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319)
319 – 긴장감을 줘야 해. (3)
319화 긴장감을 줘야 해. (3)
벨린다와 길리언, 기사들도 지셀을 따라 움직였다.
병사들과 엘프들이 뒤따라오려 하자 지셀이 손을 저었다.
“병사들은 뒤에서 대기해라. 오우거와 맞붙어서 좋을 건 없다. 바네사는 내가 얘기한 대로 준비하고 기사들은 대형을 갖춰라.”
오우거 같은 강력한 몬스터는 소수정예로 상대하는 게 낫다. 어설프게 공격했다가는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평범한 지휘관이라면 병사들을 방패 삼아 갈아 넣었을 것이다. 기사들을 잃는 것보다는 병사들을 잃는 게 나으니까.
하지만 병사들을 희생시켜 힘을 빼는 건 지셀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미 마법사들과 함께 준비하라고 바네사에게 말해 둔 것도 있었다.
벨린다와 길리언에게도 살짝 언질을 주긴 했었다. 카오르만 빼고.
“크르르르…….”
오우거들도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았다. 인간들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우거라는 몬스터는 영역을 침범하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오우거들은 나무 몽둥이를 강하게 쥐고 자세를 낮췄다.
똑같이 몸을 숙인 지셀이 말을 이었다.
“바네사, 시작해라.”
“쿠오오오오!”
동시에 오우거들이 뛰어올랐다. 강력한 힘을 자랑하듯 도약 높이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몬스터들이 허공에 떠오르자마자 지셀이 외쳤다.
“눈을 감아라!”
지셀의 말이라면 그 즉시 반응하도록 훈련된 게 펜리스의 기사들이다. 눈을 감은 그들의 뒤에서 바네사의 음성이 울렸다.
“플래시 밤.”
번쩍!
오우거들의 눈앞에서 엄청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카아아악!”
뒤를 이어 다른 마법사들도 바네사와 같은 마법을 시전했다.
번쩍! 번쩍! 번쩍!
수십 번의 섬광이 오우거들의 시야를 가린다. 순간적인 빛에 눈이 멀어 버린 오우거들은 제대로 착지하지 못하고 바닥에 뒹굴었다.
직접적으로 시력을 멀게 하는 더 높은 서클의 마법도 있었지만 굳이 플래시 밤을 쓴 이유가 있었다. 오우거가 태생적으로 마법 저항이 강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직접 마법을 걸면 효과는 오래 가겠지만 혹시나 마법에 걸리지 않는 놈도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강한 빛을 보게 해 잠깐이나마 확실히 시야를 뺏기로 한 것이다.
“크아아아아!”
운동 신경이 뛰어난 오우거인지라 바닥에 뒹굴다가도 금세 일어났지만, 아직은 주변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가장 선두로 달리던 오우거는 본능이 앞서는 몬스터답게 바로 거대한 몽둥이를 휘둘렀다.
덩치도 큰 데다 몽둥이 크기도 무지막지하니 공격이 미치는 범위도 그만큼 넓었다. 그 탓에 바로 옆에서 일어나던 오우거가 몽둥이에 얻어맞고 말았다.
콰아앙!
“쿠에에엑?”
얻어맞은 오우거는 깜짝 놀랐다.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누가 공격했는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우거는 제 몸을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공격이 온 방향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몽둥이를 휘두른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자신이 맞은 곳을 향해 휘두르면 된다.
이건 몬스터들의 공통된 습성이기도 했다. 보통 힘이 센 몬스터들일수록 이런 습성이 강하기도 했다.
콰아아앙!
“크아아악!”
제대로 안 보이는 상태에서 서로 엉킨 오우거들은 누가 누구를 공격하는지도 모른 채 서로를 향해 마구 몽둥이를 휘둘렀다.
콰앙! 콰앙! 콰앙!
“쿠아아아악!”
오우거의 공격은 아름드리나무도 한 번에 박살 내곤 한다. 아무리 몸이 단단한 오우거라도 그런 강력한 공격까지 무시하지는 못했다. 놈들은 한 대 맞을 때마다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질렀다.
적의 공격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 오우거들은 서로를 향해 더 강하게 몽둥이를 휘두르며 날뛰었다.
콰앙! 콰앙! 콰앙!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고 팔이 부러진 놈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고통이 커질수록 그것들의 분노는 더 커져 갔다.
“크아아악!”
비명을 지르던 오우거들이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섬광의 효과가 사라지고 시력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눈이 먼 건 잠깐이었지만 그간 쌓인 타격은 적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오우거들은 서로를 향해 마구 울부짖었다.
“카아아악!”
“쿠오오오!”
서로를 탓하는 듯한 희극적인 모양새였다. 한동안 꽥꽥대던 오우거들은 자신들끼리의 다툼을 멈추고 다시 몸을 돌렸다.
“쿠욱?”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로, 한 인간이 대검을 든 채 높이 뛰어올랐다.
