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75)
275 –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2)
275화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2)
요새, 스톤헤이븐.
펜리스 영지의 남쪽을 지키는 가장 크고 단단한 요새.
길리언은 이곳을 중심으로 남쪽 지역의 훈련병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다 모였나?”
“네, 교관 말대로 다 모였수.”
옆에서 건들거리며 답한 자는 자칭 ‘창술의 천재’ 루카스.
빠르게 늘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현재는 길리언의 부관으로 임시 배속된 상태였다.
길리언은 훈련병과 철광석 등의 중요 자원을 전부 지셀에게 보냈다. 그리고 남쪽 지역에 흩어져 있던 병력과 식량들을 전부 이곳에 모았다.
“흠.”
길리언은 성벽에 자리한 병사들과 기사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곳에 남은 건 기존에 훈련을 마쳤던 1천의 병사와 100명의 기사뿐이다.
병사들은 모두 차분한 은빛 갑옷을 입고 있었다. 모습만 보면 전원 기사들 같았다.
이들은 카발디 전쟁 때부터 참여해 지금까지 혹독한 훈련을 받아 온 정예 중의 정예들이었으니, 기사 같다는 평가도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100명의 기사는 모두 검은색의 신형 갑옷을 입은 상태였다. 이들은 십인장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즉 기사 한 명당 10명의 병사를 이끄는 것이다.
길리언은 알고 있다. 이들만 가지고도 어지간한 중소 영지는 이제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다는 걸.
하지만…….
길리언의 시선이 요새 밖을 향했다.
‘데스몬드…….’
저 앞에 진영을 꾸리고 있는 3만의 대군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데스몬드가 괜히 북부 최강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 영지에는 수많은 정예와 수준 높은 기사들이 포진해 있었으니까.
저들을 이길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길리언은 절대 물러날 수 없었다.
길리언이 묵직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저들을 이기는 게 아니다. 영주님이 얼마 남지 않은 준비를 마치실 수 있게 최대한 시간을 버는 것이다.”
기사들이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길리언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곳이 뚫리면 적들이 영지의 중심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 어떻게든 목숨을 걸고 저놈들의 발목을 잡아야 한다.”
영지의 전 도시와 요새 사이에는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이 요새가 뚫리게 되면 3만의 대군이 빠른 속도로 영주성까지 진격할 것이다.
옆에서 입맛을 다시고 있던 루카스가 말했다.
“그냥 후퇴하는 게 낫지 않나? 영주 성격상 우리가 죽는 걸 원하지는 않을 텐데. 성질은 더러워도 은근히 자기 사람 잘 챙기는 사람이잖아. 여기야 나중에 다시 찾으면 안 되나?”
길리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가 있는 사이에 여기가 너무 많이 발전했다. 데스몬드 백작이 이곳을 깔고 앉으면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친왕파가 나중에라도 도와주지 않겠어?”
“그럼 도와줬다는 핑계로 이곳을 그들이 차지하겠지.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전에 공작가가 데스몬드에게 군사를 지원해 줄 수도 있으니.”
루카스는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본래도 철광석이 넘치던 카발디 영지는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발전했다.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높아졌고 이주민들을 받으며 인구도 많이 늘어났다.
이곳을 먹고 그냥 뱉을 영주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영지 상태만 확실하게 알려지면서, 여길 노리는 자들과 의미 없는 싸움만 계속하게 될 것이다.
길리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기사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영주님의 꿈이 있다.”
“…….”
“우리도 영주님과 함께 여기까지 왔다.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 왔는지 생각해라. 이곳을 뺏기면 지금까지의 노력은 의미가 없어진다.”
한 기사가 손을 들고 물었다.
“도망가고 싶은 사람은 가도 됩니까?”
그러자 길리언이 사나운 웃음을 지었다.
“아니, 너희들은 나와 함께 영주님을 위해 이곳에서 죽는다. 목숨을 걸고 적들의 발목을 잡아라.”
그러자 기사들이 키득거리며 한 마디씩 건넸다.
“어휴, 진짜 꼰대라니까.”
“충성심 뭐야. 촌스럽게.”
“용병 시절에 계약은 아주 잘 지켰겠어. 사람이 참 신의가 있어. 신의가.”
“난 도망가서 다른 곳에서 잘 살고 싶은데.”
