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90)
290 – 이대로 돌파한다. (4)
290화 이대로 돌파한다. (4)
그림자 산맥에 있던 카오르와 기사들은 지셀의 소집 명령을 받자마자, 계약으로 묶인 헌터들을 끌고 펜리스 영지로 달려왔다.
안 가겠다고 버티던 놈도 있긴 했지만, ‘아이언클리프의 왕’ 카오르의 강한 어루만짐에 다들 마음을 돌렸다.
튜리안 왕국이 지셀의 계약서를 보증해 주니 갈 곳 없는 헌터들은 도망갈 수도 없었다.
다른 기사들은 다시 기사단에 배속되어 지셀과 함께 움직였고, 카오르는 헌터들을 이끌고 마법사들을 지키는 임무를 받았다.
콰앙! 콰앙! 콰앙!
히이이잉!
“으아아악!”
헌터들을 상대한 적 없는 데스몬드의 기마병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응하지 못하고 마구 쓰러졌다.
“이야! 몬스터보다 쉽잖아!”
이들에게 기마병이란 그저 발이 4개 달리고 덩치가 조금 큰 몬스터에 불과했다.
그것도 직선으로 강하게 달리는 기술밖에 없는 몬스터 말이다.
온갖 기상천외한 신체 구조를 자랑하는 몬스터들과 싸우는 데 익숙한 헌터들에게 기마병을 상대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앗! 빠져나갔다!”
물론 천 명이나 되는 기마병들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다. 대열을 이루는 데는 어설픈 헌터들의 사이를 뚫고 들어간 몇몇 기마병들은 그대로 마법사들에게 돌격했다.
두두두두두!
허공에 손을 뻗으며 마법을 시전하고 있던 바네사가 고개를 돌려 기마병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비어 있던 반대쪽 손을 다가오는 자들에게 뻗었다.
“어스 월.”
쿠우우우웅!
흙으로 만들어진 벽이 순식간에 솟아오른다. 돌격하던 데스몬드의 기마병들은 그대로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콰아앙! 콰앙! 콰아앙!
“으아아아악!”
히이이이잉!
강한 충격을 받은 말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몇몇 기마병들은 벽을 뚫고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뒤따라오던 기마병들은 억지로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카오르가 기겁하며 외쳤다.
“이 멍청이들아! 마법사들을 지켜야지! 몬스터 사냥이 아니라고!”
폼만 잡고 있던 카오르는 허겁지겁 달려와 기마병들을 베어 냈다. 그제야 다른 헌터들도 다시 2중으로 대열을 만들며 기마병들을 막아 냈다.
“하씨…… 큰일 날 뻔했네.”
카오르는 식은땀을 흘렸다. 만약 마법사들이 다쳤다면 –특히 바네사가- 지셀이 자신과 헌터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아니, 만약 그렇게 됐다면 지셀이 문제가 아니라, 전쟁에서 패해서 도망가야 할지도 몰랐다.
한편, 기마병을 막느라 잠깐 바네사의 집중이 흩어진 틈을 타 데스몬드군의 진영에서 마법들이 쏟아져 나왔다.
바네사가 급하게 돌아보며 날아오는 마법을 해제했지만 몇몇 마법은 이미 본대로 치고 들어간 펜리스군에게 적중했다.
저서클 마법들이라 갑옷에 막혀 큰 타격은 없었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위험했다.
“칫!”
바네사는 광범위 공격 마법을 데스몬드의 진영에 뿌렸다.
상대 쪽에도 6서클이 있기에 성공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단지 마법사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서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마력을 쏟아부었다.
“쿨럭!”
바네사는 코피뿐만이 아니라 이제 입에서도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그사이 헌터들은 흙벽에 막혀 머뭇거리던 데스몬드의 기마병들에게 곧바로 덤벼들었다. 기마병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휘말려 헌터들과 난전을 벌였다.
그리고 그건 헌터들에게 훨씬 유리한 싸움이었다. 제대로 된 진형 없이 마구잡이로 싸우는 건 그들에게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콰앙! 콰앙!
“죽어! 이 새끼들아!”
“크어어억!”
