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314)
314 – 낚시가 잘 되는군. (3)
314화 낚시가 잘 되는군. (3)
클로드의 말에 마법사는 살짝 놀라며 되물었다.
“30년이요?”
“네, 영지 전속 마법사가 되는데 그 정도는 있으셔야죠. 정말 긴 거 아니에요. 여기에 200년 넘는 사람도 있는…… 아니, 아무튼 다른 영지도 그 정도는 하지 않습니까? 에이, 이 정도도 안 하면 전속 아니지.”
“그, 그건 그렇지요.”
마법사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마법사의 실력과 연구 목적에 따라 그 기간은 천차만별이다.
고작 몇 년만 머물다가 가는 사람도 있고, 장기 계약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냥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하지만 클로드가 박력 있게 밀어붙이니 마법사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으음…….”
마법사는 살짝 고민했다. 자신의 나이가 지금은 중년이다. 30년이면 여기에 뼈를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일도 많지 않고’ 마나 집속진도 쓸 수 있으며 6서클 마법사의 가르침까지 받을 수 있다. 이런 좋은 조건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하나 걸리는 점이 있다면, 펜리스가 지금은 북부에서 잘 나간다지만 사실은 공작가와 척을 졌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마법사들이 소문에 어두운 편이긴 하지만, 떠돌이 마법사인 만큼 그런 소문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고민하는 듯한 마법사를 보고 클로드가 바네사를 불렀다.
“부르셨어요, 총관님?”
“여, 바네사. 여기 이분이 널 좀 보고 싶다고 하시네. 궁금한 게 많으신가 봐.”
마법사는 바네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이 여자가 6서클 마법사라고?’
젊어도 너무 젊었다. 왕국에 이렇게 젊은 6서클 마법사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거기에 꼴은 또 뭔가? 머리는 헝클어져서 언제 씻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서고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는 사람 같았다.
순진한 얼굴로 눈만 껌뻑거리는 그녀를 보며 마법사가 물었다.
“저, 정말 6서클의 경지에 오른 게 맞습니까?”
“네, 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부끄러운 얼굴로 몸을 배배 꼬는 바네사를 보며 마법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도무지 6서클 마법사다운 품격이 보이지 않는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 마법사는 이런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는다.
높은 경지에 오른 마법사일수록 그 오만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헛소문이었나? 나한테 사기를 치는 건가?’
6서클 마법을 한번 써 보라고 하고 싶지만 그럴 엄두는 나지 않는다.
마법사는 높은 확률로 정신병을 달고 산다. 지금은 순진하게 보이지만 어느 순간 돌변할지 몰랐다.
감히 자신을 시험하는 거냐고 갑자기 미쳐 날뛰면 곤란해진다.
그래서 그는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제가…… 요새 공부를 하다가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는데 조금만 가르침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제가 아는 선에서는 알려 드릴게요.”
상냥한 말에 마법사는 용기를 얻고 책을 하나 꺼냈다.
“전격의 저항에 관해 연구하고 있는데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말입니다.”
마법사가 책의 한 부분을 짚자 바네사가 슬쩍 보더니 손뼉을 쳤다.
“아, 이 부분이 막히셨구나! 그러니까 이게 어떤 원리냐면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마력끼리의 충돌인데, 그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저항이 생성되거든요. 그래서 마력이 충돌할 때 전격의 흐름을 제지하는데 이 때문에 열에너지의 손실이…….”
“오, 오오오!”
바네사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마법사는 희열에 찬 표정을 지었다.
어찌나 설명이 자세한지 막히던 부분이 시원하게 뚫리고 있었다.
‘지, 진짜다! 진짜 6서클 마법사야! 6서클이라는 게 거짓말이라도 5서클은 된다!’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설명을 잘하는 마법사는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스승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마치 마법을 산산조각 해체해서 다시 조립하는 설명서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이렇게 쉽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다른 마법사들하고는 전혀 다르다!’
