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432)
432 – 저번처럼 협박을 하는 수밖에. (2)
432화 저번처럼 협박을 하는 수밖에. (2)
리카르도가 달달 떨면서 스코반을 바라보았다.
“경비대장님……. 진짜 당신이…….”
“다, 닥쳐! 나 때문이 아니야!”
스코반은 고개를 마구 저었다.
자의식 과잉이다. 자신이 뭐라고 페르디움에 쏟아지는 재앙들을 몰고 다닌단 말인가.
우연이다. 정말 우연일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스코반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확인하자.”
“가까이 가자고요?”
리카르도가 기겁하며 물었다. 스코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게 진짜 그 현상인지는 아직 모르잖아? 다른 이상 현상일 수도 있고.”
“딱 봐도 균열이란 놈이잖아요?”
“젠장! 그래도 정확한지 확인을 해야 해! 확장하는 속도도 봐야 할 거 아냐! 뭔가 비정상적이잖아!”
지금 저 안개는 변화가 바로 눈에 띌 정도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균열에 관한 설명을 여러 번 들었지만, 이 정도로 확장이 빠르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정확하게 확인하고 전달해야 한다. 그는 책임감 있는 기사였다.
“조금만 가까이 가서 확인만 하자고. 나도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어.”
순찰조는 조심스럽게 균열의 영역으로 다가갔다. 꽤 멀리 있었지만 말을 탄 그들은 금세 다가갈 수 있었다.
스코반이 눈앞을 가득 메운 푸른 안개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균열 지역…….”
옆으로 고개를 돌려 봐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로 균열이 확장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말인가.
리카르도도 같이 주변을 돌아보다가 외쳤다.
“우, 우왁! 진짜 다가오잖아!”
푸른 안개가 스멀거리며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느리긴 하지만, 실시간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이 정도면 며칠 내에 북방 요새까지 집어삼킬 것이다.
스코반은 말에서 내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스윽.
손을 뻗어 안개 안에 넣어 보았다. 안개는 그리 진하지 않아 시야를 가리지 않았다. 그저 너무 넓은 영역에 퍼져 있기에 잘 보일 뿐.
경계를 짓고 있는 땅을 넘어간 자신의 손이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건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음산한 풍경뿐이었다.
카아아아!
멀리서 괴성이 들렸다.
직접 본 건 처음이지만 순찰조는 다 알고 있다. 이 안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
스코반도 이 안으로 들어서 확인할 자신은 없었다.
“도, 돌아가자.”
스코반이 손을 빼며 몸을 돌리려던 순간.
카아아악!
“으아악! 경비대장님!”
리카르도가 비명을 질렀다. 스코반이 허리춤에서 바로 검을 뽑으며 몸을 돌렸다.
스각!
푸른 마나를 뿜어내는 스코반의 검이 무언가를 갈랐다.
영역 안에서 몸이 반쯤 튀어나온 균열인이었다. 징그러운 얼굴과 이빨을 드러낸 균열인은 몸통의 반이 베여 땅에 떨어졌다.
푸스스스슥…….
땅에 떨어진 균열인은 곧 말라비틀어지더니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정말 이 세상에 허락되지 않은 불길한 존재인 것이 잘 보였다.
“으으…….”
균열인들의 징그러운 모습을 처음 보고 리카르도와 순찰대 병사들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카아아악!
두두두두두두!
괴성에 이어 멀리서 무언가가 잔뜩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스코반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말에 올라탔다.
“도, 돌아가자.”
그들은 곧바로 말머리를 돌려 요새를 향해 달렸다.
지셀이 북부군을 데리고 출정할 당시, 각지의 균열에는 무려 10만에 이르는 균열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각 영주들이 저지선을 만들고 싸웠는데도 그랬다.
반면 북부에서는 아무도 균열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무도 저지선을 만들지 않았다.
지셀이 출정한 뒤로도 시간이 꽤 지났다. 그동안 저 북방의 대지를 모두 집어삼키며 확장한 균열 안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균열인들이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스코반은 열심히 말을 달리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 때문은 아니라고!’
어쩌면 페르디움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리카르도가 잔망스러운 입을 가만히 둘 리 없으니까.
* * *
지셀과 북부군의 활약으로 전염병은 빠르게 잡혔다.
전염병이 도는 곳이 아직 자잘하게 남아 있었지만, 이미 약을 먹은 자들은 병에 걸릴 리가 없으니 금세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물론 지셀이 왕국 전역의 전염병을 해결한 건 아니다. 그는 균열과도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수도 인근과 동부 지역은 메리엘과 로잘린이 해결했다. 두 사람이 지셀의 말을 믿고 확실하게 준비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전염병 해결의 주역 중 한 명, 로잘린은 지셀의 연락을 받고 현재 북부군 진영에 와 있었다.
