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38)
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38화(38/269)
38화 이제 좀 쓸 만해졌구나. (1)
팔로르의 영역을 벗어나자 다시 지옥 같은 전투가 이어졌다.
쉴 틈 없이 몰아치는 몬스터들에 용병들은 점점 지쳐 갔다.
지셀 또한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돌아가서 쉬고 싶다는 유혹이 몰려올 정도였다.
‘역시 마수의 숲.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모두가 이곳에 손대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위험을 감수하고 목숨을 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확실한 목적이 없었다면 자신도 이런 위험한 숲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수의 숲에 무엇이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고, 그렇기에 위험을 무릅쓸 각오를 할 수 있었다.
의외인 것은 용병들이 생각보다 잠잠하다는 것이었다.
비록 피곤함에 절어 쓰러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지만, 눈빛은 아직 살아 있었다.
‘내가 이들을 너무 우습게 본 모양이네.’
행군이 고된 건 맞기에, 본래라면 이쯤에서 슬슬 추가 보상 얘기를 꺼내서 달랠 계획이었다.
하지만 용병들의 눈빛을 보고 지셀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오직 마누스만이 용병들 틈에서 죽을상을 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다들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놀랍게도 전투가 이어질수록 피해는 점차 줄어들었다.
고작 열흘 남짓이 지났지만, 극한에 이른 전투를 매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대부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을 무렵, 지셀은 모두에게 희망찬 소식을 전했다.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했다. 얼마 남지 않았어.”
그 말에 용병들은 다시 힘을 내어 전진했다.
얼마나 나아갔을까, 일행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뭐지?”
“지금쯤 또 몰려올 때가 됐는데.”
“조용하니까 뭔가 이상하지 않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던 몬스터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찾아올 때는 괴롭고 힘들었는데 갑자기 안 나타나니 오히려 불안감이 들었다.
지셀 또한 용병들처럼 이상함을 느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기엔 그동안의 전투가 너무나 치열했다.
갑자기 이렇게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의아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너무 조용하다.’
원래도 벌레 우는 소리 하나 듣기 힘들 만큼 조용한 숲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행들이 내는 소리를 제외하면 바람 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듯, 숨 막힐 정도로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길리언과 카오르를 주변에 정찰 보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운이 좋은 건가?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이곳에 특별히 위험 요소가 있다는 기록은 없었는데…….’
한참을 고민하던 지셀은 차라리 지금 기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모두 작업을 멈추고 쉬어라. 체력을 회복한 뒤 내일 바로 목적지까지 길을 내고 일을 끝낸다.”
용병들은 만면에 화색을 띠며 바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숲에 들어온 후 지금까지 제대로 푹 쉬어 본 적이 없기에 미친 듯이 피로가 몰려왔다.
놀랍게도 다음 날까지 몬스터들은 단 한 마리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구구, 허리야.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더 쑤신다.”
“그래도 이제 좀 살 거 같다.”
“목적지도 오늘이면 도착할 수 있다고!”
체력도 회복했고, 이제 끝이라는 희망이 눈앞에 보이니 작업도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됐다.
생소한 상황이라 다들 조금은 불안해했지만, 시끄럽게 길을 내도 별다른 일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셀은 자신이 작성한 지도와 현재 위치를 몇 번이나 가늠하더니, 고무된 표정으로 모두에게 말했다.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하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에 용병들은 쉬지 않고 길을 내는 데 전념했다.
모두의 얼굴에 조금씩 후련하다는 표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길을 엄청난 고생을 하며 거쳐 왔다.
이 고생이 이제 끝난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속이 시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기쁘고 기대하는 사람은 지셀이었다.
‘이제 거의 다 도착했다.’
모두가 미쳤다고 반대했지만, 확신과 자신감으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니 그도 조금은 흥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쿠구궁.
숲이 떨리는 듯한 진동이 멀리서 울려 퍼졌다.
