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91)
291 – 이제 끝이 나겠군. (1)
291화 이제 끝이 나겠군. (1)
마나를 다루는 기사는 일반 기마병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발휘한다. 그것도 대영주를 보필하는 최정예 기사라면 말이다.
두두두두두!
빠르게 달려오는 로열 가드 50명에게서 폭풍과도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데스몬드의 병사들은 로열 가드들이 달려오자 신속하게 자리를 피했다. 이미 이런 부분에 대한 훈련도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영주님!”
“대장!”
펜리스의 기사들도 상대의 기세에 깜짝 놀라 달려 나가려 했다. 하지만 지셀은 창을 늘어뜨리며 외쳤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밀어라!”
전장은 지셀 주변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데스몬드의 병사들로 꽉 차 있었다. 하나라도 더 죽여야 앞으로 나서기가 쉬워진다.
그의 단호한 어조에 펜리스군은 지셀 쪽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눈앞에 있는 적에게만 집중했다.
드드드드!
펜리스의 기사들도 싸우면 싸울수록 몸에 부하가 걸리는 걸 느꼈다. 지금은 신경을 분산시켜 가며 싸울 여유가 없었다.
이럴 때는 그냥 영주를 믿고 자신들의 싸움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리고 그 모습은 로열 가드들의 신경을 거슬렀다. 단장인 로네스는 불쾌감이 잔뜩 어린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건방지구나!”
자신들은 데스몬드의 최정예 기사들이다. 아무리 펜리스 남작이 상급 기사의 수준이라 해도 50명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혼자 싸우겠다고 하다니, 오만의 극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우우우웅!
로열 가드들은 모두 마나를 거세게 끌어올렸다. 이대로 지셀을 짓밟을 속셈이었다.
지셀 또한 흑왕의 배를 박차며 달려 나갔다.
두두두두두!
50명의 최정예 기사들을 향해 혼자 달려드는 모습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다. 데스몬드의 병사들은 모두 지셀이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첫 일격에 그 생각은 바뀌고 말았다.
부우우웅!
선두에 선 로네스가 할버드를 강하게 휘둘렀다. 지셀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고개를 숙여 피하며 그대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로네스의 뒤를 따르던 다른 기사 두 명이 동시에 지셀을 향해 할버드를 휘둘렀다.
콰아앙!
그들이 휘두르던 할버드가 허공에 튕겨 나갔다. 지셀은 그들을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콰아앙! 콰앙!
로네스를 뒤따르던 로열 가드들이 연달아 무기를 휘둘렀지만 모두 지셀을 맞추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지셀은 계속 기사들의 할버드를 튕겨 내며 앞으로 나아가기 바빴다.
‘조금만 더.’
기마전에서는 한번 공격에 실패하면 다시 공격하기가 쉽지 않다. 말 머리를 돌려야 하는데, 뒤따라오는 자가 많을수록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로열 가드들이 말 머리를 돌렸을 때 이미 지셀은 그들을 모두 돌파하고 앞으로 더 나아간 상태였다.
로네스는 그 모습을 보고 사색이 되어 외쳤다.
“마, 막아라!”
장엄하게 나타난 로열 가드들의 길을 비켜 주느라 몇천이나 되는 중보병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중앙을 몇 겹으로 막고 있던 병사들은 로열 가드들을 믿고 양옆으로 이미 빠진 상태였다. 남은 펜리스군을 공격하려고 위치를 바꾼 것이다.
하지만 로열 가드들이 지셀을 처리하지 못한 지금은, 데스몬드군이 스스로 지셀에게 길을 열어 준 꼴이 되어 버렸다.
병사들도 그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대형을 다시 갖추려 했지만, 그들이 제자리를 찾는 것보다 지셀이 들어오는 게 더 빨랐다.
콰아아앙!
“으아아악!”
붉은 눈을 빛내며 이를 드러낸 지셀은 다시 무지막지한 힘을 뿜어냈다.
몇 겹이나 진을 친 상태로도 뚫리던 적들이, 진영도 흐트러진 상황에서 지셀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말머리를 돌린 로열 가드들이 빠르게 지셀을 뒤쫓았지만, 허겁지겁 양옆에서 충원되는 병사들과 엉키고 말았다.
“비켜라! 비키란 말이다!”
로네스의 외침을 들은 병사들이 물러나려 했지만, 뒤에서 들어오던 병사들과 빠져나가려는 병사들이 부딪치니 진영은 더 엉망이 되고 말았다.
콰앙! 콰앙! 콰앙!
“으아아아악!”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에도 지셀은 적들을 사방으로 날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조금만 더.’
콰아앙! 콰앙!
드드드득!
뼈가 뒤틀리는 게 느껴진다. 이제 3단계 코어는 한계에 달한 상태였다.
