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354)
354 – 내 몸에서 사는 게 어때? (4)
354화 내 몸에서 사는 게 어때? (4)
“친왕파에 들어가…… 공작가와 싸우라?”
모브레이 백작의 무거운 말에 지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그것입니다.”
“…….”
한참 동안 지셀을 노려보던 모브레이 백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친왕파에서 왔소? 브랜포드 후작이 보낸 사람이오?”
“비슷합니다. 후작님이 보낸 건 아니지만.”
“내 아들을 살려 주는 대가로 가문과 영지를 전부 내놓으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요. 그건 불가하외다.”
모브레이 백작이 남부의 귀족임에도 공작파에 들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반역에 힘을 보태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중립을 표방했다. 어느 정도 스스로의 힘에 자신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친왕파든 공작파든, 굳이 자신을 쳐도 힘만 빼게 될 뿐 큰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한쪽으로 붙으면 다른 얘기가 된다. 반대쪽에서는 반드시 자신을 없애려 할 것이다.
“나는 공작가와 싸울 수 없소.”
자신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공작가에 비할 수는 없다. 만약 공작가와 싸운다면 이 영지는 멸망을 피할 수가 없다.
아들을 악령에게서 구한 이유가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미안하오. 하지만 내 사정을 이해해 줄 것이라 믿소. 대신 다른 방식으로 보상해 주면 안 되겠소?”
그래도 아들을 고쳐 준 은인이다. 이대로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은혜를 받았으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귀족의 명예이자 자긍심이다.
지셀은 모브레이 백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반응은 예상한 바였다.
“그러면 다른 걸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엇이오?”
“먼저 이대로 계속 중립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그건 당연한 말이오. 나 또한 반역자가 될 생각이 없소이다.”
“다른 하나는…… 후에 길을 한 번 내어 주십시오.”
“길을?”
모브레이 백작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뜬금없이 길을 내 달라니,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지셀은 피식 웃고는 수염을 뜯고 가발을 벗었다. 갑자기 달라진 그의 모습에 모브레이 백작이 눈을 크게 떴다.
“누구시오? 왜 변장까지 하고 이곳을…….”
“저는 펜리스 백작입니다.”
“……!”
모브레이 백작은 깜짝 놀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요즘 왕국에는 펜리스 백작에 관한 소문이 자자했다.
대영주인 데스몬드 백작을 꺾고 힘으로 북부의 패권을 차지한 자.
공작가와 척진 그가 이곳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기절할 정도로 큰일이었다.
“저, 정말 그대가 펜리스 백작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모브레이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펜리스 백작이 브랜포드 후작 영애의 병을 고치고 뛰어난 화장품도 만들었다더니 뜬소문은 아니었구려.”
펜리스 백작이라면 과연 악령도 내쫓을 만했다.
그에 관해서는 믿기 어려운 소문이 자자했다. 소문으로만 들었을 때는 솔직히 그대로 믿지는 않았는데, 직접 겪어 보니 정말 신기한 지식이 많은 사람 같았다.
모브레이 백작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정체를 밝힌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오. 길을 빌려 달라는 게 무슨 뜻이오?”
“친왕파와 공작파는 결국 내전을 벌일 것입니다.”
“알고 있소. 갈수록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까.”
“훗날 제가 공작가를 칠 때 이곳 영지를 통해 우회해서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때 제 군대에 길을 내어 달라는 뜻입니다.”
“…….”
모브레이 백작은 드디어 지셀의 뜻을 완전하게 이해했다.
이곳은 남부 초입이면서도 끄트머리에 치우친 영지다. 만약 내전이 일어난다면 전장은 중립인 자신의 영지를 제외한 지역에 펼쳐질 것이다.
지금 지셀은 그 점을 이용해, 모브레이 백작령을 우회해서 곧바로 공작가를 칠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위험한 군사 계획이다. 자신이 입만 뻥긋해도 실패할 것이다.
아니, 설령 자신이 입을 열지 않더라도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작전이었다. 애초에 북부에 있는 펜리스 백작이 이곳까지 오려면 수많은 난관을 뚫어야 한다.
펜리스 백작을 위시한 친왕파가 그만큼 성장해야 공작파의 병력이 방어선을 펼칠 것이고 이 작전도 의미가 있게 된다.
모브레이 백작은 한참 동안 지셀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말했다.
“그게 가능할 거라 보시오? 상대는 공작가요. 내전이 일어나면 공작가가 승리할 것이라고 누구나 예측하고 있소이다. 백작은 예까지 오지도 못할 것이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하는 법이지요.”
“설사 여기까지 온다손 쳐도, 내가 그 작전을 입 밖에 꺼내 백작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소이다.”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될 문제입니다.”
여유 넘치는 지셀의 대답에 모브레이 백작이 입술을 씰룩거렸다.
