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303)
303 – 나는 약탈왕이다. (4)
303화 나는 약탈왕이다. (4)
“야, 약탈왕?”
“그 새끼 도망간 거 아니었어?”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총관이 처리했다고 했잖아!”
조직원들은 약탈왕이란 이름만 듣고도 감히 덤벼들지 못했다. 약탈왕이 그간 한 짓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1층으로 내려온 모르빈과 조직의 간부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모르빈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군, 저건 사칭이야. 우리를 겁먹게 하려는 거지. 지금 간부들이 다 모여 있으니까 여기를 쳐서 우리를 한 번에 제치려는 거야.”
그는 약탈왕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아예 믿지 않았다. 자신과 공생하는 클로드가 그런 실수를 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놈들은 가짜야! 약탈왕은 이미 쫓겨나고 없다! 우리 형님이 쫓아냈다고!”
자신만만한 모르빈의 말에 조직원들은 다시 힘을 냈다.
그들도 클로드와 모르빈의 관계를 잘 알고 있다. 무려 영지의 총관과 의형제를 맺은 사이가 아닌가. 어제는 같이 목욕도 갔다 왔다고 들었다.
“죽여라!”
모르빈이 외치자 조직원들이 지셀에게 달려들었다.
지셀은 가장 앞장서서 달려들던 조직원 하나를 가볍게 손등으로 때렸다.
퍼억!
콰아아앙!
그 조직원은 그대로 벽을 뚫고 날아가 버렸다.
“……?”
모두가 그대로 몸이 굳어 자리에 멈춰 섰다. 손짓 한 번에 사람을 날려 버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에 사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저자가 진짜 약탈왕이든 아니든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무거운 침묵을 깨고, 모르빈이 떨리는 목소리로 지셀에게 물었다.
“너, 너 뭐야?”
“약탈왕이라니까?”
“여, 영지를 떠났다고 들었는데?”
“다시 왔다.”
태연한 지셀의 대답에 모르빈은 떠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너, 너…… 내가, 내가 누군지 알고 지, 지금 여기 온 거야?”
“알지, 약쟁이.”
“내, 내 뒤에 총관이 있어. 모, 몰랐어? 몰랐으면 지금 돌아가고. 나, 나랑 총관님은 의형제야. 의형제라고!”
뒷배를 생각하자 자신감이 점점 생겨나는지 모르빈의 말이 매끄러워졌다.
“내가 어제 어? 형님이랑 어? 같이 밥도 먹고! 어? 목욕도 같이하고! 어? 다 했어! 이 새끼야! 그러니까 형님한테 죽기 싫으면 돌아가!”
“…….”
지셀은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모르빈은 상대가 겁먹었다고 생각했는지 입에서 침까지 튀겨 가며 말했다.
“지금 돌아가면 내가 모른 척해 줄게. 뭐 사업장 하나 필요하면 적당한 거 떼 줄 테니까 그걸로 만족하라고. 어차피 우리끼리 싸워 봤자 좋을 거 없잖아?”
스윽.
지셀은 모르빈의 말을 무시하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모르빈은 기겁하며 주변에 있는 간부들에게 말했다.
“마, 막아! 저 새끼 막고 있어! 내가, 내가 형님한테 얘기해서 기사들 데리고 올 테니까!”
하지만 간부들과 조직원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누가 저런 괴물에게 덤빌 수 있단 말인가?
모르빈은 애원하듯이 말했다.
“이 병신들아! 어차피 저 새끼가 진짜 약탈왕이면 우리 다 죽어! 저 새끼는 한번 잡으면 죄다 죽이는 거 몰라?”
전부는 아니지만 어쨌든 거의 죽이긴 한다. 그 소문이야 유명하니 조직원들의 눈빛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죽을 거면 칼이라도 한 번 휘두르고 죽는 게 낫다. 어떻게든 버티면 모르빈이 기사들을 끌고 올 테니까.
조직원들이 모두 자신들의 무기를 꺼냈다. 간부들 몇 명이 모르빈의 등을 떠밀었다.
“형님! 어서 총관한테 가십쇼! 여기는 우리가 막고 있겠습니다!”
“크흑! 고맙다! 내가 꼭 기사들을 데리고 올게!”
눈물 나는 광경이다. 모르빈은 정말 눈물을 훔치며 비밀통로를 향해 달려갔다.
그때까지도 지셀은 심드렁한 눈으로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남은 간부들이 조직원들을 향해 외쳤다.
