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311)
311 – 정말 멋진 승부였어. (2)
311화 정말 멋진 승부였어. (2)
“총관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웬디의 말에 클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오늘은 모의 전투가 있는 날이다.
실험 참가자들은 지금쯤 잔뜩 굶고 힘도 못 쓰고 있을 것이다. 끼니마다 물과 그 이상한 가루만 배급했으니까.
클로드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움직였다.
그가 향한 곳은 데스몬드 영지에 있던 큰 검투장이었다.
검투 노예들이 싸우는 검투장은 데스몬드만 한 대영지가 아니고서는 보기 어려운 시설 중 하나였다.
먼저 와 있던 지셀은 클로드가 도착하자 손을 흔들었다.
“그 표정은 뭐야? 아주 여유가 넘치는걸?”
“후후, 승리가 확실한 게임에 긴장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번에도 그러다가 당하지 않았어?”
“아님 말고요.”
“…….”
확실히…… 클로드처럼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자는 이렇게 여유가 넘칠 수밖에 없다.
관중석에 영지의 주요 인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클로드가 손을 흔들었다.
쿠웅!
척! 척! 척! 척!
검투장의 한쪽 문이 열리며 200명의 병사가 질서정연하게 걸어 나왔다.
병사들은 모두 나무 방패와 짚단을 엮어 만든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사상자가 생기면 안 되기에 살상력이 없는 무기를 준비한 것이다. 짚으로 만들긴 했지만 그래도 맞으면 꽤 아프다.
이들은 한 달 동안 클로드가 준비한 병사들이었다.
지셀은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뭐야? 따로 병사 좀 쓴다더니 준비 잘했네?”
“그럼요, 제가 특별히 관리했지요.”
병사들 중에서 특히 체격과 힘이 좋은 자들만 선별했다. 최고의 식단만 제공하고, 적절한 훈련과 휴식을 통해 몸을 다듬었다.
거기에 피오테를 닦달해 신성력까지 써서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했다.
클로드는 정신과 근성만을 강조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짧은 시간 안에 훌륭한 정예를 만들어 냈다.
지셀이 병사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능력은 있는 놈이라니까. 이상한 데서 멍청해서 그렇지.’
영지 일도 바쁜데 한 달 만에 병사들을 저렇게 키워 내다니. 병사들에게서 내기에서 이기겠다는 클로드의 의지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클로드도 자신이 준비한 병사들을 보며 만족감 어린 웃음을 지었다.
‘후후, 이번 내기는 예전과는 전혀 다르지.’
예전 내기에서는 그저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해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키운 병사들로 판을 바꿀 수 있다. 이번 내기 내용은 어느 쪽이 이기냐는 거였으니까.
한 달이나 굶은 놈들이 힘을 제대로 쓸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그는 방심하지 않고 철저하게 준비했다.
병사들에게도 상대편 병사들을 뒈지게 패 버리라고 신신당부를 한 상태였다.
클로드가 준비한 병사들이 다 나와 진형을 갖추자 이번에는 지셀이 손짓을 했다.
끼이이익…….
반대편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다들 목을 빼고 안을 들여다봤지만, 짙은 어둠이 문 안쪽을 가리고 있었다.
“으어어…….”
또 한참이 지나서야, 물과 가루만을 먹은 자들이 괴성을 지르며 나타났다.
기사 10명, 엘프 20명, 병사 20명이 전부였다. 클로드가 준비한 병사들에 비해 수가 훨씬 적었다. 기사가 끼어 있다는 이유로 수를 줄인 것이다.
그들은 모두 어기적거리며 짚으로 만든 몽둥이만을 들고 나타났다. 방패도 무겁다며 다 버린 상태였다.
클로드는 승리를 확신하고 미소를 지었다.
‘크큭, 완전히 좀비가 다 됐구나? 그럼 그렇지, 한 달이나 굶고 멀쩡할 리가 없지.’
다들 전보다 눈에 띄게 말라 있었다. 눈도 퀭하고 걸음걸이에 힘도 없어 보였다.
특히 고든 같은 경우는 징그러울 정도로 컸던 근육이 확 줄어들어 오히려 멋져 보일 정도였다.
미소 짓는 클로드와 달리 벨린다는 살짝 놀라며 눈을 빛냈다.
‘근육이 생각보다 줄지 않았네? 눈빛도 아직 살아 있어.’
암살자답게 눈썰미가 누구보다 좋은 그녀는 금세 사람들의 상태를 알아보았다.
분명 피곤하고 힘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오히려 군살은 쫙 빠진 상태였다. 일부러 적게 먹고 살을 빼며 운동을 하면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눈빛도 정말 살아 있었다. 뭔가 이글거리는 게 분노에 가득 차 보였다.
지셀이 다시 손짓하자 길리언이 크게 외쳤다.
“시작하라!”
쿠웅!
클로드가 뽑은 병사들이 방패를 앞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실험 참가자들이 뚫지 못하게 방어만 하면 된다.
그리고 참가자들은 병사들을 뚫고 저 뒤에 있는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면 되는 것이다.
“으흐흐흐…….”
