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408)
408 – 수련 상대로는 최적이군. (1)
408화 수련 상대로는 최적이군. (1)
‘정말 끝이구나.’
테넌트는 고개를 숙였다.
뒤에서는 펜리스 용병단이 남은 로드리크군을 짓밟으며 쫓아오고, 앞에는 펜리스 백작의 군대가 길을 막고 있다.
이제는 도망갈 수 없었다.
쫓기고 쫓기고 쫓기다가 결국 막다른 곳에 들어선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펜리스군은 상대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아군이 어디로 가는지 다 알고 있었다. 서로가 떨어져 있는데도 유기적으로 빈틈없이 움직였다.
‘대단하다.’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하지만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는 문장가가 아니라 기사였으니까.
완벽하게 패배했다. 펜리스 백작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휘관들도 로드리크군 지휘부를 뛰어넘었다.
어떻게 그런 인재들이 죄다 북부에 몰려 있는 걸까.
‘어쩌면…….’
어쩌면 펜리스 백작이 서부까지 우회해서 들어갔던 그때, 자신들의 패배는 이미 결정된 것이었던지도 몰랐다.
“테넌트! 테넌트! 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로드리크 후작이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그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후작님…….”
“어서, 어서 달리자! 네 실력이면 뚫고 갈 수 있지 않으냐? 분명 그럴 수 있을 것이다.”
“…….”
뚫을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테넌트는 자신의 실력과 기마술에 자신이 있었다. 펜리스 백작이 아무리 마스터라 해도 전력으로 도망가는 자신을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혼자만 도망간다면 말이다.
“모두 말에서 내려라.”
테넌트의 말에 로드리크의 남은 기사와 병사들이 말에서 내렸다. 이제 그 수는 고작 백여 명에 불과했다.
로드리크 후작이 다시 불안해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서 말에서 내리라고 하는 것이냐! 이 인원이 전부 돌격하면 충분히 도망갈 수 있을 것이다.”
“후작님, 말에서 내리십시오.”
“싫다! 내가 왜 내린단 말이냐! 난 이곳을 떠날 거다! 어서 앞장서라! 어서 앞장서란 말이다!”
테넌트는 옆에 있는 기사들에게 말했다.
“후작님을 거들어라.”
“놔라! 이놈들!”
로드리크 후작이 말에서 내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지만 기사들의 힘에는 이기지 못했다.
“으아아! 이놈들! 지금 날 배신하려 하는 것이냐! 날 넘기고 목숨을 구걸하려는 게 아니냐! 이 명예도 모르는 쓰레기 같은 놈들아!”
로드리크 후작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테넌트와 후작가의 기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기사들은 그저 로드리크 후작이 도망가지 못하게 양팔을 꽉 잡고 있을 뿐이었다.
“놔라! 놓으란 말이다!”
그렇게 로드리크 후작이 발악할 때, 협곡 안의 로드리크군을 전멸시킨 도미닉이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달려왔다.
“로드리크 후작! 죽여 버리겠다!”
피범벅이 된 그는 눈에서 무시무시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떻게든 로드리크 후작을 직접 죽이겠다는 결의가 느껴졌다.
누가 나가서 막든 도미닉은 미친 듯이 싸울 것이다. 저 원한에 가득 찬 자를 막는 건 불가능했다.
이제 그러고 싶지 않은 테넌트가 말했다.
“모두 무기를 버려라.”
철그렁, 철그렁.
기사들과 병사들이 바로 무기에서 손을 놓았다. 그들도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다.
도미닉은 달려오다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이런다고 내가 봐줄 거 같으냐? 항복한 자들은 살려 줘도 로드리크 후작은 살려 줄 수 없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지셀도 흑왕을 타고 여유롭게 다가와 말했다.
“이제 항복인가? 생각보다는 시시하군.”
그 말에 로드리크 후작이 지셀을 노려보았다.
“펜리스 백작……. 네놈이 감히…….”
로드리크 후작은 훅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도 패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며 저주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사들마저 전부 자신을 배신한 상황에서 마음대로 굴 수는 없었다. 당장 죽고 싶지는 않으니 거친 숨만 내쉴 뿐이었다.
로드리크 후작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테넌트를 노려보았다.
“테넌트……. 내가 널 얼마나 아꼈는데……. 역시 재능이 뛰어나도 출신이 비천한 놈은 어쩔 수가 없구나. 이 천박한 배신자 같으니라고.”
“…….”
로드리크 후작의 말대로, 테넌트는 본래 농노의 자식이었다. 하지만 그의 엄청난 재능을 알아본 로드리크 후작은 테넌트를 직접 거둬들였다.