깐족거리는 기사들을 보며 길리언은 다시 웃었다. 다들 비아냥거리지만 도망가는 놈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저들은 이제 단순한 수하들이 아니다. 지셀에게 은혜를 입고 성장했으며 많은 것을 함께 해온 ‘동료’들이었다.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린다. 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투석기였다. 그 수가 무려 12대.
기사들과 병사들은 요새를 둘러싼 투석기를 보고 조금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길리언이 손을 들고 말했다.
“전투 준비. 거리를 벌리고 투석기 공격에 대비해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거대한 돌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쾅! 쾅! 콰앙!
돌들은 사정없이 성벽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몇 개의 돌은 요새 안으로 떨어지며 모아 뒀던 물자와 건물들을 박살 냈다.
무자비하게 날아오는 공격에 펜리스군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들 돌의 방향을 보고 정신없이 피하기에만 바빴다.
쾅! 쾅! 쾅! 쾅!
돌 조각이 튀며 비교적 약한 성벽의 위쪽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간 단단하게 보강 작업을 했기에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해럴드는 투석기 공격을 멈추고 말했다.
“돈을 좀 많이 벌었다더니 요새를 보강하는 데도 신경을 많이 썼구나. 병사들에게도 저런 갑옷까지 입히고 말이야. 수도 제법 많군.”
보이는 적군 전원이 기사들처럼 갑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해럴드는 저들이 진짜 기사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기사가 저 정도로 많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다만 갑옷 색이 다른 이들을 보며 문득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저놈들이 그 페르디움 공방전에서 활약했다던 검은 부대인가? 수가 그때보다 늘었군.”
분명 50여 명으로 보고를 받았었는데, 얼핏 보니 지금은 100명 정도 되는 거 같다.
마나는 쓰지 못해도 실력이 꽤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돈을 벌어서 검은 부대의 규모도 늘린 모양이었다.
아마 저들이 이 영지에서 기사 역할을 하는 놈들일 것이다. 마나를 쓰는 진짜 기사라는 뜻이 아니라, 보병보다는 실력이 나은 정예라는 뜻에서 말이다.
“투석기 공격은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하도록 하지. 마법사들과 궁병들은 준비해라.”
해럴드의 뒤쪽에 서 있던 하얀 수염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윌로우라 불리는 데스몬드의 전속 마법사로, 무려 6서클에 이른 자였다.
“어떻게 할까요?”
“어차피 공성탑을 붙일 테니 그전까지 최대한 넓은 범위에 피해를 주도록. 진군하면서 땅에 함정이 있는지도 확인하라.”
“알겠습니다.”
윌로우가 손을 휘젓자 약 스무 명의 마법사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거리가 너무 멀기에 마법사들이 효과적으로 마법을 쓰려면 더 가까이 가야 했다.
둥! 둥! 둥!
다시 북이 울리고, 데스몬드군의 중보병들이 마법사와 궁병들을 호위하며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마력으로 땅을 훑으며 룬스톤 함정이 있는지 확인했다. 이미 한번 당해 봤기에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행보였다.
“함정은 없는 거 같군. 속도를 높여라.”
윌로우의 말에 데스몬드군의 이동 속도가 더 빨라졌다.
길리언은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적들을 노려보며 거리를 가늠한 뒤 외쳤다.
“쏴라!”
촤아아아아악!
순식간에 수천 개의 화살이 하늘을 뒤덮으면서 쏘아졌다.
펜리스군은 모든 무기를 쓸 수 있게 훈련을 받는다. 당연히 이곳에 남은 병사들 모두가 활을 어느 정도는 쏠 줄 알았다.
타타타타탕!
중보병들이 급하게 거대한 방패를 들어 올려 막았다. 갑자기 많은 화살이 날아와 깜짝 놀란 탓에 이들의 발이 잠시 멈추었다.
놀란 건 해럴드도 마찬가지였다.
“음? 뭐지? 전원이 궁병이었단 말인가?”
그의 상식으로는 아무리 정예군이라 해도 모든 무기를 다룰 수는 없다.
훈련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만큼 훈련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른 영주들이 굳이 병종을 나누면서 전문성을 키우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잘됐군. 다들 근접전에 약할 테니 빠르게 공성탑을 붙이면 되겠어. 바로 움직여라. 그리고 접근하기 전까지 다시 투석 공격을 시작하라. 정신없이 몰아붙이도록.”
