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346)
346 – 미리 준비를 해야겠군. (2)
346화 미리 준비를 해야겠군. (2)
진홍의 마탑은 공작가의 숨겨진 칼이다. 어차피 왕국을 엎으려는 그들이 마탑의 불문율 따위를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전생에서도 그들은 말을 안 듣는 마탑은 전부 쓸어버렸다. 그리고 그 일의 선두에 섰던 게 바로 진홍의 마탑이었다.
진홍의 마탑주 델무드는 공작가에서 작정하고 키워서 탑주로 만든 인물이니까.
그는 대결을 빙자해 전대 탑주와 탑주의 제자들을 죽이고 힘으로 마탑을 차지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정당한 대결이라 제지할 근거가 없기도 했지만, 제지할 사람도 없었다. 마탑에서 마법사의 위계는 힘으로 결정되는 법이니까.
반대로 말하면, 그놈만 죽이면 진홍의 마탑은 지리멸렬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던 지셀은 클로드에게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적염의 마탑에 제공하는 룬스톤 값을 절반으로 내려 줘라. 그걸로 세력을 더 빠르게 확장하라고 해.”
그 말에 클로드와 가신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네? 아니 아무리 이번에 룬스톤을 엄청 많이 얻었다지만, 마탑에 그렇게 파격적으로 퍼준다고요?”
“그래. 계속은 아니고, 당분간만 그렇게 준다고 해. 마탑에서도 좋아할 거야.”
클로드가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지셀을 바라보았다. 영주는 쏠 때는 확실히 쏘지만 아무 이유 없이 남한테 그냥 퍼주는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볼 때는 남한테 뭔가를 뺏어올 때가 더 많은 사람이다. 지금 그들이 있는 영지마저도 남한테서 뺏은 것 아닌가.
“도대체 왜 그렇게 하시는 건데요?”
“그냥…… 마탑 지부도 그렇고 마법사들도 많이 보내 줬으니까……. 선물이랄까?”
“…….”
대전에 있는 가신 중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일단 영주의 말투부터가 무척 어색했다. 주기 싫은데 억지로 주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가신들의 짐작대로 지셀은 일부러 적염의 마탑을 밀어주려는 것이었다.
‘진홍의 마탑 놈들, 지금쯤 머리가 아프겠지.’
진홍의 마탑에 내려진 임무는 적염의 마탑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걸 위해 공작가와 해럴드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지원받았다.
그들은 그 돈으로 룬스톤을 독점했다. 적염의 마탑을 말려 죽이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지셀이 나타난 뒤 그 계획은 지지부진하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적염의 마탑이 지셀에게 얻은 룬스톤으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적염의 마탑을 더 키워서, 그놈들이 억지로 시비를 걸게 해야 해.’
지셀이 갑자기 진홍의 마탑을 공격하기는 어려웠다. 치려면 칠 수야 있지만, 그랬다가는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정치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마탑의 마법사들 수준이 높고 탑주는 무려 7서클의 초인이다. 정면으로 붙었다가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볼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그놈을 끌어내서 내가 직접 목을 쳐야 한다.’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 죽여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그놈들이 움직이도록 흔들어야 했다.
적염의 마탑이 갑자기 세가 더 강해지면 분명 지금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일 터.
지셀은 바로 그 순간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델무드를 상대할 생각을 하다 보니, 또 다른 7서클 마법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공작가의 7서클 마법사, 일로이스.’
그는 델무드가 7서클에 이르기 전까지, 왕국에서 유일한 7서클 마법사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전생에 공작가와 싸웠던 지셀은 알고 있다. 그가 7서클 마스터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그놈을 상대하려면 미리 준비를 해야겠군.’
일로이스는 상대하기 무척이나 까다로운 마법사였다. 단순히 파괴 마법으로 전장을 유린하는 다른 마법사들과는 달랐다.
마법사는 높은 파괴력 때문만이 아니라, 전장의 환경을 단번에 바꿀 수 있기에 위험한 존재다. 특히 일로이스는 그 부분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마법사였다.
휘하 마법사들은 바네사가 막을 수 있겠지만 일로이스만큼은 무리다. 그의 마법을 봉쇄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움직여야겠어.’
생각을 정리한 지셀이 가신들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행정 쪽은 클로드를 중심으로 완전히 체계가 잡혔으나, 군사 쪽은 자신이 다 쥐고 있으니 권한이나 업무가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우리 군사가 예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으니 체계를 새롭게 잡아야겠다. 우선 길리언을 영지의 무관장으로 임명한다. 각 지역의 수비군과 병력들의 편제를 맡기겠다.”
“오오!”
사람들은 올 게 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관장은 영지의 병력을 총괄하는 자리였다. 사실 지금도 길리언에게는 그만한 권한이 있었지만, 정식으로 임명되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최선을 다해 소임을 맡겠습니다.”
길리언이 담담하게 무릎을 꿇으며 직책을 받았다.
지금 병사들의 훈련과 교육, 운영은 지셀과 그가 함께 맡고 있었다.
