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54)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54화(254/269)
254화 이곳은 우리가 접수한다. (1)
쿠웅!
거대한 요새의 문이 열렸다. 지셀과 기사들은 느긋하게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신분을 검사하지 않는다. 오는 자는 막지 않고 가는 자는 잡지 않는 게 이곳의 법이었다.
요새 안에 들어온 자들은 몇 가지의 룰만 지키면 된다.
― 요새 안에서는 살인을 금한다.
― 요새 안에서는 신분의 고하를 따지지 않는다.
― 누구든 강제로 타인을 요새 밖으로 끌고 나갈 수 없다.
그 외의 문제들은 헌터들끼리 개인적으로 해결하게 했다.
튜리안 왕국은 끊임없이 몬스터들과 싸우고 헌터들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다. 귀족의 권위를 인정하면 지금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균형도 깨지고 말 것이다.
귀족들이 마음대로 헌터들을 죽이고 범죄자라고 강제로 끌고 간다면 튜리안 왕국으로서는 큰 손해였다.
‘헌터들은 죽더라도 몬스터와 싸우다 죽어야 한다.’
튜리안 왕국은 그런 자세를 고수하며 타국 귀족들까지 강력하게 제재했다.
그 때문에 대륙에서 떠돌던 많은 범죄자가 그림자 산맥의 요새들로 숨어들었다.
요새 안은 일반적인 도시와 별다를 게 없었다. 그저 다른 도시보다 시설들이 조금 더 지저분하고 조잡하며, 곳곳에 피가 묻어 있을 뿐이었다.
“어휴, 더러워.”
“도시가 무슨 전쟁터 한복판 같네.”
“오래 있으면 병 걸리겠다.”
깨끗하고 살기 좋아진 영지에서 지내는 데 익숙해진 기사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곳곳에 보이는 헌터들의 복장은 가지각색이었다. 일반적인 갑옷을 입은 자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몬스터의 뼈나 가죽으로 만든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자들이 등장하자 삐딱한 자세로 지셀과 기사들을 노려보았다.
다들 목숨을 걸고 몬스터 사냥을 오래 한 자들이라 흉포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흠.”
헌터들을 보고 지셀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런 분위기를 꽤 좋아한다. 건수만 잘 잡으면 한바탕 시원하게 몸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셀과 함께 온 기사들도 헌터들 못지않게 성질이 더러운 자들이었다.
“뭘 꼬나봐? 이 새끼들아.”
카오르가 건들거리며 헌터들을 같이 노려봤다.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용병 일을 하던 시절 같았으면 헌터들의 기세에 눌려 긴장했겠지만, 그들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여러 전쟁을 겪으며 가히 사람 백정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거듭났다.
“흐흐, 어디서 귀족분이 오신 모양이네.”
“여기에 왜 오셨을까?”
“저 갑옷들 팔면 꽤 비싸겠는데?”
지셀 일행의 날카로운 반응에도 헌터들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관찰하기만 했다.
모두가 같은 갑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국에서 정식으로 파견된 자들인지 파악하기 전에는 쉽게 손을 쓸 수 없었다.
덕분에 당장은 싸움이 나지 않았다. 지셀도 헌터들에게는 신경 쓰지 않고 요새 중앙의 건물로 향했다. 카오르와 기사들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중앙에 있는 건물은 헌터 신분증을 발급해 주고 이곳의 법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받는 곳이었다.
튜리안의 기사는 지셀의 신분을 확인하더니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곳에서는 귀족 신분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천한 노예도 백작님과 동등하다는 뜻이지요. 동의하십니까?”
“동의한다.”
“분쟁이 일어나도 저희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한다.”
“살인은 금지입니다. 가끔 대결하다 사고로 죽는 자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금지 사항입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한다.”
“그럼 이곳에 서명하시지요. 헌터 명단에 등록하고, 동의서는 왕실로 바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서류를 받은 지셀은 시원하게 자신의 인장을 찍었다. 이제 이곳에서 지셀은 귀족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헌터일 뿐이었다.
지셀의 동의서를 받은 튜리안의 기사는 마지막 설명을 전했다.
“저희는 그저 이 요새가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도록 관리만 할 뿐입니다. 저희와 이 건물을 건드리지 않으면 나서지 않습니다. 헌터들과 문제가 생기면 알아서 해결하시면 됩니다. 저희는 어떠한 도움도 드릴 수 없습니다.”
“알겠다. 아직 숙소를 못 잡았는데 이곳에 말을 좀 맡기고 가도 되겠나?”
“처음 오셨으니 그 정도 편의야 봐 드릴 수 있죠.”