무려 8대의 공성탑이 천천히 이동을 시작했다. 동시에 중보병들의 보호를 받는 마법사들이 요새를 공격했다.
파아아아악!
중보병들 사이사이에서 거대한 불덩이들이 쏘아져 나갔다.
불덩이들은 병사들이 몰려있는 곳을 정확하게 향했다. 투석기의 공격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정교했다.
“뒤로 물러나!”
펜리스의 기사들이 갈바니움으로 만든 거대한 방패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기사들 아래 배속된 병사들은 자신들의 십인장 뒤로 숨거나 아예 몸을 피했다.
터엉! 터엉! 터엉!
“크읏!”
한 번 불덩이를 막을 때마다 속이 진탕되고 절로 몸이 뒤로 밀렸다. 하지만 기사들은 마나로 방패를 감싸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데스몬드군의 공격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중보병들과 함께 이동한 궁병들이 엄청나게 화살을 쏘아 댔다.
그와 동시에 투석기들의 공격도 재개되었다.
콰앙! 콰앙! 콰앙!
“피해! 피해!”
“흩어져! 화살 맞지 않게 머리 위로 방패 올려!”
“씨발! 이거 진짜 버틸 수 있는 거 맞아?”
기사들은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제대로 맞붙지도 않았는데 공격을 피하고 막기에만 바빴다.
자신들도 나름 강한 전력이라 할 수 있는데 데스몬드군 앞에서는 아무것도 못 할 지경이었다.
숫자가 깡패라고는 하지만, 이들이 밀리는 건 단순히 수적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데스몬드군은 요새의 병사들이 숨 쉴 틈도 없도록 정교하게 그들을 몰아붙였다.
도무지 뭔가를 할 틈이 없었다. 그나마 갈바니움 방패 덕분에 병사들도 화살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위안이었다.
고오오오오!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공격도 미칠 거 같은데 하늘 위에서 엄청난 마력이 몰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고서클 마법의 전조 증상이었다.
데스몬드군의 공격을 정신없이 막거나 피하던 기사들이 고개를 들고 중얼거렸다.
“씨발…… 장난 아니네…….”
“우리 영주님은 이런 새끼들하고 싸우자고 한 거였어?”
“지금까지 만난 놈들하고는 차원이 다르구먼.”
기사들의 넋두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늘 곳곳에서 마력이 뭉쳐졌다.
캐스팅을 마친 윌로우가 여유롭게 손을 휘저으며 중얼거렸다.
“파이어 레인.”
화아아악!
요새 위의 허공에서 수백 개의 거대한 불덩이들이 피어올랐다. 그것들은 순식간에 아래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불덩이에 기겁하며 기사들이 외쳤다.
“모두 모여!”
앞에서 날아오는 건 자신들이 어떻게든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다 막아 줄 수 없다.
갈바니움 방패를 들었다 해도 병사들로서는 고서클의 마법을 제대로 버티지 못할 것이다.
기사들은 입고 있는 갑옷에 마나를 잔뜩 집어넣었다.
지이이잉!
검은색 갑옷의 틈 사이사이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갑옷에 새겨진 마법진이 활성화되며 반투명한 역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콰아아앙!
불덩이들은 사방으로 내리꽂히며 모든 것을 파괴했다. 단단한 돌바닥도 단숨에 파일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과연 고서클의 마법답게 무시무시할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하지만 역장을 뿜어낸 기사들과 그 주위의 병사들은 그을린 곳 하나 없이 안전했다.
스르륵.
기사들 주변에 떨어지던 불덩이들은 역장에 부딪히기도 전에 흩어져 버렸다.
성벽과 망루 등이 파괴되어 엉망이 됐지만, 기사와 병사들은 멀쩡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윌로우가 중얼거렸다.
“디스펠? 설마 6서클 마법사가 있단 말인가?”
곳곳에서 퍼진 마력의 파동이 자신의 마법을 흩어 버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6서클이니, 마력을 흩어 해제하려면 최소한 동급의 마법사가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뭔가 좀 이상했다. 6서클 마법사가 있었다면 마법이 발동되기 전에 해제했을 테니까.
