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94)
294 – 대가를 받을 시간이다. (2)
294화 대가를 받을 시간이다. (2)
해럴드는 인정할 수 없었다. 이 힘은 금단의 힘이다. 쓰면 반드시 이성과 목숨을 잃는 최후의 수단.
자신은 모든 걸 잃었다. 그렇기에 목숨마저 버리고 지셀을 죽이려고 이런 추한 힘까지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그 힘이 통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힘을 썼음에도 밀리다니!
“으아아아아아!”
해럴드는 괴성을 내지르며 마구잡이로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양민이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스걱!
지셀이 해럴드의 손목을 베어 냈다.
“크아악!”
이번에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베이며 피가 솟구쳤다. 해럴드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지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조금 다르군.’
전생에 보던 것보다 확실히 마나 연공법의 수준이 낮아 보였다.
제대로 폭주한다면 아예 목이 날아가기 전까지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움직인다. 저렇게 정신이 돌아오지도 않는다.
바네사도 코어가 깨지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해럴드는 괴물이 되다 만 것처럼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과연 해럴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외쳤다.
“어떻게! 어떻게 네놈이 이 힘을 견딜 수 있다는 말이냐! 공작가가 준 이 초월적인 힘을!”
“공작가……?”
지셀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역시 저 마나 연공법은 개인이 가진 연공법이 아니었다. 공작가가 만들어서 수하들에게 뿌린 것이다.
한데 고위 귀족인 해럴드에게까지 저런 걸 익히게 하다니. 그것도 전생에서 봤던 것보다 현저히 위력이 약한 걸로 말이다.
‘저 엉터리 마나 연공법도 등급이 있는 건가? 아니면 공작가에서도 계속 개량 중인 건가.’
확실히 전생에서는 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런 놈들을 만났다. 각자 익힌 게 다를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하는 걸 수도 있었다.
전생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지만, 지금은 자신이 익힌 것과 비슷한 효과를 추구하는 게 거슬렸다.
마음 같아서는 이것저것 캐묻고 싶지만 해럴드가 제대로 말해 줄 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초월적인 힘이라니. 고작 저 정도를 가지고 그렇게 믿고 있었단 말인가?’
전생에서 봤던 그 힘은 저렇게 어설프지 않았다. 평범한 기사도 마스터급의 힘을 발휘하게 한다.
지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공작가에서 아직 개량 중인 마나 연공법인 게 분명하군.”
전생에 봤던 높은 등급의 연공법이 있다면 해럴드 정도의 중요 인물에게 저딴 저급한 걸 줬을 리가 없다.
“……네놈이 어떻게?”
해럴드가 큰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건 공작가에서도 극소수의 인물들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그런데 지셀은 공작가에서 마나 연공법을 계속 연구하고 개량 중이란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하지 않았나.
“도대체…… 도대체 네놈은 뭐란 말이냐!”
발작하는 해럴드를 보며 지셀은 코어의 개방 단계를 다시 한 단계 내렸다. 이제 더 이상 3단계를 유지할 필요도 없었다.
해럴드의 몸은 갈수록 쪼그라들며 급속도로 노화되기 시작됐으니까.
마나 연공이 깨지니 힘은 힘대로 못 쓰고 생명력은 폭주하여 더 빨리 소모가 되는 것이다.
그런 해럴드의 모습에 지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라고 해 두지.”
“뭐?”
“네놈과 공작가를 없애기 위해서 말이다.”
“네, 네놈 따위가…… 네놈 따위가! 네놈 따위가 이 나를!”
해럴드는 이제 검도 들지 못한다. 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저벅. 저벅.
지셀은 천천히 해럴드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대로 기다리기만 해도 해럴드는 말라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죽음은 너에게 사치지.”
페르디움의 멸망을 뒤에서 사주한 건 공작가지만, 그걸 수행한 자는 해럴드다.
그는 엘레나를 죽이고 영지전을 부추겼으며 결국 페르디움을 짓밟았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도 페르디움을 없애기 위해 수많은 수작을 부려왔다.
오래전부터 북부에서 암약한 그를 이렇게 편히 죽일 수는 없었다.
지셀은 해럴드의 검을 들어 마나를 주입했다.
콰지직.
검날이 파괴되며 여러 개의 파편으로 갈라져 바닥에 떨어졌다.
