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80)
280 – 다 같이 살고 다 같이 죽는다. (3)
280화 다 같이 살고 다 같이 죽는다. (3)
“와아아아아!”
이제 공성탑조차 필요가 없어졌다. 데스몬드군은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빠르게 요새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먼저 들어간 부대가 성문을 열자 진입은 더 쉬워졌다.
그들은 넓은 요새를 가득 채울 정도로 몰려들어 와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해럴드는 저 멀리 보이는 펜리스군을 보며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저 하찮은 놈들 때문에 지금까지 발목이 잡혔구나. 당장 붙잡아서 갈기갈기 찢어 버려라.”
펜리스군도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게 반대 측 문 가까운 곳에 진형을 갖췄다.
그들은 적당한 건물들 사이에 진을 치고 대기했다. 그들의 앞에는 근접전에 대비한 목책들이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목책을 이용하면 적은 인원으로도 대군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와아아아아!”
데스몬드군이 다시 함성을 지르며 해일처럼 움직였다. 어차피 화살 공격은 큰 효과가 없는 걸 알기에 이들은 그냥 숫자로 밀어붙였다.
쿠웅!
온몸에 붕대를 감은 길리언이 가장 앞에 섰다. 그는 거대한 할버드를 들고 있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거리의 이점을 가져갈 속셈이었다.
길리언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슬슬 어두운 구름에 하늘이 가려지고 있었다. 바람은 요새 안으로 격렬하게 불어오며 다시 전투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오늘 밤은 길겠군.”
잠시 숨을 고른 길리언이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결연한 각오가 맺혀 있었다.
“준비해라.”
촤르르륵!
길리언의 말에 펜리스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모두 창을 들어 올렸다.
콰앙!
데스몬드군과 펜리스군의 창들이 서로 얽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 교전에서 그랬듯이, 펜리스군의 방어력은 압도적이다.
“으아아악!”
데스몬드군의 선두가 허무하게 쓰러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이미 펜리스군과 전투를 치러 본 해럴드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스각!
병사들이 앞에서 당해 쓰러질 때, 바로 뒤에서 데스몬드의 기사들이 튀어나와 검을 휘둘렀다.
“크윽!”
갑작스럽게 기습을 당한 펜리스 병사들의 갑옷이 종잇장처럼 갈라졌다.
갈바니움 소재는 가벼울 뿐이지 철보다 강한 건 아니다. 마나를 머금은 기사의 검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콰앙!
하지만 길리언이 할버드를 휘두를 때마다 다가오는 데스몬드의 기사들은 머리가 깨져 나갔다.
“좁은 길목에서는 우리가 더 유리하다! 최대한 버텨라!”
지이잉―!
펜리스 기사들의 갑옷 틈 사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 며칠간 몸과 마나를 회복시킨 이들은 다시 미친 듯이 날뛰었다.
콰앙! 콰앙! 콰아앙!
길리언과 기사들은 사거리에 들어온 데스몬드군을 무차별하게 죽여 나갔다. 중간중간 기습적인 공격을 하는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펜리스군의 전열을 뚫을 수가 없었다.
데스몬드군의 후방에서 날아오는 마법도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지이잉―!
펜리스 기사들의 갑옷에서 빛이 번쩍일 때마다 다가오던 불덩이들은 허무하게 흩어졌다.
윌로우가 쓰러진 이상 저서클 마법들은 이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후열에 있는 펜리스의 병사들은 각자 활시위를 매긴 채 데스몬드군을 노리고 있었다. 좁은 길목을 길리언과 기사들이 막고 있었기에 근접전보다는 원거리 공격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었다.
“쏴라!”
파아아아악!
길리언의 외침과 함께 수많은 화살이 데스몬드군의 후열로 날아들었다.
“으아아악!”
곳곳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데스몬드군의 피해는 그리 크다고 할 수 없었다.
해럴드의 명령에 따라 곳곳에 자리 잡고 있던 방패병들이 거대한 방패를 들어 올려 아군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결국 양측의 선두가 접전을 벌이는 지역에서 승패의 향방이 갈릴 수밖에 없었다.
“겁먹지 마라!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길리언은 힘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할버드는 바람과 같은 속도로 휘둘러지며 적들을 연달아 베고 찍고 찌르기를 반복했다.
콰앙! 콰앙! 콰앙!
그러나 그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움직일수록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
어느 순간 길리언의 몸은 다시 피로 범벅이 되었다. 적의 몸에서 튄 피가 반, 상처가 벌어지며 길리언의 몸에서 터져 나온 피가 반이었다.
“크으……!”
