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92)
292 – 이제 끝이 나겠군. (2)
292화 이제 끝이 나겠군. (2)
전황은 빠르게 펜리스와 연합군 쪽으로 기울었다.
에머슨의 추격을 떨쳐 낸 궁기병들이 양쪽으로 나뉜 데스몬드군의 후열에 끊임없이 화살을 쏘았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앞뒤로 공격을 당하게 된 데스몬드군은 허무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더 적은 수로도 훌륭하게 우세를 점했던 페르디움군은 궁기병의 도움으로 완전한 승기를 잡았다.
“지금이다! 확실하게 밀어 버려라!”
특히 즈발터는 누구보다 앞에 서서 적을 죽여 나갔다. 원래 평소에 얌전하던 사람이 화가 나면 더 무서운 법이다.
“와아아아아!”
페르디움군이 기세를 타자 가레인 자작이 이끄는 데스몬드군은 더 버티지 못했다.
공포는 전염된다. 데스몬드의 병사들은 하나둘 도망가기 시작했고, 그들의 대열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져 갔다.
“도망가지 마라! 이 멍청한 놈들아!”
가레인 자작이 열심히 독려했지만 이미 기울어진 전세가 뒤바뀔 리는 없었다.
페르디움의 기사들은 피를 토하면서도 끝까지 집중을 놓지 않았다. 이제 승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왕국군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에머슨의 부대가 빠진 데스몬드군을 수적 우위로 압박했다.
페르디움처럼 과격하게 싸운 건 아니지만 정석에 따라 차근차근 적을 밀어냈다.
양옆이 무너지자 데스몬드군의 중앙은 포위당하는 꼴이 되었다.
중앙군은 더 이상 다른 쪽으로 지원을 나가지도 못했다. 그들은 지셀과 바네사의 활약으로 진작에 대열이 무너진 상태였다.
중앙군을 상대로 돌격을 시도한 펜리스의 기사들과 기마병들은 압도적인 방어력을 바탕으로 적들을 죽여 나갔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3인방이 있었다.
“후아! 더워 뒤지겠네!”
“조금만 더 버텨! 우리가 완전히 승기를 잡았어!”
“저놈들 다 도망가고 있잖아!”
전의를 상실하고 무너지는 적들에게는 이제 수적 우위도 의미가 없었다. 노동돌격대에 속한 세 명은 잠시라도 숨을 고르려 투구의 안면 가리개를 열었다.
“아, 살 거 같아!”
크게 소리치는 중년의 남자. 바로 데스몬드의 첩자로서 펜리스 영지에 들어왔다가 노동돌격대에 끌려온 첩자 조장이었다.
다른 두 사람도 안면 가리개를 열며 살 거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 사람의 얼굴은 모두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아무리 갑옷의 방어력이 좋아도 기사들처럼 마법 처리는 되어 있지 않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안쪽 온도가 올라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희열이 가득했다.
“으흐흐흐, 정말 ‘우리 펜리스’가 데스몬드를 이길 줄이야.”
조장의 말에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 보고 도망가거나 다시 저쪽에 붙으려고 했는데 정말 잘됐지 뭡니까.”
“자자, 어서 열심히 ‘적’들을 처리합시다.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 갑옷 진짜 대단하다니까.”
이들은 원래부터 실력이 일반 병사들보다는 뛰어났다. 그런 자들이 갈바니움 전신 갑옷을 입었으니 쉽게 죽을 리가 없었다.
조장은 창을 들고 힘차게(?) 소곤거렸다.
“자! 힘들지만 조금만 더 열심히 하자! 그리고 새 출발을 하는 거야!”
그들은 펜리스로 전향하기로 완전히 마음먹은 상태였다.
펜리스에는 집도 있고 모아 둔 돈도 많다. 북부 최강이라 불리는 데스몬드만 박살 내면 당장 자신들을 위협할 만한 적도 없었다.
레이폴드가 데스몬드와 비등하다 하지만 그쪽도 반역에 내전에, 상태가 안 좋다.
펜리스가 데스몬드를 점령하면 데스몬드에 있던 가족들도 안전해진다. 이번이야말로 확실한 새 출발과 신분 세탁의 기회였다. 이걸 놓치면 바보다.
그들이 의욕 넘치게 다시 싸우려고 할 때, 한 데스몬드의 장교가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외쳤다.
“너, 너희들은!”
세 사람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상대를 확인한 그들은 사색이 되어 외쳤다.
“저, 저 새끼는?”
세 사람은 잽싸게 투구의 안면 가리개를 내렸지만 이미 늦었다.
장교는 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해 댔다.
“네놈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는 데스몬드에서 첩자들을 육성하고 관리하는 교관이었다. 해럴드가 경비병까지 죄다 끌어온 판이라 이번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일부 병력을 이끄는 직책으로 참여를 했는데, 여기서 자신이 키워 펜리스로 보낸 첩자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체가 발각되자 다급해진 첩자 조장이 외쳤다.