아무리 6서클 마법사가 있다 해도 자신에게 가르침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마법사는 대부분 자신의 깨달음을 전수하는 걸 아까워하기 때문이다. 제자로 들어가 실컷 고생하고 말을 잘 들어야 겨우 하나 던져 줄까 말까다.
거기에 마법사들이 얻는 깨달음은 제각각이다. 지식의 기반 위에 뜬구름 잡는 소리가 섞일 때도 많았다.
일부러 고생시키려고 꼬아서 말해 주는 놈들도 있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쉽게 알려 주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네사의 설명이 한 시간을 넘기자 클로드가 졸기 시작했고 마법사는 흥분을 금치 못했다.
“그렇군요! 이제 이해했습니다! 그게 그런 원리였군요!”
“네, 네. 그다음에는 마력의 움직임이 바뀌어야 하는데…….”
마법사 두 사람은 신이 나서 대화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옆에서 졸고 있는 클로드만 제외하면 마치 토론장 같은 분위기였다.
어느 정도 설명이 끝나자 마법사는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드디어 이해됐습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또 궁금한 거 있으세요?”
바네사의 말에 마법사는 신이 나서 또 품에서 책을 꺼냈다.
그걸 펼쳐서 물어보려고 할 때, 잠에서 깨 침을 닦은 클로드가 마법사의 팔을 붙잡았다.
“쓰읍, 이분이 상도덕도 없이…… 아니,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클로드의 말에 마법사는 나라가 멸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식에 갈증이 날 대로 난 상태였다.
“왜, 왜 그러십니까? 이거, 이거 하나만 더 물어보면…….”
“어허, 안 돼요. 지금 다른 분들도 기다리고 계시는데 언제까지 우리 마법사님을 붙잡아 두시려고요? 이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계약! 계약하겠습니다!”
“오, 진짜요?”
“계약하면 정말 저분에게 계속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거 맞죠?”
“아휴, 그럼요. 매일 같이 일하는데……. 아니, 같이 연구하는데, 하면서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면 되죠. 아마 마법은 질리도록 쓸 수 있을 겁니다.”
클로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진짜 남들 평생 쓸 마법을 이 영지에서는 1년이면 다 쓴다.
마법사는 냉큼 계약서에 인장을 찍었다.
어차피 자신의 재능으로는 한계를 넘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이곳에서 가르침을 받고 좋은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휴, 그럼요. 자자, 사용인들 따라가시면 연구소에 방을 배정해 줄 겁니다.”
마법사가 물러가자 클로드가 의자에 거만하게 기대앉으며 중얼거렸다.
“아, 피곤해라. 그냥 빨리빨리 계약할 것이지. 왜 자꾸 비싸게 굴어.”
“…….”
바네사는 그런 클로드의 모습을 보고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 때문에 영지에 마법사 노예가 늘어난 것만 같았다.
어쨌든 영지에 찾아온 마법사들은 전부 클로드에게 설득당해 계약을 진행했다. 바네사의 지식을 엿본 마법사들이 오히려 더 애원했기에 계약은 어렵지 않았다.
그 수가 무려 20명이나 되었다. 구하기 힘든 마법사를 단번에 영지 소속으로 옭아맨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물론 마법사들도 만족스러워했다.
“돈이 많은 영지라고는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건물도 드워프들이 함께 지었다지? 기능도 기능이지만 미적 감각도 아주 뛰어나.”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길래 마나 집속진을 이렇게 전부 제공해 주는 걸까?”
평생 마나 집속진은 구경도 못 해 본 마법사들이다. 애초에 그 정도 능력이 되면 소속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매일 밤 바네사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개인 수련에 전념했다. 온종일 가르침을 받고 싶은데 바네사가 이상할 정도로 바빴다.
“흠흠, 바네사 님은 6서클이시니 바쁘실 수밖에 없지.”