“쳐라!”
“와아아아아아!”
조직원들이 전부 달려오자 그제야 지셀의 뒤에 있던 기사들이 나섰다.
퍼억! 퍼억! 퍼억!
“끄아아악!”
“이 나쁜 놈들!”
“형님이 반드시 원한을 갚아 줄 것이다!”
그래도 암흑가에서 먹고 자란 덕인지 다들 악으로 깡으로 덤벼들었다. 하지만 기사들이 한 대씩 툭툭 칠 때마다 동료들이 파리처럼 죽어가니 조직원들은 금방 다시 공포에 물들었다.
“으으…… 괴물들…….”
“절대 못 이겨…….”
“이런 놈들한테서 어떻게 버티라는 거야…….”
범죄자들의 근성과 의리는 여기까지였다. 그들은 무기를 하나둘씩 내려 두고 바로 무릎을 꿇었다.
“살려 주십시오!”
“우리는 다 저 새끼들이 시키는 대로 한 것뿐입니다!”
“사실 저는 착한 사람입니다!”
조직원들이 죄다 항복하자 간부들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도 바로 무릎을 꿇었다.
“모르빈 그 새끼가 진짜 나쁜 새끼입니다!”
“저도 협박을 받았습니다!”
“이제부터 착하게 살겠습니다!”
모두가 약탈왕 앞에 굴복했다. 약탈왕은 만족스러워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다 털고 이놈들은 ‘거기’로 보내라.”
지셀의 말에 기사들이 나서서 조직원들을 힘 빼고 두들겨 팼다.
“끄어어억!”
한 대씩 맞을 때마다 조직원들은 바로 기절했다.
그렇게 데스몬드 암흑가의 간부들은 단번에 쓸려 나갔다.
“헉, 헉, 헉.”
조직이 무너졌지만 모르빈은 아직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무려 영주성이었다. 그곳에 총관인 클로드가 기거하기 때문이다.
“멈춰라!”
성 앞의 경비병들이 막자 모르빈은 쓰러지며 외쳤다.
“총관! 당장 총관님을 불러 주시오!”
“뭐 인마? 총관님이 네 친구야? 만나고 싶다면 만날 수 있게?”
경비병들이 어이없어하자 모르빈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새끼들아! 내가 총관님 동생이야! 동생!”
“……아.”
경비병들도 대충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클로드가 범죄 조직의 두목과 의형제를 맺었다는 걸.
어쨌든 동생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무시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경비병은 클로드에게 가 보고를 했다.
“뭐? 그 새끼가 여기 왜 와?”
클로드는 깜짝 놀랐다. 남들이 알면 어쩌려고 이런 곳까지 찾아온다는 말인가!
‘영주님이 쓸어버리러 갔는데 놓친 건가?’
아무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클로드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쫓아내, 쫓아내. 어차피 죽을 놈이야.”
“그러려고 하는데 쉽게 가지 않습니다. 쫓아내면 총관님의 비밀을 소문내겠다고 합니다.”
“이 새끼가 미쳤나!”
혼자 청렴결백한 척하던 클로드는 벌떡 일어나 씩씩거리며 나갔다.
병사들을 잔뜩 대동하고 나타난 그를 보며 모르빈이 반갑게 외쳤다.
“형님! 도와주십시오! 지금 약탈왕이…….”
“저 새끼 잡아! 빨리!”
“형님?”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네까짓 게 나를 만나러 왔단 말이냐! 이 범죄자 새끼!”
클로드는 무척 권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시끄러운 소란에 병사들과 사용인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다급해진 클로드는 길길이 날뛰었다.
“저 새끼 빨리 감옥으로 끌고 가라고!”
병사들은 일단 모르빈을 붙잡았다. 모르빈은 그제야 클로드가 자신을 쳐 내려고 하는 걸 깨달았다.
그는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외쳤다.
“야 이 개자식아! 내가 너한테 얼마나 많이 뇌물을 바쳤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뭐? 내가 언제 뇌물 받았어! 난 그런 적 없어! 청렴결백하거든?”
“증거가 다 있어! 장부도 다 만들어 놨다! 내 부하가 그걸 뿌릴 거야!”
“닥쳐! 그거 다 조작이야! 난 그런 적 없어!”
한 영지의 총관이란 작자가 사람들 앞에서 범죄자와 드잡이질을 하고 있다. 웬디는 옆에서 이마를 짚었다.
