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67)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67화(267/269)
267화 다시 전쟁을 준비해야겠지? (2)
지셀은 그런 가신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가장 중요한 군사 현황은?”
가신들도 이미 어느 정도 지셀의 계획을 예측하고 있었다. 영주의 고약한 습관은 몇 번이나 겪어 봐서 안다.
영주는 뭐가 필요해도 누군가를 패지만, 뭔가를 준비해도 누군가를 팬다. 이 정도로 준비를 했으니 누군가를 팰 차례라는 뜻이다.
그래서 가신들은 그냥 포기하고 반대 의견을 내뱉지 않았다.
“모두 갈바니움 장비로 무장을 완료했습니다. 영주님 지시대로 병종에 가리지 않고 기마술과 궁술, 각종 무기술 훈련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훈련소와 병영 막사를 비롯한 군사시설도 모든 도시와 요새에 건설했습니다. 그런데 병력의 수에 비해 너무 많이 지어서 빈 곳이 더 많은 형편입니다.”
“징집에 대비해 영지민들도 기초 훈련은 받게 하고 있습니다.”
현재 펜리스의 병력은 그간 늘어난 병사들과 기사들까지 포함해 약 4천 명 정도였다. 이 정도면 이미 아버지의 영지인 페르디움의 전력을 뛰어넘은 상태였다.
왕국 전체를 통틀어도 이보다 병력이 많은 곳은 드물었다.
객관적으로는 절대로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공작가와 싸우기에는 턱도 없는 숫자였다. 아니, 공작가는커녕 데스몬드의 병력과 비교해도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아무리 기사들을 강화하고 정예병들을 육성해도 숫자에서 오는 전력 차이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병사의 수가 적을수록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의 수 자체가 줄어들고, 전투에 들어갔을 때 피해도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셀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클로드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병력 모집이 더뎌? 계속 모집하고 있었잖아? 잘 안 모이나?”
“일단 일이 너무 많지 않았습니까. 인부 모집과 영지 개발에 중점을 뒀으니까요. 그리고 영지민들도 병사로 복무하는 것보다 그냥 일하고 돈 받는 걸 더 좋아합니다. 군대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요.”
“흠, 그것도 방법을 찾아봐야겠네. 어쨌든 다들 곧 내전이 벌어질 건 알고 있지? 지금부터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해. 특히 병사들의 훈련과 군수 물자 확보를 말이야.”
영주의 고약한 습관과 상관없이, 언젠가 전쟁이 일어날 걸 모르는 가신들은 없었다.
이미 친왕파의 지셀은 공작파에 속한 카발디 백작을 잡아 죽이고 그 땅을 차지했다. 그리고 당시 데스몬드 백작은 군대를 움직여 지셀을 치려 했다.
지셀 때문에 친왕파와 공작파의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으니 내전이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한 거다.
클로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 전쟁 준비는 언제나 신경 쓰고 있습니다. 어떻게 움직일 거냐가 문제죠.”
장기적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전쟁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영지가 부강해야 하므로 다들 영지 개발에 전념했다.
지금은 그 혜택을 영지민들이 맛보고 있지만, 사실 펜리스 영지의 모든 사업은 군사력 증강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적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클로드는 항시 전쟁에 대비하는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그래, 잘하고 있어. 주변 영지의 움직임은 어떻지?”
“가장 중요한 데스몬드 백작이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병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곳을 치려는 게 뻔히 보이지만, 정말로 공격해 오는 건 본격적으로 친왕파와 공작파가 붙기 시작했을 때가 아닐까요.”
“브랜포드 후작 때문에라도 데스몬드 혼자 움직일 수는 없을 테니까. 아멜리아는?”
“아직도 발루아 남작과 소극적으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북부 영주들이 뒤를 노리고 있어서 조심하는 거 같습니다.”
그 말에 지셀은 웃었다.
자신 때문에 해럴드의 일이 꼬여 아멜리아의 반란이 앞당겨졌고 데이븐까지 살아남았다. 아마 그녀는 상당히 골치가 아플 것이다.
후계 서열이 더 높은 데이븐이 살아 있으니 전 레이폴드 백작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은 영주들은 명분을 내세워 레이폴드 영지를 침략할 수 있게 되었다.
북부의 관습상, 인근의 영주들은 여자가 영주가 되는 걸 절대 인정하지 않을 테니까.
거기에 아멜리아는 발루아 남작과 전쟁 중이었다. 다른 영주들은 그 틈을 이용해 레이폴드를 갈라 먹을 생각에 침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친왕파와 공작파는?”
