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82)
282 – 우리가 도와줄 차례다. (2)
282화 우리가 도와줄 차례다. (2)
3군단과 페르디움군만이 지셀을 걱정하며 바삐 움직인 게 아니다.
어떤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펜리스의 안위를 걱정했다.
[투자 피해자들의 모임]귀족들의 투자를 잔뜩 끌어모은 로잘린과 메리엘도 연회장 입구에 걸린 현수막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야말로 펜리스 백작이 질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데스몬드 백작은 다른 영주들과 다르다. 무려 3만의 군세를 이끌고 있는 북부의 대영주였다.
지셀이 아무리 최근에 잘 나가는, 왕국의 신성으로 평가받고 있더라도 데스몬드 백작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었다.
“아이고! 망했다!”
“내 전 재산을 다 넣었는데!”
“괜히 투자했다!”
이들은 화장품과 도로 건설에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했다. 도로 건설은 브랜포드 후작을 믿고 시작하긴 했지만 어쨌든 사업의 주체는 지셀이다.
지셀이 망하게 되면 일단 화장품 사업은 확실히 끝이다. 사업 주체가 망하면 도로 건설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다들 투자한 돈을 다 날릴까 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곳에는 누구보다 많은 돈을 쏟아부은 사람이 있었다.
‘와씨! 그 미친 새끼! 내가 다른 주교들 재산이랑 신전 기부금까지 죄다 끌고 와서 넣었는데!’
바로 여신 쥬아나의 신실한 종(?) 포리스코 주교였다.
성자급 위명을 얻은 그는 현재 수도에서 가장 잘나가는 종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위상을 얻게 되자 그는 다시 고약한 버릇을 드러냈다.
수많은 뇌물을 먹은 것도 모자라 신전의 돈으로 여기저기 투자하며 돈놀이까지 시작한 것이다.
‘어떡하지? 그 새끼를 괜히 믿었어! 그냥 쥬아나 님이나 열심히 믿을걸! 이 돈 다 날리면 난 또 바닥까지 추락……. 아니, 잠깐? 그놈이 죽으면 더 좋은 게 아닌가?’
생각해 보니 지셀만 죽으면 자신의 약점을 아는 놈이 없어진다. 죽어도 괜찮을 거 같았다.
‘아니지, 그러면 내 돈은 어떻게 해? 그 많은 돈을 그냥 날리라고? 그러면 난 또 피폐해지고 말 거야.’
지셀이 죽었으면 좋겠는데 지금 죽으면 안 된다. 포리스코는 이 또한 여신의 시험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 왜 신은! 나에게 매번 이런 시련을 주신단 말인가!’
투자자들 모두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로잘린이 앞에 나서서 외쳤다.
“지금 여기서 걱정만 한다고 해결되는 상황이 아니에요!”
다들 우울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돈 넣은 사람들이 사업 걱정을 하는 거 말고 뭘 해야 할까?
로잘린은 문제가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사업이 망할까 봐 걱정이면 우리가 안 망하게 도와주면 되잖아요!”
“……?”
“다들 수도에 사병들 데리고 계시잖아요? 그걸 모아서 펜리스 백작을 지원해 주자는 거예요!”
“…….”
그녀의 말에 다들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사병들이야 당연히 많이 데리고 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수도에서 안전하게 지내기 위한 보험일 뿐이다. 북부 최강이라 불리는 데스몬드의 정예병들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아니, 몇천을 모아 가도 3만의 대군 앞에서는 초라해질 것이다.
하지만 로잘린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버지께서 3군단을 움직이라 명하셨어요! 왕국군과 함께 움직이면 우리 사병들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전쟁에 이길 필요도 없어요! 펜리스 백작만 구해 오면 되는 거예요!”
“오…….”
귀족들이 눈을 반짝였다. 브랜포드 후작이 왕국군을 직접 움직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거기에 자신들은 친왕파다. 명분도 없이 전쟁을 일으킨 데스몬드를 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내전이 일어나면 더 큰 문제가 생기겠지만 그거야 지금 걱정할 게 아니다. 당장 지셀이 죽고 손해를 보는 게 더 중요했다. 어떻게든 구출해야만 했다.
‘진짜 이번에도 그 새끼가 살아남으면 돈 다 빼야지.’
‘그놈이랑 엮이면 불안해서 살 수가 없어.’
‘하, 저번에도 겪었는데 자꾸 큰돈 벌 기미가 보이니까 발 빼기가 쉽지 않네.’
남들도 다 하는데, 돈도 많이 번다는데 안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정말로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던 탓에, 다들 이번 일만 해결되면 정말 빠질 생각이었다.
귀족들은 그런 속내를 숨기고 로잘린의 제의에 흔쾌히 찬성표를 던졌다.
“좋소! 내 사병 100명을 전부 지원하겠소!”
“난 50명!”
