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74)
274 –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1)
274화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1)
‘……한 방 먹었군.’
데스몬드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셀은 생각에 잠겼다.
해럴드가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의 속도였다.
‘너무 많은 게 바뀌었어.’
미래의 정보를 이용해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많은 것을 선점해 왔다.
원래는 이미 쪼그라들었어야 할 친왕파도 건재하고, 멸망했어야 할 페르디움도 살아 있다.
신기술로 수많은 이득을 본 것은 덤이다.
그 모든 게 자신이 미래에서 훔쳐 온 지식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미래를 바꾼 대가가 지금 오고 있었다.
“영주님! 데스몬드 백작이 미친 게 분명합니다! 내전도 아닌데 혼자 군사를 일으키다니!”
클로드가 사색이 되어서 외쳤다. 지금까지 펜리스 영지는 먼저 준비를 끝내고 기습적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해 왔다.
준비할 때야 몰랐어도 결과만 보면 항상 그런 상황이 되도록 판이 짜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 처음으로,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적이 쳐들어온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지셀은 어떠한 감정도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물었다.
“신형 활은 얼마나 제작됐지?”
지셀의 물음에 갈바릭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절반이 조금 넘게 완성됐소.”
새로운 기술이 들어간 활이다. 마음먹는다고 뚝딱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활 하나하나를 완성하는 데는 무척이나 정교한 작업이 필요했으니까.
지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병사들의 무장은 얼마나 부족한 거지?”
클로드도 갈바릭과 비슷한 표정으로 답했다.
“절반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무려 1만에 가까운 병사들이 충원되었다. 이들의 무장을 전부 갈바니움 전신 갑옷으로 채우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아무리 생산 속도가 빨라졌어도 필요한 수량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영주가 왜 항상 ‘빨리빨리’를 외치는지 가신들은 이제야 뼈저리게 느꼈다. 원하는 만큼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 자신감이 점점 줄어들었다.
불안해진 가신들은 대전이 시끄럽게 떠들었다.
“병사들의 훈련이 부족합니다! 아니, 애초에 숫자부터가 상대가 안 됩니다!”
“잠깐은 2군단이 막아 줄 테니, 그사이에 협상을 하든 해서 시간을 끌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당장 친왕파에 중재를 요청합시다!”
병사들의 대부분은 훈련병이고 갈바니움 무장은 아직 전부 맞추지도 못했다.
병력 차이가 압도적이라 수성을 한다 해도 막아 내리란 보장이 없다. 설사 막아 낸다 해도 피해가 엄청날 것이다.
왁자지껄 떠드는 와중에 전령이 급하게 달려와 외쳤다.
“2군단이 전멸했습니다!”
가신들의 얼굴이 이제 완전히 창백해졌다. 그나마 믿을 건 친왕파의 도움뿐이었는데 그것마저 소용이 없게 되었다.
“진짜 미친 게 맞았구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미치지 않고서는 혼자 이렇게 날뛸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펜리스 영지를 밟아 버리겠다는 데스몬드 백작의 집요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그대로 공포로 돌아왔다. 영주가 아무리 대단해도 이번 일만은 해결할 수 없을 것이리라.
가신들이 생각한 것과는 그 이유가 조금 다르긴 했지만, 2군단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셀도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절대 이렇게 멋대로 움직이는 놈이 아니었는데.’
전생의 해럴드는 이렇지 않았다. 그는 정교하게 공작가의 명령을 수행하는 데만 집중하고, 항상 주변의 상황을 살피며 신중하게 움직였다.
그가 군사를 모은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긴 했다. 하지만 전생에 보고 듣고 겪었던 해럴드의 성정상 내전 때 움직일 확률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행동하는 건 절대 해럴드의 방식이 아니었다.
‘혼자 움직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지만…….’
그래서 언제나 바쁘게 쉬지 않고 움직였다.
단지 해럴드가 그의 예상보다 더 빨리 움직였을 뿐.
‘모든 걸 버린 모양이군.’
아무리 대영지로 손꼽히는 데스몬드라도 병사 3만 명은 모으기 힘든 숫자다. 그들을 먹이는 데 필요한 물자 또한 모으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공작가와 친왕파의 관계까지 전부 무시했다는 건 스스로의 목숨도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즉, 해럴드는 지셀을 죽이기 위해서 정말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소중한 것을 지키려 하는 자는 강하지만 모든 걸 버린 자는 무서운 법이다.
‘전생의 나처럼 말이지.’
아직 준비가 끝나지 않은 펜리스는 데스몬드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안일했군. 나도 모르게 전생의 정보를 너무 맹신한 거 같아.’