“저 새끼 더 떠들기 전에 죽여야 해!”
괜한 소리를 지껄이면 자신들이 곤란해진다. 새 출발의 꿈이 무너질지도 몰랐다. 조장은 자세를 고치고 외쳤다.
“스트림 어택으로 바로 친다!”
크게 외친 조장은 잽싸게 창을 던졌다.
카앙!
“크읏!”
뭐라고 다시 떠들려던 장교가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라 창을 쳐 냈다. 하지만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틈을 타 다른 조원이 접근하며 바로 창을 찔렀다.
창!
그래도 실력이 제법 있었던 장교는 급하게 자세를 잡으며 두 번째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그게 그의 마지막 저항이었다.
“하아압!”
콰직!
다른 조원이 허리춤에서 도끼를 꺼내 장교의 목을 친 것이다.
장교는 이미 연속된 두 번의 공격을 막느라 자세가 완전히 흐트러진 상태였다. 세 번째 공격은 막을 수가 없었다.
원거리, 중거리, 근거리의 조합이 완벽한 합격술. 이것이 세 사람의 필살기인 ‘스트림 어택’이었다.
“크륵……. 이 배신자 새끼들…….”
장교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피거품을 내뿜으며 쓰러지고 말았다.
세 사람은 주변 눈치를 보다가 다른 자가 없음을 확인하고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다. 더 떠들면 곤란해질 뻔했어. 이 새끼 교육 때 우리 엄청 괴롭혔는데, 속이 다 시원하네.”
그런데 때마침, 로열 가드들을 쓰러뜨리고 다시 적 진형을 밀어내고 있던 고든이 세 사람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쓰러져 있는 장교의 복장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이야! 너희들 셋이서 적 장교를 죽였구나! 데스몬드의 장교면 실력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대단한걸?”
계급이 높은 자를 죽일수록 공이 올라간다. 고든은 껄껄 웃으며 세 사람에게 말했다.
“이렇게 열심히 싸우고 적 장교까지 죽일 줄이야! 노동돌격대에 있어서 첩자인 줄 알고 괜히 의심했네! 그동안 의심해서 미안했다! 너희들 공은 내가 위에 꼭 말해 줄게!”
“아하하하…….”
“저희 나쁜 사람 아니라니까요…….”
“꼭 위에 말 안 해도 되는데…….”
세 사람은 어색하게 웃었다. 괜히 공치사 듣겠다고 사람들 눈에 노출되고 싶지는 않았다. 혹시나 나중에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포로라도 만나면 큰일 난다.
하지만 그들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고든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 영주님이 보상 하나는 확실한 사람이거든!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싸워!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아하하하…….”
세 사람은 계속 어색하게 웃으면서 전투를 이어 나갔다.
‘저 새끼는 그냥 근육이나 키우지, 오지랖까지 넓어서!’
어떻게든 자신들의 얼굴을 아는 놈은 만나자마자 죽여야겠다는 다짐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노동돌격대가 활약하는 위치를 포함해, 데스몬드군은 모든 방향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가장 높고 안전한 곳에서 그 양상을 보고 있던 해럴드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내 군대가…… 내 군대가…….”
믿을 수가 없었다. 북부에서 최강이라 불리는 자신의 군대다. 하나하나 정예가 아닌 자가 없었다.
그런 정예를, 압도적인 수로 데려왔는데도 패색이 짙어지고 있다. 아니, 이미 패배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대열은 완전하게 망가졌고 사방에서 도망자가 속출하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분전하고 있던 에머슨의 기마대는 페르디움군과 왕국군이 포위에 성공하자 도망도 못 가고 죽어 나가는 판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사람이 자신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해럴드―!”
지셀은 분노와 희열에 가득 찬 외침을 내지르며 폭풍과도 같은 기세로 달려왔다.
“지셀! 네 이놈!”
해럴드도 분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놈 때문이다. 언제나 승승장구하던 자신이 저놈 때문에 모든 일을 망쳤다.
마지막 결전이라는 생각에 영지의 모든 힘을 쏟아부었건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이제 자신은 끝이다. 더 이상 북부의 대영주라 불리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쌓아 온 모든 것이 오늘 무너졌다. 그리고 자신의 부와 드높은 명성은 전부 저놈이 가져갈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최고의 길만 걸었던 자신이 북부에서 가장 형편없는 놈이라 소문났던 애송이한테 패배했다.
자신의 이름은 역사에 남아 영원토록 조롱을 당할 것이다.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이 굴욕을 어찌 참을 수 있을까!
“으아아아아아!”
해럴드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고함을 질렀다.
옆에서 참모들이 그의 팔을 잡고 외쳤다.
“백작님! 끝났습니다! 항복하셔야 합니다!”
“로열 가드들도 없습니다! 피하셔야 합니다!”
“가까운 공작파의 영지로 가시면 됩니다!”
촤악!
“커헉!”