지셀은 뱃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핏물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더.’
적들의 방어선은 얇아졌고 로열 가드들은 뒤에서 따라오기 바쁘다. 이 이상 가는 기회는 다시 없을 터였다.
자신에게 덤벼드는 적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시했다. 그는 그렇게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콰아앙!
중앙을 감싸고 있던 대열의 마지막 한 겹을 뚫었을 때.
지셀은 드디어 목표했던 자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중보병들과 기사들에 둘러싸인 이질적인 진형이 보였다.
윌로우는 하늘을 바라보며 멀리서 피어오르는 마력을 잡아내고 있었다.
허공에 피어오르는 빨갛고 파란 아지랑이 같은 기운들. 그것들은 무겁게 피어오르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운들이 공간을 찢고 나타나는 듯했다.
윌로우는 세상의 법칙을 무시하는 이질감을 감각으로 좇으며 손을 휘둘렀다. 이것이 바로 마법이고 마법사들이 보는 세계다.
마법사들마다 그 방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그들은 마력을 객체화하여 인식한다.
마력의 변화를 하나하나 잡아내어 비틀린 법칙을 원래대로 되돌리면 세계는 안정을 찾아간다. 내버려 두면 그 이질적인 기운들은 형태를 갖추게 된다.
바네사와 윌로우는 그렇게 서로를 견제하며 집중하고 있었다.
‘바네사가 잘해 주고 있나 보네.’
마법을 막는 데 집중하느라 자신에게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윌로우를 보며 지셀이 악마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가 남은 마나를 모두 끌어올리자 창이 이글거리는 붉은 빛에 휩싸였다.
쿠웅!
윌로우를 빈틈없이 보호하고 있던 병사들이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지셀은 주변에서 덤벼드는 나머지 적들을 쳐내며 달려 나갔다.
두두두두두!
흑왕이 진형에 가까이 다가오자 갑자기 방패들 사이가 벌어지며 안쪽에서 수십 개의 창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지셀은 말고삐를 휘어잡고 몸을 옆으로 틀었다. 흑왕 또한 지셀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틀었다.
드드드득!
옆으로 방향을 튼 흑왕의 몸이, 땅에 말발굽 끌린 자국을 길게 남기며 자리에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지셀이 안장에서 뛰어올랐다.
파앗!
병사들은 시선으로 그를 좇으며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지셀은 마나를 가득 담아 윌로우에게 주저 없이 창을 던졌다.
쐐애애애액!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소리를 울리며 창은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윌로우는 갑자기 눈앞에 누군가가 뛰어올라 시야를 가리자 매우 놀랐다.
‘이런!’
윌로우도 자신을 노리고 적이 다가오고 있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군을 믿고 상대 마법사를 견제하는 데에만 집중한 상태였다.
하지만 적이 이 앞까지 나타났다는 건 더 이상 아군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지금 마력을 다른 데 쓰면 안 된다. 상대 마법사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마력을 통제하는 능력은 자신을 뛰어넘었다.
진작 자신이 밀리고도 남았을 상황인데 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아군 마법사들 때문인지, 아니면 상대 쪽에 다른 문제가 있는지 종종 상대 마법사의 마력이 흔들린 덕분이었다.
간신히 버티는 상황에서 윌로우가 집중을 풀어 버리면 바로 상대측 마법사의 공격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건 윌로우가 죽어도 마찬가지다.
“실드!”
결국 윌로우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쪽으로 마력을 돌렸다.
마력의 구가 단단하게 생성되어 그의 몸을 감쌌다.
지잉―!
콰아아아앙!
순간 주변의 땅이 들썩거릴 정도로 강렬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먼지구름이 윌로우를 중심으로 피어올라 모두의 시야를 가렸다.
사아아악…….
잠시 후 드러난 광경에 모두가 입을 벌리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위, 윌로우 님이…….”
“어떻게 6서클 마법사를 단번에…….”
“이럴 수가…….”
털썩.
아예 머리가 터져 없어진 윌로우의 몸이 몇 번 흔들리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땅에 착지한 지셀은 천천히 허리를 펴고 입 안에 머금었던 피를 내뱉었다.
그때까지도 주변에 있던 적들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이이잉!
파앗!
적들이 멍하니 있는 틈을 타 흑왕이 그들을 뛰어넘어 지셀의 앞에 당도했다.
지셀은 바로 흑왕에 올라타 고삐를 잡고, 마나의 실을 이용해 바닥에 떨어진 창을 다시 주워 들었다.
“후우…….”
지셀은 코어 개방 단계를 2단계로 내렸다. 더 이상 3단계를 유지하고 싸우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했다.
몸 안에 가득 찼던 마나의 양이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끝이 나겠군.”
두두두두두!