영지의 일이 많아진 만큼 앞으로 지셀은 더 바빠질 것이다. 기사들은 지셀이 봐줘야 하니 빠질 수 없었다.
그러니 병사들만큼은 길리언이 도맡아서 훈련하는 게 나았다.
지셀은 아스콘과 루미나를 힐긋 보더니 말했다.
“궁기병의 총지휘관은 루미나가 맡는다. 새로 충원되는 병사들의 훈련과 말들의 관리도 함께 맡도록.”
“악!”
아스콘이 엘프들의 대표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궁기병들을 이끄는 건 루미나였다. 그래서 이번에 제대로 분리를 한 것이다.
아스콘은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는 어차피 높은 자리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엘프 대표도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고 있는데.
“치안대의 총지휘는 맥스가 맡는다.”
“넵!”
도박하다가 잡힌 해결사 맥스는 그 실력을 인정받아 자리 하나를 받을 수 있었다.
지셀은 다른 지휘관들 또한 새로운 직책에 올려 주었다. 마법사들은 이미 바네사를 중심으로 새로 편제가 짜여 있으니 따로 지정할 필요는 없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부분이라 임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러자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던 카오르가 발광했다.
“나는! 나는 뭔데! 기사단장 줘!”
씩씩거리는 카오르를 보며 지셀은 턱을 쓰다듬었다.
‘이놈은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은데.’
공작가에서도 잡부 취급을 받아 버린 카오르다. 지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너는 노동돌격대 지휘관이지.”
“그건 너무 없어 보이는데요.”
카오르가 팍 인상을 썼다. 길리언은 영지의 무관장이 됐는데 자신이 받은 자리는 너무 허접해 보였다.
그건 인정할 수 없다. 길리언이 자신보다 조금 더 빠르게 영주를 따랐다고 해도 이건 불공평하다.
다시 날뛰려던 참에 지셀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림자 산맥의 가죽 포식자이자 펜리스의 가죽 대사지.”
카오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뭔가 이름이 긴 게 그럴듯하게 들리긴 했는데 딱히 직함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아이언클리프의 가죽왕은 자신이다. 영지에서도 뭔가 멋진 걸 받고 싶었다.
삐쭉대는 카오르를 보고 지셀이 피식 웃더니 다시 말했다.
“카오르에게는 펜리스 돌격대를 맡긴다.”
“돌격대?”
“헌터들과 영지의 정예병을 따로 추려 주겠다. 용병들 중에서도 실력이 있는 자를 뽑아 주지. 전 켈베로스 용병단 출신 기사들도 돌격대에 배속된다. 물론 기사들의 훈련은 당분간 내가 계속 맡겠지만.”
카오르가 슬그머니 물었다.
“그건 뭐 하는 건데요?”
“전시에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기겠다. 그렇기에 실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어야 하지. 대신 나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지시받지 않는 독립 부대다.”
“오오!”
독립 부대라는 말에 카오르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작은 영지에는 드물지만 대영지에는 특수 부대가 하나둘 정도는 있다. 목적과 임무에 따라 이름도, 구성도 다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지셀이 말하는 돌격대는 그런 특수 부대가 아니었다.
돌격대는 용병단에나 어울릴 법한 부대다. 보통 영지군에서는 기사들이 첫 돌격을 맡기 때문이다.
펜리스도 마찬가지다. 회전에서도 기사들이 돌격을 맡을 테니, ‘돌격대’는 필요 없다. 노동돌격대도 이름만 돌격대지 실제로는 그냥 죄수 부대다.
그렇기에 펜리스 돌격대도 ‘돌격’이 아니라 전시에 가장 위험하고 거칠고 더러운 일을 맡는 특공 부대가 될 터였다.
영주의 명령만 듣는다는 것만 봐도 확실했다.
그걸 알면서도 카오르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몸에게 어울리는 직함이군.”
사나이다운 일이다. 거기에 길리언의 명령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사실 지셀은 노동돌격대를 확장하면서 대충 이름만 바꾼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특수 부대는 앞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 아이언클리프로 돌아가면 적당한 헌터를 뽑아서 그곳 관리를 맡기고 돌아와. 어차피 튜리안 왕국과의 거래도 안정됐으니 요새 사령관인 그랜트가 뒤를 봐줄 거야.”
“알겠습니다!”
카오르가 신나서 대답했다. 아이언클리프는 자유로워서 좋지만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가끔은 지겨울 때도 있었다.
영지의 돌격대장도 됐으니 돌아와서 애들 굴리며 자랑이나 하고 싶었다.
암살대는 벨린다가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각 부대는 클로드가 알아서 지원해 줘.”
“알겠습니다.”
편제 개편과 임명을 마치고 지셀은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적염의 마탑 일은 그렇게 진행하고, 일단은 용병단을 영입하고 활용하는 사업에 중점을 두고 진행하도록.”
지셀의 변덕 같은 명령 때문에 적염의 마탑에 팔 룬스톤들이 따로 준비되었다. 다른 지역의 용병단들을 영입하기 위해서도 사람들이 움직였다.
