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305)
305 – 하나가 더 필요해. (1)
305화 하나가 더 필요해. (1)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라울은 뒤따라온 참모들에게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장 펜리스에 대한 정보를 갱신하도록 해라. 그리고 아멜리아와 접선해, 필요한 걸 지원해 줄 테니 북부 영주들을 다시 규합하라고 일러라.”
그러자 참모들이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멜리아는 아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여자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아하게 차나 마시던 영애였습니다.”
“북부의 영주들은 아멜리아를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인물을 선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여자는 발루아 남작의 반란도 아직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북부 연합군을 이겼다고 하나 다들 형편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애초에 전 레이폴드 백작이 남긴 군사력 덕분 아니겠습니까?”
참모들의 반대에 라울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래서 다른 대안이 있나?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멜리아가 아니야. 방금 말한 대로 레이폴드의 군사력이지. 북부의 거지 같은 놈들 중에서 그만한 군사력이 있는 자는 이제 없다.”
참모들은 입을 다물었다. 반대는 했지만, 라울의 말처럼 딱히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멜리아의 반란으로 위상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레이폴드는 데스몬드와 자웅을 겨루던 곳이다.
그 군사력은 지금도 북부에서 손꼽힌다. 라울의 말처럼 아멜리아가 아니라 레이폴드의 군사력을 믿어야 했다.
그래도 걱정은 아예 가시지 않았다.
“지금이야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지만, 아멜리아가 레이폴드를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발루아 남작처럼 여기저기서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아멜리아를 감시할 사람을 하나 붙여서 우리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한다. 해럴드처럼 멋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말이야.”
라울의 말에 참모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데스몬드 백작은 단순히 사람을 붙인다고 쉽게 통제되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명령을 내려도 그 과정은 일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이제 막 영주가 된 초짜다. 아마 내부 단속도 겨우 하고 있을 테니, 적당히 사람을 붙여서 공작가의 뜻에 따르도록 통제하면 될 것이다.
참모들은 아멜리아에 대해 모른다. 그렇기에 그녀가 순순히 말을 따를 거라 생각했다.
물론 라울은 참모들만큼 아멜리아를 우습게 보지는 않았다.
‘분명…… 해럴드는 위르겐을 처치하기 위한 인물을 요청했었지. 아멜리아에게 붙인다고 말이야. 그런데 이쪽에서 사람을 보내기도 전에 위르겐을 처치하고 반란에 성공했다.’
무슨 수를 썼든 간에 북부제일검을 없앨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 정도면 여자치고는 꽤 쓸 만하다고 볼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라울은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해럴드는 쳐 낼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잘된 일이라 생각해라. 우리가 보낸 인물과 레이폴드군을 주축으로 북부를 다시 재편한다. 그 뒤에 지셀이란 놈의 처리를 맡기도록.”
그는 무척이나 바쁜 사람이다. 하찮은 북부에만 신경을 쓸 수는 없었다.
지셀이 해럴드를 이긴 건 분명 대단한 일이지만, 이 왕국에 그보다 강한 대영주들은 훨씬 더 많았다.
공작가와 친왕파의 싸움은 이제부터가 진짜다. 데스몬드를 뛰어넘는 강대한 대영주들이 서로를 노리고 있었으니까.
라울은 참모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브랜포드 후작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지.”
“마지막 기회 말입니까?”
“순순히 자리에서 물러나면 평화롭게 왕권을 이양받겠다고 말이다.”
참모들은 조금 곤란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브랜포드 후작이 수락할 리가 없습니다.”
“그는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무엇을 준다 해도 소용이 없을 겁니다.”
라울도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브랜포드 후작의 성정은 왕국에서 유명하다.
“알고 있다. 그래도 지금 전하께서 심기가 조금 불편하신 거 같으니 경고는 건네야겠지.”
“경고라 하시면…….”
라울이 그 뱀 같은 눈을 빛내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왕실과 친왕파를 아예 핏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말이다.”
* * *
지셀이 가신들을 모아 놓고 다음 일을 하겠다고 선언하자 클로드가 반문했다.
“무슨 일이요?”
지금도 할 일이 무척이나 많다. 데스몬드 지역의 영지민들을 이주시키고 마을을 통합하는 작업도 해야 하고, 신병들의 훈련도 남아 있다.
지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클로드가 기가 찬다는 듯 외쳤다.
“지금까지 우리 영지에서 한 일을 이곳에서 또 해야 하거든요? 거주지에 공방, 경작지도 만들어야 하고, 도로 건설도 해야 하고, 무장들도 더 생산해야 하고, 도박장도 만들어야 하고! 행정관도 더 모집해야 하고, 치안 공백도 빨리 메꿔야 하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아이씨, 왜 이렇게 일이 많지?”