지셀은 마나의 실로 그것들을 띄운 뒤 미소 지었다.
“이제 네가 한 짓에 대한 대가를 받을 시간이다. 해럴드 데스몬드 백작.”
파파파파팍!
“끄아아아아악!”
몸 곳곳에 검의 파편이 박힌 해럴드가 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파편은 그의 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고통이 너무 강해, 기절하기는커녕 정신이 더욱더 또렷해졌다.
“으아아아아아!”
해럴드는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계속 비명만 질러 댔다.
한참을 그렇게 발작을 하던 해럴드는 완전한 노인이 되어 머리카락과 이빨이 다 빠질 즘에야 발작을 멈췄다.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듯이 입을 달싹였다.
“네놈…… 공작가가 반드시…….”
그렇게 해럴드는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입만 벌린 채로 죽고 말았다.
지셀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놈에게 어울리는 초라한 죽음이로군.”
해럴드의 사망 소식은 금세 데스몬드군의 진영에 알려졌다.
이미 중앙이 와해되고 페르디움군과 왕국군에 포위당한 그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거나 도망가기에 바빴다.
펜리스의 선임 기사 고든이 가장 먼저 지셀에게 달려왔다. 그는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이겼습니다! 영주님! 우리가 이겼습니다! 대승입니다! 우리가 북부 최강이라는 데스몬드군을 이겼단 말입니다!”
“와아아아아!”
곧이어 사방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3만의 군대에 맞서 역사에 남을 만한 대승을 거두었다.
모두가 기뻐하는 와중에 지셀이 굳은 표정으로 고든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말을 타고 나를 따른다.”
“네? 갑자기 왜요? 전장을 정리하고 전리품도 얻고 휴식도 취하고 그래야 하지 않습니까?”
“전장 정리는 아버지와 왕국군 쪽에 부탁하도록 하지. 감사 인사는 조금 나중에 한다고 전해라. 어서 움직여라. 지금 당장 데스몬드의 성과 주요 요새들을 점령해야 한다.”
“데스몬드를요?”
고든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데스몬드의 주력은 이미 전멸했다. 그곳은 텅텅 비어 지킬 사람도 없다.
그냥 당당하게 들어가서 접수하면 되는 일이다. 누가 감히 자신들을 방해한다는 말인가?
설사 누군가가 빈집을 차지하려 해도 이제 막 전쟁이 끝났다. 결과를 알고 움직이려면 시간이 걸린다.
바로 군대를 이끌고 오려 해도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당한 명분도 이쪽에 있다. 왕국군까지 포함된 이 군대에 맞서 싸운다? 북부에 그럴 만한 미친놈은 없었다.
“왜 벌써 갑니까? 거기는 이미 우리 거예요. 건드릴 수 있는 사람도, 건드릴 만한 사람도 없습니다.”
고든은 자신이 아는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이 북부에는 그럴 만한 사람이 하나 있다.
군대도 이미 준비되어 있고 누구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으며 왕국군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말이다.
분명 사람을 보내 계속 이곳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는 대로 바로 움직일 것이다.
이제 누가 더 빨리 데스몬드를 차지하느냐의 싸움이었다.
“설명은 나중에 하지. 어서 빨리 움직여라.”
지셀이 바로 흑왕에 올라탔다. 다들 전투에 지친 상태라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지셀과 펜리스군은 데스몬드를 향해 바쁘게 움직였다.
* * *
“사, 살려 주시오!”
“우리가 실수했소이다!”
“내 충분한 보상을 줄 것이오!”
피투성이가 된 영주들이 포박당한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는 목숨을 살려 달라는 애원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영주들이 애걸하는 상대는 바로 그들이 공격했던 아멜리아였다.
북부의 영주들은 연합군까지 결성하여 기세등등하게 아멜리아를 공격했지만, 단숨에 박살이 나고 포로로 잡힌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영주들의 애원을 듣고 있던 아멜리아는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 같이 힘을 모아 내 뒤를 쳤으면서 이제 와서 살려 달라고?”
포로가 된 영주들은 사색이 되어 외쳤다.
“항복하지 않았소! 관습에 따라 목숨을 보전해 주시오!”
“내 다시는 그대를 적대하지 않을 것이오!”
“영지 재산의 절반을 주겠소! 내 몸값으로 말이오!”