“내가…… 지금 백작을 잡아 가둔 뒤 공작가에 연락을 취할 수도 있소. 우리는 펜리스 영지보다 공작령에 더 가까이 있소이다. 백작을 잡아다 바친다면 공작가에서는 나에게 큰 보상을 줄 것이오.”
그러자 지셀이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저와 한번 해보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자신 있으십니까?”
그 말에 모브레이 백작이 의자에 기대며 지셀을 노려보았다.
펜리스 백작의 실력에 관해서는 그도 들은 바가 있었다. 특히 전쟁 때는 마스터에 버금가는 무력을 보여 줬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소문이란 원래 과장되는 법이긴 하지만, 펜리스 백작이 괜히 북부 최강이라 불리는 건 아닐 것이다.
‘과연 자신감 하나는 왕국 제일이군.’
펜리스 백작은 겁이 전혀 없기로도 유명했다. 자신이 정말로 허튼짓을 한다면 펜리스 백작은 절대 싸움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한 지역의 제일검이라 불리는 사람은 홀로 수십의 기사를 상대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펜리스 백작은 북부제일검의 수준을 넘어 마스터에 버금간다고 소문난 자다. 그가 여기서 날뛰면 영주성에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은 대부분 죽을 것이다.
피식 웃은 모브레이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소문대로구려. 내 은인에게 어찌 그런 무도한 짓을 하겠소. 그냥 한번 떠본 것이오.”
“저 또한 백작님이 그러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모브레이 백작은 성정이 강직하기로는 왕국에서 손에 꼽힌다. 남부에 속해 있으며 내전에서는 공작가가 승리한다고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반역자가 되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중립을 선언했다.
그런 자가 은인을 상대로 그런 치사한 짓을 할 리가 없었다.
모브레이 백작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내 비밀을 지키고 한 번은 길을 내어 드리겠소이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건 절대 도와드릴 수는 없소.”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정말 가능하겠소? 북부에서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오.”
“제가 못 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편이 백작님에게는 덜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지셀의 말에 모브레이 백작은 웃었다. 그 말이 맞았다. 펜리스 백작에게 길을 내어 주었다가 걸리면 한패로 몰릴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모브레이 백작은 최대한 오리발을 내밀며 모르는 척할 생각이었다. 펜리스 백작이 몰래 잠입했다고 하면 대놓고 자신을 탓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모브레이 백작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펜리스 백작이 여기까지 당도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내전이 일어나면 수도 인근이 두 세력의 각축장이 될 터인데 어찌 이곳까지 쉬이 올 수 있겠는가.’
서부의 대영주인 로드리크 후작만 해도 홀로 왕국을 뒤엎을 만한 병력을 가지고 있다. 설사 그쪽을 뚫고 온다 해도 바로 이 주변에 방어선이 펼쳐질 것이다.
그 방어선까지 뚫고 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내 어디 한 번 지켜보겠소. 여기까지 당도한다면 기꺼이 길을 내어 드리지.”
“감사합니다. 그러면 계약서를 써야겠죠?”
“계약서?”
모브레이 백작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이 몸을 뭐로 보고 그런 걸 쓴다는 말인가?
지셀은 그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품에서 계약서를 꺼내 내밀었다.
“이런 건 원래 확실하게 해야 하는 법입니다. 자, 어서 인장을 찍어 주시지요.”
“끄응…….”
보아하니 이미 이런 상황이 될 것을 예상하고 계약서까지 준비해 온 모양이다. 모브레이 백작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계약서에 인장을 찍어 주었다.
그렇게 해서 둘의 계약이 체결되었다.
모브레이 백작은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다. 북부의 신성이라 불리는 이 자가 정말 내전에서 여기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 말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공작가도 쉽게 승리를 점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피곤할 텐데 며칠은 쉬다 가시오. 내 성대하게 연회를 열 계획이오.”
“아닙니다. 빨리 영지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이곳에 너무 오래 있어도 좋을 게 없지 않습니까?”
“으음, 그렇기는 하지만…….”
펜리스 백작이 괜히 남부에 오래 있어서 좋을 건 없긴 하다. 모브레이 백작은 아쉬운 마음을 접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셀은 약 사흘 정도만 머무르며 떠날 채비를 했다.
차근차근 떠날 준비를 하던 지셀과 아렐의 귀에 모브레이 백작이 어디선가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한심한 놈! 벌써 이걸 잊었다는 말이냐! 도대체 나중에 어찌하려고 그런단 말이냐!”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저 아직 몸도 다 안 나았단 말입니다!”
“지금 이 아비의 말에 반항하는 것이냐!”
“저도 이제 그냥 듣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뭐, 뭣? 네놈이 악령에 씌더니 간덩이가 부었구나!”
“어쩌라고요!”
멀리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아렐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지셀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적염의 마탑이……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거대한 탑의 최상층. 그중에서도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깡마른 체구임에도 살벌한 눈빛을 내뿜고 있어 호락호락한 인상은 전혀 없었다.