3단계의 코어를 활성화해 단숨에 도약한 지셀의 검은 가장 앞에 있던 오우거의 머리에 박혔다.
콰직!
“크아악!”
검이 머리에 박혔는데도 오우거는 바로 죽지 않았다. 마수의 숲에 사는 놈답게 엄청나게 단단했던 것이다.
부우웅!
오우거는 검이 머리에 박히자마자 몽둥이를 휘둘렀다. 지셀은 잽싸게 물러나며 외쳤다.
“쳐라!”
기사들도 단숨에 뛰쳐나갔다. 이들은 대(對)몬스터 방진도 훈련받았다. 뛰어난 헌터이기도 한 지셀은 틈이 날 때마다 기사들에게 몬스터를 상대하는 법을 훈련시켰다.
기사들은 급하게 조를 짜, 대형 방패를 든 자를 선두에 세우고 오우거들에게 달려갔다.
“크아아아아!”
이미 자신들끼리의 난타전으로 여기저기 다친 오우거다. 하지만 가장 앞에 선 기사를 향해 휘두르는 공격은 여전히 강력했다.
“실드.”
지잉―!
마법사들이 외치자 선두에 선 기사들에게 마력의 보호막이 덧씌워졌다. 방패를 든 기사들은 바로 오우거의 공격을 향해 뛰어들었다.
콰아아앙!
“우아아악!”
방패를 든 기사는 단 한 번의 공격에 허무할 정도로 가볍게 뒤로 날아가 버렸다. 과연 엄청난 힘이었다.
비록 버티진 못했지만 공격을 한 번이라도 막아 낸 것으로 충분했다. 그 덕분에 잠깐의 틈이 생겼기 때문이다.
“파이어볼.”
파아아악!
수십 개의 파이어볼이 오우거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퍼엉! 퍼엉! 퍼엉!
“크아아아아!”
오우거들은 그걸 맞고도 잠깐 주춤거렸을 뿐이지만 마법사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공격도 다시 한번 시야를 뺏기 위한 공격이었다.
푸욱! 푸욱! 푸욱!
자세가 흐트러진 오우거들의 몸에 수십 개의 검이 박혔다. 아무리 오우거의 몸이 단단해도 마나를 폭발시킨 기사들의 공격을 쉽게 막을 수는 없었다.
기사들 또한 실패하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온 힘을 다해 찌르고 베었다.
“카아아아악!”
오우거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울렸다. 기사들은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빨리 붙어!”
“힘줄을 끊어라!”
“무기를 휘두르지 못하게 해!”
기사들이 오우거의 팔과 다리에 달라붙었다. 그들은 오우거의 몸에 어떻게든 매달려 사정없이 검을 찔러 넣었다.
이미 팔이 부러지거나 늑골이 나간 오우거들은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비교적 멀쩡한 오우거들은 지셀과 벨린다, 길리언 등의 실력자들이 도맡았다.
파아앗!
벨린다의 몸에서 뻗어 나간 단검들은 오우거의 눈과 귀, 입 등 약한 곳을 꿰뚫었다. 길리언은 기사들이 매달려 있는 오우거의 목을 도끼로 계속 찍었다.
싸우는 것만 보면 누가 오우거인지 모를 정도로 과격한 방식이었다.
콰앙! 콰앙! 콰앙!
“크아아악!”
오우거들은 버티지 못했다. 시작부터 서로 공격하며 부상을 입어 전투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기사들이 달라붙으니 그들을 떨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 난장판 속에서 ‘오우거 슬레이어’ 카오르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지셀은 머리가 아직 덜 깨진 오우거의 머리를 한 번 더 내리쳤다.
퍼어억!
그것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곳곳에서 오우거가 쓰러지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쿠웅!
수십 마리의 오우거들은 별다른 반항도 못 하고 쓰러졌다. 숲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허무한 죽음이었다.
쓰러진 오우거들은 다들 어찌나 심하게 공격을 당했는지 몸이 걸레짝이 된 상태였다.
믿을 수 없는 전과에 병사들은 입만 벌리고 있었다. 물 흐르는 듯이 진행된 연계 공격이 마치 미리 알고 준비해 뒀던 것만 같았다.
카오르도 그걸 느꼈는지 떠듬거리며 지셀에게 물었다.
“뭐, 뭐야? 이번에도 이만큼 나올 줄 알고 있었습니까?”
생각해 보니 오우거가 나타났는데도 지셀은 예전처럼 급하게 지휘하지 않았다. 그저 멀뚱멀뚱 구경만 할 뿐이었다.
벨린다와 길리언도 전과 다르게 제법 침착했다.
지셀이 대검을 땅에 박으며 말했다.
“그래, 오우거가 나타날 걸 알고 있었다. 마법사들한테는 미리 말해서 어떻게 싸울지 준비를 시켰지.”
“왜 나한테는 말 안 해 주고!”