모르빈은 혼자 죽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외쳤다.
“뭘 그런 적이 없다는 거야! 우리가 전쟁할 때 병사들을 보내서 도와줬잖아! 그 대가로 매주 나한테 보석들을 받아 갔잖아! 네놈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내가 혼자 죽을 줄 알았냐!”
자신만만하게 외쳤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모르빈은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지? 총관을 그렇게 믿는 건가? 정말 청렴결백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데 자세히 보는 그런 눈치가 아니다. 다들 왜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이다.
‘뭐, 뭐야? 저 새끼 뭔데? 총관이잖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사람이 어떻게 평판을 쌓아야 저렇게 될까? 영주는 왜 저런 놈을 지금까지 살려 둔 걸까? 모르빈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클로드는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흐, 흐응. 사람들이 그딴 거짓말 믿을 줄 알았어? 빨리 이놈 끌고 가!”
모르빈은 체념한 표정으로 끌려갔다. 사람들이 다 아는 건 비밀과 약점이 될 수가 없었다.
자신만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너무 숨어 사느라 세상 물정을 몰랐다.
그래서 자신이 찍힌 것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데스몬드 영지의 수많은 범죄 조직들은 단번에 소탕되었다. 대부분은 영문도 모른 채 노동돌격대 특수 교육소에 끌려갔다.
영지민들은 그 사실을 제대로 몰랐다. 그저 언젠가부터 자신들을 괴롭히던 놈들이 나타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생각했을 뿐.
범죄자들 대부분이 사라지니 사건 사고도 대폭 줄어들었다. 대량의 식량을 받은 영지민들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요새 치안 좀 좋아진 거 같지 않아? 병사들이 많이 넘어와서 그런가 봐.”
“우리 영주님이 알고 보니 좋은 분이시던데? 영지민들도 함부로 안 잡아가고 식량도 나눠 주잖아.”
“그러니까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이런 영주님이 요새 어디 있어?”
“그런데 총관은 왜 그 모양인지. 범죄자들한테 뇌물을 그렇게 받았다더라. 그래도 영지민들은 안 괴롭히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지셀에 대한 칭송은 늘어나고 클로드에 대한 평가는 더 떨어졌다.
노동돌격대원도 충원하고 민심도 빠르게 안정되자 지셀은 흡족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점령지의 안정은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중요한 일을 하나 끝낸 그는 가신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이제 다음 일을 시작하자.”
* * *
지셀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수도의 분위기도 한껏 밝아졌다. 지셀의 사업에 투자한 귀족들과 친왕파 귀족들도 즐거워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의 승리는 공작가에 밀리던 분위기에 확실한 반전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왕파의 고위 귀족들은 지셀이 이긴 것을 순수하게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 오리 새끼가 그 정도라고? 뭐? 궁기병? 6서클 마법사? 북부제일검? 지금 제대로 보고 온 거 맞지?”
왕국군 총사령관, 모리스 맥쿼리 후작은 3군단장인 클리프턴 자작에게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럴 때마다 클리프턴 자작은 전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 확실합니다. 북부군 사령관님은 그 자리에 어울리는 힘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 펜리스가 북부 최강입니다.”
“…….”
그 말에 모리스를 비롯한 친왕파의 귀족들은 입을 열지 못했다.
펜리스가 북부 최강이라니. 자신들이 처음에 봤던 그 애송이가 이렇게 빨리 성장하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데스몬드와 비견되는 레이폴드가 있긴 하지만, 친왕파의 귀족들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여자인 아멜리아가 영주가 됐으니 얼마 못 가 망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아멜리아가 북부 연합군을 이긴 것도 그녀가 전략·전술에 뛰어나서가 아니라, 레이폴드군은 원래 강하고 북부 영주들은 거지 같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모리스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지? 그 오리 새끼가 북부 최강이라니…… 이거 맞아?”
자신들이 밀어주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성장하길 바란 건 아니었다. 너무 컸다. 원래도 통제가 힘든 놈이었는데 대영주가 된 지금은 어떨까?
‘이놈이 오히려 이를 드러내면 어떻게 하지?’
모리스가 이런 걱정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다른 귀족이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페르디움군과 왕국군이 도와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승리한 게 아닐까요? 혼자서는 절대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
다들 그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말도 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클리프턴 자작이 보고한 지셀의 활약은, 단순히 도움을 받았다고 보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만약 그놈이 모집한 대규모 병력이 훈련까지 마쳤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다른 지원이 없이도 홀로 데스몬드 백작을 박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즉, 펜리스는 정말로 북부 최강이라 할 수 있었다.
