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301)
301 – 나는 약탈왕이다. (2)
301화 나는 약탈왕이다. (2)
클로드는 눈을 감은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살다 살다 부패 관리 행세를 하며 범죄 조직과 접촉하라는 말까지 듣다니.
‘언제부터 내 평가가 이렇게 되었을까?’
영주랑 도박을 했을 때부터인가? 아니면 알포이도 똑같이 노예로 만들었을 때부터? 아니면 상단과 거래를 하면서 몰래몰래 금화를 빼돌렸을 때부터? 아니면 야무지게 이빨 털어서 동료들과 후배들을 꼬드겨 데려왔을 때부터?
무엇이든 억울하다. 아무튼 억울하다. 클로드는 그 억울함을 가득 담아 소리쳤다.
“전 부패한 관리가 아닙니다! 별명도 뇌물왕이 뭡니까! 뇌물왕이! 그거 다 영주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거잖아요!”
“확실해?”
“얼마 안 받았다고요! 생활비가 부족했다고!”
“……너 진짜 받았어? 웬디가 그걸 눈감아 줬다고?”
실제로 웬디는 클로드가 상단에서 금화를 약간 뜯어내는 걸 눈감아 준 전적이 있다. 당황한 클로드가 잽싸게 말을 돌렸다.
“아니! 제가 범죄 조직을 만나서 뭘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돈 먹은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아무튼 그놈들이 자꾸 숨어 들어가니까 뿌리를 뽑기가 곤란해졌어. 어떻게든 걔들 모아서 다 파악해 봐.”
“그러니까 어떻게 하냐고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일단 그놈들하고 좀 친하게 지내보든가.”
“저는 연기를 못해서 친하게 지내도 금방 발각될걸요?”
“아냐, 넌 할 수 있어. 진심을 다해 봐.”
“아오! 그딴 일에 뭘 어떻게 진심을 다합니까! 내 진심은 부정부패를 증오하는데!”
클로드가 길길이 날뛰었지만 지셀은 요지부동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의 적임자는 클로드밖에 없었다.
정작 본인은 부정하는 것 같지만, 범죄자들은 클로드의 진가를 분명 알아볼 것이다.
지셀의 완고한 결정에 클로드는 어쩔 수 없이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에잉, 그래도 뭐 그럴듯한 작전 이름이라도 붙여야 하나.”
고민하던 클로드는 ‘벌레 소탕’이라는 성의 없는 이름을 붙인 뒤 로웰을 호출했다.
“야, 적당한 곳 하나 물색해서 범죄 조직들하고 연결 좀 해 봐. 내가 직접 찾아간다고 해.”
“요새 그놈들 몸 사리느라 만나기 힘들 텐데요. 무척 조심할걸요?”
“아, 그냥 시키면 따지지 좀 말고 바로바로 하면 안 돼? 내가 만나자고 하면 만날 거라고. 나야, 나, 클로드.”
클로드의 짜증에 로웰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자기가 제일 잘 따지면서.”
“뭐?”
“아,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총관님이라면 다들 만나겠다 하겠네요.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로웰은 헐레벌떡 범죄 조직들을 찾아 움직였다.
약탈왕이 쓸고 간 뒤 암흑가는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상태였다. 하찮은 건달패들조차 몸을 사리고 있다.
영지민들에게는 좋은 일이었지만, 영지에서 범죄자를 완전히 뿌리 뽑으려는 지셀의 입장에서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로웰은 기존에 기록된 자료를 토대로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직 약탈왕에게 당하지 않은 조직을 하나 점찍었다.
“푸른해골단. 이놈들이 적당하겠네. 두목이 좀 눈치 없고 멍청하다는데.”
푸른해골단은 그리 크지 않은 조직이지만 환각제를 제조하고 유통하는 곳이었다. 지금도 돈 좀 있는 부유층에 알음알음 약을 팔고 있는 걸로 파악이 됐다.