그리고 곳곳에서 느껴지는 마력도 자신의 마법에 비하면 좀 하찮은 크기였다.
“룬스톤을 이용해서 마법진을 설치한 건가? 돈이 썩을 정도로 많은가 보군. 그런데 어디서 6서클 마법사를 초빙해서 만든 거지?”
혀를 찬 윌로우가 다시 마법을 준비했다. 마법 도구로 막은 거라면, 그 도구가 아예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날 때까지 공격하면 될 일이었다.
파아아악!
콰앙! 콰앙! 콰아앙!
한 번 더 마법을 시도했지만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흐음…… 뭔지 모르겠지만 무척 잘 만들었는걸?”
불쾌해진 그는 다시 한번 마법을 준비했다. 6서클 마법이다 보니 마력이 엄청나게 빠져나가긴 하지만, 어차피 자신은 안전하니 마력이 떨어질 때까지 시도해 봐도 된다.
둥! 둥! 둥!
하지만 그가 다시 마법을 뿌리기 전에 공성탑이 움직였다. 윌로우는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났다.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꽤 자존심이 상했다.
해럴드는 무심하게 그 모습들을 지켜보았다.
사실 원거리 공격만 계속하며 며칠 동안 펜리스군을 지치게 해도 된다.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왕국군이 움직이고 있겠지.’
이미 2군단을 전멸시켰다. 브랜포드 후작은 분명 군사를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지셀이 여기에 없었다.
‘시간을 끄는 동안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놈이니까.’
친왕파의 압박, 꿍꿍이속을 알 수 없는 지셀. 두 가지를 생각하면 여기서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압도적인 병력으로 밀어붙이고 펜리스를 점령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이 원하는 판을 짤 수가 있게 된다.
즉, 해럴드도 지셀과 마찬가지로 시간에 쫓기고 있었던 것이다.
드드드드드드.
그래서 단번에 병력을 쏟아부었다. 오늘 내로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서.
다가오는 공성탑들을 보며 기사들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갑옷의 능력을 발동시키고 마법 공격을 막느라 거의 절반의 마나가 빠져 버렸다.
“흐흐…… 뭐 붙어서 싸우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지치냐.”
기사들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벌써 이렇게 많은 마나를 사용했으니 앞으로 싸움이 더 힘들어질 게 뻔했다.
그래도 드워프와 마법사들이 만들어 준 이 갑옷이 아니었다면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드드드드드!
공성탑이 다가온다. 데스몬드의 궁병들은 견제를 하기 위해 연신 화살 공격을 날렸다. 공성탑의 위에 있는 궁병들도 성벽을 향해 화살을 쏘아 댔다.
방패를 들어 막기만 하던 루카스가 크게 외쳤다.
“교관! 어떻게 할 거야! 공성탑이 뭐 저렇게 많아! 존나 많이 몰려올 거라고!”
“기다려라. 공성탑이 붙는 게 우리한테도 낫다.”
원거리 공격으로는 도무지 답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가만히 있다가 다 지쳐 죽을 것이다.
하지만 길리언은 적들도 다급한 상황이란 걸 알고 있었다. 펜리스군은 숨을 고르며 그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투웅! 투웅! 투웅! 투웅!
8대의 공성탑이 하나둘 성벽에 붙었다. 데스몬드군이 공성탑 아래에서부터 개미 떼처럼 올라오기 시작했다.
길리언은 살기를 띤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준비해라.”
철컥! 철컥! 철컥!
기사들과 병사들이 모두 투구를 내려 완전히 몸을 감쌌다. 지금까지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안면 가리개를 열고 있었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데스몬드군은 펜리스에서 화살 공격조차도 날아오지 않자 조금 더 대담하게 움직였다.
더 많은 병력이 공성탑 안으로 끊임없이 들어갔다.
터엉! 터엉! 터엉!
공성탑의 들다리가 성벽에 걸쳐졌다. 펜리스군은 공성탑을 노려보았다. 탑 안에 살기등등한 데스몬드의 병사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지이잉―!
펜리스 기사들의 갑옷 틈 사이에서 다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들의 눈빛에도 데스몬드군처럼 살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길리언이 방패를 버리고 두 개의 거대한 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가 목소리에 묵직한 살기를 실어 입을 열었다.
“잘 왔다. 이제 제대로 싸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