“이제 타국에 약과 식량을 전해 줘야 한다고요?”
“네. 루타니아 왕국의 전염병은 이제 거의 다 잡지 않았습니까. 타국의 전염병도 빨리 잡아야 다들 균열과 싸울 수 있습니다.”
로잘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
“이번에 사람들을 구한 것도 그렇고 어째서 그런 ‘착한’ 일을…….”
“…….”
지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로잘린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자신은 일부러 착한 일을 하지는 않는다.
자신은 오직 공작가와 균열을 부순다는 목적만을 향해 달렸다. 지금껏 한 일은 모두 그 목적을 위해 필요한 일들이었다. 단지 방법이 조금 과격했을 뿐이다.
그러니 로잘린이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녀가 보는 지셀은 ‘이득’에 미친놈이었으니까.
로잘린이 갑자기 손뼉을 치며 외쳤다.
“알겠다! 이제 민심까지 얻어 더 강한 권력을 쥐려는 모양이군요! 도대체 욕심이 얼마나 많기에!”
로잘린이 혀를 내둘렀다.
역사적으로 그런 위정자들은 많았다. 진심이 아님에도 백성들을 살펴 강력한 민심을 등에 업은 권력자들 말이다.
물론 그 결과는 대부분 좋았다. 그녀는 지셀이 지금 그런 작업을 하는 줄 알았다.
한숨을 내쉰 지셀이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는 거야?’
로잘린의 말만 들으면 왕국을 집어삼키려는 괴물은 델파인 공작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그런 건 아멜리아가 잘하는 거다. 자신은 아예 그런 생각조차 없다.
“권력에는 욕심이 없습니다.”
“…….”
이번에는 로잘린과 지셀의 측근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권한을 받았다는 핑계로 영주들을 죄다 잡아가는 게 누구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권력을 아주 휘두르다 못해 몽둥이로 때리는 것처럼 보였다.
지셀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빨리 이 시기를 넘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국의 전란을 가라앉혀도 다른 쪽이 균열과 구원교에 먹히면 좋을 게 없습니다.”
“으음, 그건 그렇죠.”
로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대륙이 전란에 휩싸인 지 오래였다.
루타니아 왕국만 멀쩡하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다른 나라가 균열과 구원교에 먹히면 끊임없이 이곳에 쳐들어올 것이다.
지셀의 목적이 무엇이든, 결국 조금이라도 빨리 그것들을 저지하는 게 모두를 위한 길인 건 맞았다.
“알겠어요. 에일즈버 백작 부인과 상의해서 따로 수량을 준비할게요. 가장 먼저 도와줘야 할 곳이 있을까요?”
“당연히 루타니아와 붙어 있는 왕국들부터죠. 그다음은 튜리안 왕국.”
“튜리안 왕국이요?”
“네. 그 나라부터 우선으로 도와주세요. 펜리스에서도 약과 식량을 준비할 겁니다.”
“굳이 튜리안 왕국을 돕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뭐…… 그쪽은 그림자 산맥의 몬스터만으로도 고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다른 곳보다 더 힘들 테니까요.”
지셀은 대충 둘러대었다. 사실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그래야 그쪽이 더 빨리 안정될 테니까.’
괴물 같은 놈이 그곳에 있다. 그놈이 모습을 드러내면 튜리안 왕국은 금세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어느 한 곳이라도 빠르게 상황을 수습해야 앞으로의 싸움에 도움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약과 식량이 충분해야 한다.
지셀은 가장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는 곳부터 우선 지정해 준 것이다.
“그리고 몇 군데가 더 있습니다.”
지셀은 로잘린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우선순위를 말해 주었다.
펜리스 혼자 모든 왕국을 도와줄 수는 없다. 거기다 자신은 루타니아 내부의 균열과 싸우기도 바쁘다.
타국에도 명성이 높은 브랜포드 후작이 힘을 써 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차피 실무는 대부분 로잘린과 메리엘이 맡을 테니 그냥 직접 전달을 한 것이었다.
로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보면 지셀의 말이 옳다.
“그래도 이걸 그냥 무상으로 지원하기에는 조금…….”
“거래의 개념으로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여유가 있으니 베푼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으음…….”
“보답이야 나중에 받으면 됩니다. 지금은 그런 걸로 시간을 끌면 안 됩니다.”
확실히 루타니아 왕국은 다른 왕국보다 여유가 있었다. 지셀 덕분에 조금이라도 미리 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로잘린도 지셀의 의견을 완강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알겠어요. 그나저나 백작님, 많이 변했네요.”
돈만 밝히던 자가 돈을 안 아끼고 이렇게 남들을 도와주자고 하다니.
지셀의 염원을 정확히 모르기에 그녀는 그런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말을 꺼냈다.
“저기…… 화장품은 요새 매출이 좀 떨어져서…….”
