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396)
396 – 그냥 부숴 버리자. (3)
396화 그냥 부숴 버리자. (3)
린더스타인의 지휘관인 레이넌은 저 멀리 줄지어 서 있는 거대한 투석기를 보며 넋이 나간 채 중얼거렸다.
“뭐,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세상에 갑자기 저렇게 투석기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마, 마법인가?”
대마도사라 일컬어지는 8서클 이상의 마법사라면 워프 마법을 사용해 물건과 사람을 옮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왕국에 8서클 마법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8서클은 인간이라면 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경지라고 알려져 있다.
“도대체 저게 뭐냐고!”
그가 발끈하며 외쳤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못했다.
뭔가 뚝딱뚝딱 만든다 싶더니 갑자기 투석기가 나와 버렸다. 도대체 그 과정을 누가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투석기를 현지에서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투석기는 딱 봐도 조잡하다. 애초에 이런 성을 공격하는 데 쓸 수가 없다.
투석기에 어떤 기술이 들어갔는지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아니야, 저런 게 있을 리가 없어. 분명 엉터리인 게 분명해. 생긴 것도 이상하잖아? 저 돌도 분명 다른 용도로 쓰려고 모아 온 걸 거야.”
레이넌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중얼거렸다.
모양은 투석기와 비슷하긴 했지만, 뼈대만 앙상한 것이 괴상한 생김새였다. 크기는 엄청나게 크지만 저렇게 뼈다귀를 연결한 것 같은 구조로는 강한 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다.
동요하는 병사들을 향해 레이넌이 외쳤다.
“걱정하지 마라! 딱 봐도 이상하지 않으냐! 저런 걸로는 성을 부술 수 없다!”
그 말에 병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봐도 저걸로 무거운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신중한 레이넌은 병사들이 방심하지 않게 덧붙였다.
“부패한 시체나 독이 묻은 가벼운 물건을 던질 수도 있다! 모두 바로 치울 수 있게 준비해라!”
성안에 독과 시체를 던져 전염병을 돌게 하는 건 유구하게 쓰이는 전략 중의 하나다.
저 이상한 투석기가 무거운 돌은 날리지 못해도 적당한 무게를 실어 작은 건 날릴 수 있을 듯했다.
레이넌의 명령에 병사들은 부랴부랴 조를 짜서 사슴 가죽으로 만든 장갑과 마스크를 썼다.
성의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지셀이 갈바니움 투석기를 보며 웃었다.
“첫 실전인가? 재미있겠어.”
이 투석기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건 전생에 이미 증명되었다. 적들은 아마 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당황할 것이다.
때마침 정찰을 나갔던 다크가 의식으로 소식을 전했다.
― 주인! 추격군이 우리가 지났던 곳에 도착했다. 그 협곡이 있던 곳 있잖아.
“서부 인근에 도착했군.”
대군인 주제에 제법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그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린더스타인은 오늘 함락될 테니 말이다.
“돌은 충분하군.”
저 정도 성을 부수기 위해서는 쉴 새 없이 강력한 공격을 들이부어야 한다.
수백의 기사와 수천의 병사들이 인근에서 말과 그물을 이용해 거대한 돌을 잔뜩 구해 왔다.
아예 산까지 가서 바위를 깎아 온 자들도 있었다.
“시작해라.”
지셀이 명령을 내리자 병사들이 투석기에 무게추 역할을 하는 돌을 달았다.
그리고 기사들이 마나까지 이용해 거대한 돌을 투석기에 채웠다. 빠른 공격을 위해 기사들이 손을 보탠 것이다.
데리고 온 4서클 마법사들은 무게추와 투석기의 돌에 더 단단해지고 무거워지는 마법을 걸었다.
이미 몇 번이고 훈련한 상황이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그들이 크게 외쳤다.
“1번 투석기 준비 완료!”
“2번 투석기 준비 완료!”
…….
“10번 투석기 준비 완료!”
모두의 준비가 끝나자 지셀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쏴라.”
옆에 있던 기사가 지셀의 말을 받아 크게 외쳤다.
“쏴라!”
파아아앙!
엄청난 소리를 내며 돌들이 쏘아져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린더스타인의 병사들은 모두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거대한 돌들이 날아온다. 시체나 다른 수작을 부린 물건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돌을 집어 던진 것이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돌들을 보니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꿈은 엄청난 굉음과 함께 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악!”
콰아앙! 콰아앙! 콰아아앙!
성벽의 성첩이 박살 나고, 그 충격에 휘말린 병사들도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그 정도면 다행이었다. 아예 돌에 깔려 몸이 완전히 박살 난 병사들도 있었다.
“지, 진짜 공성 병기다!”
“피해! 피하라고!”
“모두 빨리 흩어져라!”
펜리스군이 성벽을 타는 걸 막기 위해 모두 성벽 외곽에 바짝 붙어 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거대한 돌이 갑자기 날아오자 제대로 피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돌이 또 날아왔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앙!
“으아아아악!”
