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88)
288 – 이대로 돌파한다. (2)
288화 이대로 돌파한다. (2)
해럴드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갑자기 궁기병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분명 처음 펜리스의 대열을 봤을 때는 등에 활을 메고 있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펜리스에서 신소재로 접이식 활을 개발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을 마주한 창병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방패를 든 중보병들은 전부 측면을 방어하는 위치에 배치되었다. 화살을 막아 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데스몬드의 지휘관들과 병사들은 궁기병들이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끼익…….
데스몬드군을 노려보며 활시위를 끝까지 당긴 루미나는 순간 호흡을 멈췄다.
‘할 수 있어.’
사실 지금도 정신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처음 말을 타고 난 뒤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계속했지만 실제로 전쟁에 참여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녀뿐만이 아니다. 부분적으로나마 자연과 소통하는 방법을 깨우친 엘프들은 전장에 감도는 무겁고 끔찍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몸이 짜릿짜릿해지는 감각. 이런 곳에 머무는 건 엘프들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래도 해야 해.’
물러설 수는 없었다. 엘프의 사명과 본성을 찾았어도, 인간 세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엘프들은 인간들의 사고방식에 더 익숙했다.
이들은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어설프게 굴면 더 큰 희생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본성을 따르며 사는 엘프들 또한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건 마찬가지.
그리고 지금 이들의 영역은 펜리스 영지다.
영주가 훗날 약속을 지킬지 안 지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와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여, 펜리스에 가호를.’
마음을 다진 그녀가 활시위를 놓았다.
탕.
그것을 신호로 모든 엘프와 궁기병들이 활시위를 놓았다.
파아아아아악!
데스몬드군을 향해 수천 개의 화살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파파파파팍!
“으아아악!”
측면에 대기하고 있던 중보병들은 방패를 들어 화살을 막아 냈지만, 중앙에 있던 병사들은 그럴 수 없었다.
데스몬드군 전열의 창병들이 허무하게 쓰러졌다. 뒤에 있는 병사들도 빗발치는 화살에 맞아 쓰러지기 일쑤였다.
궁기병들은 화살을 쏜 즉시 말 머리를 돌려 양옆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빙 돌며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지셀이 알려 주고 훈련시킨 움직임 그대로였다.
그 모습을 본 해럴드가 분개한 표정으로 외쳤다.
“쫓아라!”
뒤를 보이는 기마병만큼 약한 이들이 또 없다. 그리고 데스몬드군의 기마병들은 이미 적의 뒤를 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비록 뼈 아픈 피해를 보았지만, 이대로 궁기병들을 모조리 죽인다면 큰 손해는 아니었다.
해럴드의 눈이 전장을 빠르게 훑었다.
두두두두두!
앞서 빠졌던 펜리스의 기마병들은 궁기병들을 쫓는 기마병들을 스치듯이 지나쳤다. 더 크게 돌아 데스몬드 진형의 측면과 후방을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방패! 막아라!”
철컹! 철컹! 철컹!
측면에 배치되어 있던 중보병들이 재빨리 움직여 방패의 벽을 만들었다.
2천의 궁기병들은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고 있으니 남은 기마병들로는 겹겹이 배치된 방패를 전부 뚫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과연 펜리스의 기마병들은 뛰어들지 않고 데스몬드군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데스몬드의 기마병들은 죽어라 달려 궁기병들을 쫓았다.
그들이 방향을 다시 돌리기 전에 뒤를 쳐서 단번에 쓸어버리려는 심산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
펜리스 기마병들의 속도가 빨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데스몬드군이 이를 악물며 어떻게든 거리를 좁히고 있을 때.
갑자기 루미나가 등을 돌리고 뒤쪽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동시에 모든 궁기병이 그녀를 따라 몸을 돌렸다.
“이 무슨…….”
추격하던 데스몬드군 기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격렬히 흔들리는 말 위에서 고삐를 아예 놓고, 다리로만 몸을 고정한 채 활을 쏜다고? 그것도 뒤를 보면서? 2천 명 전부가?
방금은 어떻게든 피해를 주겠다고 억지로 시도한 공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말도 안 돼. 기마술과 궁술을 몇 년은 훈련해야 숙련이 되는 게 궁기병이다. 어떻게 다들 저런 실력을…….’
다들 딱히 불편해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말이 기수를 안 떨어뜨리려고 알아서 조절해 주는 느낌이었다.
생각은 더 길어지지 못했다. 그가 소형 방패를 들기도 전에, 시야를 새까맣게 가릴 정도로 화살들이 덮쳐 왔다.
파파파파팍!
“크아아악!”
히이이이잉!
비명과 말 울음이 울려 퍼지며 데스몬드의 기마병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전력으로 달리던 중이라 화살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전신 갑옷과 마갑을 장착한 기사들을 제외한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으아아악! 안 돼!”
쿠웅! 콰앙! 콰앙!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해 앞쪽이 우수수 쓰러지자 뒤따라오던 기마병들도 마구 엉켜 쓰러졌다.