“내가 200명을 내놓도록 하지.”
다들 앞다투어 군사를 약속했다.
돈 많고 권세 있는 귀족들이다. 이들이 약속한 사병만 모아도 얼추 3천이란 숫자가 나왔다.
예상외로 큰 숫자에 귀족들은 살짝 놀랐다.
“허허, 그래도 우리 사병을 다 모으니까 숫자가 상당하군요.”
“그럼요, 투자도 이렇게 모아서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 정도 숫자면 꽤 도움이 되겠습니다.”
로잘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예상보다 귀족들의 호응이 좋았다. 왕국군과 같이 움직인다면 지셀을 구해 올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다.
메리엘도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에일즈버 백작가에서 식량과 군자금을 지원할 거예요.”
“오오!”
귀족들이 그녀를 보며 감탄했다.
3천의 병력을 한 번에 움직이는 건 쉬운 게 아니다. 여기서 추가금을 더 내야 할까 눈치를 봤는데 메리엘이 해결해 준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빠르게 결정이 나자 로잘린은 연회에 참석한 포리스코를 바라보며 말했다.
“주교님! 사제 10명만 지원해 주세요! 저번처럼 말단 사제 말고 실력 좋은 분들로요!”
“네? 하지만 신전은 전쟁에 참여하면 안 되는…….”
“그냥 저번처럼 따라가서 펜리스 백작이 안 죽게만 하면 돼요! 인도적 차원에서요!”
“으으음…….”
“펜리스 백작이나 영지의 중요 기술자가 다쳐서 죽기라도 해 봐요! 우리가 도와주러 가도 말짱 헛일이라니까요! 신전의 소중한 성금을 잃으실 건가요?”
“하이씨……. 안 되는데…….”
포리스코는 고민했다. 로잘린의 말처럼 신전의 소중한…… 아니, 자신의 소중한 돈을 잃으면 안 된다.
어차피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건 아니니 사제들이 위험할 일은 없었다.
인도적 차원의 구조 활동은 귀족들 사이에서 쉽게 통용되는 핑계였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이 또한 여신의 뜻이라면…… 내가 따르는 수밖에.’
고민하던 포리스코는 지셀의 목숨보다 돈을 선택했다. 그냥 여신에게 책임을 넘겨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신념 하나는 확실한 남자였다.
“좋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한마음이 된 것도 쥬아나 님의 인도로 이루어진 일일 테지요. 제가 사제들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수도 귀족 연합, 다른 말로 투자 피해자들의 모임이 결성되었다.
로잘린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직 방심해선 안 되지만 3군단과 함께라면 지셀 하나는 어떻게든 구해 올 수 있을 거 같았다.
‘은근히 인기 있다니까.’
의도야 어찌 됐든 지셀을 구하기 위해 또 수천의 군대가 움직인 것이다.
연합군의 지휘관은 전쟁 경험이 있고 많은 투자금을 낸 이더리안 자작이 맡았다.
그는 출정식에서 자신 있는 표정으로 외쳤다.
“내가 꼭 펜리스 백작을 구해 오겠소!”
“와아아아! 이더리안 자작 최고다!”
귀족들의 환호를 받으며, 수도 귀족 연합의 군대는 3군단의 뒤를 바짝 쫓아갔다.
* * *
“준비는?”
지셀이 손에 붕대를 묶으며 묻자 클로드가 긴장한 기색으로 답했다.
“엘프들과 궁기병 2천, 기마병 1천 준비 완료됐습니다.”
“기사들은?”
“300명 전원 무장하고 대기 중입니다.”
“길리언에게서 소식은 없나?”
“아직은…….”
이미 전쟁이 벌어진 지 한 달이 지났다. 요새가 함락됐다는 소식은 들어왔지만, 길리언의 소식이 묘연했다.
중간중간 데스몬드군과 접전을 벌이고 있다는 정보가 며칠 전 들어왔지만, 그 뒤로는 아무 소식도 받아 보지 못했다.
데스몬드 백작의 정찰조와 추격조 때문에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고, 길리언도 행적을 계속 노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촤악.
지셀은 지도를 펼친 뒤 한 곳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고개를 몇 번 끄덕인 그는 클로드에게 다시 물었다.
“아버지와 왕국군, 수도 귀족 연합이라고 했나?”
“네, 그들이 출발한 지 꽤 됐습니다. 조만간 영지 경계에 도착할 것입니다.”
“부족한 병력은 그들로 채우면 되겠군. 내 서신은 잘 전달했겠지?”
“네, 확실하게 전달하고 답장까지 받아 왔습니다.”
지셀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더 준비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이 늦어질수록 길리언과 다른 이들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영지의 모든 인력이 모든 힘을 다해 신형 활 제작에 매달렸다. 덕분에 부족한 부분을 겨우 채울 수 있었다.