“낮에는 자주 자리를 비우시던데 뭘 하고 계시는 걸까?”
“아마 새로 경지를 돌파하기 위해서 개인 연구에 전념하고 계실 걸세.”
그들은 그렇게 바네사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보냈다. 그녀에게 배운 게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뒤늦게 합류를 했으니 기존 마법사들과는 아직 사이가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끼리 자주 모여 담소를 나눴다.
“참 편하고 좋기는 한데 이거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
“대우가 너무 좋아서 마음이 불편해. 영지 일이라도 조금 도와줄 게 없나?”
“그나저나 적염의 마탑 마법사들이 있던데 왜 우리를 볼 때마다 웃는지 모르겠어.”
비웃음이면 화가 났겠지만 그런 건 또 아니었다. 뭔가 안쓰러워하기도 하고 부드러워 보이기도 하는 미소였다.
그렇게 그들이 즐거움 반, 미안함 반으로 자신들의 수련에만 전념하고 있을 때, 클로드가 보낸 사람이 찾아왔다.
“영지 일을 좀 도와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어험, 그래. 슬슬 그럴 때가 되긴 했지. 안내하게나.”
영지의 고위 인사에게는 겸손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가차 없이 오만한 마법사들이다.
그들은 건방진 표정을 지으며 안내자를 따라 연구소 앞 공터로 이동했다.
잠시 기다리자 여러 대의 마차가 왔고 마부가 소리쳤다.
“화염 마법! 화염 마법 전공이신 분!”
몇몇 마법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내가 화염 학파 출신이다만 무슨 일인가?”
“자자, 여기 타세요!”
“뭐?”
“어서 타세요! 시간 없습니다!”
마법사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일단 마차에 올라탔다.
그 뒤에 있는 마차들도 시끌벅적했다.
“바람 마법 잘하시는 분 여기 타세요! 도로 평탄화 작업도 같이 합니다!”
“이쪽은 인부들이 힘 좀 써야 하니까 보조 마법 위주로 타십쇼!”
“큰 돌덩이들 치워야 합니다! 확실하게 파괴하실 수 있으신 분!”
“…….”
마법사들은 침묵했다. 이건 마치 인력소에서 급히 노동자를 구하는 모습 같았다.
“이, 이놈들이 감히 마법사에게 지금…….”
마법사들이 화를 내기도 전에, 연구소에서 알포이와 기존 마법사들이 우르르 나왔다.
“야야, 빨리 타자!”
알포이의 말에 마법사들이 마차에 올라탔다. 그들은 멀뚱히 서 있는 마법사들을 향해 말했다.
“뭐 해요? 빨리 타요. 일하러 가야지.”
“늦으면 나중에 더 힘들어져요.”
“이분들 아직 정신 못 차리셨네. 상황 파악이 안 되시나 봐.”
새로 합류한 마법사들은 떠듬거리며 물었다.
“그, 무, 무슨 일을 하길래 이렇게 천박하게들 움직인단 말이오?”
알포이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무슨 일이긴, 주로 공사가 제일 많지. 돌덩이도 치우고, 정화조도 비워야 하고, 땅도 엎어야 하고, 건물도 지어야 하고, 짐도 옮겨야 하고. 뭐 아무튼 마법으로 할 게 많아.”
“마, 마법사가 그런 일을 한다는 말이오?”
“그럼 누가 해? 마법이 제일 빠른데.”
“우, 우리는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소. 이, 이런 건 마법사의 신분으로 하는 일이 아니오. 창피해서 도무지 할 수가 없소.”
“지금 ‘신을 이긴 남자’인 나도 하는데 너희가 빠지겠다는 거야? 아, 빨리 타라고! 공사장에서는 내가 조장이니까 그렇게 알고! 너희들 언제 투입되나 내가 기다렸다고!”