덕분에 그는 서부제일검이라는 명성을 얻을 정도로 성장해 후작가의 기사단장이 되었다. 후작가의 도움으로 단승 작위까지 얻어 귀족이 되었다.
‘그런데 은인을 이렇게 배신해?!’
로드리크 후작은 침을 튀기며 말했다.
“역시 너 같은 놈을 거두면 안 됐었다. 내가 키우던 개새끼 주제에 감히 주인을 배신해? 그것도 저 북부의 애송이에게 항복하려고?”
한참 동안 말이 없던 테넌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러고 있느냐? 왜 끝까지 도망가지 않고 날 붙잡고 있느냔 말이다!”
“도망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뭐?”
테넌트가 가슴에 주먹을 올려 군례를 취한 뒤 비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제 제가 후작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게 뭐냐?”
“제 주군이 적들에게 더 이상의 치욕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
“너…… 지금 무슨 소리를…….”
“그것이 제 주군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푸욱!
테넌트의 검이 번개같이 로드리크 후작의 배를 찔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그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컥, 커억…….”
호위 기사들에게 팔을 잡힌 로드리크 후작은 제대로 반항조차 못 하고 배가 뚫리고 말았다.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 가는 그를 바라보며, 테넌트는 피눈물을 흘렸다.
“후작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테넌트의 행보에 도미닉도 멈칫했다. 로드리크 후작은 자신이 죽이려 했고 지셀에게 허락도 받은 상태였다.
테넌트가 저렇게 먼저 손을 쓸 줄은 몰랐다.
로드리크 후작의 숨이 끊어지자 테넌트가 검을 뽑으며 말했다.
“모두 무릎을 꿇고 펜리스에 항복하라. 더 이상 희생할 필요는 없다.”
로드리크의 살아남은 병사들이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기사들은 달랐다.
무릎을 꿇은 자도 있었지만 차마 그러지도 못하는 자도 있었다.
깃발을 바꿔 든 기사들은 평생 오명에 시달려야 한다. 형편없는 영주에게 가거나 신분을 바꾸고 살아야 한다.
서부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자긍심을 품고 살아왔던 이들은 그런 삶을 살 자신이 없었다.
스각!
그런 기사들은 품에서 단검을 꺼내 알아서 자결하고 쓰러졌다.
하지만 테넌트는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지셀을 노려보며 자신의 검집을 땅바닥에 버릴 뿐이었다.
그러고는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외쳤다.
“나! 로드리크 후작가의 기사단장이자 서부제일검 테넌트는!”
그가 검을 앞으로 뻗으며 지셀을 가리켰다.
“북부제일검, 펜리스 백작에게 결투를 신청하오.”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그냥 쓸어버리면 됐는데 테넌트가 로드리크 후작을 직접 죽이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턱.
지셀이 흑왕에서 내렸다. 그는 창을 버리고 검을 뽑았다.
“그 기개는 높이 사 주도록 하지.”
“고맙소.”
테넌트가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물론 지셀은 기사도에 별 관심이 없다. 애초에 그의 정체성은 귀족이라기보다 용병에 가까웠다.
하지만 기사도를 지키는 상대를 무시할 정도로 몰상식하지는 않다. 또한 실력자가 청하는 결투를 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테넌트는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만한 실력자였다.
“와라. 서부제일검의 실력을 한번 보자.”
테넌트가 미소를 지었다. 한 지역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실력자에게 누가 감히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상대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저자야말로 왕국제일검의 자리를 다투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자였으니까.
지셀이 수락한 이상 다른 이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모두가 거리를 벌리며 넓게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파아앙!
테넌트가 바로 뛰쳐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어지간한 기사들도 순간 그의 모습을 놓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카아앙!
“제법이군.”
지셀이 씨익 웃으며 테넌트의 검을 막았다. 아무리 나태함으로 유명한 서부라고 해도 서부제일검의 명성은 괜히 얻은 게 아니었다.
카앙! 카앙! 카앙!
순식간에 수십 번의 공방이 오갔다. 지셀은 일부러 모든 힘을 폭발시키지 않았다.
테넌트는 순수한 검술로만 본다면 펜리스의 누구보다 뛰어나다.
절제된 기도와 군더더기 없는 검술. 그가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자와 싸우는 건 즐겁다. 효율만 따지기에는 아까웠다.
지셀은 마나를 억제하고 검술로만 승부를 보려 했다. 그 또한 스스로의 검술에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카카카캉!
