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296)
296 – 아직 때가 아니니까. (2)
296화 아직 때가 아니니까. (2)
벨린다가 습격해 왔을 때, 모두가 베르나프처럼 잠을 자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멜리아의 참모, 악티움의 상단주 콘라드 또한 여러 가지를 점검하며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외눈 안경을 올려 쓴 그가 서류들을 뒤적이며 중얼거렸다.
“아가씨가 식량을 많이 사 두셔서 다행이군. 큰 손해를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상황이 좋게 흘러갈 줄이야.”
콘라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모시는 아멜리아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가지고 있는 지식도 방대하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전략과 처세술은 남자들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에게는 특별한 감각이 있었다. 아멜리아가 가끔가다 보이는 직감에 기인한 행동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저번 가뭄 때 식량을 대량으로 구매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미소를 짓던 콘라드는 표정을 굳히고 허리춤에 매단 레이피어를 만지작거렸다.
“흠…….”
목덜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진짜 벌레가 붙어서 그런 게 아니다.
살기다.
차앙!
번개같이 뽑힌 레이피어가 천막의 한쪽 구석을 찔렀다. 동시에 천막 안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쯧.”
콘라드가 혀를 찼다. 얼굴을 노리고 찔렀는데 상대가 절묘하게 피해 냈다. 하지만 완전하게 피하지는 못했는지, 복면이 베여 드러난 암살자의 볼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표정한 암살자의 얼굴을 본 콘라드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잠깐 기억을 더듬은 그는 곧 진한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는…… ‘뇌물왕’의 호위가 아니냐.”
콘라드를 노렸던 암살자는 클로드의 호위를 맡았던 웬디였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그녀도 이번 작전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한 것이다.
콘라드는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펜리스와 첫 거래를 할 때 책임자로 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만면에 비웃음을 담은 채 말을 이었다.
“네가 여기 왔다는 건 펜리스 백작이 우리도 적으로 돌리겠다는 뜻인가?”
웬디는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으로 답했다.
“저는 여기 온 적이 없는 겁니다. 나중에 아는 척은 하지 말아 주시길.”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연속으로 단검을 던졌다.
스스슥.
콘라드는 날아오는 단검들을 가볍게 피하며 레이피어를 찔렀다. 하지만 웬디는 이제 그를 상대할 생각이 없는지 연신 뒤로 피하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탁.
쇠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콘라드는 상대의 목적을 깨닫고 인상을 찡그렸다.
웬디는 다시 품에서 기름 먹인 천을 꺼내 불을 붙인 뒤 서류 더미에 던져 버렸다.
파앗!
콘라드가 마나를 뿜어내며 레이피어로 천을 휘감아 당겨 불을 껐지만, 웬디가 던진 건 하나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곳저곳에 불을 던진 뒤 천막 밖으로 잽싸게 빠져나갔고 곧 레이폴드군 숙영지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젠장! 뭐야! 어떤 새끼들이야!”
천막에서 뛰쳐나온 울칸이 화가 나 몽둥이를 휘저으며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 칼레브는 검은 복면을 쓴 시체를 짓밟으며 이를 갈았다.
살쾡이 밀매단의 단주인 그 또한 암살자다. 그런 자신이 암살자들의 습격을 받았다는 데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울칸이나 칼레브는 자신을 습격한 암살자들을 쉽게 처리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들처럼 무력이 뛰어난 게 아니다.
레이폴드군의 몇몇 장교들이 어이없게 사망했고 이는 상당한 혼란으로 이어졌다.
“제4보병 중대장님이 사망했다!”
“어서 잡아라! 뭣들 하는 거야!”
“사라졌다! 적이 사라졌다!”
예상치도 못한 습격에 다들 우왕좌왕하며 난리가 났다. 다들 암살자들을 잡으려고 했지만 벨린다와 암살자들은 이미 도망을 가고 있었다.
벨린다는 도망가면서 아쉬운 눈빛으로 레이폴드군의 숙영지를 바라보았다.
