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310)
310 – 정말 멋진 승부였어. (1)
310화 정말 멋진 승부였어. (1)
고든이 쓴 소설 자체는 적당히 읽고 넘겼지만, 그 안에 있던 내용 중 일부는 지셀에게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공격하는 순간에도 기척을 내지 않고 절대 보이지 않는다…….’
상대와 실력 차이가 크다면 가능하다. 하지만 고든의 설정에 따르면 그것은 실력 차이와 상관없는 어떠한 권능에 가까웠다. 어찌 보면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는 힘’보다 위험하다.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건 불가능하다. 그저 상상 속의 경지에 불과할 뿐이었다.
‘성녀도 그런 능력을 쓰지는 못했으니까.’
여신의 권능을 빌려 쓰는 성녀조차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피식 웃고 넘어갔겠지만, 지셀은 거기서 작은 호기심을 느꼈다.
‘만약 정말 그런 힘을 쓰는 적을 만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그와 비슷한 능력이 있는 존재라면?’
전생의 경지였다면 주변 영역을 모두 자신의 감각 안에 집어넣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기척을 느끼지 못한다면?
설사 그런 권능이 세상에 없다 하더라도, 자신보다 높은 실력자를 만나면 비슷한 일을 당할 수 있다.
‘즉사를 피하고 반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즉사를 피하려면 어떠한 공격이든 버틸 수 있는 신체가 필요하다.
마나를 익히는 자는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이 발달한다. 수련을 통해 몸이 자연스럽게 마나를 흡수해 체질이 바뀌기 때문이다.
경지가 높아질수록 감각도 예민해지고, 근력이나 회복 능력도 더욱더 강해진다.
그렇다 해도 사람의 몸이 강철처럼 단단해지지는 않는다. 기사들이 괜히 마나 연공법을 운용하며 마나를 모으고, 싸울 때 몸에 마나를 두르는 게 아니다.
더 강한 힘을 내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마나를 코어에서 뽑아내 신체로 돌려야 한다. 제대로 마나 운용을 하지 않을 때는 대부분 방어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마나를 익힌 자도 방심한다면 평범한 사람의 공격에 다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틈을 타서 때때로 암살이 성공할 때가 있었다. 상대도 마나를 사용하는 자라면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몸이 알아서 공격을 막아 내고 역으로 상대에게 충격까지 줄 수 있다면?’
적어도 자신보다 낮거나 동급인 적에게는 불시에 당하지 않을 것이다. 다수가 싸워야 하는 난전에서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
약한 자들은 아무리 모여도 자신에게 터럭만큼의 상처도 줄 수 없을 테니까.
만약 그런 몸을 만들기만 한다면 자신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해 보자.’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그중 가장 정석이라 할 수 있는 건 오랜 연구를 통해 이론을 만들고 다시 수많은 실험을 통해 안전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냥 목숨 걸고 무작정 부딪치는 방법이다. 위험하지만 그만큼 속도가 빠르다.
지셀은 후자를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휘릭.
단검을 하나 꺼낸 그는 바로 자신의 팔을 찔렀다.
푸욱!
검날이 파고든 곳에서 피가 솟구쳤다. 찌르는 순간 마나가 모여 약한 반발력을 냈지만 충분치 않았다.
공격하는 힘이 더 강하고, 속도도 더 빨랐기 때문이다.
‘늦어, 그리고 부족해.’
감지하기도 전에 몸이 알아서 반응해야 한다. 겉가죽이 상처 입는 순간 코어에서 마나가 저절로 뽑혀 나와 신체를 보호해야 한다.
그것이 첫 번째 단계였다. 반격은 그 이후에 생각해 볼 문제였다.
스으으윽…….
얕게 찔러서 그런지 상처는 금세 회복되었다.
지셀은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웠다. 이제부터 하는 일을 몸이 언제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전생에서도 수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이런 무식한 수련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하고 막는 것에 더 중점을 두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신의 몸 자체를 진화시켜야 했다.
‘조금만 더 힘을 써 볼까.’
파파파파팍!
그는 단검을 재빠르게 움직여 몸 곳곳에 상처를 냈다. 그러고는 상처 주위로 감각을 집중했다.
상처마다 미묘하게 마나가 몰리는 양이 달랐다. 뒤로 갈수록 상처가 미세하게 커졌다.
몸의 반응 속도가 아직 공격 속도를 제대로 못 따라온다는 증거였다.
‘며칠 더 해 봐야겠군.’
수련하러 연무장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지셀은 낮에는 현장 업무를 보거나 수련을 하고 밤에는 서류 업무를 보며 집무실에서 몸을 찔렀다.