도망과 항복을 말한 참모들은 모두 해럴드의 검에 목이 베였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다른 참모들과 소수의 병사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머리가 헝클어진 채 피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해럴드는 정상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를 지탱해 온 건 북부의 대영주로서 가진 자존심과 명예였다. 그걸 전부 잃은 지금 그에게는 삶의 의미가 없다.
회복하는 방법은 오직 단 하나.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저 애송이를 없애는 것뿐이다.
터억.
지셀은 흑왕에서 내린 뒤, 검을 들고 해럴드에게 다가갔다.
“해럴드.”
“지셀.”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며 이름을 불렀다.
공작가의 명령이긴 했지만 어쨌든 해럴드는 페르디움을 멸망시키려 했고, 전생에는 실제로 멸망시키기도 했다.
그렇기에 지셀과 해럴드는 맞붙을 수밖에 없다. 지셀과 공작가의 인연이 그렇듯, 지셀과 해럴드 역시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악연 중의 악연이었다.
그리고 지금, 하나의 악연을 다시 끊을 때가 왔다.
피투성이가 된 지셀은 희열에 찬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드디어 네놈을 죽일 때가 왔구나.”
“흐흐흐…….”
해럴드는 별말을 하지 않고 실성한 사람처럼 웃어 대기만 했다. 그의 눈빛은 지셀 못지않게 살의로 가득 차 있었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알 수가 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증오하는지 말이다.
해럴드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며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때, 네놈 동생을 노리는 게 아니라 그냥 군대를 이끌고 가서 페르디움을 짓밟았어야 했는데.”
그것이 첫 번째 후회다.
“네놈이 룬스톤을 얻었을 때 빅토르가 아니라 내가 직접 전군을 이끌고 갔어야 했어. 명분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서라도 말이다.”
그것이 두 번째 후회다.
“카발디 백작을 쳤을 때도, 왕국군을 밀어 버리고 너를 죽이러 갔어야 했다.”
그것이 세 번째 후회였다.
해럴드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지셀을 죽일 수 있었던 기회가, 몇 번이나. 하지만 공작가의 명령, 명분, 주변의 정세 등 그가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머뭇거리는 사이, 지셀은 이제 자신까지 무너뜨릴 정도로 성장을 해버렸다.
“하지만 마지막 기회마저 놓칠 순 없지.”
지셀은 지금 피투성이가 된 채로 혼자 달려왔다. 오랜 전투로 인해 딱 보아도 몸 상태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호흡은 불규칙하고 곳곳에 상처가 즐비하다.
해럴드 또한 상급의 기사다. 데스몬드 백작가에 전해 오는 수준 높은 검술을 익혔고, 재능도 누구 못지않았다.
나이를 먹고 영주 자리를 물려받은 뒤로는 검술 수련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상처 입은 맹수를 잡지 못할 정도로 약하지도 않았다.
쿠웅!
해럴드가 자신의 마나를 모두 끌어올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나 코어를 아예 파괴할 정도로 생명력까지 뽑아 쓰기 시작했다.
이제 그에게 남은 목표는 단 하나.
지셀을 죽여 상처 입은 자존심이라도 살리는 것뿐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죽어라.”
증오가 끓어 넘치는 한 마디를 내뱉고 해럴드는 그대로 지셀에게 달려갔다.
카앙!
모든 힘을 불태우는 해럴드의 기세는 만만치가 않았다. 검을 막은 지셀도 순간 휘청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지셀은 여전히 희열에 찬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그는 해럴드의 검을 막은 채로 입을 열었다.
“네놈을 죽였을 때의 기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흐흐흐……. 미친놈인 줄은 알았는데 생각보다 심각하구나. 넌 오늘 나한테 죽는다.”
“네놈의 시체를 수백, 수천 번을 난도질해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허무감은 더 깊어지기만 했지. 널 죽여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그저 분풀이일 뿐이었지.”
해럴드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헛소리가 분명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절절한 감정은 마치 진실처럼 느껴졌다.
지셀은 여전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순간은 그때와 다르다고 확신한다. 나는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기쁘다.”
콰아앙!
순간 마나의 폭풍이 퍼져 나갔다. 해럴드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지셀은 다시 3단계의 코어를 개방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마나를 끌어올리자 그 흐름에 머리카락까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드드드득!
이미 지셀의 몸은 한계에 달한 상태였다. 코어를 개방한 것만으로 곳곳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몸이 뒤틀렸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지셀은 그 어느 때보다 기쁘게 웃었다.
이까짓 고통은.
모든 이를 잃었던 전생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생처럼 시체도 남겨 주지 않겠다. 해럴드 데스몬드.”
“그래, 그래야지. 그렇게 발광해야 널 죽일 때의 기쁨도 더 크지 않겠느냐.”
해럴드도 지셀 못지않게 환히 웃었다. 그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미칠 듯이 끓어오르는 분노와 증오뿐이었다.
서로를 향해 실컷 웃음을 짓던 두 사람은.
콰앙!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