지셀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전생의 정보를 너무 믿은 것도 문제였지만, 자신이 해럴드를 너무 궁지에 몰아넣은 것도 이번 사태에 한몫했다.
상대도 생각할 줄 알고 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궁지에 몰리면 미쳐 날뛰며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회귀를 했다고 해도 그게 만능은 아니다. 자신이 미래를 바꾸면 바꿀수록 그 뒤에 이어지는 불확실성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불안에 떠는 가신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벨린다가 나서서 외쳤다.
“도련님! 제가 갈게요! 제가 가서 데스몬드 백작을 암살하고 올게요! 그러면 적들도 혼란에 빠질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어요!”
“안 돼. 성공 못 할 거야.”
“할 수 있어요!”
벨린다가 고집을 부렸지만, 지셀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바네사가 나섰다.
“영주님! 이곳을 뺏길 수는 없어요! 제가 어떻게든 막아 볼게요!”
알포이가 그러지 말라고 바네사의 소매를 붙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뿌리치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이곳을 발전시켰는데요! 다 같이 목숨을 걸고 싸우면 막을 수 있어요! 왜 다들 아무런 말이 없는 거예요! 우리 항상 이겼잖아요! 이길 수 있잖아요! 또 함정을 파든 뭐든 하자고요! 제가 마법으로 쉬지 않고 공격하면 되잖아요!”
바네사의 외침에도 다른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마음은 알지만, 미련한 고집일 뿐이다.
보고 받은 전력만 병사 3만 명에 공성탑이 8대, 투석기가 12대다.
거기에 데스몬드 백작의 전속 마법사는 무려 6서클이다. 그 뒤를 따르는 마법사도 수십 명에 달한다.
바네사가 엄청난 화력을 내더라도, 상대가 그 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서로 마법이 무력화되면 남은 건 병사들의 싸움이야.’
‘기사들의 수가 100명이 넘는다고 하던데. 우리 기사들 같은 반쪽짜리가 아닌 진짜 기사가.’
‘데스몬드의 병사들은 강병이다. 우리 병사들도 강하지만, 수에서 너무 차이가 나.’
제대로 된 무장병은 기존에 있던 4천 명이 전부였다. 분명 적은 병력은 아니지만, 상대 전력과 비교하면 턱도 없었다.
지셀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가 생각해도 지금 맞붙는 건 위험했다.
‘수성을 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병사들의 훈련 상태도, 무장도 너무 부족해. 피해가 클 수밖에 없겠어.’
진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하지만 피해가 크다면 이긴다 해도 이기는 게 아니었다.
지셀은 공작가뿐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배후들과도 계속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한 번만 이겨 봐야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데스몬드를 이긴다 해도 끝이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렇기에 준비는 항상 빠르게, 그러면서도 충분하게 해 두어야 했다. 최대한 피해를 줄여야 적들과 계속 싸울 수 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아버지와 브랜포드 후작의 도움을 받는다면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들이 병력을 보내는 사이에 신형 활도 거의 제작이 끝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 시간도 없었다. 그들이 병력을 보내길 기다리면서 수성을 했다가는 지금까지 키운 병력을 거의 다 잃을 것이다.
데스몬드 백작은 정말 좋은 타이밍에 움직인 것이다. 그것도 압도적인 병력을 이끌고서.
‘어쩔 수 없지. 이번 한 번은 물러나는 수밖에. 계획을 다시 짜야겠군.’
생각을 마친 지셀은 눈을 뜨고 말했다.
“모든 물자와 병력을 옛 펜리스 지역으로 이동한다.”
그 말에 가신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펜리스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건 카발디 지역을 포기한다는 뜻과 같았다.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다들 똑같은 마음이었다.
‘아깝구나. 어떻게 발전시킨 영지인데.’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아직 3만의 대군을 감당할 수는 없으니까.’
‘훗날을 도모하는 수밖에.’
가신들은 한편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막무가내인 영주가 훈련도 안 된 병사들을 데리고 싸우겠다고 하면 그것도 곤란했기 때문이다.
다들 지셀이 회귀한 걸 모르니 그저 고집불통에 막무가내라 오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셀은 언제나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벌인 적이 없었다. 항상 효율과 시간을 생각하며 움직였다.
성공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위험을 무릅쓸 수 있었고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이, 큰 손해를 볼 게 뻔한 전쟁을 굳이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펜리스 성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펼치겠다. 그곳에서 나머지 준비를 마치고 재정비를 한 뒤, 다시 카발디 지역을 탈환하도록 하겠다.”
클로드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부터 전쟁에 대비해 증축해 놨으니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중요 시설들은 모두 파괴하고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도록 하자. 길리언과 카오르에게도 빨리 소식을 전하고 복귀하라고 일러라.”
