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Mercenary’s Machinations RAW novel - Chapter (434)
434 – 이대로만 가면 된다. (1)
434화 이대로만 가면 된다. (1)
아멜리아는 불쾌함을 감추지 않고 코웃음을 쳤다.
“흥, 북부군을 이끌고 여기를 치겠다고?”
자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지셀은 아마 북방 요새를 버리고 야만인들을 먼저 막을 것이다. 그래야 균열과의 싸움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페르디움의 피해는 상당히 커질 게 분명하다. 어쩌면 영주성 인근만 빼고 영지의 북쪽 지역도 다 먹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북부군까지 불러온다면 피해를 보더라도 결국 균열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 미친놈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이곳을 칠 것이다. 얼마든지 그럴 놈이긴 했다.
아멜리아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눈을 감았다.
‘건방진 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직은 지셀과 자신이 붙으면 안 된다. 그건 공작가만 좋은 일을 시키는 셈이다.
그래서 진작에 동부로 이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지금도 지셀의 요구대로 그를 도와주는 게 가장 나은 방법이긴 했다.
알고는 있지만…….
‘감히 날 협박해?’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뒤통수를 갈기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지금 지셀은 자신을 몰아가고 있었다. 야만인과 싸울지 북부군과 싸울지 선택하라고 말이다.
명분도 충분하다. 지셀은 북부군 사령관이니까. 자신은 친왕파와 협상을 해서 내버려뒀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멜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살면서 같은 놈한테 두 번이나 협박을 당한 건 처음이다.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다크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 전달할 말이 따로 있는데요.”
분명 서신을 보면 아멜리아의 분위기가 안 좋아질 거라고 들었다. 그 뒤에 전하라는 말이 있었다.
“뭐냐.”
아멜리아의 말에 다크가 살짝 눈치를 보며 말했다.
“라울의 의도대로 놀아날 거냐고……. 어차피 원하는 게 따로 있지 않냐고……. 이번 일을 무사히 넘기면 동부 이주 때 힘을 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멜리아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셀은 자신의 야망과 계획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동부로 이주하려면 결국 무력을 써야 한다. 친왕파와 협상하긴 했지만 다른 귀족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걸 하나하나 다 상대하는 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다.
‘……나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너무 잘 알고 있어.’
숨통만 조이면 자신이 다른 생각을 할 걸 알았나 보다. 어쩌면 저렇게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지셀이 회귀자라는 걸 모르니 아멜리아의 의문이 해결될 리가 없었다.
아멜리아가 다시 눈을 감았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후우…….’
숨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현 정국을 판단했다. 지셀을 도와주는 건 기분이 나쁜 일이지만, 라울의 의도대로 놀아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감정대로만 움직일 수는 없지.’
라울은 분명 자신이 움직이지 않을 거라 확신했을 것이다. 움직이더라도 자신의 능력으로는 야만인을 막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공작가의 입장에서 자신은 해럴드 덕분에 영지를 차지한 운 좋은 계집일 뿐이었으니까.
‘슬슬 한 번은 보여 줄 때가 되긴 했어.’
찬탈에 성공했음에도 한낱 귀족 영애라는 선입견이 아직도 남아 있다. 여전히 대부분 귀족은 자신을 우습게 보고 있었다.
동부 전선에서부터 명성을 쌓아 가려고 했지만 조금 일찍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
‘균열은 전부 처리해야 해.’
자신은 괴물들이 판치는 종말 뒤의 세상을 가지려는 게 아니다. 정신 나간 구원교 따위와 손을 잡을 생각도 없었다.
균열을 쓸어버리려면 결국 북부군이 더 활약해 줘야 한다.
‘어쩔 수 없지.’
생각을 정리한 아멜리아가 눈을 뜨고 다크에게 말했다.
“지셀에게 전해라.”
“넹.”
“이번 한 번만 네 칼춤에 어울려 주겠다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온다는 거예요, 안 온다는 거예요? 칼춤이면 뭐 우리 주인하고 싸우겠다는 거예요? 똑바로 말을 해 줘요.”
“…….”
아무래도 이 정령은 사회성을 비롯한 많은 것들이 조금 부족해 보였다.