이곳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데스몬드의 고위층 중 하나에게 약을 제공하고 보호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약을 만드는 만큼 이들은 원래 약초상을 운영했었다. 하지만 약탈왕이 휩쓸고 간 뒤 자리를 옮겨 새로운 장사를 시작한 상태였다.
로웰은 여기저기 떠도는 정보를 모아 푸른해골단이 운영하는 상점 주소를 알아냈다.
찾아낸 주소에 도착하자 아주 큰 건물에 멋진 글씨로 간판이 붙어 있었다.
[환상의 맛]“…….”
요새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이었다. 나쁜 짓을 못 하니 건전한 사업으로 바꾼 모양이었다.
로웰은 일단 들어가 보았다. 건물을 지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무척이나 깔끔했다.
과연 맛집이란 소문이 거짓은 아니었던 듯,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옷 입은 걸 보니 다들 어느 정도는 형편이 좋은 사람들 같았다.
“어서 오세요!”
조금 선정적인 옷을 입은 여급이 그를 반겼다. 로웰은 턱을 긁적이며 생각했다.
‘이래서 인기가 많은 건가?’
자리에 앉자 여급이 메뉴판을 보여 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 가게는 비밀 특제 소스를 써서 정말 어디에서도 느끼기 힘든 맛을 보여 드린답니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그만큼 만족하실 거예요!”
“흠…….”
잠시 고민을 한 로웰은 가장 비싼 메뉴를 시켰다. 공금은 이럴 때 써야 한다.
“환상의 맛 스페셜 정식 코스로.”
“소스는 어떻게 해 드릴까요? 진하게? 연하게? 보통으로?”
“어…… 진하게?”
이왕 비싼 거 먹는 데 진한 맛으로 먹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알겠습니다! 우리 가게 최고의 메뉴니 기대하세요!”
곧 음식들이 주르르 나왔다. 모양과 향은 여느 귀족가의 만찬 못지않을 정도로 화려했다.
침을 꿀꺽 삼킨 로웰이 고기 한 점을 푹 찍어 들었다.
촉촉하게 젖은 고기에 향기로운 소스가 듬뿍 발려 있었다. 이런 고급 음식을 먹어 본 적이 거의 없는 로웰은 행복한 표정으로 고기를 씹었다.
그러고는 눈을 번쩍 떴다.
‘마, 맛있잖아! 그것도 엄청!’
정말 말도 못 할 정도로 맛있었다. 얼마나 맛있냐면 눈앞에서 환각이 보일 정도였다.
로웰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생각했다.
‘사람 먹는 음식에 뭘 처넣은 거야…… 이 미친 새끼들…….’
더 이상 먹으면 위험하다. 중독되어 버릴 것이다. 왜 특제 소스가 비밀인지 알 거 같았다.
역시 범죄자 새끼들은 가만두면 안 된다. 몸을 사리면서도 이딴 장사를 하고 있었다니.
아마 다른 사람들은 소스에 뭐가 들어갔는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로웰은 예전에 디갈드 백작 밑에서 범죄 조직들을 관리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이상한 약들을 취급하는 조직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느끼는 머리가 띵할 정도의 이 미친 맛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로웰이 눈물을 흘리고 있자 여급이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
“어머! 무슨 일이세요? 혹시 음식이 입에 안 맞으시나요?”
“아니…… 그냥 그리운 맛이 나서…….”
“어머니의 손맛 같은 건가요? 우리 가게 음식 대단하죠? 호호호.”
‘그런 거 아니야……. 이 미친 것들아.’
식사를 멈춘 로웰은 일어나서 여급에게 말했다.
“여기 지배인을 좀 볼 수 있나?”
“무슨…… 일이시죠?”
여급이 살짝 의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지만 로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답했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내가 모시는 귀족분께 소개해 드리고 싶군. 일단 불러와라.”
여급은 잠시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런 일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곧 말끔하게 생긴 남자가 와서 고개를 숙였다.
