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309)
309 – 너 믿고 걸어 본다. (3)
309화 너 믿고 걸어 본다. (3)
“야야, 빨리 가자.”
“어휴, 이 지긋지긋한 영지. 다시는 북부 쪽에는 얼씬도 안 할 거야.”
“아주 징그러운 영주에 징그러운 영지였어.”
투덜거리며 짐을 싸는 이들은 카발디 전쟁 때부터 잡혀 있었던 맥스와 해결사들이었다.
돈값을 하기 위해 영지에서 일했던 이들은 쉽게 풀려나지 못했다. 매일매일 일을 해도 인부들의 일당만큼만 제하니 받은 액수를 까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돈을 뱉어 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로잘린과 메리엘에게 받은 돈이 워낙 커서 뱉기도 아까웠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생만 하고 있을 때 데스몬드와의 전쟁이 터졌다.
맥스와 해결사들은 노동돌격대를 이끄는 지휘관으로 참여하기로 하고 드디어 자유를 얻은 것이다.
“우리는 자유다!”
“와아아아!”
맥스의 외침에 따라 해결사들도 환호를 내질렀다. 이제 정말 이 지긋지긋한 영지와는 끝이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맥스와 해결사들이 깨끗하게 씻고 덥수룩한 수염을 깎고 있을 때, 클로드가 찾아왔다.
“이야, 이제 떠나는 거야? 다들 그동안 고생했어.”
“어, 음…… 총관님 오셨습니까?”
맥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클로드를 맞이했다. 자신들을 붙잡은 사람은 지셀이지만, 공사장에 보내 무지막지하게 굴린 건 클로드였다.
어찌나 막 굴리던지 진짜 암살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였다. 걸리면 평생 붙잡혀 있을 거 같아서 감히 시도하지는 못했지만.
떨떠름한 맥스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클로드는 살갑게 말했다.
“그래, 이제 돌아가서 뭐 할 거야?”
“그간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당분간은 힘든 일보다 적당한 일이나 좀 구해 볼 생각입니다.”
뼈가 있는 말이었지만 클로드는 뻔뻔하게 모르는 척했다.
“아휴, 그 실력에 하찮은 일들을 하기는 아깝지 않아?”
“조금만 더 모아서 은퇴하려고요. 이런 일도 계속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적당한 땅이나 사서 편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그래, 그런 생각이라니 조금 아깝긴 하네.”
실제로 맥스와 해결사들의 실력은 꽤 좋았다. 그렇기에 지셀을 구출하는 임무도 받고 전쟁 때 카오르를 대신해 노동돌격대의 지휘관도 맡지 않았는가.
클로드는 정말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며 슬쩍 운을 띄웠다.
“그러면 돈이 좀 많이 필요할 텐데. 단번에 큰돈 벌어 볼 생각 없어?”
“큰돈이요? 어떻게요?”
“이번에 말이야, 영주가 뭘 하나 만들었는데…….”
클로드는 알포이에게 말했던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제품이라고 열심히 설명했다. 맥스와 해결사들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그간 영주가 보여 준 실력이 무서웠다. 개량 밀과 화장품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들도 소문은 충분히 들었기 때문이다.
지셀이 전장에서 싸우는 모습도 그들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들이 감히 도망을 못 간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영주와 내기를 하라고? 맥스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희는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이 영지하고 더 엮이고 싶지 않아요.”
당연한 반응이었다. 클로드는 그 정도야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2만 골드.”
“……!”
“이기면 한 사람당 2만 골드씩 받아 갈 수 있을 거야.”
어마어마한 금액에 맥스와 해결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정도 금액이면 바로 은퇴할 수도 있다.
손이 떨릴 정도의 금액이었지만 맥스는 바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해결사의 리더다.
“왜…… 우리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영주가 만들었다는 이상한 가루 식품은 분명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런 좋은 기회를 왜 굳이 이방인인 자신들에게 말한단 말인가?
맥스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접한 클로드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간 나 원망 많이 했지?”
“……조금.”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영지에 인력이 부족하니까. 그래서 악인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지. 항상 자네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어.”
“총관님…….”
“자네도 작은 집단이지만 리더로서 사람들을 이끌고 있으니까 알지 않나. 사람들을 이끄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말이야.”
맥스는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은 안 좋긴 하지만 어쨌든 총관은 영지를 위해(?) 사람들을 갈구지 않았는가.
이렇게 떠날 때가 되니 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클로드는 맥스의 손을 잡고 말을 이었다.
“별거 아니야. 난 그저 자네들이 떠나기 전에 정당하게 큰돈을 챙겨 주고 싶을 뿐이거든. 나도 그렇게 큰돈은 이런 핑계가 없으면 줄 수가 없으니까.”
“총관님…….”
맥스와 해결사들은 왠지 울컥했다. 코가 시큰해지는 것만 같았다. 나쁜 놈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마음 씀씀이가 깊은 사람이었다.
클로드는 논리와 이성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맥스와 해결사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따뜻한 눈빛으로 맥스를 바라보던 클로드가 살짝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영주님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
“영주님이요?”