“친왕파의 전 영주들이 도로 건설에 참여하니 공작파 영주들이 거슬렸나 봅니다. 친왕파와 맞닿아 있는 영지 경계에 군대를 배치했습니다. 친왕파도 건설 중인 도로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배치하는 중입니다.”
“오, 서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겠는걸?”
“네, 작은 시비만 붙어도 칼부림이 날 거 같습니다. 이게 다 미친 네놈 때문에……. 아니, 영주님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지셀은 다시 웃었다. 친왕파 영지와 붙어 있는 공작파의 영주들은 지금 정말 신경이 거슬릴 것이다.
도로가 제대로 완성되면 친왕파가 언제든 기습적으로 군대를 모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 때문에 전생보다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작은 계기 하나만 터져도 내전이 일어날 것이다.
친왕파도 공작파도 모두 자신이 주도하는 일에 끌려오고 있었다.
‘싸움의 계기는 내가 준비를 끝내고 원할 때 만들면 되겠지.’
물론 지금 공작가와 단신으로 맞붙는 건 무리다. 당장 직면한 목표는 데스몬드 백작부터 확실히 처리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어차피 친왕파가 막게 될 것이다.
전생에 친왕파는 기근 때문에 계속 밀리다가 결국 내전 때는 힘도 쓰지 못하고 져 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 덕분에 기근을 버텨 냈다.
내전이 시작되어도 데스몬드를 박살 낼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어 줄 것이다.
현재 펜리스의 병사들은 혹독한 훈련을 통해 정예로 거듭나고 있다. 무장과 식량 등 영지의 생산량도 이제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갔다.
‘그래도 아직은 약간 부족해.’
상처 입은 승리는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공작가에게 단숨에 밀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병력과 병기가 필요했다. 그래야 데스몬드를 압도적으로 무너뜨리고 북부를 제패할 수 있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공작가와 싸울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것이다.
지셀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병력 모집부터 박차를 가해라. 목표는 병사 1만 명이다.”
이제 총력을 다해 내전을 준비할 시간이었다.
* * *
영지의 모든 지역에 신병 모집 공고가 전달되었다. 어차피 상시 모집을 하던 중이라 영지민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영주가 계속 병력을 충원한다는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 정도로 그들은 평화로운 일상에 젖어 긴장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병력을 모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에 지셀은 일단 갈바릭부터 찾아갔다.
몬스터 사냥을 떠나기 전에 맡겨 놓은 장비가 완성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뭐야? 아직도 안 됐어? 다들 놀았지?”
“조, 조금만 기다리시오. 지금 마법사들도 전부 달라붙어서 노력하고 있으니까.”
영지 최고의 기술이 들어가는 장비들이다. 단순히 투구와 갑옷을 만든다고 끝이 아니었다.
각종 룬스톤을 넣고 그에 호응하는 마법진을 새겨야 한다. 그런데 개념만 덜렁 적힌 설계도만으로는 그걸 완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 벌만 제대로 만들면 다음은 공정을 반복하기만 하면 되니 훨씬 쉬워진다. 하지만 지셀이 원하는 만큼의 성능을 보이는 첫 한 벌이 도무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지셀이 자리를 비웠으니 며칠 놀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걸 알게 된 지셀은 매일 갈바릭을 찾아갔다.
“아직도 다 안 됐어?”
“조금만 더 기다려…….”
“오늘은?”
“며칠만 더…….”
“언제 되는데?”
“곧…….”
영주가 없는 틈을 타 여유롭게 작업하며 놀았던 건 변명의 여지가 없긴 하지만, 오자마자 이렇게 재촉을 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하씨, 괜히 놀았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렵네.’
‘저 성질 알면서도 논 내가 미친놈이다.’
갈바릭과 드워프들은 이를 악물고 작업과 연구에만 전념했다. 당연히 마법사들도 잠도 못 자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대형 부화기를 만들 때는 바네사가 드워프들을 계속 부려 먹었는데 이번에는 반대가 되었다.
일이 많아져 짜증이 난 알포이가 갈바릭한테 따졌다.
“야! 우리가 네 부하야? 나도 일 바쁜데 왜 자꾸 불러서 이래라 저래라야!”
“뭐? 대형 부화기 만들 때 우리가 매일 밤까지 새우면서 도와줬잖아! 그리고 이번엔 너도 같이 놀았잖아! 이 양심 없는 놈아!”
“그건 영주가 시켰으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고!”
“이것도 영주가 시킨 거라고오!”
두 사람이 싸우려고 하자 바네사가 나서서 말렸다.
“알포이 님, 그러지 마세요! 드워프 분들이 힘들게 우리를 도와줬던 건 사실이잖아요! 어차피 마법진 작업은 우리가 할 일이에요!”