“설명은 대충 들었습니다. 무엇이 필요할까요?”
로웰은 지배인을 위아래로 몇 번 훑어본 뒤 말했다. 이렇게 자리를 잡고 있는 놈들에게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장사 계속하고 싶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총관님이 보낸 사람이다. 이미 우리는 너희에 대해 다 파악하고 있어.”
“……!”
지배인의 눈이 떨린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로웰은 그런 지배인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약탈왕 때문에 제대로 된 활동을 못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총관님이 해결해 줄 테니 네놈들 두목을 한번 만나자고 하더군. 이틀 뒤 밤에 찾아갈 테니 맞이할 준비를 해 놔라.”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이틀 뒤다. 만약 계속 숨어 있는다면 여기부터 밀어 버리고 기필코 잡아 죽일 테니 그리 알고 있도록.”
로웰은 대답도 듣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나가기 전 그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음식에 장난 그만 쳐라. 싹 다 잡아서 감옥에 처넣기 전에. 뭐? 어머니의 손맛? 너희 어머니는 손에 약 바르고 음식 만드시냐?”
“……네.”
로웰이 돌아간 뒤, 그의 말을 전달받은 푸른해골단의 두목 모르빈은 고민에 빠졌다.
영지의 주인이 바뀌었으니 당분간은 몸을 사리는 게 맞다. 예전에 뒤를 봐주던 귀족은 이미 지셀에게 목이 날아간 상태였다.
거기에 약탈왕이라는 놈이 설치고 있어서 혼란을 틈타 영역을 확장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업종을 전환하고 정말 얌전히 살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총관이 만나자고 하니 그 의도가 수상했던 것이다.
“젠장…… 어떻게 우리 존재를 알았지? 전에 뒤를 봐주던 놈이 뭔가를 남겼나?”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바로 찾아왔는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방법은 두 가지다. 직접 만나 보고 무슨 일인지 알아보거나, 아예 이 영지를 뜨는 것이다.
“하, 다시 자리를 잡는 것도 쉽지 않은데.”
다른 영지에도 이미 자리를 잡은 암흑가의 조직들이 있을 것이다. 그 조직들도 분명 뒤를 봐주는 귀족들이 있을 테니 새로 들어온 조직이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한 영지의 총관을 만나는 건 무서운 일이다. 숨어 사는 자신을 붙잡으려고 유인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만 하고 있을 때, 모르빈의 부하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총관 소문 아직 못 들으셨습니까?”
“소문? 뭔데?”
“별명이 북부의 뇌물왕이랍니다. 뇌물왕.”
“북부의 뇌물왕?”
“네, 엄청 유명한데 아직 못 들으셨어요? 영지민들도 거의 다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 그 정도로 유명해?”
모르빈은 업무 특성상 철저하게 숨어 살기에 소문을 듣는 게 늦다. 약탈왕 때문에 다들 정신이 없는 것도 한몫했다.
다른 부하들에게도 조금 더 알아 오라고 보내 보니 모두가 같은 말을 건넸다.
“아주 지독한 놈이라고 합니다.”
“영지와 거래를 한 상단 중 돈을 안 뜯긴 곳이 없대요.”
“지금 영지가 혼란하니 이 기회에 한몫 단단히 챙길 거라는 소문입니다.”
모두가 말하는 것이 똑같다. 더도 덜도 없는 부패한 관리 그 자체다. 모르빈은 그제야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크큭, 이곳에 새로 왔으니 물주를 찾는 모양이구나. 우리 뒤를 봐주고 상납금을 받겠다는 거지.”
어차피 인간이 모여 사는 한 암흑가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귀족들과 관리들은 범죄 조직들이 선을 과하게 넘지만 않으면 눈감아 주는 편이다.
오히려 그들을 이용해 더러운 일을 대신 처리하고, 상납금을 받기도 했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셈이었다.