그 와중에도 화살은 계속 날아왔다. 양쪽에서 궁기병을 쫓던 기마병들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졌다.
해럴드는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어떻게 저놈이 벌써 저런 전력을…….”
애초에 궁기병이 저렇게 많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한 펜리스 영지에서 저만한 궁기병을 양산할 수는 없었다.
육성하는 데 시간도, 비용도 너무 많이 들어 영주들 대부분이 포기한 병종이 궁기병 아닌가.
소규모 정찰대에서 쓰이는 것을 제외하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기에 해럴드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만약 펜리스에 이 정도로 궁기병이 많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다른 전술을 준비했을 것이다.
“이놈…… 도대체 그동안 무슨 짓을…….”
100명이 넘는 기사, 새로운 소재로 만든 무장들, 6서클 마법사, 2천 명이 넘는 궁기병.
믿을 수 없는 전력이 하나하나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
중보병 주변을 맴돌던 펜리스의 기마병들이 방향을 틀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대로 돌아가던 궁기병들이 다시 선회하며 데스몬드군의 양측을 포위하듯이 다가왔다.
해럴드는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외쳤다.
“방패! 아군을 보호해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궁기병들의 화살이 데스몬드군의 양쪽 측면을 공격했다.
파아아악!
“으아아악!”
“반격해라! 반격을 해!”
“막아! 방패를 들어라!”
아무리 중보병들이 막아 준다 해도 하늘을 덮어 오는 수천 개의 화살을 전부 막을 수는 없다.
안쪽에 있던 창병들과 궁병들은 아무것도 못 해 보고 쓰러지기에 바빴다.
“쏴라! 우리도 쏘란 말이다!”
데스몬드의 궁병들이 견제 사격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궁기병들은 빠른 기동력으로 화살을 피해 계속 움직이며 데스몬드군의 측면을 괴롭혔다.
당하는 쪽에서 보면 정말 치사하기 이를 데가 없는 공격이었다.
“막아! 막으라고!”
곳곳에서 지휘관들의 외침이 들려오지만 중보병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빗발치는 화살 때문에 전장을 제대로 시야에 담기가 힘들었다.
자신들은 큰 방패 덕분에 안전하지만, 미처 막아 주지 못한 아군들이 여기저기서 쓰러져 갔다.
궁기병을 전혀 대비하지 않았던 데스몬드군은 계속 끌려다니는 형편이 되어 버렸다.
두두두두두두!
정신없이 측면을 도는 궁기병들을 보며 해럴드는 핏발 서린 눈으로 외쳤다.
“당장 좌우익의 군대를 불러들여라! 어서!”
이대로 가다가는 계속 끌려다니다가 모두 쓰러지고 말 것이다.
왕국군과 페르디움군을 상대하던 군대가 돌아와 궁기병들을 쫓아야 했다.
부우우우우!
크게 나팔 소리가 울리고 왕국군과 페르디움군을 상대하던 데스몬드군이 그 소리를 들었다.
왕국군을 상대하던 기병대 지휘관, 에머슨은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됐는데…….”
에머슨의 기병대는 벌써 수도 귀족 연합의 군대를 절반쯤 밀어 버린 상태였다.
3군단과 섞인 귀족 연합의 군대는 딱 봐도 훈련 상태가 부족하고 손발도 맞지 않았다. 그렇기에 약한 곳부터 공략하는 에머슨의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궁기병 때문인가?”
에머슨은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궁기병은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막기가 힘들다.
보병들이 따라가질 못하니 궁병과 기마병으로 상대해야 하는데 상대측의 갑옷 성능이 뛰어나니 그마저도 쉬워 보이지 않았다.
무장을 갖춘 아군의 중보병들은 잘 버티고 있지만, 저런 식으로 싸우다가는 결국 야금야금 잡아먹힐 것이다.
어차피 기마병들은 대부분 자신이 이끌고 있다. 자신이 쉼 없이 움직이는 저 궁기병들의 경로를 파고들어서 흐름을 끊어야 한다. 그래야 아군 보병들이 움직일 수 있었다.
“보병들은 천천히 빠지면서 왕국군을 상대해라! 기마병은 모두 나를 따르도록!”
에머슨이 이끄는 군대가 서서히 뒤로 빠지며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수도 귀족 연합의 지휘관, 이더리안 자작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와씨! 진짜 죽을 뻔했네. 뭐 저렇게들 잘 싸워? 적들이 빠지니 우리는 좀 뒤로 빠지자!”
투자금 날리지 않으려고 왔다가 목이 날아갈 뻔했다. 이더리안 자작은 다시는 펜리스 백작의 일에 끼지 않기로 새삼 맹세했다.
반면 3군단은 정예답게 공격을 잘 버티고 있었다. 3군단장인 클리프턴 자작은 이더리안 자작과 다른 결정을 내렸다.
에머슨이 빠지는 것을 보니 확실히 중앙에 문제가 생겼다. 이럴 때는 이쪽이 제대로 데스몬드군을 포위해 주어야 승기를 잡을 수 있다.