기마병들은 말 위에서 헌터들을 상대로 고군분투했지만, 움직임에 제약이 있으니 점점 밀릴 수밖에 없었다.
헌터들은 조를 짜서 열심히 참마도를 휘두르며 기마병들을 압박했다.
“으하하하! 내가 최강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발군의 실력자는 역시 카오르였다. 그는 전보다 더 강해진 실력을 자랑하듯 마구잡이로 기마병들을 베어 냈다.
“크윽! 이 새끼 뭐야!”
“주력은 전부 본대로 돌진한 게 아니었나?”
“이놈부터 죽여라!”
카오르는 자신에게 몰려오는 적들을 보며 만족스러워하는 웃음을 지었다.
“후, 이 몸을 막기 위해 오는 건가? 좋아, 다 덤벼라!”
카오르는 더 신이 나서 날뛰었다. 비록 다들 적이긴 하지만 이렇게 주목받는 게 너무 좋았다.
카오르가 날뛸수록 상대적으로 다른 쪽으로 가는 기마병들이 줄어들어서 헌터들은 훨씬 싸우기가 편해졌다.
헌터들 사이에서 조금 앳되어 보이는 남자가 말의 다리를 베었다. 말이 넘어지자 그는 바로 검을 들어 올려 기수까지 베었다.
퍼억!
군더더기 없을 정도로 깔끔한 일격. 자신을 구해 준 지셀을 따라 펜리스 영지로 왔던 아렐이었다.
“후우…….”
아렐은 심호흡을 크게 하며 다시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아직 기초 훈련밖에 받지 못한 그는 기마병으로 참전하지 못했다. 대신 카오르를 따라 마법사들의 호위를 맡았다.
그간 강해지기 위해 열심히 체력을 키우고 훈련에 참여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영지를 지키려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돼.’
야만인들에게 약탈당해 많은 사람이 죽고 마을이 없어졌다. 두 번 다시 그런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동생은 머리가 좋아 행정 업무를 공부하고 있다. 이제 펜리스는 그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두 번째 고향이 되었다.
“흐읍!”
아렐은 쉬지 않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긴장감 때문에 근육이 굳고 벌써 지친 거 같지만 그는 집중을 놓지 않았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정확하게 무기를 휘두르는 것.
지셀이 가장 먼저 가르쳐 준 것이었다.
깔끔할 정도로 정확한 아렐의 자세를 본 카오르가 턱을 쓰다듬었다.
“호오…… 애송이 주제에 제법인걸? 마치 예전의 나를 보는 거 같아. 예전의 나처럼 열심히 수련을 하나 보네.”
그런 적 없다. 아렐의 나이 때 카오르는 술 마시고 놀기 바빴지, 수련 따위는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카오르가 낄낄대며 자화자찬하는 사이에도 헌터들은 차근차근 기마병들을 줄여 나갔다.
그들의 활약 덕분에 데스몬드의 기마병은 마법사들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살아남은 기마병들은 이제 도망가기에 바빴다.
도망친 자들은 다시 다른 쪽에 합류하거나, 이대로 전장을 빠져나갈 것이다.
기마병들을 상대한 헌터들이 무심코 도망치는 말들을 쫓아가자 카오르가 외쳤다.
“쫓지 마! 쫓지 말라고! 이 등신 새끼들아!”
헌터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마법사들을 둘러싸며 주변을 경계했다. 적당히 상황이 수습된 듯하자 카오르가 아렐에게 다가갔다.
“어이, 애송이. 좀 싸우는데?”
“감사합니다!”
“내가 싸우는 거 봤지? 어땠어?”
“정말 대단했습니다!”
아렐이 보기엔 카오르도 어마어마한 실력자였다. 혼자서 단번에 수십의 기마병들을 도륙했으니 그 실력이 어찌 부럽지 않을까?
카오르가 잘난 척하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다.
“나랑 영감이랑 누가 더 강한 거 같아?”
“…….”
아렐은 대답을 못 하고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카오르가 그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며 물었다.
“누가 더 센 거 같냐고.”
아렐은 그 얼굴이 부담스러워서 다시 반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도 또 얼굴이 따라온다.
“누구?”