“그래, 그러면 얼른 묵을 곳을 구하고 오지. 뭐,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야.”
그러자 튜리안의 기사가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무법 지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모쪼록 즐겁게 지내다가 돌아가시길.”
지셀이 등록을 마치고 나오자 쥐새끼처럼 생긴 남자 하나가 다가왔다.
“보아하니까 이곳에 처음 오신 거 같은데? 헌터 등록을 하신 거 맞으십니까?”
“맞는데?”
지셀의 말에 남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주변에 있던 헌터들도 눈을 빛냈다.
왕국에서 정식으로 파견 나온 자들이 아니었다. 쥐 상의 남자는 이제 거리낄 것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가 무법 지대라 하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 사는 곳에는 자연스럽게 ‘법과 질서’도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아, 돈 내라고?”
노골적인 지셀의 말에 남자는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이곳의 소문을 들은 게 있어서 쉽게 알아들었을 수도 있었다.
“얘기가 빨라서 좋군요. 이곳에는 ‘헌터 협동조합’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별 웃기는 이름의 단체가 다 있네?”
“헌터들끼리의 권익을 서로 보호해 주자는 취지에서 세워졌지요. 무조건 가입하는 게 좋습니다. 뭐, 약간의 가입비와 매달 협회비를 내야 하지만 말입니다.”
지셀은 잠시 턱을 쓰다듬다가 물었다.
“그걸 누구한테 내라는 거지?”
“협회비라니까요?”
“그 협회의 대가리가 누군데?”
“그야 이곳의 지배자이진 ‘아이언클리프의 왕’ 돈카드 님이죠.”
지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참 왕이 많다. 하긴, 내 말 이름에도 왕이 붙어 있는데 사람한테 못 붙을 건 없지.
이런 수작질은 전생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언제 봐도 참 재미가 있다.
“가입하면 혜택이 뭐가 있는데?”
“흐흐, 이곳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지요. 아무도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몬스터 사냥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말이지요.”
혜택이 너무 형편없다. 지셀은 이딴 혜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너희, 강도야?”
“네?”
“강도는 용서할 수 없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남의 것을 힘으로 빼앗는 놈들이야.”
“그게 지금 무슨…… 커억!”
지셀은 더 말하지 않고 그냥 주먹을 날렸다. 쥐 상의 남자는 반항하려 했지만 될 리가 없었다.
퍼억! 퍼억! 퍼억!
“억! 윽! 날 건드리면! 이곳의 왕인…….”
“오라고 해. 왕 낯짝 좀 보자.”
“커흑! 살려 주셋!”
쥐 상의 남자는 몇 대 맞지도 않고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그의 주머니를 뒤져 은화 몇 개를 챙긴 지셀이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오자마자 강도질을 당할 ‘뻔’한 내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금이다. 다음부터는 착하게 살도록.”
주변에서 구경하던 헌터들이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자마자 저런 식으로 사람부터 두들겨 패는 놈은 없었다.
그것도 이곳의 왕이라 불리는 돈카드가 보낸 사람을 말이다.
아무리 성질이 더러워도,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왕’이라는 이름을 듣고서는 일단 물러나는 게 정상이 아닌가? 상황을 파악한 뒤에 만나서 싸우든 협상을 하든 말이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든다고 주먹부터 휘두르다니, 성질이 더러워도 보통 더러운 놈이 아닌 거 같았다.
‘수하들을 많이 끌고 와서 겁이 없는 건가?’
‘돈카드 밑에만 300명이 넘을 텐데?’
‘조만간 재미있는 구경을 할 수 있겠군. 돈카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헌터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들은 지셀이 거느린 기사들을 진짜 기사라 생각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50명이나 되는 기사를 거느리는 대영주가 이런 곳에 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다 맞춰 입은 거겠지. 돈은 많아 보이는군.’
딱 이 정도가 그들의 생각이었다.
만약 지셀 일행의 수가 적었다면 주변에 있는 헌터들도 돈카드의 부하와 같이 그들에게 시비를 걸었을 것이다. 어쨌든 새로 온 놈들과는 서열 정리를 한 번은 해야 하니까.
하지만 당장 50명이랑 싸우기는 이들도 부담스러우니 일단 넘어간 것이다.
웅성거리는 주변의 소리를 듣고 카오르가 목소리를 낮추고 지셀에게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얘네들 다 뭉치면 꽤 수가 많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돈카드인지 돈가스인지 하는 놈이 이곳 대장인가 봅니다.”
“너 쫄았어?”
“안 쫄았거든!”
카오르가 발끈했다. 그도 텃세를 겪는 데는 익숙했다. 용병계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아직 요새 상황도 잘 모르니 조심한 것뿐이다. 왕이라고 불릴 정도라면 부하 수도 많을 테니 말이다.