“그렇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대량의 룬스톤을 구한 것 같다고 판단됩니다.”
글렌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는 예전에 지셀에게 식량을 사러 갔다가 망신을 당한 적도 있지만, 여전히 진홍의 마탑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로서 장로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보고를 받고 있는 자는 이곳의 탑주, 7서클에 이른 마법사 델무드였다.
델무드는 자리에 함께한 다른 장로 세 명을 돌아보고 물었다.
“룬스톤이 갑자기 그렇게 많이 생겼을 리가 없다. 북부의 상단들이 파는 룬스톤은 이미 우리가 다 쓸어 온 상태니까. 어떻게 된 일인 것 같나?”
“아무래도…… 펜리스 백작이 또 제공해 준 듯합니다.”
“펜리스…… 펜리스 백작이라…….”
델무드는 날카로운 눈빛을 내비치며 몇 번이나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놈의 존재가 상당히 거슬렸다. 그놈 때문에 데스몬드 백작이 죽고 자신들에게 오는 지원이 끊겨 버렸다.
공작가가 상단들을 보내 지원해 주고는 있지만, 남부에서 여기까지 물자를 운반하는 게 그리 쉬울 리는 없었다.
적염의 마탑을 망하게 하려고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실제로도 성공이 눈앞에 보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상대가 다시 살아나더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마법 도구, 스크롤, 포션 등 판매 실적이 점점 늘어나는 게 보였다. 진홍의 마탑을 찾던 귀족 중에도 다시 적염의 마탑에서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아무래도 전통이 있는 마탑이다 보니 그만큼 인맥도 많았기 때문이다.
“마법사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했나?”
“네, 대량의 룬스톤이 있다고 광고하면서 자유 마법사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펜리스 백작과 긴밀한 관계라지?”
“그렇습니다. 펜리스 영지에 마탑 지부도 있고, 후계자를 그곳의 지부장으로 보낸 상태입니다.”
“그래……. 펜리스의 애송이가 적염의 마탑을 도와주는 게 분명하군. 그런데 그 애송이는 도대체 어디서 룬스톤을 그렇게 많이 구해 오는 거지?”
“이번에도…… 마수의 숲에서 얻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마수의 숲을 개척해서 룬스톤을 얻었다는 사실은 결국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길을 내고 영역을 개척하느라 워낙 많은 인부가 오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듣고서도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펜리스 영지에서 나오는 룬스톤은 갈수록 많아졌다. 룬스톤처럼 귀한 자원을 그렇게 많이 얻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델무드는 음울한 낯빛으로 중얼거렸다.
“마수의 숲이라……. 마수의 숲에 그렇게 룬스톤이 많을 줄이야. 괜히 공작가가 노렸던 게 아니군.”
공작가에서는 왜 마수의 숲을 노렸는지 지금도 확실히 알려 주지 않았다. 다만 지금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마수의 숲에 있는 자원을 노렸던 것 같았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물론 공작가도 마수의 숲에 그렇게 많은 자원이 있다는 건 몰랐다. 그저 델무드 혼자서 추측한 것뿐이었다.
“데스몬드 백작이 패배한 이상 우리가 자금력으로 적염의 마탑을 죽일 수는 없다.”
북부 최고의 부자라 불리는 펜리스 백작이 적염의 마탑을 밀어주고 있다. 반대로 진홍의 마탑은 자금 지원이 상당히 줄었다.
상단들도 슬슬 적염의 마탑 쪽에 다시 선을 대려는 게 보였다. 더 이상 돈 싸움을 해 봐야 의미가 없었다.
“이러면 곤란하지. 적염의 마탑을 없애야 내전 때 안전하게 친왕파의 뒤를 칠 수 있다.”
지금은 자신들에게 밀렸다고 하지만 한때는 북부 제일이라 불렸던 마탑이다. 적염의 마탑은 진홍의 마탑보다 여전히 제자들의 수도 많고, 인맥도 두터웠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탑주의 실력이 좋고 자금력이 뛰어난 덕분에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이제 자금력까지 뒤처지게 되었으니, 진홍의 마탑이 앞서는 부분은 탑주의 실력밖에 없었다.
이게 다 펜리스의 애송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펜리스 백작이야 내전 때 처리하면 되지만……. 이대로라면 우리가 다시 적염의 마탑에 밀리는 건 시간문제다.”
델무드의 말에 장로들은 고개를 숙였다.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적염의 마탑이 승승장구하자 지셀이 예측한 대로 무척이나 초조해하고 있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실력 행사를 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 말씀은……?”
델무드는 이를 몇 번 갈더니 말을 이었다.
“마탑 교류회를 요청해라. 내가 틈을 봐서 그놈들을 직접 죽여야겠다.”
그의 두 눈에서 서슬 퍼런 살기가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