두 사람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어느새 밤이 되어 어두워진 공간에서 붉은 선과 푸른 선이 쉴 새 없이 얽히며 춤을 추었다.
펜리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영주와 저 정도로 싸울 수 있다니.”
“서부에도 강자가 있었구나.”
“아까운 실력이야.”
이들은 모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고 있다. 일대일 대결로 자신들의 영주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왕국에 거의 없을 것이다.
설사 상대가 서부 제일의 실력자라 해도 말이다.
하지만 질 걸 알면서도 무릎 꿇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테넌트의 모습에 그들도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콰앙! 콰앙! 콰앙!
두 사람의 결투는 갈수록 힘을 더해 갔다. 두 사람이 검을 한번 휘두르고 맞부딪칠 때마다 사방으로 충격파가 퍼지며 땅이 패었다.
‘테넌트, 아마 전생에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었지?’
전생에 용병왕으로서 서부를 불태울 때, 그의 앞을 막은 테넌트는 마스터 초입 수준에 올라 있었다.
그때는 이렇게 서로의 검술을 주고받을 필요조차 없었다. 분노로 가득한 지셀의 검은 가차 없이 적을 찢어 버렸으니까.
어쨌든 테넌트는 미래에 확실하게 마스터에 오를 만한 재능을 가진 자다.
‘여기서 죽이는 건 아깝지만…….’
이런 자를 거둔다면 앞으로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셀 또한 굳이 이 자를 죽일 만큼 원한이 깊지도 않았다.
하지만 테넌트는 절대 굽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오만한 만큼 자긍심도 큰 기사였으니까.
‘네 재능만큼은 원 없이 풀고 가라.’
지셀의 검술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정석적인 검술로 테넌트와 어울렸다면, 이제는 광폭하게 모든 걸 찢어발길 정도로 거칠어진 검술을 내보였다.
카카카카카칵!
테넌트는 눈을 부릅떴다. 상대의 검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저 수많은 검격 하나하나에 의지가 있는 것만 같았다.
“크읏!”
테넌트는 이제 막기에만 급급했다. 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정도였단 말인가!’
상대가 모든 힘을 다하지 않는다는 건 진작에 알았다. 검을 섞을수록 와닿았다.
펜리스 백작은 마나를 억제하고 순수하게 검술 대결로 승부를 보려 했던 것이다. 소문의 그 검은 악마와 같은 형상을 보이지 않는 것이 그 증거였다.
‘검술만큼은 뒤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늘…….’
적어도 검술에서 우위를 보여 준다면 서부의 자존심은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누구의 검술이 더 훌륭한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어졌다.
카앙! 카앙! 카앙!
‘죽는다!’
테넌트는 사방에서 덮쳐 오는 검격을 어떻게든 피해 보려 했다.
이미 죽음을 각오했다. 하지만 ‘진짜’ 죽음이 코앞에 오자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
펜리스 백작은 마나의 양뿐만이 아니라 검술조차도 아득히 높은 경지에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어찌 인간의 검술이 이렇게 뛰어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나의 재능은 별거 아니었단 말인가…….’
테넌트는 어릴 때부터 검술에 큰 두각을 드러냈다. 어떻게 휘둘러야 하고 상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본능적으로 보였다.
자신이 남들과는 다른 재능을 타고났다는 걸 알았다. 서부의 최강자가 되는 것 또한 정해진 운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벽에 막혔다. 분명 그 너머의 세상을 얼핏 보았음에도 벽을 넘지는 못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세월을 보냈건만.
‘아아……. 이제 무엇이 부족했는지 알겠구나…….’
아무리 노력해도 보이지 않던 길이, 죽음을 앞에 두자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어떻게든 죽이려고 날아오는 저 검을 보자 몸 곳곳이 찌릿해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모든 신경이 날카롭게 날이 섰다.
마나가 한올 한올 풀리며 미세한 근육까지 흘러 들어갔다.
목숨이 경각에 이르자 그간 추상적으로만 잡혀 있던 개념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은 지금 살기 위해 부족함을 채우며 한 단계 더 진화한 것이다.
화아아악!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극한의 공포 속에서 얻은 극한의 깨달음이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었다.
느리다.
시간의 흐름이 달라졌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멈춘 것만 같았다.
모든 감각이 주변의 정보를 생생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것이…….
‘이것이 벽 너머의 세계란 말인가!’
희열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간 자신이 골몰하며 갈고닦았던 모든 것이 하나의 의지가 되어 세상에 펼쳐졌다.
파아아아악!
갑자기 테넌트의 검에서 어마어마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지셀의 몸이 검은 기운으로 둘러싸였다.
콰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