선두에 선 고든과 루카스가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엘프들과 병사들도 어기적거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정말 좀비들이 걸어오는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터덕, 터덕, 터덕…….
천천히 걷던 참가자들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그들은 어느 순간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온다!”
병사들이 방패에 힘을 꽉 주었다. 그냥 지칠 때까지 막고 시간만 끌면 된다고 했다. 비록 기사들도 끼어 있지만, 다들 식사를 제대로 못 했다고 하니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오산이었다.
“비켜어어어어!”
고든이 크게 외치며 짚단 몽둥이를 휘둘렀다.
콰아앙!
“케엑?”
앞에서 막고 있던 병사가 한 대 맞더니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뒤이어 들어온 루카스와 기사들도 마구잡이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콰앙! 콰앙! 콰앙!
짚단을 휘둘러서 날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기사들의 짚단 몽둥이에서는 푸르스름한 빛이 나고 있었다.
클로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야? 왜 아직도 저렇게 쌩쌩해? 어떻게 마나를 쓰고 있는 거야?’
똑같이 굶어도 마나를 다루는 사람은 다루지 못하는 사람에 비해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건 맞다. 그 마나가 생명력을 유지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달이나 제대로 못 먹었으니 아무리 기사들이라도 가진 마나가 상당히 줄어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래야 하는데 전혀 굶은 사람 같지가 않았다.
퍼억! 퍼억! 퍼억!
열 명이나 되는 기사들이 쌩쌩하게 날뛰니 아무리 체격이 좋은 병사들이라도 버티기가 힘들었다.
물론 이들도 나름의 훈련을 받은 정예들이라 똑같이 몽둥이를 휘두르고 버텼지만, 그들의 상대는 기사들만이 아니었다.
“야이, 시불럼들아!”
아스콘이 분노한 표정으로 병사들에게 날아들었다. 그는 눈이 돌아갈 대로 돌아간 상태였다.
“이 XXX, XXXX, 느금X, XXXXX, XXX!”
듣기 고약한 욕들이 쉼 없이 터져 나온다. 괜히 부모 욕까지 들은 병사들도 화가 나서 강하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냥 죽어!”
“밥 내놔!”
“으아아악!”
퍼억! 퍼억! 퍼억!
양측은 눈이 돌아가서 난타전을 벌였다.
기사들의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긴 하지만 상대하는 병사들도 만만치 않았다. 워낙 힘과 덩치가 좋은 데다가 수도 더 많으니 쉽게 밀리지 않았다.
만약에 검을 들고 싸웠다면 병사들이 마나를 사용하는 기사들을 막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짚단에 마나를 불어넣어 봤자 조금 단단해진 몽둥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거기다 병사들은 모두 중무장을 하고 있으니, 기사들이 온 힘을 다해 죽이려 해도 쉽지 않았다.
결국 양측은 격렬하게 몸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퍼억! 퍼억! 퍼억!
“으아아아아!”
난장판이 된 검투장 곳곳에서 비명이 울렸다.
병사들의 수가 많기는 해도 기사들은 차곡차곡 하나씩 쓰러뜨리며 전진했다. 뒤따르는 엘프들과 병사들도 시선을 끌며 나름대로 힘을 보탰다.
클로드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
아직 진열을 다 뚫지는 못했지만 이미 검증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기사들이 짚단이 아니라 제대로 무장을 갖추고 마나를 썼다면 병사들의 절반은 이미 죽었을 테니까.
지셀이 클로드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이 정도면 검증은 된 거 같은데?”
“…….”
잠시 침묵을 지키던 클로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야! 막아! 막으라고! 못 가게 해!”
저 정도로 싸울 수 있다면 이제 우기는 방법밖에 없었다. 아무리 잘 싸워도 병사들을 뚫지 못한다면 전투력이 떨어졌다는 뜻이 되니까.
어차피 내기 내용은 싸우냐 못 싸우냐가 아니라, 병사들을 다 뚫고 음식을 먹느냐, 먹지 못하느냐다.
기사 10명을 포함해 40명이나 되는 병력이라면 당연히 200명의 병사들을 뚫을 수 있어야 했다.
클로드가 준비한 병사들은 이를 악물고 버티려 했다. 막아 내면 꽤 짭짤한 보상을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알포이와 마법사들, 맥스와 해결사들은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그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이미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안색이 창백해진 상태였다. 아무리 봐도 병사들이 뚫릴 것만 같았다.
결국 ‘신을 이긴 남자’ 알포이는 눈을 감고 두 손을 꼭 맞잡으며 외쳤다.
“여신님!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퍼억! 퍼억! 퍼억!
“으아아아아압!”
고든과 루카스의 힘은 발군이었다. 그들은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고 있었다.
어차피 자신들은 짚단으로 맞아도 버틸 만했다.
“야이! 시발! XXX! 느금X! XXXXXX!”
아스콘은 이미 맞을 대로 맞아 바닥에 쓰러진 지 오래였다. 그는 쓰러져서 머리를 감싸면서도 연신 상대측 부모 욕을 멈추지 않았다.