바네사가 나서면 알포이는 찌그러져야 한다. 알포이는 괜히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아니, 이거 잘 안 되니까……. 우리가 할 수 있나 싶어서……. 이거 안 돼. 이거 사람 불러야 돼, 이거.”
알포이가 찌그러지니 다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지셀은 매일 쉬지 않고 찾아가 물었다. 그게 며칠이나 반복되니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아직도 안 됐냐고! 나 급하다고!”
“됐어! 됐어! 됐다고! 이 새끼야아아아아!”
“오?”
갈바릭의 외침에 지셀이 살짝 놀랐다. 오늘도 안 됐을 줄 알고 그냥 물었는데 깜짝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지셀의 눈앞에 검은색의 투구와 갑옷이 한 벌 놓였다. 이것이 바로 영지 최고의 기술자들과 엄청난 자금이 들어간 장비였다.
지셀은 선물을 받은 아이 같은 표정으로 갑옷을 살펴보았다.
그런 그를 보며 갈바릭이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이거 막상 만들고 보니 꽤 위험한 물건 같은데…….”
그 말에 지셀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래, 정말 멋진 물건이지.”
이 갑옷은 전생에도 최정예 기사들만이 입는 갑옷이었다. 환란의 시기에 나타난 것들과 싸우기 위해 만든 갑옷이기 때문이다.
갈바릭은 조금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지셀이 원한 성능은 단순한 게 아니었다. 그가 넘겨준 건 개념적인 설계도에 불과했지만, 룬스톤과 마법진의 배치는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강력한 효과를 내었다.
거기에 갈바니움이 있어야 했고, 6서클 이상의 지식을 쌓은 마법사가 있어야 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곳에서 갈바니움이 제작되었고, 바네사라는 6서클 마법사가 있지. 그러고 보니 나와 바네사 둘 다 영주가 직접 데리고 온 사람들이군.’
마치, 지셀이 그것을 미리 알고 설계도를 준비한 것만 같았다.
갈바릭은 이제 지셀의 지식이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지금까지는 영주가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 거라고 편하게 생각했소. 하지만 가면 갈수록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야. 마치 모든 걸 미리 알고 준비하는 것 같소이다.”
정답이었다. 하지만 지셀은 그저 빙긋 웃기만 했다. 어차피 말해도 안 믿을 거잖아?
그는 말없이 눈앞에 있는 갑옷을 입어 보고 마나를 집어넣었다.
지잉.
갑옷이 미미하게 떨리며, 갑옷 곳곳에 난 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좋군.”
체온으로 데워지던 갑옷 안의 온도가 순식간에 내려가 쾌적해진다. 마치 중력에서 벗어난 듯 몸이 가벼워지고 근력이 상승하는 게 느껴졌다.
시력이 좋아지고, 다른 감각도 예민해졌다.
약간의 마나를 불어넣었을 뿐인데 효과가 이 정도였다. 이걸 입고 싸운다면 기사들은 원래 실력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급 기사가 상급 기사 수준으로 단번에 탈바꿈되는 기적의 물건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로 기사들에게 지급해. 당분간은 이걸 입고 감각이 달라졌을 때의 훈련도 해야 하니까. 튜리안 왕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보내야겠군.”
“기사들이 배신하거나 사고를 치면 상당히 곤란해질 것이오. 혼자서도 이걸 입으면 병사 수백 명은 가볍게 도륙할 수 있을 테니까.”
“괜찮아. 특별 교육을 조금 더 하면 돼. 다른 생각 못 하게 말이지.”
지셀이 주먹을 들고 씨익 웃자 갈바릭은 혀를 찼다. 생각해 보니 아무리 대단한 갑옷을 입어도 영주한테는 안 될 거 같았다.
대화가 끝나자 갈바릭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일이 끝났을 때 지셀과 오래 대화를 하면 안 된다.
“그럼 이만 가 보겠소이다!”
잽싸게 몸을 돌리자 지셀이 급하게 그의 어깨를 잡았다. 갈바릭은 기겁하며 외쳤다.
“아! 왜! 또!”
“아직 말이 안 끝났어.”
“뭔데!”
“활 좀 새로 만들자.”
“음? 활은 이미 많이 만들고 있지 않소이까. 병사들도 궁술 훈련에 계속 참여하고 있고.”
활 정도야 드워프들이 만들 필요가 없다. 다른 기술자들도 충분히 좋은 활을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런 일반적인 활이 아니야.”
“그럼 뭔데?”
“누구나 말 위에서 쉽게 쏠 수 있는 활. 엘프들이 주력으로 쓸 거야.”
애초부터 엘프들을 말 사육에만 쓸 생각은 없었다. 그는 이제 영지에 없던 새로운 무기와 병종을 만들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