옷이 매일같이 뚫리고 찢어진 데다가 피범벅이 되어 있는 상황이 며칠이나 이어지니 벨린다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뭐지? 대련이 없는 날도 이러네?’
지셀이 수련광인 건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주 옷이 망가져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영 이상했다.
벨린다가 의심하는 동안 지셀의 수련은 점점 과격해져 갔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머뭇거려서 그런 건가?’
매일 같이 자해를 하니 감각은 예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발달했다. 깊이 찔러도 찌르는 순간 마나가 모여 얕은 상처로 끝난다.
하지만 반응 속도는 꾸준히 늘어나다 어느 순간부터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지셀 자신의 공격이 일정 수준에 머물러서 생기는 문제 같았다.
아직은 몸이 따라 주지 않아서 초급 기사 수준 정도로 공격하고 있었다. 몸이 그걸 본능적으로 알기에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다.
지셀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잘 알았다.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진짜 목숨을 걸어야 하지.’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단검을 잠시 노려보다가 곧 단검에 마나를 실었다.
진짜로 죽으면 안 되지만, 죽을 수도 있다는 긴장감을 몸과 머리에 박아 넣어야 했다.
‘이 정도면…….’
지셀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금만 실수하거나 몸이 늦게 반응하면 죽는다.
인위적으로 마나를 끌어올려 막을 생각은 없었다. 찌르는 순간, 생존을 위해 몸이 알아서 움직여야 했다.
크게 심호흡을 한 그는 천천히 단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때, 며칠간 의심의 눈길을 보내던 벨린다가 지셀의 집무실을 기습했다.
덜컥!
“도련님! 도대체 밤마다 뭘 하시길래 옷이 이 모양…… 꺄아아아악!”
벨린다는 들어오자마자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단검을 자신의 심장에 박아 넣고 있는 지셀의 모습이었다.
* * *
‘절반의 성공이다.’
지셀은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심장을 찌르는 순간, 단검이 절반쯤 파고들었다. 조금만 더 들어갔으면 심장이 완전히 파괴돼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급속도로 몰린 마나가 단검을 막아 냈다. 뛰어난 재생력은 상처 난 심장을 바로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아무리 회복력이 뛰어나도 겉가죽에 난 상처와 장기에 난 상처는 다르다. 갑자기 큰 상처를 입고 많은 피를 쏟아 냈으니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만약 피오테가 조금만 더 늦게 왔다면 죽지는 않았어도 큰 후유증이 남을 뻔했다.
“도련님! 갑자기 또 왜 그러세요! 설마 얼마 전에 아멜리아 아가씨를 다시 만나서 그런 건가요? 다시 아가씨가 그리워진 거냐고요! 대영주까지 됐는데 뭐가 아쉽다고 헤어진 여자한테 미련을 둬요! 이럴 거면 빨리 혼처를 구하고 안정을 찾으시라고요!”
“……아니라고.”
“그럼 뭔데요! 또 그놈의 내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이번에는 진짜 질까 봐 그래요? 내가 진짜 총관이랑 알포이 새끼 지긋지긋해 죽겠어!”
“……그것도 아니라고.”
지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또 영지의 가신들이 죄다 몰려와 있다. 이럴 줄 알았다.
클로드가 이번에도 흐느적거리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그는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또 저 욕 먹이려고 그러시는 거죠? 아니, 못 이길 거 같으면 항복하시라고요. 도대체 그 자존심 뭔데요?”
“……아니라고.”
심드렁한 지셀의 대답에도 클로드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저만 욕한다고요! 제가 내기를 걸어서 영주님이 또 이런 소동을 벌였다고! 진짜 사람들한테 사랑받는다고 그걸 그렇게 이용할 거예요? 영주님, 진짜 내가 미치는 꼴 보고 싶어?”
알포이도 옆에서 툴툴거리며 거들었다.
“그냥 무승부로 해 드릴 테니까 10년만 깎읍시다. 앞으로 고집 좀 그만 부리시고요. 진짜 이럴 때마다 내가 곤란해지는 거 몰라요? ‘신을 이긴 남자’인 내가! 아휴, 창피해 죽겠네.”
클로드와 알포이는 이번에도 가신들의 압박을 받았다. 왜 자꾸 까불어서 영주님을 곤란하게 하냐는 것이었다.
예전에 독을 마셨을 때도 놀랐지만, 나중에는 수련이었다는 걸 이해했다. 하지만 심장을 단검으로 찌르는 건 누가 봐도 수련이 아니었다.
세상에 그런 멍청한 수련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다들 이번에야말로 저 자존심 강한 영주가 제 성질머리에 분을 못 이겨 자해했다 생각했다.
그냥 전처럼 쫓아낼까 고민하던 지셀은 한숨을 쉬고 약간의 설명을 해 주었다. 자신이 봐도 이번에는 계속 말리는 게 당연하다 싶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수련이야. 위험하긴 하지만 적당히 조절하고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돼.”