무력이 필요한 곳은 이제 도미닉이 알아서 용병들을 배치할 것이다. 카오르는 다시 헌터들과 함께 그림자 산맥으로 떠났고 길리언은 영지 병력의 훈련을 맡았다.
행정관들은 영지 개발과 여러 사업에 전력을 기울였다. 새로 들어온 자원들을 이용해 영지가 더 빠르게 발전하도록 이끌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 영지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어때? 그간 지낼 만했어?”
“넵!”
지셀은 오랜만에 아렐을 연무장으로 불렀다.
검술은 시간이 날 때마다 알려 줬지만, 일이 너무 바빠 지셀이 매번 아렐을 봐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렐은 대부분 시간을 병사들과 훈련하면서 지냈다. 물론 길리언이 가끔 따로 봐주기는 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이제 마나 연공법을 알려 주겠다.”
그 말에 아렐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아직 마나 연공법을 모른다. 빨리 배우고 싶긴 했지만, 몸을 단련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바로 배우지 못했다.
과연 아렐은 그간 잘 먹으면서 혹독한 훈련을 해서인지 상당히 몸이 좋아져 있었다.
“앉아라. 대충 얘기를 들어서 알고는 있겠지만 잘 버텨야 한다. 잘못하면 죽는다.”
아렐은 이를 꽉 깨물며 자리에 앉았다.
그간 기사들에게 마나 연공법을 강제로 익히는 게 얼마나 힘든지 들어 왔다. 그래서 어느 정도 각오는 했다.
그런데 지셀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기사들이 쓰는 것보다 더 위험한 힘이다. 정신 단단히 차려라.”
지셀은 아렐에게 더 강력한 마나 연공법을 새길 생각이었다. 개량하긴 했지만, 기사들이 쓰는 것보다 자신이 쓰는 것에 더 가깝다.
“시작한다.”
지셀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바로 아렐의 등에 손바닥을 대었다.
구우우웅!
강대한 마나가 아렐의 몸으로 들어가 폭풍처럼 몸속을 휘젓기 시작했다.
“크윽!”
아렐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부릅뜨며 신음을 내뱉었다.
몸 안을 칼날이 마구 헤집는 거 같았다. 몇 초도 버티지 못할 거 같았다.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그대로 기절하고 싶을 정도였다.
“버텨라, 버텨야 산다.”
지셀은 무지막지한 힘으로 아렐의 몸에 마나 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나가 지나갈 때마다 아렐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끄으으윽…….”
“야만인들을 생각해라. 그때를 생각하고 버텨라. 네가 강해져야 복수를 할 수 있다.”
그 말에 아렐은 이가 깨지도록 악물었다. 고통을 못 이겨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
아렐의 배꼽 아래에 코어가 생성되며 마나가 몸 곳곳으로 뻗어 나갔다.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 속에서도 아렐은 버텼다.
그를 버티게 하는 건 단 하나였다.
― 강해져야 한다.
강해져야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을 수 있다. 강해져야 이 험한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다.
그 일념 하나로 아렐은 눈과 코, 입, 귀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버틸 수 있었다.
지셀은 마나를 계속 움직이면서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버틸 수 있었어.’
지셀이 기사들보다 더 강하고 위험한 마나 연공법을 전수한 이유는 아렐의 근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아렐이 일 년 전쟁 때 지셀의 수하에게 죽긴 했지만, 지셀은 그에게 별 원한이 없었다.
페르디움의 멸망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고 그냥 야만인 학살에만 미쳐 있던 놈이었으니까.
전생에 아렐이 어찌해서 살아남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해럴드의 눈에 띄어 기사가 되었고 결국 멸망한 페르디움을 대신해 북부 요새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야만인에 대한 그의 복수심이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렐은 야만인들과 벌였던 수많은 싸움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남작의 작위까지 받았다. ‘야만인 학살자’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였다.
오직 복수심 하나로 끝없는 고련을 통해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다.
엄청난 정신력과 복수심, 근성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셀은 그걸 믿고 아렐에게 더 강력하고 위험한 마나 연공법을 전수해 준 것이다.
구오오오!
마나가 힘차게 돌며 아렐의 몸에 자리를 잡아 갔다. 지셀에게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고통에 휩싸인 아렐에게는 억겁과도 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렐은 지셀의 예상대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버티고 있었다.
이미 어느 정도 몸이 만들어져 있던 거친 용병들도 제대로 못 버티는 걸 이 애송이가 버틴 것이다.
토대가 만들어지자 지셀은 살며시 손을 떼었다.
털썩.
동시에 아렐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 그를 보며 지셀이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다.”
어지간한 사람은 절대 버티지 못할 고통이었지만 아렐은 버텨 냈다. 전생에서도 근성 있기로 유명했던 게 과연 허명은 아니었다.
“흐음, 몇 번 더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번 한 번으로 끝이 아니다. 기사들처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마나를 이끌어 줘야 했다.
잠시 고민하던 지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데리고 다니면서 해 주면 되겠네.”
지셀은 얌전히 영지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공작가의 7서클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힘을 미리 준비해야 했다.
이제 그것을 얻으러 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