어차피 끝까지 싸우면 자신이 다 이길 자신이 있었다. 정말이다.
투덜대는 카오르를 보고 지셀이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누가 위인지 알면 알아서 이쪽에 붙을 놈들이야. 실력만 보여 주면 돼. 법 없이 사는 놈들이라 주먹이 우선이거든. 일단 숙소부터 잡자.”
이곳에도 도시에 있을 만한 것들은 다 있었다. 상단들이 찾아와 헌터들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퇴한 헌터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가게를 차리면서 돈벌이를 하기도 한다.
몬스터에 밀리면 싹 다 날아간다는 위험 부담이 있고 물자도 부족하기 때문에 가격은 다른 도시에 비해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지셀은 성큼성큼 걸어 가장 큰 여관을 찾아갔다.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뒤를 따르던 기사들이 궁금해서 물었다.
“영주님은 어떻게 여기 길을 잘 아십니까?”
“헌터 등록하는 것도 잘 아시고요.”
“와 본 적이 있으십니까?”
지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내가 여기는 잘 알지. 특히 여기 아이언클리프는 자주 왔었거든.”
전생에 지셀의 용병단이 가장 많이 갔던 요새가 바로 이곳이었다. 어느 요새보다 많은 몬스터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급전이 필요하면 그냥 수하들을 끌고 와 산맥을 한번 쓸고 왔다. 또한 혼자서 오랜 시간 이곳에서 수련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지셀도 이곳에는 특별한 추억이 있었다.
‘특별한 놈도 있었고.’
훗날 대륙 7강으로 불리는 자가 이곳 튜리안 왕국에 있다. 아직은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환란 때 그 이름을 만방에 떨칠 것이다.
‘기회가 되면 한번 붙어 보자고.’
지셀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델파인 공작을 쓰러뜨리고 환란의 시기에 대비하는 게 그의 최우선 목표다.
하지만 강자와의 싸움도 그에게는 중요한 목표였다. 이번 생에야말로 대륙의 최강자 칭호를 거머쥐고 싶었으니까.
기사들은 흐뭇한 미소를 짓는 지셀을 보며 생각했다.
‘영주님은 아무튼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와.’
‘무슨 저 나이에 안 가본 곳이 없고 모르는 게 없어.’
‘총관이 자료 조사를 해서 다 가져다준 거겠지.’
능력이 대단하고 신기한 지식도 있다는 건 인정하겠지만,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 이제 좀 짜증 날 지경이었다.
따지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특별 훈련에 들어갈 게 뻔하니 기사들은 그냥 입을 꾹 닫았다. 말을 안 섞는 게 속이 편할 거 같았다.
그들이 찾아간 여관은 100명 이상이 충분히 머무를 수 있을 만한 큰 건물이었다. 뭔가 이것저것 덧대어 만든 듯 겉모습은 개판이었지만 어쨌든 제일 크다는 게 중요하다.
지셀은 건물의 외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여기가 제일 크군. 이곳을 우리 거점으로 삼자고.”
카오르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여기를 통째로 빌릴까요?”
“일단 들어가자.”
문을 열고 들어가자 험상궂게 생긴 중년인이 하품을 하며 컵을 닦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나른한 표정으로 카드 게임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헌터들이 꽤 많았다.
여관 내부는 상당히 지저분했다. 낡고, 어둡고, 바닥에는 벌레와 쥐도 돌아다닐 정도였다.
그래도 헌터들은 다들 익숙한지 무척이나 편히 쉬고 있었다.
여관 주인은 우르르 들어오는 지셀 일행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여기 처음 온 놈들인가? 영업 안 하니까 나가쇼.”
이렇게 헌터들이 많이 깔려 있는데 영업을 안 한단다. 딱 봐도 여관이 아니라 그냥 아지트로 쓰는 모양이었다.
지셀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여관 주인에게 다가갔다.
“손님이 이렇게 많은데 영업을 안 한다고?”
“영업이야 하든 말든 우리 마음이지.”
여관 주인은 컵을 내려놓고 지셀을 노려보았다. 이곳이 누구 영역인지 알면 감히 발을 들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언제나 이렇게 새로 온 애송이들이 문제다. 참 귀찮았다.
다시 손을 흔들어 내쫓으려고 하는데 지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괜찮아, 어차피 우리도 그런 하찮은 용건으로 찾아온 게 아니니까. 그냥 여기가 제일 커서 온 거야.”
“그럼 뭐 때문에 왔는데?”
지셀은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여관 주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부터 이곳은 우리가 접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