“그래, 우리 영주님은 분명 뛰어나신 분이야. 어려움을 딛고 많은 걸 성공시키셨지. 다만…… 지금까지 실패가 없었던 게 문제야.”
“그게…… 왜 문제입니까?”
“갈수록 자만이 심해지니까. 젊은 나이에는 실패와 시련을 겪어 봐야 더 성장하는 법이거든.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지금 큰 손해를 보는 게 좋아.”
“왜 지금이 좋다는 겁니까?”
“솔직히 이번 일은 실패해도 영주님이 살짝 망신만 당하고 끝이지. 하지만 큰돈을 잃으면 정신을 바짝 차릴 거야. 자만심도 많이 줄어들 거고.”
“으음…….”
“생각해 봐. 여전히 자만한 채로 다음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지.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목숨을 잃는 게 전쟁이야. 지금 영주님의 심성을 바로잡아야 해. 오히려 돈을 잃는 게 싸게 먹히는 거라고.”
“아아…….”
맥스와 해결사들은 클로드의 말을 이해했다. 지셀이 공작가에 찍혔다는 건 이제 비밀도 아니었다.
강대한 적이 도사리고 있는데 성공에 취해 자만한다면 분명 큰 곤욕을 치를 게 분명하다.
맥스는 해결사 일을 하며 그런 경우를 많이 봐왔다. 자만심은 결국 화를 불러온다. 특히 적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랬다.
클로드의 말에는 틀린 점이 없었다.
‘충신이었구나!’
‘이런 사람인 줄도 모르고 우리는…….’
‘아아, 이렇게 큰 사람이니 이런 대영지의 총관을 하고 있는 거겠지.’
맥스와 해결사들은 감격했다. 클로드는 모든 오욕과 비난을 홀로 뒤집어쓰고 오직 영주와 영지만을 생각하는 충신이었다.
그걸 떠날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건 그거고 내기는 내기다. 클로드의 논리엔 틀린 점이 없지만, 그래도 맥스는 뭔가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뜻이야 좋긴 한데 만약에 지면 큰일이 나지 않겠는가.
그런 맥스의 마음을 안다는 듯 클로드가 미소를 지었다.
“‘마탑’의 마법사들도 모두 참여하기로 했어. 이미 마법사들이 검증을 끝낸 일이야. 걱정할 필요 없지.”
“오오!”
해결사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법사들이 검증까지 끝냈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마법사들은 한때 북부 제일이라 불렸던 적염의 마탑 소속들이다. 거기에 바네사는 6서클에 이른 마법사다.
검증된 마법사들까지 참여한다? 이건 안 끼는 게 바보인 일이었다.
클로드가 일부러 마법사들부터 설득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세상 경험이 많아 쉽게 넘어오지 않는 해결사들이기에 똑똑한 마법사들이 참여했다는 걸 강조한 것이다.
물론 바네사가 이제 마탑 소속이 아니고, 내기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절대 말하지 않았다.
“해 보겠습니다!”
맥스가 호기롭게 외치자 해결사들도 모두가 동의했다. 이렇게 클로드는 마법사와 해결사들을 모두 엮어 버렸다.
‘휴, 이제 시작이네. 어차피 이길 거니까 다들 걱정하지 말라고.’
그래도 그는 예전보다 조금 더 발전했다.
사람들을 꾀는 것에 성공했지만 바로 지셀을 찾아가지는 않았다.
총관의 권한으로 시제품 가루를 조금 빼돌린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가루를 섞어 마셔 보았다.
“음…… 맛은 좀 괜찮네.”
먹으니까 속이 약간 더부룩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크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포만감도 약간 들었다.
그는 그렇게 저녁때까지 업무를 보았다.
“출출한데?”
물에 가루를 타서 마셨으니 허기가 지는 건 당연하다. 그는 한 번 더 먹은 다음에 잠깐 눈을 붙이고 업무를 이어 갔다.
“아, 배고프잖아. 역시 소용없네.”
배가 고프다. 맛있는 걸 먹고 싶고 씹고 싶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더 배가 고파지는 거 같았다.
그는 가루 먹는 걸 때려치우기로 하고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난 뒤 말했다.
“딱 굶어 죽지는 않을 수준이네. 이런 거 먹고는 절대 못 싸우지. 으하하하!”
그는 하루만 먹어 보고 포기했다. 배가 고프고 뭔가 자꾸 먹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번만큼은 영주가 실패했다고 확신했다.
자만에 넘치는 클로드를 보며 웬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하루 만에 결정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적어도 사흘은 드셔 보시는 게…….”
“아우, 됐어. 나 배고파서 이것만 먹고는 못 살겠어. 이건 실패야, 실패.”
“……영주님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결과를 냈습니다.”
“이번은 아니야, 그리고 설사 내가 진다 해도 상관없어.”
“……?”
웬디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자유를 원하면서 져도 상관이 없다니?