알포이의 엄포에 마법사들은 눈을 질끈 감고 일단은 참았다. 쪽수에서 밀리니 기존 마법사들과 싸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버티려고 했는데 허겁지겁 바네사가 달려오더니 마차 하나에 올라탔다.
“뭐 하세요? 다들 빨리 타셔야죠. 안 그러면 공사가 늦어져요.”
“…….”
왜 그녀가 낮에 항상 자리에 없는지 이제 알았다. 이 미친 영지는 6서클 마법사도 공사에 동원하고 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대단하다. 낮에는 공사 일을 하고 밤에는 개인 연구에 수업까지 하고 있었다니.
이런 분이 타라고 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서클이 깡패다. 이들에게 제일 높으신 분은 바네사였다.
덜컹, 덜컹!
마법사들을 태운 마차가 영지 곳곳으로 퍼졌다. 알포이는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마법사 한 명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처음에는 다 그래. 내가 이러려고 마법사 했나 자괴감도 들고 그러지. 그런데 익숙해지면 괜찮아. 내가 나중에 도박도 알려 줄게.”
“……알겠소.”
“어허, 표정 펴고. 네가 특별한 거 같아? 이 동네에서는 마법사 별거 아니야. 가끔 여신도 오고 그러거든.”
“…….”
며칠간 앙탈을 부리는 마법사도 있긴 했지만 알포이와 친구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도망가려던 마법사도 알포이의 추격에 잡혀 왔다.
“이, 이게 무슨…… 당신들도 3서클이라 하지 않았소?”
제압당한 마법사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알포이가 거만하게 대답했다.
“공사를 하면 실력이 는다.”
“……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우리 실력을 보고 그래? 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늘어난다고. 그리고 모르는 거 있으면 바네사한테 물어보면 되거든. 그러니까 수련한다고 생각해. 한 번만 더 도망가면 다 죽는 거야. 알겠지?”
마법사들이 늘어날수록 일이 편해진다. 알포이는 절대 이들을 곱게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되니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계약도 계약이지만 바네사의 가르침과 마나 집속진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경지 상승은 모든 마법사의 꿈이었으니까.
물론 기존 마법사들은 그딴 꿈은 모두 버린 지 오래였다. 그들은 그냥 오늘 하루 잘 먹고 잘사는 게 목표다.
클로드는 6서클 마법사의 가르침과 마나 집속진 제공이라는 혜택을 계속 홍보했다.
이제는 북부를 넘어 다른 지역까지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많지는 않지만 소문을 들은 떠돌이 마법사들이 하나둘 꾸준히 찾아왔고 그들은 모두 펜리스 영지에 잡혀 버리고 말았다.
“으음, 낚시가 잘 되는군. 마법사들이 늘어나니 공사가 무척 빨라지고 있어.”
그냥 낚싯대를 던질 때마다 걸려든다. 그 정도로 바네사와 마나 집속진은 엄청난 미끼였다.
물론 마법사들이 늘어날수록 새로운 문제도 같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룬스톤이 거의 다 떨어져 갑니다. 이제 캐올 것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영지의 상황을 파악한 클로드가 지셀을 찾아왔다.
그간 영지 발전을 위해 룬스톤을 어마어마하게 사용했다. 마탑에 파는 양도 있으니 소모되는 속도가 더 빠를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아껴 쓰려고 마탑에 파는 것도 줄였지만 결국 바닥을 보인 것이다.
보고를 받은 지셀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떨어질 때가 되긴 했지. 그래도 오래 쓰긴 했네. 아주 알차게 썼어.”
“어떻게 하죠? 룬스톤이 다 떨어지면 많은 부분이 늦어질 겁니다. 마나 집속진을 유지하는 데도 문제가 생길 거고 마탑과의 관계도 다시 고려해야 하고요.”
“뭘 어떻게 해. 답이야 뻔하지.”
지셀이 씨익 웃었다. 룬스톤이 모자란다? 그러면 다시 구해 오면 된다.
그곳에 깔린 게 룬스톤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