엘프들과 병사들도 대부분이 쓰러졌다. 배가 부르고 안 부르고를 떠나서, 본래도 이들만으로는 200의 정예병을 당해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발목을 잡고 시선을 끌어 준 덕분에 기사들은 상대 병사들의 절반 이상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퍼억! 퍼억! 퍼억!
그렇게 기사들은 병사들을 짚단으로 패며 계속 전진했다. 지셀을 따라다니며 수많은 실전을 겪은 그들에게 이 정도는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
나중에는 아예 마나로 몸을 감싸고 우악스럽게 돌파를 시도했다. 어차피 상대도 짚단으로 때리니 약간의 고통만 감수하면 된다.
퍼어어어억!
정신없이 몽둥이를 휘두르고 얻어맞으며 전진하던 루카스는 어느 순간 앞에 아무도 없는 걸 깨달았다.
“뚫었다.”
주변의 병사들은 모두 쓰러졌다. 아직 남은 자들이 있긴 하지만, 진열을 뚫은 순간 모의 전투는 끝이 났다.
루카스를 뒤따라온 기사들이 짚단을 집어던지며 외쳤다.
“이겼다!”
“으하하하하하!”
“저 음식은 우리 거다!”
기사들은 바로 음식을 향해 달려갔다. 그간의 고생을 위로하듯 다양한 고기와 과일, 거기에 술까지 놓여 있었다.
미친 듯이 음식을 먹는 기사들을 보며 클로드가 중얼거렸다.
“이, 이상하다? 분명 먹어 보니까 배가 고팠는데?”
하루만 먹어도 배가 고팠는데 어떻게 한 달이나 그것만 먹고 버텼을까? 심지어 그 뒤에도 저렇게 싸울 수 있다니.
당황하는 클로드를 보며 지셀이 속으로 낄낄댔다.
전생의 학자들과 마법사들은 부피를 줄여 휴대성을 높이고, 먹었을 때 체력이 오래 유지되는 것에만 중점을 뒀으니 약간 허기가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씹고 맛보는 작용도 없이 계속 같은 것만 먹으니 물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쟁터에서는 무척이나 훌륭한 영양식이었다.
사실 전쟁터에서는 포만감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영양분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이 중요했다.
전장에 직접 나선 적이 없어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클로드는 보통 사람의 기준으로만 판단해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설령 알았더라도 어차피 한 달 동안 그것만 먹고살 자신도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지셀이 멍해 있는 클로드를 툭 치며 말했다.
“어때? 승부는 끝난 거 같은데?”
클로드는 떨리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패배 선언을 기다리는 듯 그를 뻔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클로드는 이번에도 자조적인 웃음을 내뱉었다.
“이거 참, 어쩔 수가 없군요. 영주님이 또 성공할 줄이야. 도대체 이런 건 다 어디서 배워 온 겁니까?”
이유야 어쨌든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이…… ‘승부사’니까.
“좋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그래도 건 게 없으니 이번에는 마음이 참 상쾌했다.
“아, 아으, 어어아…….”
반면 알포이와 마법사들, 맥스와 해결사들은 발발 떨면서 이상한 소리만 내었다.
맥스와 해결사들은 30년을 걸었다. 마법사들은 이전 내기까지 포함해 60년 노예가 되었다. 노후고 나발이고 60년 안에 안 죽으면 다행이었다.
그들은 모두 입만 벌린 채 클로드만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클로드는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주먹을 살짝 알포이에게 내밀며 말했다.
“졌지만 잘 싸웠어. 그래도 정말 멋진 승부였어. 그렇지, 브로?”
“아, 어으…….”
미소 짓는 클로드를 보며 알포이도 손을 들어 올렸다. 예전처럼 마법이라도 쏘고 싶은데 자꾸 손도 떨리고 정신 집중이 안 된다.
“어, 으으으으…….”
저 미소 짓는 얼굴에 파이어볼이라도 한 방 먹여 줘야 하는데.
“개, 새…….”
털썩.
알포이는 말도 끝내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 * *
새로운 전투 식량은 효과가 좋은 것으로 판명이 났다.
보급이 끊기거나 늦어져도 버틸 수단이 생겼다는 건 전쟁 시에 엄청난 강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입이 마르도록 지셀을 칭송했다.
“대단합니다! 역시 영주님이십니다!”
“전쟁에서 작전 반경이 말도 못 하게 늘어날 것입니다.”
“위급 상황에서 비상식량으로 쓰기에도 충분합니다!”
지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영지 곳곳에 전투 식량 제조소를 설립한다. 충분한 수량이 생산되면 영지민들에게도 조금씩 나눠 주고 비상식으로 가지고 있으라 전하도록. 그리고 품질이 유지되는 보존 기한과 보관 방법을 연구하도록 해라. 아마 몇 년은 거뜬히 버티겠지만, 보존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일이 많긴 하지만 이것도 꼭 필요한 일이기에 가신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클로드도 박수를 치며 동의했다.
“역시 우리 영주님입니다. 정말 뛰어난 분이시라니까요!”
“……그래.”
클로드는 정말 사심 하나 없이 편해 보였다.
지셀은 그를 보며 잠시 고개를 젓고는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이제 내 수련을 좀 도와줘야겠다.”
뜬금없는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