정말 영주의 자만을 경고하려는 의도였던 걸까?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 빤히 바라보자 클로드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집무실의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난 건 게 없잖아…… 이미 인생 엿 된 상태라서 잃을 것도 없어…….”
“…….”
클로드는 아무것도 걸 게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인생을 끌어와서 대신 걸어야 했다.
혹시나 사람이 좀 됐나 하고 생각했던 웬디는 그냥 집무실 천장만 바라보았다.
* * *
계약서는 빠르게 체결됐다. 마법사들과 해결사들은 인생을 걸었고, 이겼을 시에는 대가로 자유와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지셀이 흔쾌히 수락한 건 당연한 일이다.
마법사 46명의 계약 연장에 신규 해결사 10명 영입이라니, 이런 건 절대 참을 수가 없다.
클로드는 지셀을 바라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관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몰래 뭘 먹이면 안 되니까요.”
“그래라.”
“크크큭, 후회하지 마십시오.”
“너야말로…… 아니, 넌 후회할 게 없구나.”
영주와 총관이 또 내기를 했다는 소문은 금세 영지에 퍼져 나갔다.
언제나 지셀을 말리던 벨린다와 길리언 등의 측근들은 이번만큼은 그를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그동안의 학습 효과로 말려 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지셀이 이번에도 성공할까 하는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미 이런 내기를 몇 번이나 본 옛 펜리스 지역의 영지민들은 지셀의 승리를 점쳤다.
딱히 어떤 지식의 기반으로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다. 그냥 항상 지셀이 이겼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믿는 것이었다.
“총관님이 또 덤볐다며?”
“쯧쯧, 항상 지면서 왜 그러는지 몰라.”
“이번에는 좀 다르다는 소문이 있어. 마법사님들도 다 참가했다는데?”
“에이, 그래 봤자야. 예전에는 마법사님들이 참여 안 했나.”
워낙 지셀이 인기가 많으니 오히려 클로드를 비웃는 영지민들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래도 클로드는 개의치 않았다. 이번에는 정말 승리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아니면 말고.
클로드는 뻔뻔하게 버티고 있었지만 이번 테스트에 참가하게 된 자들은 아니었다.
“이게 뭐야!”
“이것만 먹고 한 달을 버티라고?”
“그러고는 모의 전투를 한다고?”
“그걸 어떻게 하냐고!”
차출된 기사들과 병사들은 매일 지급된 가루를 보며 경기를 일으켰다.
이 영지의 장점이 무엇인가? 훈련은 힘들어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정말 먹을 건 넘쳐났다. 특히 요즘 들어 펜리스 영지민들은 음식을 조금이라도 맛있게 만들기 위해 각종 소스를 개발하는 중이었다.
딱히 지셀이 부추긴 변화는 아니었다. 먹는 자원이 풍족해지니 당연하게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렇게 먹을 게 풍족해진 상황에서, 가루 섞은 물만 마시면서 훈련은 훈련대로 하며 버텨야 한다. 절로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차출된 기사들 중 최고 선임으로 꼽히는 고든과 루카스가 가장 먼저 분노했다.
“이딴 거 먹고 훈련 안 해! 근손실 온다고!”
“내 천재성을 시기한 놈들의 음모다! 가만두지 않겠다!”
엘프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하필이면 차출된 인원 중 아스콘이 껴 있었다.
“야이, 개새끼들아아아! 내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이런 걸 먹고 버티냐! XXX! XXXXX! XX! XXXX! XXXXX!”
욕이 너무 심해서 못 들어 줄 정도였다.
그들은 들고일어나려 했지만 주변을 지키고 있는 길리언과 나머지 기사들에게 단번에 제압당했다.
특히 실험에 참여하지 않은 기사들은 자신들이 대신 끌려갈까 봐 더욱더 열심히 참가자들을 막았다.
참가자들은 다들 분노하며 외쳤다.
“총관 새끼가 이렇게 하자고 했다며?”
“아오! 누가 이기든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왜 항상 일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하냐고!”
어차피 내기가 아니더라도 실험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건 아니었다.
원래 지셀은 조금씩 몸 상태를 보며 날짜를 나눠서 상태를 보려고 했다. 어쨌든 이건 정상적인 식사가 아니라 비상 전투 식량이었으니까.
다른 일을 하면서 안전하게 효과를 확인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클로드가 내기의 승리를 위해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지셀이 한 달이라고 말했던 걸 트집 잡아서 말이다.
결국 참가자들의 원망은 클로드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정말 한 달 동안 물과 가루만 먹으면서 버텨야 했다.
사람들의 원성과 비난이 빗발쳤지만 클로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나는 배 안 고프니까.’
그는 그 정도로 정신력이 강인한 남자였다.
어쨌든 내기는 시작되었다. 클로드는 더욱 확실하게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새로운 준비에 착수했다.
내기 겸 실험이 이루어지는 틈을 타 지셀은 예전부터 고민하던 수련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투명 소드마스터]바로 고든이 쓴 책에서 얻은 영감을 토대로 한 수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