그사이 거리를 좁힌 로열 가드들이 지셀에게 다시 몰려오고 있었다. 선두에 선 로네스는 분노를 가득 담아 외쳤다.
“이 비겁한 놈! 네놈이 그러고도 귀족이란 말이냐!”
“그런 건 모르는데?”
“이 명예도 모르는 무도한 놈!”
“50명이 한 명한테 달려드는 건 명예로운 일이고?”
“이놈!”
로네스는 지셀의 이죽거림에 화를 참지 못하고 크게 할버드를 휘둘렀다.
카앙!
할버드를 쳐 낸 지셀은 바로 옆에 다가온 다른 로열 가드의 몸에 창을 찔러 넣었다.
푸욱!
“커헉!”
부웅!
그러고는 다시 창을 휘둘러 반대쪽 로열 가드의 목을 날린다.
흑왕과 함께 춤을 추듯 창을 휘두르며 지셀이 웃었다.
“그렇게 나와 놀고 싶다니 이제 어울려 주지. 너희를 죽이고 해럴드에게 가겠다.”
콰앙! 콰앙! 콰앙!
지셀과 로열 가드가 전투를 시작한 그때, 윌로우를 견제하던 바네사가 마력의 변화를 감지하고 눈을 빛냈다.
“영주님이 성공했어.”
아직 데스몬드의 본대 근처에는 수십의 마법사들이 남아 자신을 견제하고 있지만, 윌로우가 사라진 이상 그들의 견제는 큰 의미가 없었다.
다시 광역 마법을 시전하려던 바네사는 바로 마음을 바꿨다. 대규모 광역 마법을 쓰면 데스몬드군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지만, 아군도 다칠 수 있었다.
두두두두두!
그녀가 목표로 삼은 것은 바로, 펜리스의 궁기병들을 쫓는 에머슨의 기마대였다.
“파이어 랜스.”
바네사가 나긋하게 영창하며 손을 휘젓자 타오르는 창이 허공에 수십 개나 생성되었다.
화염의 창들은 그대로 에머슨의 기마대에 꽂혔다.
콰앙! 콰앙! 콰앙!
“으아아악!”
궁기병들을 몰아내고 막 방향을 틀던 기마병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말과 기수들이 한데 엉키고, 반듯하게 유지되던 대형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바네사의 마법 덕분에 에머슨을 떨쳐 낸 궁기병들은 다시 페르디움과 왕국군을 지원하러 움직였다.
바네사는 바로 카오르를 돌아보며 외쳤다.
“영주님이 성공했어요! 우리도 이제 움직여야 해요!”
“알았어, 바로 가자! 야, 근데 너 괜찮아?”
그녀의 코 아래는 아예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바네사는 상관없다는 듯 크게 외쳤다.
“빨리요!”
“아, 알았어. 왜 화를 내고 그래. 얘도 참 안 그래 보이는데 은근히 성질 있다니까.”
카오르는 바로 말에 올라타 그녀를 제 뒤에 태웠다. 몇몇 헌터들도 아직 남아 있는 마법사들을 태우고 움직였다.
나머지 헌터들은 바로 에머슨의 기마대를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쓰러진 마법사들을 후방으로 옮기기 위해 10여 명의 헌터들만이 자리에 남았다.
지금까지 마법사들은 서로 견제하느라 전장에서 너무 떨어져 있었다. 조금 더 섬세하게 아군을 보호하며 적을 공격하려면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두두두두두!
카오르와 바네사가 데스몬드의 본대를 향해 달려갔다. 그녀가 움직이자 전황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적당히 거리가 줄어들자 데스몬드군의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마법을 시전했다.
“익스플로전.”
콰아아아앙!
데스몬드군의 진형 곳곳에서 6서클의 화염 마법이 폭발했다. 폭발의 중심에 있던 마법사와 병사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몇몇 마법사들이 표적을 바네사로 바꾸어 대항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떤 마법사는 펜리스군을 노리고, 어떤 마법사는 바네사를 노리고 있으니 손발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
바네사보다 서클이 낮은 그들이, 겨우 한두 명만으로 바네사의 마법을 해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콰아앙! 콰아앙!
“으아아악!”
“살려 줘!”
“적 마법사가 다가왔다!”
바네사는 거침없이 마법을 난사했다. 마력이 부족해 피를 토하면서도, 따라온 마법사를 이용해 마력을 채우며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 덕분에 데스몬드의 마법사들이 있던 후열은 빠르게 무너졌다.
수준 높은 기사들은 지셀을 상대하고 있었고 윌로우는 죽었다. 6서클 마법사의 공격을 감당할 수 있는 자는 이제 남지 않았다.
콰앙! 콰앙! 콰앙!
사방에서 마법이 작열하자 집중이 흐트러진 데스몬드군은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몸을 피하는 병사들이 늘어났다.