유치하다. 유치해서 미칠 거 같은데 대답을 안 할 수도 없었다. 결국 아렐은 현실과 타협하고 말았다.
“……카오르 님이 더 강한 거 같습니다.”
“으하하하! 그렇지? 영감은 지금 아파서 저 뒤로 실려 갔잖아? 약한 자는 그런 법이지. 으하하하!”
길리언과 부상자들은 이미 전장을 빠져나간 지 오래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떨어진 임시 주둔지에서 피오테와 사용인들에게 치료받고 있을 것이다.
두두두두두!
궁기병들의 뒤를 쫓고 있던 에머슨은 조용해진 펜리스군의 후방을 힐끗 보고 눈을 찌푸렸다.
‘실패했나.’
아군 진영에서 마법들이 시전됐기에 잠깐 기대했건만, 살짝 집중을 흐트러뜨린 것에 불과한 모양이다.
‘결정해야 한다.’
궁기병을 계속 쫓을지, 아니면 마법사를 공격할지.
잠시 고민하던 에머슨은 앞을 바라보았다.
궁기병들은 기마병을 피해 계속 도망 다니면서도, 다른 쪽에서 싸우는 데스몬드군을 향해 꾸준히 활을 쏘아 댔다.
그야말로 상대를 약 올리는 데는 최적화된 병종이었다.
저 궁기병들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아군은 계속 끌려다닐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부터 처리한다.’
6서클이나 되는 윌로우가 있음에도 상대를 견제하느라 마법 공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데스몬드군이 밀리고 있는 것이다.
펜리스 측 마법사만 처리하면 전황은 단번에 뒤바뀔 것이다. 궁기병이 사장된 이유 중에는 마법사의 존재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굳이 궁기병들에게 끌려다닐 필요가 없었다.
마법사들부터 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마법사들에게 바로 갈 수는 없었다. 지금 바로 그들을 놓아준다면 궁기병들은 중앙의 펜리스군을 도우러 갈 것이다.
일단은 최대한 중앙과 멀리 몰아 두어야 했다.
“더 힘을 내라!”
에머슨이 크게 외치며 연신 말을 재촉했다. 하지만 궁기병들의 속도가 빨라 원하는 만큼 몰고 가기가 힘들었다.
궁기병들이 입은 갑옷은 전신 갑옷인데도 그리 무겁지 않은 듯했다. 거기에 말들은 어디서 구해 왔는지 힘이 넘친다.
이쪽의 수가 더 많기에 맞붙으려 하지도 않고 활만 쏘며 도망만 다녔다. 결국은 그들이 움직일 방향을 예측하고 모는 수밖에 없었다.
두두두두두!
‘조금만 더!’
에머슨은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조금씩 방향을 바꾸며 궁기병의 이동 경로를 예측했다.
기병 지휘관으로서 오랜 경력을 쌓아 온 에머슨이다. 그는 차근차근 거리를 좁혀 펜리스의 궁기병을 따라잡았다.
도망 다니던 궁기병들의 가장 후열에 있던 아스콘은 연신 뒤를 돌아보며 떠들었다.
“야이, 시발아! 빨리 좀 달려라! 나 죽게 생겼다고!”
적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쫓아온다. 빨리 도망가야 하는데 자신의 말은 수상할 정도로 다른 말들보다 느렸다.
이미 뒤로 처지다 못해 대열에서 떨어져 나올 정도였는데도 말은 산책을 나왔다는 듯, 가볍게 뛰고만 있었다.
“시발아! 제발 좀! 이 시발아아아아!”
아무리 욕을 해도 속도가 안 난다. 이러다가 제일 먼저 죽게 생겼다.
결국 아스콘은 이를 악물고 활을 들었다.
“저 새끼부터 처리하면 되겠지?”
몸을 돌리자 가장 앞에서 열심히 달려오고 있는 지휘관이 보인다.
데스몬드의 기마병들은 펜리스처럼 전신 판금 갑옷을 사용하지는 못했다. 지금 자신을 쫓는 지휘관도 다른 기마병들과 마찬가지로 체인 메일을 입고, 눈 쪽에 틈이 난 투구를 쓰고 있다.