“생각처럼 쉽지 않네.”
정말 지셀 말처럼 속도를 높이는 데 치중하느라 경계 태세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만큼 많이 죽이진 못했다.
오히려 데리고 온 암살자들이 역으로 꽤 당했다. 벨린다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힘들게 키운 전력인데…….”
지셀과 벨린다는 그동안 꾸준하게 암살자들을 양성해 왔다. 재능 있는 자들을 추려 키우고 영지 내에서는 다들 사용인으로 위장한 채 지내 왔다.
이들의 정체를 제대로 아는 자들은 지셀의 최측근들밖에 없을 정도로 극비사항이었다.
물론 가장 수준 높은 이들은 웬디처럼 벨린다가 예전부터 키워 온 자들이다.
“돌아가면 대원들을 더 양성해야겠어.”
영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기에 개개인의 실력이 낮은 건 아니지만 아직 수가 너무 부족했다.
특히 이번 작전처럼 수준 높은 상대를 공격할 때는 더 그렇다. 하급 암살자들은 암살에 성공하기는커녕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했다.
그래도 곳곳에 불을 내고 혼란을 일으켰다.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으니 시간을 끌 수는 있을 것이다.
암살자들이 도망간 뒤, 숙영지를 둘러보던 아멜리아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지셀! 지셀! 지셀! 이 개자식이 감히 나를!”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말들이 뛰어다닌다. 갑작스럽게 습격당한 탓에 숙영지는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다시 한번 지셀에게 당하고 말았다. 아예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당하니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아멜리아는 거친 숨을 내쉬며 다시 숙영지 곳곳을 둘러보았다. 다들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빨리 불을 꺼라!”
“인원을 다시 점검해라!”
“어디서부터 뚫렸는지 확인해라!”
병사들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일부는 빠르게 무장을 갖추고 나와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지난 뒤 기사 한 명이 다가와 아멜리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힐끗 기사를 보고 물었다.
“피해는?”
“인명 피해는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다만…… 중대 지휘관 몇 명이 사망했습니다.”
기사는 파악한 피해 상황을 보고했다. 죽은 병사는 얼마 없었지만, 그보다 더 큰 피해가 발생했다.
기사만 고급 전력이 아니다. 괜찮은 지휘관은 때로 기사보다 더 구하기 힘들 때가 있다.
아멜리아가 나름 선별해 뽑은 중급 장교들이 꽤 죽었다. 이 피해를 복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기사의 보고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말들을 풀어 놓고 주변에 독을 살포한 뒤 불을 질렀습니다. 그 때문에 상당수의 말들이 도망가거나 죽었습니다. 현재 독은 마법사들이 정화한 상태입니다. 도망간 말들도 잡아 오고 있습니다.”
행군 속도를 높이려면 말들이 필수다. 애초에 레이폴드군의 발목을 잡으려 했으니 이쪽이 가장 큰 목표였을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그녀가 다시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지?”
아무리 속도를 내는 데 치중했다 하더라도 경계 근무에 소홀할 리가 없었다. 레이폴드군은 기강이 엄중한 데다, 아멜리아는 특히 경계를 중요시하기에 다들 허투루 경계를 서지 않았다.
병사들 외에도 수준 높은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돌아가면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거기에 무려 5천 명의 군대다. 암살자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이들 모두의 눈을 피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심지어 암살자들 모두가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도망도 못 가고 죽은 자들이 꽤 있지 않은가.
기사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보고를 이어 갔다.
“땅굴이…… 있었습니다.”
“땅굴? 우리가 어디에 묵을 줄 알고 땅굴을 파?”
“그리 큰 건 아닙니다. 은신하는 구덩이에 가깝습니다. 여러 군데 만들어 놓고 저희가 이동하는 걸 본 뒤에 근방에 숨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숙영지 밖에서도 몇 개를 발견했습니다.”
“계속 말해 봐.”
