요새 중에서도 크기로 손꼽히는 요새 중 하나인 ‘아이언클리프’였다.
요새에는 많은 헌터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모든 요새는 도시의 역할도 겸한다.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요새를 보며 기사들은 입을 쩍 벌렸다.
과연 수없이 몬스터와 싸워 온 요새답게 웅장한 모습이었다.
요새 앞에 도착하자마자 카오르는 의욕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자마자 짐 풀고 몬스터부터 잡으러 가면 됩니까?”
지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새로운 동네에 오면 먼저 해야 할 게 있어. 특히 이런 무법자들의 도시에선 말이지.”
“그게 뭔데요?”
지셀이 주먹을 들어 올리며 씨익 웃었다.
“사람을 패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