궁기병들의 집중 훈련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고 활 제작까지 끝났으니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지셀이 성 밖으로 나오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영주님! 저희도 싸울 수 있습니다!”
“저희가 성을 지키겠습니다!”
“함께하겠습니다! 데리고 가 주십시오!”
새로 모은 훈련병들과 무장을 갖추고 나온 영지민들이었다.
다들 열광적인 표정으로 싸우겠다고 힘껏 외치고 있었다.
언제나 실의에 빠져, 귀족들의 전쟁에는 관심 없던 영지민들이 스스로 나서고 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런 이들과 함께한다면 무엇이든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마음만 받겠다. 아직은 너희들이 싸울 시기가 아니다.”
지금 이들을 싸우게 할 수는 없었다. 이제 막 영지민들의 생활이 안정되어 생산력이 올라가던 참이었다.
그런데 전쟁으로 영지가 황폐해지고 많은 영지민들이 죽는다면? 지금까지 들인 것 이상의 시간을 더 들여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전투였다면, 공작가의 주력이 쳐들어온 것이라면 총동원령을 내려 싸웠을 것이다.
단 한 번만 이기면 되는 전투일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다. 데스몬드는 중간에 넘어야 할 산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지셀도 처음에는 잠시 이곳에서 물러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지셀의 거부에 영지민들은 분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직 우리가 약해서 그래…….’
‘이번에도 영주님만 믿을 수밖에…….’
‘이번 위기만 넘기면 돼. 다음에는 반드시…….’
그간 너무나도 안일하게 지냈다. 최근에는 영지가 노려진다는 소문에 긴장해서 병사로 많이들 지원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진작에 훈련을 받고, 영지를 지킬 힘을 키웠어야 했다.
영지민들은 그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 이렇게 안도하며 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그런 각오를 품었다.
지셀은 영지민들을 일별하고 자신의 앞에 선 군대를 바라보았다.
검은색 갑옷을 입은 300명의 기사가 언제라도 폭발할 듯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항상 티격태격했지만, 길리언과 요새에 있던 기사들은 지금껏 함께해 왔던 동료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적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하니 빨리 달려가고 싶었다.
“후욱……. 후욱…….”
다들 분이 차올랐는지 거친 숨만 내쉬고 있었다.
지셀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바네사와 알포이를 필두로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들이 한쪽에 모여 있었다.
조금 긴장한 기색이 있긴 하지만 크게 두려워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데스몬드군은 마법사를 많이 데리고 있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제 펜리스의 마법사들도 본격적으로 나서야 했다.
푸르르륵.
말들의 사나운 투레질 소리에 지셀은 소리가 들린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루미나와 아스콘을 필두로 선 200여 명의 엘프. 그리고 그들의 뒤에 있는 2천의 궁기병들.
이번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이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신형 활을 접어 허리춤에 매달고 있었다.
그 뒤로는 노동돌격대를 포함한 기마병 1천여 명이 말을 타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지난 전쟁 때와 다른 점을 꼽자면, 벨린다와 몇몇 인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모인 이들을 한번 둘러본 지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의 친구들이 적의 대군을 맞아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었다. 우리의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서 말이다.”
기사들이 더 거친 숨을 내뿜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지셀의 말은 나긋하면서도 힘 있게 이어졌다.
“적은 이 북부의 최강이라고 불리는 데스몬드다. 3만의 대군을 몰고 왔지만 우리는 병력을 전부 긁어모아도 4천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겁이 나는 자는 빠져도 좋다.”
쿵!
한 기사가 웃기지 말라는 듯 강하게 창으로 땅을 쳤다. 그러자 다른 기사들도 그를 따라 창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그들의 눈빛에서 격렬한 전의가 느껴졌다. 지셀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좋다. 더 시간을 끌 수는 없다.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헛되이 할 수는 없는 노릇.”
쿵!
다시 기사들이 창을 땅에 내리찍었다. 땅울림이 마치 심장 고동처럼 규칙적으로 퍼져 나갔다. 그 소리를 들은 모든 이들의 심장 박동이, 호흡이 서서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도와줄 차례다.”
지셀이 그 말을 끝으로 바로 말에 올라탔다.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도 그를 따라 말에 올라탔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지셀이 흑왕의 말고삐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가자, 우리의 친구들을 구하고 데스몬드를 박살 내러.”
히이이잉!
흑왕이 앞발을 높이 들며 울었다. 그리고는 곧장 강하게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두두두두두두!
기사와 병사들이 지셀의 뒤를 따랐다.
전원이 기마병이다. 그들은 성에 틀어박혀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펜리스군은 마치 그간 모아 왔던 힘을 단번에 터뜨리듯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흑왕의 위에서 지셀은 이를 꽉 깨물었다.
‘조금만 더 버텨라, 길리언.’
그의 눈은 모든 것을 파괴할 것만 같은 살의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