“공교롭게도 몇 개의 구덩이 위에 병사들의 천막이 있었습니다. 그곳을 통해 몇 명이 내부로 침투해 우선으로 불을 지르고, 그 뒤 나머지가 나온 거 같습니다. 습격 타이밍이 제각각이었습니다.”
레이폴드의 기사는 빠르게 전후 사정을 파악해 보고했다.
그의 말대로 이미 레이폴드군이 움직일 걸 알고 있었던 벨린다는 계속 그 동태를 감시했다.
그렇기에 미리 숙영지 근처에 준비한 구덩이에 숨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암살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심이다. 불편하고 좁은 곳에 며칠이나 숨어 있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게 암살자들이 가장 먼저 받는 기본 훈련이었으니까.
아멜리아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지금처럼 적이 없고, 빠르게 움직이는 데 집중할 때는 안쪽의 경계 수위가 상당히 낮아진다.
거기에 5천 명이 묵어야 하는 만큼 숙영지도 당연히 거대해진다. 대략적인 위치만 파악하면 안쪽에는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도대체 이놈이 어떻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셀이 도대체 무슨 수로 자신의 행동을 전부 파악했는지 말이다.
‘어떻게든 알아내야 해. 이건 운도 아니고 직관으로 짐작한 것도 아니다. 확신이 있어서 하는 짓들이야.’
그녀는 이제 지셀을 운이 너무 좋은 자로도, 혹은 단순히 뛰어난 천재로도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일을 보면 오히려 예언가에 가까웠다.
하지만 대체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골치가 아파 와 이마를 꾹꾹 눌렀다.
옆에 있던 베르나프가 조심히 물었다.
“그러면 지셀 그놈도 지금 움직이고 있다는 건데, 이제 어쩌죠? 그놈보다 먼저 도착해야 하지 않습니까.”
상황을 보니 레이폴드군과 펜리스군은 거의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거 같았다. 하지만 지셀의 군대가 전부 기마병이란 건 유명한 일이다. 지금쯤 엄청난 속도로 데스몬드 영지를 향해 가고 있을 게 뻔했다.
그 생각에 이른 베르나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이라도 남은 말들을 이용해 기마병과 기사들을 보내는 게 어떻습니까? 저희도 속도라면 뒤지지 않을 겁니다.”
“함정을 파 놨을 거야.”
아멜리아의 발목을 잡겠다고 대담하게 숙영지 내부까지 침투한 놈들이다. 이쪽의 목적지가 명확한데, 기마병을 상대하는 함정을 안 팠을 리가 없다.
아멜리아는 지도를 가져와 다시 살펴보고 말했다.
“그렇다고 당장 포기할 수는 없지. 세 방향으로 나눠서 간다. 가장 빠른 길, 중간 길, 돌아가는 길로. 다른 건 다 무시하고 내가 표시한 성과 요새부터 우선 점령해라.”
데스몬드는 대영지다. 다른 북부의 영지들처럼 고작 마을 몇 개, 커 봤자 기껏 도시와 요새 몇 개 있는 영지들하고는 수준이 다르다.
주요 요충지가 아닌 곳은 점령해도 소용이 없다. 그냥 침략자로 취급받고 쫓겨날 게 뻔했다.
적어도 주요 요충지는 하나라도 점령해야 동맹이라는 명분이라도 내세워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나머지는 공작가가 해결해 줄 것이다.
아멜리아의 명령에 급히 혼란을 수습한 기사들과 기마병들이 바로 움직였다.
이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본대가 오기 전까지 아멜리아가 지목한 지역을 점령하고 버티는 것이다.
두두두두두!
제대로 쉬지도 못한 기마병들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언제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이들답게 흐트러짐은 없었다.
기마병들을 먼저 보낸 뒤 아멜리아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남은 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최대한 빨리 수습하고 움직여라. 쉴 시간이 없다.”
자신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이런 준비까지 했다면 지셀도 데스몬드 영지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시간 싸움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으드득.
이동하면서도 아멜리아는 이를 갈았다.