처절할 정도의 애원이었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나한테 덤빈 놈들을 가만두지 않아. 처리해라.”
냐앙.
바스테트의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주변에 서 있던 기사들이 영주들을 끌고 갔다.
“이, 이보시오! 제발 살려 주시오!”
“우리는 항복하지 않았소이까!”
“이 무도한 악녀 같으니라고! 내 죽어서도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
영주들은 애원과 욕설, 저주를 내뿜으며 끌려갔다. 끝까지 별다른 감흥 없이 그들을 보던 아멜리아는 저 멀리 있는 성을 보고 표정을 살짝 찡그렸다.
“발루아 남작…… 아직도 성에서 웅크리고만 있다니.”
연합군을 맞이하면서 유인하기까지 했건만 발루아 남작은 나오지 않았다.
충분히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줬는데도 넘어오지 않은 것이다.
아멜리아는 모르는 일이지만, 사실 발루아 남작도 연합군이 도착했을 때 나가려고 했다. 연합군과 힘을 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셀에게 받았던 조언, 또는 경고가 계속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절대로 성 밖으로 나가 싸우지 말 것. 기회가 온 거 같아도 그건 기회가 아니다.]분명 기회가 왔다. 그런데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줄 예상했다는 듯한 서신의 내용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의 고민을 더 부채질한 것은 다름 아닌 데이븐이었다.
“빨리 나갑시다! 나가서 저년을 완전히 박살 내자고요! 북부 영주들이 왔으니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다!”
레이폴드의 4공자 데이븐은 주색잡기를 빼고는 잘하는 게 없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이다.
그런 놈이 나가자고 하니 더 믿음이 안 갔다.
그렇게 고심만 하다가 결국 나갈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아쉬워하던 발루아 남작은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북부 연합군 5천이 별 힘도 못 써 보고 레이폴드군에 전멸당한 것이다.
발루아 남작은 그 광경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자신이 나갔어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일부러 공성을 소극적으로 한 거였어. 저런 상황을 노리고 있었다는 말인가?’
발루아 남작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버티려면 더 버틸 수는 있겠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진 바나 다름없었다.
‘아멜리아…… 무서운 여자군. 반란에 성공한 게 운이 아니야. 아쉽군. 남자로 태어났으면 누구보다 훌륭한 후계자가 되었을 텐데.’
그 생각에 이르자 자신이 보호하고 있는 데이븐이 갈수록 더 한심해 보였다.
데이븐은 북부 연합군이 괴멸된 뒤에는 사색이 되어 매일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아멜리아에게 죽임을 당할까 봐 겁에 질려 밖에 나오지도 못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은 전 레이폴드 백작에게 은혜를 입고 충성을 맹세한 몸이다. 미우나 고우나 데이븐을 지켜 주고 찬탈자 아멜리아와 싸워야 했다.
그렇게 며칠간 궁지에 몰린 쥐처럼 숨죽이고 있던 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레이폴드군이 급하게 진영을 해체하고 철군 준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어째서 물러나는 거지?’
발루아 남작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그들을 살린 것은 지셀과 해럴드의 전쟁에 관한 소식이었다.
펜리스 영지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전령은 펜리스의 승리가 확실시되자마자 더 보지도 않고 바로 달려왔다. 그것이 아멜리아가 명령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데스몬드 백작의 생사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펜리스군이 완전히 승기를 잡았습니다. 데스몬드군의 주력은 괴멸되었으며 남은 병력도 페르디움군과 3군단에 포위를 당한 상태입니다. 데스몬드가 이길 방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멜리아는 눈을 빛내며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지셀…… 그놈이 이 정도일 줄이야. 아무리 왕국군의 지원을 받았다 해도 해럴드의 3만 대군을 격파하다니.”
설마 이기겠냐는 생각도 했었지만, 역시 지셀은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아니, 이제는 정말 대단한 놈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해럴드까지 박살 냈으니, 북부 최강의 칭호는 지셀이 가져갈 것이다.
그가 데스몬드 영지를 온전히 차지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지셀이 쉽게 그곳을 차지하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서늘한 눈빛으로 베르나프에게 명령했다.
“바로 철군 준비를 해라. 우리가 먼저 데스몬드를 점령한다.”
지셀이 죽어 가는 해럴드를 지켜보던 그때, 아멜리아가 이끄는 레이폴드군이 데스몬드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