병사들은 몸을 피하기도 전에 돌에 깔려 피떡이 되어 버렸다. 벌써 몇몇 성첩은 완전히 박살이 나 흉물스럽게 변했다.
공격 속도도, 위력도 일반적인 투석기와는 달랐다. 너무 빠르고 너무 강력했다.
콰아앙! 콰아아앙!
성벽이 부서지고 병사들의 비명이 끊임없이 울렸다.
그 모습을 보던 레이넌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정말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게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시야에는 터져 나가는 성의 잔해들과 병사들의 시체 조각들만이 가득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어, 어떻게 저런 파괴력을…….”
어지간한 투석기로는 이 성에 큰 타격을 줄 수가 없다. 하지만 펜리스군이 쓰는 저 이상한 투석기는 엄청난 파괴력을 선보였다.
조금씩이지만 이 거대한 성벽을 위쪽에서부터 점점 허물고 있었던 것이다.
멍하니 있던 그를 깨운 건 옆에 있던 기사의 외침이었다.
“사령관님! 어서 대응 명령을 내리셔야 합니다!”
공성 병기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 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마스터인 펜리스 백작이 기사들과 성벽을 타고 넘어오는 것에만 대비했다.
그런데 정작 펜리스 백작은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돌만 쉼 없이 날아와 성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러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레이넌이 외쳤다.
“우, 우리도 투석기를 사용하라! 적들의 진영을 공격해! 그리고 병사들은 모두 성벽 밑으로 피하라고 해라!”
저런 공격이면 성벽에 붙어 있을 수가 없었다. 일단 몸을 피해야 한다.
레이넌의 명령에 그제야 병사들이 성벽 아래로 몸을 피했다.
끼이이익…….
파아앙! 파아앙!
로드리크군의 투석기가 펜리스군 쪽으로 돌을 날렸다.
사실 레이넌은 그 공격이 성공할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애초에 펜리스군은 투석기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쓰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저 펜리스군이 돌격해 올 때나 사용하려고 준비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먼 거리에서 펜리스군의 투석기는 성벽을 줄기차게 때려 대고 있었다.
“저, 저건 뭔데 사정거리가…….”
장전 속도와 파괴력만 봐도 미칠 거 같은데 사정거리에서도 상대가 안 됐다.
너무나도 이기적인 공격이었다. 자신들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마법사! 마법사들은 방법이 없는가!”
로드리크군의 마법사들도 모두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 남아 있는 마법사들의 수장은 고작 4서클이었다. 그 아래 있는 이들은 2서클에서 3서클 수준이다. 그나마 몇 명 남아 있지도 않았다.
실력 있는 자들은 로드리크 후작이 전부 끌고 갔기 때문이다.
콰아앙! 콰아아앙!
레이넌은 성벽이 천천히 허물어지는 걸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보고만 있어야 했다.
병사와 기사들도, 발리스타도, 투석기도……. 준비해 두었던 것들은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투석기들이 적의 공격에 맞아 박살이 났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성벽 곳곳에 배치한 대형 발리스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마구잡이로 돌을 던져 맞춘 게 아니었다.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목표 지점을 맞춘 게 분명했다.
“어떻게 저런 투석기가…….”
기술이 몇 단계나 차이가 났다. 저런 투석기를 막는 건 불가능하다.
콰아앙! 콰아아앙!
린더스타인의 병기를 부수고 난 뒤 펜리스의 공격은 성벽의 몇 군데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무슨 뜻인지 레이넌은 너무나도 잘 알았다.
“모, 모두 대형을 갖추고 전투를 준비해라.”
명령을 들은 병사들의 얼굴도 공포로 물들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돌이 날아오자 결국 성벽의 몇 군데가 뚫려 버렸다.
쿠르르르릉!
집중 공격을 받아 구멍이 뚫린 성벽의 일부가 그대로 무너졌다. 아래쪽에 잔해가 쌓였지만 기마병이 충분히 넘을 수 있는 높이였다.
그 모습을 본 지셀이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흑왕의 말고삐를 당겼다.
“가자.”
히이이이잉!
흑왕이 기쁜 듯 울부짖으며 달려 나갔다. 펜리스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차례로 그 뒤를 따랐다.
두두두두두두!
레이넌은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성벽에 올라가 견제하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콰아앙! 콰아아앙! 콰아앙!
자리에 남은 펜리스군이 여전히 돌들을 쏘아 대며 견제를 했기 때문이다.
병기들은 모두가 부서졌고 성벽에는 오르지도 못한다. 결국 레이넌의 낯빛이 시커멓게 죽었다.
“이, 이게 북부 최강 펜리스…….”
말로만 들었을 때는 코웃음을 쳤다. 가난한 촌놈들이 꼴값을 떤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한 쪽은 자신이었다.
저 척박한 북부에서 쉼 없이 전쟁을 겪으며 살아남은 군대는 감히 자신이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실력을 쌓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두!
1만에 가까운 기마병들이 움직이자 땅이 울렸다. 린더스타인의 병사들은 가쁜 숨만 내쉬며 덜덜 떨기 시작했다.