그 데스몬드 백작도 영지 운영에 방해가 될 정도가 아니면 그냥 묵인해 줄 정도였다. 이런 인식은 대륙에 만연하게 퍼져 있었다.
클로드에 대한 소문을 들은 모르빈은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총관을 만나겠다. 대접에 소홀함이 없도록 준비해라.”
약속한 날이 되자 ‘환상의 맛’ 식당은 평소보다 일찍 영업을 종료했다. 그들은 성대한 만찬을 차려 두고 기다렸다.
모르빈은 그 모든 걸 꼼꼼하게 확인했다. 앞으로 자신들의 뒤를 봐줄 관리가 오는데 어찌 그 준비에 소홀함이 있으랴.
밤이 되자 부하 하나가 후다닥 달려와 모르빈에게 말했다.
“총관님이 오셨습니다.”
“어서 맞이하러 가자.”
모르빈은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문 앞까지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는 웃는 모습 그대로 표정이 굳고 말았다.
로브를 입은 수행원 하나만을 대동하고 나타난 클로드는 오자마자 호들갑을 떨었다.
“아휴, 내 몸 왜 이렇게 무겁니?”
클로드를 본 모르빈의 눈가가 떨렸다.
괴상하다. 한 영지의 총관이라는 작자가 무척이나 괴상한 꼴로 나타났다.
모자에는 새의 깃털이 수십 개나 박혀 있고 목에는 두꺼운 금목걸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옷 곳곳에도 사치스러운 장신구가 수도 없이 매달려 있었다.
진짜 무거운지 비틀거리며 나타난 클로드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너야? 네가 여기 두목이야?”
“…….”
모르빈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리 봐도 수상하다.
부패한 관리라고는 들었지만, 겉모습도 너무 부패하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어지간해서는 이렇게 다니지 않는다.
모르빈은 부하들에게 이자가 총관이 맞냐고 눈짓을 했다. 하지만 부하들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클로드의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클로드가 데스몬드 지역을 바쁘게 돌아다니긴 했지만, 수많은 수행원을 몰고 다녀서 그의 모습은 눈에 잘 안 띄었다.
게다가 아직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주요 시설 관리와 서류 업무에 집중하다 보니 한낱 범죄자들이 그의 얼굴을 익힐 기회가 없었다.
모르빈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영지의 총관님 맞으십니까?”
“뭐야, 내 얼굴 몰라? 웬디야, 얘네가 내 얼굴 모른대.”
클로드가 황당하다는 듯 옆에 있는 수행원에게 말했다. 아무리 온 지 얼마 안 됐어도 감히 영지의 총관을 몰라보다니! 이런 무엄한 것들이 있나?
지셀이 보증하는 속물답게, 영지가 강해질수록 클로드의 자의식도 함께 비대해지고 있었다.
모르빈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한 영지의 총관님께서 수행원도 겨우 하나만 대동하고 오시고…… 믿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 말에 그의 부하들이 조금씩 살기를 끌어올렸다. 대영지의 총관이라는 작자가 혼자 이런 곳에 온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거기에 로브를 쓴 자는 그냥 하녀처럼 보이는 여자였다. 하다못해 진짜 총관이라면 기사처럼 보이는 자라도 대동해야 하지 않는가?
‘우리를 뜯어먹으려고 웬 놈팡이가 사칭을 한 거 같은데…… 호위도 제대로 없이 온 거라면 주변에 다 비밀로 한 거 같고…… 그러면 여기서 죽이고 몰래 묻어도 되겠는데?’
범죄자들이 할 만한 생각이었다.
모르빈이 고개를 까딱이자 그의 부하들이 슬금슬금 다가와 포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로 포위가 되기도 전에 웬디의 로브가 살짝 펄럭였다.
퍽! 퍽!
“끄윽…….”
쿠웅!
양옆으로 다가온 두 명의 조직원은 그대로 이마에 단검이 박혀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모르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