그래도 그는 이를 악물고 공격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길리언의 눈빛은 여전히 격렬한 살의로 불타고 있었고 그가 뿜어내는 기세는 여전히 투지와 용맹함으로 가득했다.
기사들도 길리언 못지않게 온 힘을 다해 싸움에 몰입했다.
“크아아악!”
“밀어붙여!”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전장은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 찼다. 비명과 무기 부딪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데스몬드군은 강렬한 저항에 부딪히자 대군의 이점을 이용하려 노력했다.
“포위해! 포위를 하란 말이다!”
지휘관들의 외침에 따라 데스몬드의 병사들은 양옆의 건물로 올라가 화살과 마법을 쏘기 시작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어도, 충격을 누적시켜 대열을 무너뜨릴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일부는 뒤로 돌아가 펜리스군의 후열을 치려고 했다.
물론 펜리스군도 데스몬드군의 시도를 그냥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견제해라!”
똑같이 활을 쏘면 펜리스군이 훨씬 더 유리하다. 건물 위로 올라간 데스몬드군은 펜리스 병사들을 제대로 압박하지도 못하고 쓰러져 갔다.
후열이 힘써 준 덕분에 펜리스군의 전열은 온전히 눈앞에 있는 적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콰앙! 콰앙! 콰앙!
전열에 선 펜리스 기사들의 갑옷도 붉게 물들 정도로 무자비한 전투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몰려오는 대군을 계속 막기는 힘들었다. 마나와 체력이 점점 소모되기 때문이다.
펜리스 기사들의 움직임은 점점 눈에 띄게 느려져 갔다. 그들이 지쳐 가는 것을 양측이 뻔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됐다! 더 밀어붙여라!”
펜리스군이 조금씩 약한 모습을 보이자 데스몬드군은 더 강하게 전진했다.
펜리스군의 전열은 버티지 못하고 점차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길리언은 그런 기사들의 움직임을 보며 다시 외쳤다.
“1열! 뒤로 빠져라! 2열 앞으로!”
전열에 있던 기사들이 뒤로 빠졌다. 뒤에서 힘을 비축하고 있던 기사들은 앞으로 나오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창을 움직였다.
파바바바박!
“크아아악!”
밀어붙이던 데스몬드군의 선두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펜리스군은 순식간에 진형을 복구했고 이제는 역으로 데스몬드가 밀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말 효과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자신들의 장비와 지형을 이용해 대군을 상대로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교대해라!”
길리언은 기사들이 지친다 싶으면 적절하게 인원을 교체했다. 그가 가장 앞에서 선두를 지켜 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순간 펜리스군의 앞은 데스몬드군의 시체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데스몬드군이 전진하려면 아군의 시체를 치워야 했고 덕분에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서게 되었다.
여전히 앞을 막고 있는 펜리스군을 보며 데스몬드군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악마다……. 저건 악마의 군대야…….”
“어떻게 저 인원으로 우리를 지금까지…….”
“펜리스에는 저런 놈들만 즐비한 건가?”
아무리 전진해도 뚫을 수가 없다. 이 정도 싸웠으면 지쳐서 쓰러질 법도 한데 아직도 투지가 느껴졌다.
해럴드 또한 펜리스군을 보며 경이로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이놈들이…….”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실력이다.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오래 버틸 줄이야.
저런 천한 놈들에게 자신의 자랑스러운 정예병들이 수도 없이 죽어 나갔다. 이대로 간다면 저놈들을 전부 제압할 때까지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
적이 좋은 장비를 갖추고, 좋은 위치를 선점한 덕분에 이쪽은 대군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병사들을 일단 물려라. 다시 전열을 정비하겠다. 허튼 남작과 윌로우를 부르고 선두에는 가장 강한 기사들을 배치하도록.”
허튼 남작과 윌로우는 부상을 입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적의 전열이 너무 강하다면 이쪽도 거기에 맞춰야 했다.
물론 그렇게 맞붙게만 둘 생각은 없었다. 해럴드는 자신이 분노에 눈이 멀어 너무 조급해했다는 걸 인정했다.
“투석기의 사거리를 저놈들에게 맞춰라. 쥐새끼 하나도 숨을 곳이 없게 주변을 초토화해라.”
드드드드드!
요새 밖에 있던 투석기들이 더 가까이 접근했다.
투석기 공격으로 펜리스군을 해치울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적들은 사거리를 벗어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아예 주변을 다 박살 낸다면 포위진을 만드는 건 지금보다 쉬워질 것이다.
투석기가 준비되고 공격을 재개하려고 할 때, 해럴드에게 병사 하나가 다가와 말했다.
“적들이…… 사라졌습니다.”
“뭐라고?”
“천천히 물러나는 듯싶더니 요새의 반대쪽 문을 열고 도망쳤습니다.”