전란이 났으니 당연히 매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로잘린은 현재 사업을 조금 축소하고 대금을 미루려고 했다.
그런데 지셀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계약대로 하셔야죠. 정산은 확실히 맞춰서 해 주셔야 합니다.”
‘이, 이 새끼는 왜 나한테만 이러지?’
촤르륵.
순간 로잘린이 부채를 꺼내 눈 아래를 가렸다. 남들한테는 끝도 없이 퍼주면서 자신한테는 한 푼도 양보 안 해 준다.
만날 때마다 돈 얘기만 하더니!
속상해서 화가 마구마구 치밀어 올랐다.
갑자기 느껴지는 살기에 지셀이 몸을 뒤로 뺐다.
‘뭐야? 또 왜 이래? 내가 뭐 잘못했나?’
그는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뭐, 사정을 자세히 얘기하면 당연히 봐줄 여유는 있다.
그런데 단단히 오해한 로잘린은 사정을 설명할 생각보다 열부터 뻗쳐 버렸다.
그녀가 다시 고함을 내지르려고 할 때, 전령 하나가 허겁지겁 다가왔다. 복장을 보니 페르디움에서 온 전령이었다.
지셀이 잘됐다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아버지가 보냈나? 무슨 일이야?”
“대공자님! 규, 균열이…….”
“음?”
“균열이 북방 요새 인근까지 확장됐습니다!”
그 말에 지셀을 비롯한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북부에는 균열이 없었다. 다들 구원교가 그곳까지 침투해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고 여기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 너머인 북방의 땅에서 균열을 열었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페르디움이 아무리 강해졌어도 균열의 영역에 들어가면 버티지 못할 것이다.
“도련님!”
창백해진 벨린다가 지셀을 불렀다.
그녀에게 페르디움은 마음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이대로 균열의 영역이 북방 요새를 삼키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지셀을 북부 대공으로 만들겠다는 야망도 즈발터가 살아 있을 때나 의미가 있지, 그를 죽이면서까지 지셀을 띄울 마음은 전혀 없었다.
“당장 북부군을 움직여야 해요!”
벨린다의 말을 들은 지셀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었다. 자신이 왜 이런 고생을 하며 지금까지 싸워 왔는데. 바로 영지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페르디움을 잃으면 지금까지 한 일이 모두 의미가 없어진다.
지셀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놈들이 사고를 쳤군.’
전생에는 북방 쪽 균열은 없었다. 부족 단위로 생활하는 야만인들은 타인을 배척하고 살아가며, 드넓은 북방의 대지는 무엇 하나 숨기기도 힘들다.
구원교로서도 그런 지역에 몰래 균열을 만드는 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그 노력을 다른 왕국에 쏟아붓는 게 나았다. 실제로도 그렇게 했고.
하지만 지금 북방의 대지에서 균열이 나타났다. 답은 하나뿐이다.
‘워로카…….’
워로카 그놈이 구원교와 손을 잡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제물을 직접 가져다 바쳤을 것이다.
‘네놈이 최악의 수를 골랐구나.’
당시에는 최대한 피해를 줄여야 했기에 살려 놨다. 덕분에 말도 얻고 펜리스의 기동력은 최강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워로카의 배신으로 그들의 불안정한 협약은 마침표를 찍었다.
지셀이 고개를 들어 북방 쪽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균열의 영역이 북방 요새 인근까지 다가왔다면, 북부군을 전부 끌고 가기엔 무리였다.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펜리스 기동군만을 끌고 움직여야 한다. 균열인들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났을 테니 북부군 대신 북부에 남은 1만의 펜리스군을 데리고 가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균열과 싸우는 동안 워로카는 분명 요새를 우회해 페르디움을 칠 것이다.
‘그리고 북부에서 분탕을 치겠지.’
지금 북부에는 야만인들을 막을 군대가 없다. 죄다 북부군으로 차출됐기 때문이다.
펜리스군마저 북방 요새로 가면 야만인들은 텅텅 빈 북부를 신나게 짓밟고 학살을 벌일 것이다. 그리고 그 영지들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선포할 게 분명하다.
그러면 무척이나 피곤해진다. 균열을 처리하는 동안 우회하는 야만인들을 저지할 군대가 필요하다.
‘결국 지금 써먹어야 하나.’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북부군을 결성할 때 남겨 둔 군대가 있지 않은가.
그 병력의 주인은 무척이나 유능하다. 전생의 용병왕도 상당히 고전했을 만큼. 그러니 야만인들의 군대 정도는 충분히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펜과 종이를 가져와라.”
지셀은 짧은 고민을 끝내고 서신을 하나 써 내려갔다. 거침없이 펜을 놀리던 지셀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좋게 말하면 안 들을 거고. 저번처럼 협박을 하는 수밖에.”
그때는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도 어찌 보면 그 도움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번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