벨린다가 여전히 의심스러워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대체 무슨 수련인데요? 세상에 그런 수련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게 뭐가 도움이 되는 건데요?”
“음,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지셀은 대략적으로 자신의 가설을 설명해 주었다. 상세한 이론이라기보다는 가정과 상상에 가까운 내용이었지만 어쨌든 의도는 전달했다.
설명을 다 듣고 나서도 사람들은 한동안 눈만 껌뻑였다. 한참 뒤 벨린다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기척도 없는 투명한 놈한테 맞으면 죽을까 봐 그런 수련을 하고 있었다고요?”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거기서 영감을 얻었달까?”
“……도련님, 기척을 느끼는 건 그냥 실력 차이죠. 기척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니, 세상에 그런 생물은 없어요.”
바네사도 옆에서 거들었다.
“물리 법칙상 그건 말이 안 돼요. 마법을 써도요. 물체를 정지 상태에서 일정한 속도까지 가속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량이 있는데, 질량이 있는 물체라면 무엇이든 그 현상이 발동…….”
설명왕인 그녀가 강의를 시작하려고 하자 지셀이 허겁지겁 말을 끊었다.
“꼭 그런 게 아니라니까! 언제든 기습당할 때를 대비해서 방어력을 높이는 수련을 하는 거니까 그만 신경들 쓰고 일 봐. 다들 안 바빠?”
사람들은 지금도 충분히 강하니까 그딴 수련은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지셀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클로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봤지? 난 분명 설득했다? 영주님이 거절한 거야.”
알포이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분명 양보했다? 나 잘못 없다?”
이번에도 여러 사람에게 협박당한 두 사람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이 사건은 영지민들에게도 순식간에 퍼졌다.
영지민들은 깜짝 놀라며 다시 클로드와 알포이의 초상화를 구해 찔렀다.
“총관님은 도대체 왜 우리 영주님을 못 괴롭혀서 안달인 거야! 어차피 이번에도 영주님이 이길 텐데!”
“성녀님한테 말해서 천벌을 내리게 해야 해!”
“알포이 님도 똑같아! 성녀님한테도 무례하게 대하고 말이야!”
클로드와 알포이의 평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실 본래도 바닥이었기에 지하 밑으로 떨어졌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지셀에 대한 영지민들의 충성심은 무척이나 높다. 당연히 지셀이 승리할 거라 믿으며 클로드와 알포이를 비웃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예전과 다르게 강인해졌다. 아무리 영지민들의 저주와 비웃음을 받아도 이제는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우리 욕하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다던데.”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것들의 한계지.”
클로드와 알포이는 각자 와인이 담긴 잔을 들고 성의 발코니에 서 있었다.
우아하게 와인을 마신 클로드가 말했다.
“자유가 되면 뭘 할 거지? 알포이?”
“아마 마탑의 후계 수업을 마치고 후에 탑을 물려받겠지. 내 대에서 마탑은 다시 북부 제일의 자리를 차지할 거야.”
“역시 야망이 큰 남자군. 신을 이긴 남자다워.”
“너는 어떻게 할 거지?”
“나는…… 작은 영지의 주인이라도 되어 볼까 생각 중이야.”
“청렴결백한 너다운 선택이군.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그래,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까.”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클로드가 잔을 내밀며 말했다.
“넌 훌륭한 탑주가 될 수 있을 거야.”
알포이 또한 잔을 내밀었다.
“너 또한 좋은 영주가 될 수 있을 거야.”
두 사람은 미소 지으며 잔을 부딪쳤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웬디는 썩은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비웃음을 보냈다.
* * *
지셀의 자해 사건 외에는 사람들의 일상에 큰 변화는 없었다. 지셀도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상한 수련을 이어 갔다.
그렇게 한 달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쏴아아아아.
약속한 날짜의 이틀 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클로드는 창밖을 보며 미소 지었다.
“날씨가 좋구나.”
비가 많이 왔으니 땅이 질퍽해질 것이다. 그런 땅에서 움직이면 체력이 더 많이 소모될 수밖에 없다. 분명 실험 참가자들은 모의 전투 때 움직이기도 힘들 것이다.
절로 미소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틀 뒤인가…….”
클로드는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렸다.
본격적인 결전을 이틀 앞둔 오늘.
바람 소리와 스산한 빗소리가 집무실 창을 때렸다.
폭풍전야.
영지에서 자신을 비웃던, 지금도 비웃는 이들에게 어떤 반박도 하지 않았다.
영주가 허접한지, 자신이 허접한지는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그것이…… ‘승부사’ 클로드가 살아가는 방식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