순간 모든 사람이 움직임을 멈췄다. 용병들은 잔뜩 긴장해 주변을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좋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고, 불길한 예감이 서서히 퍼져 가기 시작했다.
“길리언, 앞을 정찰하고 와라. 모두 전투를 준비하도록.”
길리언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찰을 나섰다.
용병들은 작업을 멈추고 무기를 들었다.
이미 며칠 동안 숲에서 벌이는 전투에는 익숙해진 상황.
상대가 무엇이냐가 문제지, 전투 자체는 문제 될 게 없었다.
다들 긴장한 채 기다리던 중,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길리언이 온 힘을 다해 달려와 외쳤다.
“당장 피하십시오!”
“뭐?”
지셀의 반문과 동시에 멀리서부터 나무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쿠쿵! 쿠쿠쿵!
무언가가 나무를 박살 내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숲을 가르며 모습을 보인 그것은 일행을 보자마자 높은 울음소리를 토해 냈다.
카아아아아!
눈앞에 나타난 것을 보고 지셀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몬스터는 숲의 더 깊은 구역에 있어야 하는 몬스터였다.
이런 외곽에서 돌아다닐 만한 몬스터가 아니다.
용병들도 몬스터의 모습을 보고 숨을 들이켜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허, 헉. 저, 저게 말이 돼?”
“몬스터가 없는 게 아니었어. 저놈 때문에 다들 피했던 거야.”
모두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앞에 나타난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뱀이었다.
사람 정도는 한입에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어마어마한 뱀.
거대 뱀의 붉은색 비늘은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벌어진 입에는 강철 정도는 쉽게 찢어발길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이빨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블러드 퓌톤…….”
한 용병이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퓌톤이라고 불리는 거대 뱀 몬스터는 비늘 색에 따라 그 이름이 달라진다.
핏빛 비늘로 몸이 덮인 블러드 퓌톤은 퓌톤 중에서도 가장 흉포하고 무서운 존재로 알려져 있다.
이빨에서는 강력한 독을 뿜어내고, 비늘은 강철과도 같아 무기 또한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보통 퓌톤보다 훨씬 크군.”
용병들은 그 압도적인 크기에 기겁했다.
퓌톤이라는 종은 본래도 큰 크기 탓에 위험 몬스터로 분류된다.
그런데 지금 나타난 블러드 퓌톤은 일반적인 퓌톤보다 훨씬 더 덩치가 컸다.
이건 지셀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전생에서 얻은 자료에는 블러드 퓌톤은 이곳보다 훨씬 더 안쪽에 서식한다고 쓰여 있었으니까.
‘왜 하필 지금 이곳에…… 시기가 좋지 않았군.’
분명 목적지는 숲의 초입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단지 길을 내고 그곳을 영역 삼는 몬스터들을 처리해야 했기에 시간이 오래 걸린 것뿐이다.
처음 숲을 개척하겠다는 계획을 짤 때부터, 지셀은 지금은 사냥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몬스터들이 모두 숲 깊은 곳에 서식한다는 것을 여러 번 확인했다.
그런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등급의 몬스터가 나타나고 말았다.
사아아아악.
블러드 퓌톤은 오만한 눈으로 혀를 날름거리며 일행을 둘러보았다.
마치 맛있는 식사를 눈앞에 둔 것 같은 여유로움.
용병들은 그 기세에 눌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뱀을 마주한 개구리와 다를 바 없는 그 모습을 보고 지셀이 크게 소리쳤다.
“정신 차려라! 가만히 있으면 다 죽는다!”
그 말에 용병들은 정신을 차리고 순식간에 전투 대형을 갖추었다.
멍하니 있다 죽을 수는 없으니 뭐라도 공격을 시도해 봐야 했다.
“쏴라!”
지셀이 외치자 방패를 든 용병들이 앞을 막고 활을 든 용병들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탕! 타탕! 타앙!
화살이 수없이 날아갔지만 블러드 퓌톤의 붉은 비늘은 뚫지 못했다.