덕분에 펜리스군은 훨씬 쉽게 적들을 밀어 낼 수 있었다.
지셀과 싸우던 로네스는 그런 상황을 짐작하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놈! 죽어라!”
카앙! 카앙! 카앙!
아무리 거센 공격을 해도 상대가 죽지 않는다. 상대는 이미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다. 죽일 수 있을 거 같은데 죽이지를 못한다.
오히려 이쪽에서 틈을 보일 때마다 한 사람씩 확실히 목숨을 앗아 갔다. 처음에 공격했던 50명 중에서 이제 30여 명만이 남았다.
피잉!
“크읏!”
뭔가 공격에 성공할 거 같다 싶으면 어디선가 창이 날아온다. 창에 실린 힘 자체는 별거 아니었지만 집중을 흩트리기엔 충분했다.
지셀이 이 이상한 재주로 몇 번이나 자신들의 공격을 방해했는지 모른다.
카앙!
다가오는 할버드를 쳐 낸 지셀도 로열 가드들의 실력을 인정했다. 역시 2단계 코어로 전부 이길 수 있는 상대들은 아니었다.
거기다 지셀 자신은 무리하게 돌파를 하느라 마나도 많이 소진하고 지친 상태였다. 최대한 치명타만을 막고 피하며 버티는 게 한계였다.
몸 곳곳이 베이고 찍혀 상처를 입었다. 놀라운 움직임을 보이는 흑왕이 없었다면 더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죽이고는 있지만, 저들의 합격술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다.
이대로 가다간 로열 가드들을 다 죽이기 전에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나도 혼자가 아니거든.”
카앙!
지셀이 다시 한번 적의 공격을 막았을 때.
푸욱!
“크억!”
돌아가면서 그를 공격하던 로열 가드들의 후열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셀과 마찬가지로 피투성이가 된 펜리스의 기사들이 당도한 것이다.
“영주님! 괜찮으십니까!”
“나머지는 우리가 상대하겠습니다!”
“저놈들을 죽여라!”
그들은 잽싸게 로열 가드들이 탄 말에 올라타 검을 휘둘렀다. 지셀에게 집중하느라 방심한 그들은 허무하게 목이 베이거나 몸이 뚫려 죽고 말았다.
펜리스 기사들이 달라붙자 데스몬드의 로열 가드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수적 우위는 역전이 되어 버렸다. 펜리스 기사들이 지친 상태긴 하지만 그들은 로열 가드들보다 훨씬 수가 많았다.
로네스는 이를 악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병사들은 곳곳에서 밀려 죽어가고 있고 로열 가드들마저 발이 묶였다.
“이제 너 혼자 남았네?”
지셀이 씨익 웃으며 창을 늘어뜨렸다. 로네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을 박찼다.
“이럇!”
두두두두두!
로네스가 할버드를 높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마나를 남김없이 뿜어내고 그것도 모자라 생명력까지 불태웠다.
이 일격에 상대를 죽여야 한다. 상대는 자신보다 윗줄의 실력자였지만, 지금은 상대도 많은 상처를 입고 지쳐 있다. 평소라면 통하지 않을 공격도 통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자를 여기서 죽이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난다. 그렇기에 그는 목숨을 걸고 모든 힘을 다 쏟아부은 것이다.
두두두두두!
지셀도 그를 마주 보고 말을 박찼다. 흑왕이 콧김까지 내뿜으며 달려 나갔다.
지셀이 공격 범위에 들어오자 로네스는 크게 외치며 할버드를 휘둘렀다.
“죽어라!”
부우우웅!
강맹한 일격이 바람을 찢으며 다가온다. 지셀은 순간적으로 3단계의 코어를 활성화했다.
드드득!
갑자기 폭발한 마나가 뼈와 근육을 뒤틀었다. 지셀은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자세를 낮추며 창을 내질렀다.
파악!
로네스의 할버드는 지셀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지셀의 창은 로네스의 목을 뚫었다.
“그르륵…….”
서로의 말이 반대 방향으로 스쳐 지나간다.
로네스는 피거품을 내뱉으며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는 원통한 눈빛으로 지셀을 바라보았다.
만약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펜리스의 마법사가 조금만 더 늦게 왔다면.
저자를 죽이고 전쟁을 끝낼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이 그의 마지막 미련이었다.
털썩.
로네스의 시체가 말 위에서 힘없이 떨어졌다. 지셀은 말을 돌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후방의 지휘소에 해럴드가 앉아 있다. 데스몬드의 남은 병력은 페르디움과 왕국군이 상대하고 있다.
이제 자신의 앞을 막을 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전생에 이어.
이번 생에서도 해럴드를 죽일 시간이 왔다.
“해럴드―!”
지셀의 고함이 전장에 천둥처럼 울렸다.
두두두두두!
흑왕이 해럴드 데스몬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