카발디 지역은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발전됐다. 거기에 철광석까지 넘치는 영지다.
어쩌면 데스몬드 백작은 카발디를 점령하고 만족할 수도 있다. 설령 그걸로 만족하지 않더라도, 카발디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기뻐하고 있어라.’
아쉽지만 지금은 물러날 때였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재침공 계획을 짜고 기회를 잡아야 한다.
카발디 지역을 차지하고 더 강력해진 데스몬드를 상대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지셀의 명령에 따라 가신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소식을 듣고 겁에 질려 있는 영지민들을 안정시키는 것도 일이었다.
지셀은 영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말아라! 데스몬드 백작은 너희들을 건들지 않을 것이다! 꼭 다시 찾아오겠다!”
발전된 영지를 유지하려면 그만한 인구가 필요하다. 해럴드도 바보가 아니니 학살을 벌이진 않을 것이다.
2군단이 전멸했기에 데스몬드 백작의 발목을 잡을 군대가 없었다. 가신들은 똥줄이 타는 표정으로 더 바쁘게 움직였다.
데스몬드군이 진군 속도가 느린 편이어도, 먼 거리가 아닌 만큼 금세 도착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얼마 뒤, 수많은 훈련병과 물자들이 영주성에 도착했다. 길리언이 소식을 듣고, 남쪽 지역에서 훈련하고 있던 병사들을 보낸 것이다.
보고를 받은 지셀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길리언은?”
요새로 보낸 길리언과 100명의 기사, 그리고 1천의 병사가 돌아오지 않았다.
클로드는 무척 난감해하며 서신을 한 장 건넸다.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지셀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영주님, 아직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서 후퇴 결정을 내리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뺏기면 다시 재기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절대 이곳을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신형 활과 병사들의 무장이 완성되면 분명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목숨을 걸고 그 시간을 벌겠습니다. 저는 영주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반드시 영지의 가난을 끊어 낼 거야. 한 방울의 물이 아니라 비가 되어서 말이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일을 영주님은 결국 이루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더 어려운 적과 싸우기 위해 지금 이곳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곳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저와 기사들이 어떻게든 시간을 벌겠습니다. 준비를 멈추지 마시고 반드시 승리하십시오. 그리하면…… 영주님께서는 이제 비가 아니라 폭풍이 되어 이 북부를 덮을 수 있을 것입니다.]“길리언…….”
지셀은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길리언은 지셀의 꿈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 하고 있었다.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클로드가 하나의 서신을 더 건넸다.
“이건 뭐지?”
“그곳에 있는 기사들이 적은 것입니다.”
지셀은 다시 서신을 펼쳤다. 그곳에는 100명의 기사가 영주에게 건네는 글이 한 마디씩 적혀 있었다.
― 우리 꼴통 영주님 쫄았냐?
― 우리가 막아 줄게. 걱정하지 말라고.
― 병신, 매일 잘난 척하더니 쌤통이다.
― 저한테 왜 그랬어요.
― 아, 대장의 곤란한 표정을 못 봐서 그건 좀 아쉽네.
……
누가 용병 출신들 아니랄까 봐 허세와 욕들만 가득했다. 이왕 죽음을 각오하고 쓰는 거,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모양이었다.
지셀은 그걸 보며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고개를 들고 한참을 웃은 지셀이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그래, 살다 보면 가끔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 계획은 계획일 뿐이니까.”
완벽한 계획이란 건 없다. 지내다 보면 상황에 따라 대응도 바뀌는 건 당연한 거다. 결과만 완벽하면 된다.
“……저기, 지금 이상한 생각하시는 거 아니죠?”
불안한 어조로 묻는 클로드를 무시하며 지셀이 말을 이었다.
“사실 후퇴하는 거 마음에 안 들었어. 내가 너무 배려가 깊었지 뭐야. 왕국과 싸울 때는 안 그랬는데 말이지.”
오랜만에 또 헛소리가 나온다. 클로드와 가신들은 더욱더 불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셀은 자기 할 말만 해 댔다.
“병사들의 훈련은 계속한다.”
“네?”
“신형 활과 갈바니움 무장의 생산도 계속한다. 영지의 모든 인력을 전부 그쪽에 붙이도록.”
“영주님! 맞붙으면 승산이 없다니까요! 영주님도 알고 계시니까 후퇴를 결정하신 거 아닙니까!”
“반대는 받지 않는다. 길리언과 기사들을 믿고 우리는 최대한 빨리 준비를 끝낸다. 그리고 그들을 구하러 간다.”
손안에 있는 서신을 구긴 지셀이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해럴드 데스몬드는 이번 전쟁에서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