클로드의 말은 끝날 줄을 몰랐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지금까지 해 온 일을 새삼 다시 듣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 모든 게 엄청난 인력과 자금이 드는 일이다. 인구와 영토가 늘어난 만큼 전보다 규모도 더 커졌다. 진짜 죽어라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일을 또 벌인다고?
살아 돌아온 데스몬드 백작 손에 죽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클로드가 격하게 발작하자 지셀이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에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야. 데스몬드를 차지한 덕분에 시작할 수 있는 일이거든.”
“뭔데요?”
“일단 우리의 목표를 다시 한번 상기해 보자고. 앞으로는 어디와 싸우게 될지 다들 알고 있지?”
“…….”
그 말에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데스몬드 백작의 뒤에 공작가가 있다는 건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거기에 공식적으로 공작파의 일원이었던 카발디 백작도 두들겨 패고 영토를 뺏었다.
공작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건 자명한 일이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버틴 것도 친왕파가 견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아마 펜리스에서 카발디 백작을 쳤을 때 이미 끝장나지 않았을까?
모두의 머릿속에 비슷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진짜 싸우게 됐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그간 지셀이 하자는 대로 정신없이 끌려가다 보니 믿지 못할 상황이 닥쳤다.
북부 최강이라 불리던 데스몬드를 쓰러뜨리고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것도 믿기지 않는데 이제는 공작가와 싸워야 한다. 이건 그냥 믿기 싫었다.
사실 이들은 충분히 자부심이 들 만한 업적을 이뤘다. 만약 상대가 공작가가 아니었다면 무서운 것도 없고 오히려 자만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상대가 기다리고 있는 걸 아니 절로 겸손함이 솟아났다.
대승에도 불구하고 겸손해진 가신들을 보며 지셀이 웃음을 지었다.
“그런 자세들 좋아. 사람이 겸손해야 방심을 안 하는 법이거든.”
“…….”
다들 침묵을 지켰다. 정작 그 말을 하는 장본인이 겸손을 떠는 건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앞으로 공작가와 부딪칠 수밖에 없지. 이제 싸움의 무대는 북부가 아니라 왕국 전역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야.”
펜리스 혼자서는 공작가를 상대할 수는 없다. 결국 친왕파와 연합을 해서 싸워야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이동이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지원하러 가야 할 수도 있고, 때로는 기습적으로 공작파의 영주를 쳐야 할 수도 있다.
이곳에서 방어에만 신경 쓰고 있다가는 말라죽을 게 뻔했다.
그 정도는 다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셀이 지도를 펼치며 한 곳을 짚었다.
“우리의 다음 목표는 여기다.”
가신들은 지셀이 짚은 위치를 확인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흐억! 저기는?’
‘진짜 저곳을 치겠다고?’
‘설마 우리가 직접 치겠다는 건 아니겠지?’
지셀이 짚은 곳은 왕국 서부에 있는 공작파,로드리크 후작의 영지였다.
로드리크 후작령은 수도를 기준으로는 서부 지역으로 분류되지만, 왕국 전체를 놓고 보면 중심에 가깝다.
어마어마한 넓이를 자랑하는 로드리크 영지는 동부를 제외한 왕국의 모든 지역과 연결된, 교통의 요충지라 할 수 있었다.
지셀은 신이 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엄청 부자인 거 알지? 먹기만 하면 자고 일어날 때마다 돈이 굴러들어 올 거야.”
교통의 요충지인 만큼 로드리크 후작령에서는 상업이 극도로 발달하였다. 그 덕분에 대대로 어마어마한 부를 쌓아 왔다.
그렇게 넘치는 돈을 바탕으로 강력한 대영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친왕파도 이 영지 인근에 왕국군까지 배치하여 주시하고 있었다. 로드리크 후작령은 왕국의 수도와 가까운 만큼 내전이 일어나면 가장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곳을 차지한다면 펜리스군은 언제든 사방으로 뻗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동부는 브랜포드 후작님하고 친왕파가 꽉 잡고 있으니까 신경 쓸 필요 없고. 이곳만 먹어도 공작파 곳곳을 찌를 수 있게 되지. 우리의 행동반경을 엄청나게 넓힐 수 있다고. 그리고 공작파 귀족들도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게 되지. 언제 나한테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니까.”
클로드가 짠 내 나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말은 참 쉽게 한다.
“영주님? 로드리크 후작은 왕국의 유서 깊은 대영주이자 서부군의 총사령관입니다. 공작파나 친왕파에서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귀족이라고요.”
지셀이 계속 말해 보라는 듯 턱짓했다. 클로드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게다가 거기는 엄청나게 셉니다. 가난한 북부의 데스몬드 백작도 그 정도였는데, 거기는 데스몬드하고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부유하고 강한 곳이에요.”