“기회다! 이번에는 우리가 밀고 들어간다! 어서 움직여라!”
“와아아아아!”
3군단이 조금씩 전진하자 이더리안 자작도 아예 뒤로 빠지지는 못했다.
혼자 뒤로 빠져 있어 봤자 전쟁에서 지면 어차피 몰살당한다. 저 무서운 데스몬드 백작이 자신들을 살려 줄 거 같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 이쪽이 이긴다면, 뒤로 빠져 있었다고 욕을 크게 먹게 될 테고.
“어…… 우리도 다시 가자!”
기병들이 빠진 데스몬드군은 수가 부족해 점점 왕국군에 밀리기 시작했다. 에머슨은 그 상황을 짐작하면서도 중앙군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왕국군을 상대하던 에머슨은 쉽게 군대를 돌렸지만, 페르디움을 상대하던 가레인 자작은 그러지 못했다.
“젠장! 페르디움이 이렇게 잘 싸웠다고?”
페르디움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데스몬드군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수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데스몬드군은 공격을 막기에만 급급했다.
“와아아아아!”
전투력도 전투력이지만 사기가 어마어마했다. 페르디움군은 함성을 끊임없이 울리고 전혀 지칠 줄을 몰랐다.
“마, 막아라! 버티라고!”
콰앙! 콰앙!
“으아아아악!”
페르디움의 기사들은 수가 적었지만 하나하나가 중급 기사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지셀에게 새로운 마나 연공법을 배운 페르디움의 기사들이다. 이들이 작정하고 힘을 터뜨리자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터져 나왔다.
즈발터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힘을 아끼지 마라! 어서 이쪽을 밀어야 포위에 성공할 수 있다!”
언제나 걱정이 많은 그는 지금도 마음이 급했다. 중앙에서 지셀의 군대가 잘 싸우고는 있지만 상대보다 수가 무척 적다.
자칫 잘못해서 포위당하면 단번에 몰살당할 수도 있기에 빨리 이곳을 뚫고 싶었다.
그의 명령을 받은 모든 기사와 병사들은 힘을 아끼지 않고 무기를 휘둘렀다.
한쪽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던 란돌프는 즈발터와 다르게 신이 나서 날뛰었다.
“으하하하! 우리가 이 정도로 싸울 수 있다니! 우리가 이렇게 강해졌다니!”
막상 싸워 보니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적을 압도하고 있다. 언제나 북방 요새에서 지내다 보니 자신들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듯했다.
그간 지셀 덕분에 강해진 전력은 북부 최강이라 불리는 데스몬드군에게도 통한 것이다.
언제나 끌려오는 스코반 또한 데스몬드의 병사들을 베며 중얼거렸다.
“와, 이게 되네? 우리 왜 이렇게 세지?”
예전 같았으면 이름만 들어도 겁부터 먹었을 데스몬드군이다. 그런데 지금은 겁먹기는커녕 더 많은 수를 역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피를 토할 정도로 했던 수련은 자신들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 힘은 야만인들과의 전투에 이어 데스몬드군을 상대로도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페르디움군이 생각보다 너무 잘 싸우니 가레인 자작은 군대를 뺄 수가 없었다. 더 많은 병력을 데리고도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게 전부였다.
지금 일부라도 발을 빼면 상대의 공세에 밀려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으으……. 어째서 페르디움 따위가…….”
가레인 자작은 싸우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북방에서 실전을 많이 겪는다 해도 상대는 기껏해야 하찮은 야만인 약탈대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그런데 그렇게 무시하던 페르디움에게 이렇게 밀리게 될 줄이야. 싸우면서도 분노와 수치가 끊임없이 몰려왔다.
가레인 자작이 군대를 빼지 못하니 결국 해럴드의 본대를 구하러 움직인 건 에머슨의 일부 병력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해럴드는 이를 갈며 외쳤다.
“조금만 더 버텨라! 아군이 도와줄 것이다!”
가레인 자작이 오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에머슨이 와서 궁기병들의 움직임만 끊어 줘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재빠르게 병사들을 움직여 전열을 가다듬고 역으로 포위하면 된다.
바쁘게 고개를 돌리던 그는 문득 앞쪽을 보고 심장이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차!’
앞쪽이 비었다. 창병들의 대열은 이미 무너졌고 다들 중보병의 뒤에 숨기에 바빴다.
모두가 측면의 궁기병에게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멀리 돌아갔던 펜리스의 기마병들이 다시 데스몬드군의 정면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
앞이 훤히 빈 것을 본 지셀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이대로 돌파한다.”
지셀의 눈이 붉어졌다. 그의 창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이잉―!
동시에 그의 뒤를 따르는 기사들의 갑옷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왔다.
펜리스의 기마병들과 노동 돌격대의 대원들도 창을 어깨 사이에 끼고 꽉 쥐었다.
두두두두두두!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빠른 속도였다. 특히 지셀이 탄 흑왕은 같은 편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붉은 빛줄기가 데스몬드군의 진영으로 쏘아져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