‘지셀, 지셀……. 이 개자식…….’
이번에도 당했다는 분기가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가만히 있었다면 이런 굴욕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그녀의 예상대로, 가장 빠른 길목에는 먼저 갔던 기마병들이 쓰러져 있었다.
대부분 가시를 박아 놓은 구덩이에 떨어져 목숨을 잃었고, 그걸 피해 간 자들은 말의 발이 걸릴 높이로 교묘하게 박아 놓은 목재에 걸려 쓰러져 있었다.
말들이 쓰러지는 통에 다친 자들은 끙끙대며 누워 있었고, 겨우 몇몇만 남은 멀쩡한 기마병들은 더 전진할 생각도 못 하고 부상자들을 돌볼 뿐이었다.
병사들이 곳곳에 박아 놓은 말뚝을 아멜리아에게 가져다주었다.
말뚝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었다.
[위대한 대장장이와 친구들이 만들고 감.]“이놈들이 감히…….”
아멜리아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길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이런 하찮은 도발이라니.
그녀는 글만 보고도 누가 함정을 만들었는지 알아챘다. 펜리스에 머물고 있다는 드워프들이 움직인 모양이었다.
기필코 그놈들도 잡아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부상자들을 수습하던 중에, 다른 쪽 길목으로 갔던 기마병들이 돌아왔다.
“어떻게 된 거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장애물?”
“협곡의 가장 좁은 길에 나무와 돌을 쌓아서 벽을 만들어 놨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경로로 가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그곳에 있던 흔적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기마병을 이끌었던 지휘관은 자신이 들고 온 말뚝 하나를 내밀었다.
[위대한 대장장이와 친구들이 만들고 감.]“…….”
이상한 애들이 많은 영지라고는 진작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놈들이 남긴 흔적을 직접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차피 길을 돌아가기엔 늦었다. 레이폴드군은 재빠르게 함정을 치우고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첫 번째 목표로 잡았던 요새 인근에 도착했을 때, 가장 멀리 돌아갔던 기마대의 지휘관이 본대에 합류했다.
“죄송합니다. 적들이 이미 요새를 점령한 상태입니다.”
“…….”
도대체 얼마나 빨리 움직였으면 전쟁에서 승리하자마자 최전방 요새까지 점령했을까?
누군가가 배신을 해서 정보를 누설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
아멜리아는 아무런 말도 없이 차가운 표정만을 지었다. 그녀는 그대로 병력을 이끌고 요새로 다가갔다.
과연 데스몬드의 최전방 요새에는 펜리스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
아멜리아는 그 깃발만을 노려볼 뿐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 곁에 있던 베르나프는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베르나프는 그녀가 가장 분노했을 때, 누구보다 차가워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 그놈이랑 엮이지 말자니까. 레이폴드를 차지했으니 적당히 북부 절반만 먹어도 충분할 텐데.’
베르나프는 말도 못 걸고 속으로만 끙끙거렸다. 그녀의 야망은 자신이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욕심만 버리면 우리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그는 그냥 아멜리아와 알콩달콩 사는 게 꿈이었다. 생각보다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남자였다.
아멜리아가 아무런 말이 없으니 측근들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 그녀의 신경을 건드렸다간 누구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그렇게 레이폴드군이 하염없이 요새만 바라보고 있을 때.
끼익…….
갑자기 요새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검은 말을 탄 지셀이 기사들과 함께 나와 천천히 레이폴드군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아멜리아도 말을 타고 천천히 나아갔다. 베르나프를 비롯한 측근들과 기사들이 그녀의 주위를 철통같이 감쌌다.
여전히 피로 범벅이 된 지셀과 깔끔한 모습의 아멜리아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췄다.
지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아멜리아.”
아멜리아도 살짝 턱을 들고 오만한 표정으로 답했다.
“오랜만이야, 지셀.”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살기가 가득한 눈빛을 담고서.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멜리아의 손이 살짝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지셀의 창에 마나가 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