“긴장감 좀 되살리라고. 다들 방심하고 있었으니까.”
그 말에 카오르와 병사들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초입부터 너무 쉽게 와서 긴장감이 많이 풀어진 건 사실이었다.
지셀은 그대로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구경은 잘들 했나?”
“…….”
병사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도 자신들이 한 건 없었다. 그저 웃고 떠들며 마수의 숲을 우습게 봤었다.
만약 영주가 미리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저 많은 오우거들에게 기습을 당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지셀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가 목표로 하는 곳에 있는 몬스터들은 지금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험하고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 이번에는 미리 준비했기에 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다음에는 준비한다 해도 이길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없다. 모두 절대로 긴장을 늦추지 마라.”
그 말에 병사들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허리를 폈다. 조금씩 몸에 힘이 들어갔다.
영주의 말이 맞았다. 만약에 오우거가 나올 걸 예상하지 못하고 준비하지 않았다면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저 정도 숫자의 오우거가 갑자기 기습을 해서 난전을 유도했으면 끔찍한 상황이 됐을 게 뻔했다.
‘그런데…… 영주님은 어떻게 아신 거지?’
‘전에 왔을 때 우연히 알게 된 건가?’
‘역시 우리 영주님은 모르는 게 없구나.’
이런 일이 반복되니 그들은 이제 지셀에게 경외감을 넘어 어떠한 신앙 비슷한 것까지 느끼게 되었다.
신기한 지식이 있는 것뿐만이 아니다. 싸움 실력은 또 어떤가? 어떤 적이 나와도 무찌를 것만 같아 절로 믿음이 생겼다.
그렇다고 이제 지셀만 믿고 편히 지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병사들은 스스로의 마음을 가다듬었다.
‘실수 한 번이면 죽을 수도 있어.’
‘영주님이라고 전부 구해 줄 수는 없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움직이자.’
갑자기 나타난 오우거 덕분에 사람들은 비로소 긴장감을 느끼게 되었다. 병사들뿐만이 아니라 마법사나 엘프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엘프들의 긴장감은 더욱더 팽팽해졌다. 자연의 기운에 민감한 이들은 마수의 숲이 이상하다는 걸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확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상해……. 숲인데 숲 같지 않아.’
‘몬스터들이 전부 비상식적으로 크다. 아무리 기운이 강한 곳이라도 저럴 수는 없어.’
‘세상에 이런 곳이 존재했던가?’
원래 이렇게 조용하고 기운이 넘치는 숲에서 엘프들은 무척이나 편하고 안정적인 기분이 들어야 한다.
몬스터의 유무와 상관없이 숲 자체가 품은 기운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보통 숲과 달리 무척이나 이질적이고 불길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숲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그 이질적인 기운은 강해져 갔다.
마치 이 세상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그렇기에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엘프들은 너무나도 불편하고 어긋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아스콘은 계속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X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여기는 X 같은 곳이야…….”
아무도 그의 말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스콘은 영지에서도 자주 저런 욕을 지껄이기 때문이다. 아니, ‘자주’ 수준이 아니라 그냥 일상이었다.
하지만 루미나는 달랐다. 지셀은 그녀의 말을 유심히 들어 주었다.
“영주님, 정말 계속 들어가실 생각인가요?”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게…… 이상한 점이 있어서요.”
“뭔데?”
“이 숲에 흐르는 기운이 이상해요. 무척이나 불길하고…… 꺼림칙한…….”
그 말에 지셀은 피식 웃었다. 마수의 숲은 원래 불길한 곳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들어가는 족족 사람이 죽어 나가니 소문이 좋을 수가 없었다.
“여기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 몬스터들도 괴상한 놈들이 많고 말이야. 하지만 그만큼 얻기 힘든 자원들도 있거든. 그것들을 얻으러 가야 해.”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곳은, 이곳은…….”
“이곳은?”
“달라요, 이곳에 있는 생명들은 정상이 아니에요. 뭔가…… 뭔가 인위적이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루미나는 자신도 설명을 제대로 못 하겠는지 횡설수설했다.
그녀는 교감 능력을 각성하고 난 뒤부터는 자연의 소리를 약간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펜리스 영지의 엘프 중 자연의 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사람도 루미나였다.
“저한테 속삭이고 있어요.”
그녀의 말에 지셀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뭐? 누가? 뭘 속삭여?”
“이 숲이요.”
“숲이? 말을 건다고?”
“네, 저한테 계속 말을 걸고 있어요.”
루미나는 이곳에 들어온 뒤부터 묘한 속삭임을 들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작업하는 소리가 워낙 시끄러웠고, 숲의 기운도 약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무를 베고 숲을 없앨 때마다 그 기운은 더 약해져 갔다. 사람들이 짓밟은 곳은 본디 자연의 기운이 희미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그 기운은 강해지고 속삭임은 점점 더 명확해져 갔다.
이 숲은 그녀에게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었다.
자신과 하나가 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