“나 몰라? 내가 진 적 있어?”
“……몇 승이더라.”
이번에는 길리언이 잘 버텨 줬고, 지원군도 빠르게 온 덕분에 운 좋게 이겼다고 하고 싶은데……. 얘기를 들어보니 지셀이 혼자 다 박살 내고 다녔단다.
그래서 반박하고 싶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좋아요. 우리가 저길 먹었다고 칩시다. 그렇게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를 공작가가 그냥 두겠어요? 사방에서 계속 쳐들어올 텐데요.”
“그럼 그놈들도 다 박살 내면 된다.”
클로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세요. 언제는 안 그랬나요.”
“뭐?”
“아닙니다.”
이젠 설득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안 통한다. 영주가 먹자고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먹으러 가게 된다.
물론 지셀은 그저 먹음직스럽다는 이유만으로 로드리크 백작령을 차지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놈이 서부의 맹주였지.’
북부를 데스몬드 백작이 총괄했던 것처럼 서부는 로드리크 후작이 담당하고 있었다. 워낙 강대한 대영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이미 서부의 모든 귀족을 거느리고 있다. 전생에 수도를 가장 먼저 점령했던 자도 바로 로드리크 후작이었다.
이자만 먼저 기습적으로 부숴 놓으면 서부의 귀족들을 제대로 이끌 자가 없어진다.
지셀은 잔챙이들까지 하나하나 부수며 소모전을 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 당장 치자는 건 아니야. 여기를 목표로 준비하자는 거지. 어차피 이제는 단순한 영지전이 아닐 거야. 내전이 일어나면 왕국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질 테니까.”
“으음, 그 기회를 노리자는 거군요.”
클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대일로 정면 승부 하는 게 아니라면 위험성이 조금은 줄어든다.
친왕파와 협공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로드리크 후작이 병력을 분산하거나 영지를 비울 수도 있었다.
“그래, 많은 영주들이 움직일 거고,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투가 끊이지 않을 거야. 그 틈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준비하실 생각입니까?”
“준비야 할 건 많지. 그중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우리의 기동력을 살리는 방법을 확보하는 거야. 그게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이니까.”
“기동력이요?”
“병사 전원이 말을 탈 수 있게 훈련시키고 있으니까. 그리고 아주 가벼운 갈바니움 갑옷도 지급하고 있지. 이 왕국에서 우리 정도로 방어력과 기동력을 갖춘 기마병은 없을걸?”
그 말은 맞다. 중기병은 속도도 느리고 장거리에 약하다. 경기병은 속도는 빠르지만 방어력이 약해서 궁병의 공격에도 쉽게 당한다.
클로드는 지셀이 원하는 바를 알았다.
“그렇다면 도로 건설을 빨리 끝내야겠군요.”
“맞아, 각 영지에 도로들이 연결되면 지금보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겠지. 하지만 하나가 더 필요해.”
“뭐가 더 필요한데요?”
“뭐긴 뭐야.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려면 보급이 제일 중요하잖아?”
“보급이요?”
“그래, 평소에는 정상적으로 보급을 받는다 해도, 보급로가 막히거나 멀어질 수도 있잖아. 그럴 때도 대비해야지. 상황에 따라 아주 빠르게 이동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싸우러 가는 건데 부족하면 약탈로 버텨야죠.”
“나는 쪽팔리게 약탈 따위는 하지 않는다.”
전직 약탈왕이 당당하게 말했다.
사실 약탈로는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면 잘 쓰지 않는 수단이었다.
청야 전술에 취약하기도 하고, 약탈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점령지의 주민들도 적대적으로 굴게 되니 실패율도 높다.
클로드도 그걸 알고 있지만, 영주 본인이 약탈왕이라고 자칭하지 않았었나. 그는 지셀을 흘겨보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도 비스킷을 많이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닭고기이긴 하지만 육포도 이제 조금씩 생산하고 있고요. 그걸로는 부족합니까?”
“당연하지. 그걸로는 오래 못 버텨.”
이 시대에 휴대가 편하고 보존성이 높은 식량은 몇 가지 안 된다. 육포나 건조 시킨 빵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걸로도 보급 없이 버티기는 어렵다. 생각보다 부피가 꽤 나가기 때문이다. 보급이 끊길 걸 대비해 등짐에 챙겨 간다 해도 며칠 치가 한계였다.
보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행동반경에 제약이 생긴다. 제약이 생기면 자신들의 장점인 기동력을 충분히 살릴 수가 없다.
그건 지셀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새로운 전투 식량을 만든다. 휴대하기도 편하고 아주 오래 먹을 수 있는 걸로 말이야.”
지셀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