가볍게 화살들을 튕겨 낸 뱀은 몸을 꿈틀거리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뒤로 이동해!”
용병들이 대열을 갖추며 뒤로 조금씩 이동하자 이번에는 블러드 퓌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거대한 몸에 어울리지 않게 빠른 속도였다.
카아아아!
순식간에 몸을 끌며 다가온 블러드 퓌톤이 입을 벌려 바로 앞에 서 있던 용병 하나를 집어삼켰다.
“으아아아악!”
용병은 저항도 제대로 못 해 보고 그대로 삼켜지고 말았다.
꿀렁, 꿀렁.
블러드 퓌톤의 몸 안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내려가듯 움직이더니 이내 몸의 가운데쯤에서 움직임이 멈췄다.
사람이 몬스터에게 산 채로 잡아먹히는 광경은 모두가 처음 보는 터라, 그 충격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사아아아악!
블러드 퓌톤이 만족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음 먹잇감을 고르는 듯한 태도였다.
그 모습을 본 용병들의 눈에 절망감이 서렸다.
지금까지 나타난 몬스터들은, 팔로르를 제외하면 아무리 강하고 빨라도 공격이 통했다.
어찌 됐건 서로 맞붙어 싸우면 전략과 전술에 따라 상처를 입히고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는 무적인 것처럼 보이던 팔로르에게도 빛만 있으면 공격이 통했다.
하지만 블러드 퓌톤의 비늘은 모든 화살을 튕겨 낼 정도로 강했다.
공격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를 도대체 무슨 수로 잡아야 할까?
“뒤로! 일단 더 뒤로 물러나!”
일행은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사아아아…….
블러드 퓌톤은 거리가 벌어져도 바로 공격을 취해 오지 않았다.
사냥감들이 도망갈지 덤벼들지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방금 용병 하나를 잡아먹고 만족했는지, 당장 공격할 기미는 없어 보였지만…….
일행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머지를 무사히 도망치게 놓아둘 생각도 없는 듯했다.
“공자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저놈을 처리할 방법이 있는 거죠?”
용병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 지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셀은 아무런 말도 없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블러드 퓌톤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왜 아무 말이 없는 거야.’
‘고용주도 방법이 없는 건가…….’
언제나 몬스터가 나타나면 누구보다 빠르게 지시를 내리고 가장 먼저 전투에 뛰어들던 고용주가 아무런 말을 하고 있지 않다.
절망감이 모두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용병들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왔음을 예감했다.
벨린다는 지셀에게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
“도련님, 당장 도망가세요. 지금 전력으로는 저 괴물을 절대 못 이겨요.”
“내가 지금 도망가면 용병들은?”
“그깟 용병 나부랭이 수십, 수백 명 죽어도 저한테는 도련님을 살리는 게 더 중요해요.”
길리언 또한 지셀의 앞을 막으며 조용히 말했다.
“공자님, 벨린다와 함께 돌아가십시오. 이곳은 용병들과 제가 막고 있겠습니다. 계약에는 고용주의 안전도 포함되니 저들 생각은 그만하십시오.”
“길리언.”
“딸을 부탁드립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옆에 있던 카오르에게는 그 대화가 잘 들렸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지셀에게 말했다.
“이만 도망갑시다. 모두 후퇴하라고 명령을 내리면 알아서들 잘 도망갈 겁니다. 죽는 놈도 나오겠지만 그거야 뭐 어쩔 수 없죠. 돈을 받고 목숨을 거는 용병놈들의 운명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카오르까지 거들자 지셀은 눈을 내리깔고 고민에 잠겼다.
이대로 도망간다 해도 대부분은 저 뱀에게 따라잡혀 죽을 것이다.
몇 명 정도는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길을 벗어난다면 결국 숲속을 헤매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성공이 코앞이었는데. 이대로 실패하는 건가.’
지셀이 두 눈을 꾹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