만약 저 투구의 작은 틈새를 맞춘다면 지휘관을 단번에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엘프들은 집중하면 아주 작은 틈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궁술 실력이 뛰어나다. 자연의 힘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끼익…….
아스콘은 활을 당기며 집중했다. 몸이 흔들리지만 상관없다. 화살은 바람을 타고 정확하게 목표를 맞출 테니까.
오직 엘프만이 보일 수 있는 기예.
조준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그만큼 무시무시한 일격이라 할 수 있었다.
‘바람이 느껴진다.’
온몸의 감각이 자신에게 길을 알려 주고 있다. 지금이다, 지금 쏘면 저 지휘관의 얼굴을 뚫을 수 있다고 바람이 말하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파앙!
아스콘의 뒤를 쫓던 에머슨은 빛이 번뜩이자 바로 방패를 들어 올렸다.
쐐애애애액!
화살은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가 사라졌다.
“에이 시바라, 역시 안 되네.”
푸르르륵!
아스콘의 말은 달리면서도 뭐가 웃기는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반면 하늘 높이 날아간 화살을 본 에머슨은 분노에 차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감히 이딴 장난을!”
모욕적이었다. 궁기병의 활 실력이 저렇게 형편없을 리가 없었다.
뒤꽁무니에서 가장 느리게 달리는 것도 그렇고, 저놈은 자신을 놀리려고 일부러 저딴 식으로 활을 쏜 게 분명했다.
어디 한번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 보라고.
이 급박한 전쟁 상황에서 자신에게 저런 도발을 던지다니.
에머슨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반드시 잡아 죽이겠다.”
조금만 더 몰아가면 된다. 그리고 바로 방향을 틀어 마법사들을 밀어 버릴 생각이었다.
전장의 열기는 더 격해졌다. 서로가 상대를 깨부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양측 다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했다.
펜리스군은 개개인의 실력은 뛰어났지만 수가 너무 적었고, 데스몬드군은 압도적인 수를 바탕으로 버티고 있지만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양측 다 마법사들부터 처리해 전황을 단번에 바꾸려 한 것이다.
그러나 전투가 길어질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펜리스 쪽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다지 유리하다고만은 볼 수 없었다. 만약 지셀이 활약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전황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콰아앙! 콰앙!
붉은 눈을 빛내며 창을 휘두르는 지셀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데스몬드의 중보병들은 그의 공격을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날아갔다.
방패와 갑옷이 무참하게 갈리고 시체가 쌓인다. 사방에서 창들이 날아다니며 빈틈을 공격했다.
“으아아악! 이 괴물!”
“기사들은 어서 저놈부터 막아라!”
“막아라! 윌로우 님을 노리고 있다!”
곳곳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지만, 그 누구도 차근차근 전진하고 있는 지셀을 막지 못했다.
완전히 에워싸 막을 수도 없었다. 뒤따라온 펜리스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막강한 방어력을 바탕으로 지셀의 뒤를 지키며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드드드!
지셀은 슬슬 몸에 부하가 걸리는 것을 느꼈다. 마법사에게 다가갈수록 더 뛰어난 기사들이 달라붙었고 병사들도 악착같이 덤벼들었다.
‘조금만 더.’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 몇 번 정도만 더 방어선을 뚫어 버리면 마법사의 목을 칠 수 있을 것이다.
콰앙! 콰앙!
지셀과 흑왕이 전진할 때마다 적들이 튕겨 나가며 길이 만들어진다.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장을 지배하는 악귀와도 같았다.
데스몬드군의 방어선이 속수무책으로 뚫리고 있을 때, 한쪽에서 큰 고함이 들려왔다.
“비켜라!”
촤아아악!
지셀을 상대하던 병력이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며 뒤로 물러섰다.
두두두두두!
그와 동시에 은빛 갑옷을 입고 말을 탄 기사 한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도끼날을 붙인 창, 할버드를 들고 있었다.
무리의 선두에 선 기사, 로네스가 외쳤다.
“펜리스 백작을 척살하라!”
데스몬드의 로열 가드, 최정예 기사인 그들이 전부 지셀을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