까드득.
해럴드가 이를 악물었다. 역시 적들은 요새를 지키려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고 했던 게 분명했다.
끓어오르는 숨을 길게 내뱉은 해럴드가 물었다.
“피해는?”
“지금까지 약…… 3천 명이 사망했습니다.”
“…….”
해럴드는 살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두웠던 하늘은 이제 동이 터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첫 교전과 밤새 이어진 이번 전투로 모두 3천의 정예 병력을 잃었다. 상대는 정말 괴물들이었다.
이해할 수 있다. 100명이 전부 기사라면 불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이런 식으로 길을 막고 싸운다면 말이다.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요새는 다 허물어져 이제 요새라 부르기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중요한 요충지이긴 하지만 고작 이 요새 하나를 점령하는 데 3천이 넘는 병력과 중요한 시간을 소진한 것이다.
‘역시 진작에 죽였어야 했는데.’
이 모든 게 지셀을 살려 두어서 생긴 결과다.
처음 자신의 일을 방해했을 때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죽였어야 했다. 놈을 우습게 본 대가가 너무나도 크고 아팠다.
“하아…….”
해럴드는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렸다.
속이 끓어올라 견딜 수 없었지만 적은 이미 도망갔다. 여기서 화를 내고 난리를 쳐 봤자 병사들만 동요할 뿐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일단 요새를 확보한 이상, 이 앞으로는 펜리스 성까지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영주성을 점령하면 된다. 지셀과 그 수하들을 난도질하면 이 분노는 모두 풀릴 것이다.
해럴드는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출발하겠다. 최소한의 식량만 챙기고 움직인다. 본대가 먼저 움직여서 펜리스 성을 포위할 테니 공병대와 보급대는 최대한 빠르게 따라오도록.”
병사들의 피로가 클 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휴식은 펜리스 성을 포위하고 나서 취해도 된다.
데스몬드군은 빠르게 정비를 마치고 바로 펜리스 성을 향해 움직였다.
도로를 따라 움직이기에 대군치고는 빠른 속도였다.
그렇게 이틀간 아무 방해 없이 이동한 뒤, 잠깐 휴식하기 위해 숙영지를 꾸렸을 때.
그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을 받게 되었다.
“습격이다!”
요새에서 빠져나간 길리언과 기사들이 데스몬드군의 숙영지를 습격한 것이다.
정예인 데스몬드군이 경계를 소홀하게 했을 리가 없다. 그들은 침입자를 맞아 훈련받은 대로 훌륭하게 상대했다.
하지만 펜리스군은 약한 병사들 일부만 잽싸게 죽이고 바로 도망가 버렸다. 규모가 큰 만큼 둔중한 데스몬드군은 소수 인원을 쉽게 쫓아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기습을 잘 막긴 했지만 막았다고 끝이 아니었다. 싸움 직후에는 다시 휴식과 정비가 필요하다.
“시체를 치워라!”
“정찰조와 추격조를 다시 편성한다!”
“남은 인원 보고해!”
지휘관들이 사방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숙영지를 정리하려고 애썼다.
데스몬드군은 결국 펜리스군의 습격 때문에 또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해럴드는 난장판이 된 숙영지를 보며 이를 갈았다.
“그놈들이 또…….”
펜리스 영지에 골치 아픈 놈은 지셀 하나일 줄 알았다. 그간의 전적이 화려했으니까.
하지만 그 수하들마저도 이렇게 골칫덩어리일 줄은 몰랐다.
그놈들 때문에 계속 진군 속도가 늦어지고 있었다. 3만 대군이 요새 하나를 점령하고 이동하는 데 벌써 보름 이상을 써 버렸다.
펜리스 성까지는 아직 거리가 꽤 남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펜리스군이 숨을 만한 숲과 산이 꽤 많았다.
“놈들이 아주 장난을 잘 치는구나. 역시 제집 앞마당이라는 건가?”
해럴드의 말에 옆에 있는 부관이 말했다.
“이런 식이면 도착하는 데만 보름 이상이 허비될 거 같습니다.”
“그놈들한테 계속 끌려다닐 수는 없지. 진군 속도를 더 높여라.”
“그러면…… 기습 대응에도 취약해지고 병사들의 체력과 사기가 많이 떨어질 겁니다.”
해럴드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부관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도 그렇게 해라. 쥐새끼들은 숨을 곳이 없으면 결국 튀어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는 시간이 없다.”
“……알겠습니다.”
해럴드는 끓어오르는 살기를 숨기지 않았다.
“적 지휘관의 이름이 길리언이라고 했나? 내 반드시 지셀과 함께 그놈을 씹어 먹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