소문의 그 군대가 온다. 자비 없이 적들을 죽이는 그 군대가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조금씩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히이이이잉!
우렁찬 말 울음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무너진 성벽 틈으로 뛰어들었다.
콰아아아앙!
“으아아아악!”
지셀은 단숨에 적들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가 창을 휘두르자 순식간에 로드리크군의 진형이 무너졌다.
콰아앙! 콰아아앙!
펜리스군의 투석기 공격은 진작에 멈추었다. 하지만 로드리크 병사들은 펜리스군을 견제하기는커녕 공격을 피하기도 바빴다.
지셀이 마나를 뿜어내며 창을 휘두를 때마다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실제로 마나를 과하게 뿜어냈는지 병사들의 몸을 가르기만 해도 땅에 창이 움직인 흔적이 남을 정도였다.
“괴, 괴물이다!”
“펜리스 백작이다! 펜리스 백작이 나타났다!”
“피해! 절대 못 이겨!”
로드리크군은 모두 선두로 들어온 남자가 지셀임을 알아보았다.
붉은 눈을 빛내며 거대한 검은 말을 타고 있는 자. 그 특징이 누굴 가리키는지는 이제 왕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성벽이 무너지고 전의를 잃은 지 오래인 로드리크군은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지셀의 뒤를 이어 펜리스의 기사들까지 넘어왔다.
콰아아아앙!
그들은 그대로 전진하며 로드리크군을 갈아 버렸다.
“으아아아악!”
애초에 수성을 전제하고 모인 병사들이다. 기마병은 하나도 없었고 제대로 된 중보병도 없었다.
그러니 기사들의 돌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레이넌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지는 병사들을 보고 악을 썼다.
“싸워라! 싸우란 말이다! 우리의 수가 훨씬 더 많다!”
그가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었다. 펜리스의 기마병들까지 넘어오자 로드리크군은 마치 모래성처럼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살려 줘!”
“도망가!”
로드리크군 병사들은 아예 전투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들이 믿었던 성이 무너지자 마음도 같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병사들이 도망가기 시작하자 남은 건 학살뿐이었다. 말을 타지 못한 그들은 펜리스의 기마병들에 쫓겨 허무하게 쓰러졌다.
레이넌도 피눈물을 흘리며 기사들과 함께 자리를 피했다.
로드리크의 심장이자 자랑이었던 성을 잃고 말았다. 심지어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저 투석기 때문에!”
펜리스군이 가진 신형 병기의 존재를 알았다면 다른 방식으로 대비했을 것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고 보자! 내 반드시 후작님께 이 사실을 알리고…….”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 순간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가 옆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여기 있었네! 네가 대장 맞지?”
“너, 너는 뭐냐!”
“나는 카오르다. 길리언보다 강한 남자지. 저승에 가서도 잊지 마라.”
길리언은 수비를 위해 펜리스에 남아 있었다. 카오르로서는 자신의 명성을 떨칠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레이넌은 카오르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뭐? 하얀 사자 길리언?”
“카오르라고!”
하얀 사자란 이명을 얻은 길리언은 왕국에서 꽤 유명해졌다. 하지만 레이넌은 카오르란 이름을 처음 들어 봤다.
레이넌이 뭐라고 더 대답하기도 전에 검이 날아왔다.
퍼어억!
“끄윽…….”
그는 분노한 카오르의 검에 목이 떨어졌다.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왜 카오르가 화가 났는지 몰랐다.
“내가 더 강하거든?”
레이넌이 들은 마지막 말은 그것뿐이었다.
지휘관의 목까지 떨어지자 로드리크의 병사들은 더 거리낄 게 없었다.
그들은 무기까지 내던지고 도망갔다. 도망에 실패한 자들은 바닥에 엎드리며 외쳤다.
“항복입니다!”
“살려 주십시오!”
“펜리스를 따르겠습니다!”
말을 탄 기마병의 추격을 뿌리칠 수 없다고 느낀 그들은 전부 엎드리며 항복이라는 말만 외칠 뿐이었다.
적들이 전부 엎어지자 펜리스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무기를 치켜들고 외쳤다.
“우리가 이겼다!”
“성을 점령했다!”
“와아아아아!”
다들 신이 난 표정이었다. 왕국에서 유명한 성을 단 하루 만에 함락할 줄이야.
투석기가 강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실전에 쓴 건 처음이라 조금 긴장했었다. 그런데 이런 위력을 보일 줄이야.
지셀 또한 창을 거두고 웃으며 병사들을 치하했다.
하지만 성을 점령했다고 끝이 아니었다. 아직 예정된 전투가 남아 있었다.
“곧 추격군이 도착할 것이다.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지셀의 말에 전원이 웃음을 멈췄다. 긴장해서는 아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다.
그저 지셀의 말 한마디에 자신을 통제할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둘러본 지셀이 입을 열었다.
“투석기를 분리해서 중형 투석기를 만들어 성벽에 배치해라. 다음에 올 적들을 깜짝 놀라게 해 주자고.”
그 말에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전장을 정리할 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