브랜포드 후작은 무언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허, 그놈이 정말 이길 줄이야.’
언제나처럼 사람의 간을 들었다 놨다 하는 놈이다.
브랜포드 후작도 다른 이들처럼 믿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직접 전쟁에 참여한 자가 저리 확신에 차서 말하는데 어찌 안 믿을 수가 있을까.
‘전에 들어왔던 정보들도 다시 정리해 봐야겠어.’
헛소문이라 생각하고 넘겼던 것들이 많았다. 어쩌면 그게 전부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자신이 믿고 밀어준 녀석이 이렇게 승승장구하는데, 후원자로서 기분이 나쁠 리가 없었다.
그때, 모리스가 표정을 굳히고 브랜포드 후작에게 말했다.
“너무 크는 거 같은데 이제 좀 눌러 버려야 하지 않겠어?”
다른 귀족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너무 빨리 큰 거 같습니다. 우리가 바란 건 펜리스 백작이 북부를 견제하는 거지, 그가 독주하는 게 아닙니다.”
“원래부터 좀 건방진 놈이 아닙니까? 갈수록 통제가 안 될 겁니다.”
“후작님께서는 지원을 멈추시고, 친왕파에 도움이 되도록 유도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조용히 듣고 있던 브랜포드 후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흐뭇해하고 있었는데 저렇게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하다니.
대단한 업적이긴 하지만, 달리 보면 겨우 데스몬드 백작 하나만 쓰러진 것이다.
아직도 공작가와 그 휘하의 영주들이 건재하거늘 벌써 집안싸움을 하려 하다니. 참으로 한심한 작자들이었다.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가. 펜리스 백작은 절대 건드리지 마시오.”
“…….”
“펜리스 백작은 공작가와의 싸움에서 큰 힘이 될 것이오. 우리의 적은 공작가라는 걸 잊지 마시오.”
바늘도 안 들어갈 정도로 단호하니 귀족들은 입을 닫았다.
물론 브랜포드 후작도 걱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통제가 안 되는 아군은 때로는 적보다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지셀을 쳐내면 공작가만 좋은 일을 하는 셈이었다.
“목표를 잊지 마시오. 펜리스 백작의 문제는 공작가를 해결한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소.”
친왕파의 귀족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모리스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쯧, 어차피 펜리스 백작이 없어도 내전은 잘 억누르고 있지 않았는가. 오히려 그 오리 새끼가 날뛰어서 곤란한 적이 더 많았는데 말이야. 조금 더 지나면 저 친구 생각도 바뀌겠지.’
그렇게 왕실에서의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브랜포드 후작은 바로 집사를 불러서 명했다.
“포우드 백작을 풀어 줘라.”
지셀이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더 이상 수도에 있던 공작파 귀족들을 억압할 필요가 없었다.
초췌한 모습으로 끌려온 포우드 백작이 무언가 체념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
“제가 풀려난 걸 보니 펜리스 백작이 승리한 모양입니다.”
“돌아가시오, 백작. 더 이상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군.”
브랜포드 후작의 말에 포우드 백작이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각하께서는 실수하신 겁니다. 펜리스 백작을 도와주면 안 됐습니다.”
“무슨 뜻이오?”
포우드 백작은 이제 될 대로 되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데스몬드 백작이 그 자리에서 없어진 이상 결국 내전이 일어날 것입니다.”
“어차피 공작가가 왕국을 노리고 있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오. 우리가 그 내전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고.”
“아니, 아닙니다. 각하께서는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
훈수를 두는 듯한 말투에 브랜포드 후작이 불쾌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무엇을 말이오?”
“내전을 억누르는 건 친왕파가 아니라 공작가의 요제프 자작입니다.”
“요제프 자작이?”
‘절름발이의 악마’라고 불릴 정도로 무자비한 자가 무슨 내전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말인가?
포우드 백작은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합리적인 자입니다. 우리는 정말 최소한의 피만 흘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공작 전하를 설득한 게 요제프 자작이란 말입니다.”
“…….”
“공작 전하가 어떤 분이신지 잊으셨습니까?”
“…….”
“이제 왕국은 피로 물들 것입니다.”
포우드 백작은 정말로 그걸 원치 않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