아멜리아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손짓했다.
“지도.”
가신 한 명이 지도를 가져다주자 아멜리아가 한 곳을 짚으며 다크에게 말했다.
“똑똑히 잘 보고 전해. 내가 이곳에서 야만인들을 저지하고 있을 거야. 북부 영지로 들어가는 진입로지.”
“넹.”
“……내가 그놈들을 막고 있을 테니 소수의 병력이라도 보내 뒤를 치라고 전해. 나 혼자 무리하다 피해를 볼 생각은 없으니까. 알겠어?”
지셀은 아멜리아에게 어떤 전략도 말해 주지 않았다. 그녀라면 알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과연 아멜리아는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상황을 그려 낸 뒤 전략을 수립했다. 그리고 이렇게만 전하면 지셀이 알아들을 거라 생각했다.
사이가 안 좋은 두 사람이지만 서로의 능력은 인정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만 전하면 자신의 일은 끝이다.
협상이 성공했다. 다크는 베르나프의 손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숙인 뒤 거리를 벌렸다.
슬금슬금 거리를 벌려 문 앞까지 다가간 다크가 확 소리를 질렀다.
“이 무엄한 것들! 내 반드시 저주를 내릴 거다! 두고 보자! 특히 너 고양이! 오늘의 굴욕은 내가 반드시 복수할 테니 그리 알아라!”
하악!
“안녕!”
바스테트가 몸을 세우며 일어나자 다크가 작별 인사를 남기고 후다닥 밖으로 나가 버렸다.
“…….”
아멜리아를 비롯한 대전의 모두가 침묵에 잠겼다.
약혼녀를 협박해서 돈을 뜯어 간 놈, 1골드씩 뇌물을 받는 이상한 총관, 정신 나간 정령까지. 하여간 펜리스에는 정상적인 놈이 없었다.
그런 놈들이 왕국을 휩쓸며 북부 최강의 칭호를 가져갔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한숨을 내쉰 아멜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콘라드에게 말했다.
“바로 움직여. 시간이 촉박한 거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이미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레이폴드군이다. 당장 출정해도 무리가 없었다.
아멜리아는 이 기회에 내버려두었던 내부 단속도 마저 끝내기로 했다.
그녀는 살쾡이 밀매단의 단주, 칼레브에게 따로 은밀한 지시를 내렸다.
“확실하게 처리해. 알겠어?”
“맡겨 주십시오.”
칼레브가 비릿한 웃음을 짓고 고개를 숙였다.
아멜리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정을 내리니 오히려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여전히 불쾌하긴 하지만 라울이 깔아 놓은 판에서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바람을 좀 쐬어야겠어.”
다크가 시끄럽게 떠들어서인지, 아니면 고민을 많이 해서인지 머리가 조금 아팠다.
밖으로 나온 아멜리아는 고개를 돌려 북녘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 * *
즈발터는 저 멀리서 요새 쪽으로 다가오는 푸른 안개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안개가 지평선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저렇게 커질 수가 있는 거지?”
대자연의 기운이 풍부할수록 균열의 확장 속도가 빠르다고는 들었다.
북방의 대지는 인공적인 구조물이 거의 없고 자연 훼손도 적다. 그러니 대자연의 기운이 다른 곳보다 더 풍부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이유를 알아도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확장 속도가 빨랐다.
그리고 그 균열의 영역이 곧 이곳을 덮칠 터였다.
즈발터가 옆에 있는 란돌프에게 말했다.
“야만인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군.”
“네. 분명 균열과의 전투가 시작되면 우회해서 북부로 들어갈 겁니다.”
“그놈이 미친 짓을 하고 말았어.”
“미친 새끼죠. 구원교와 손을 잡고 저런 일을 벌이다니.”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즈발터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워로카의 욕심이 상식 밖의 일을 불러왔다.
저 균열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부족민을 희생시켰을까? 그렇게 해서 얻은 권력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즈발터는 그 권력욕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지셀은?”
“곧 도착할 겁니다.”
“그래. 저 균열을 막아야 야만인들을 정리할 수 있겠지.”
페르디움은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식량과 장비도 풍부하게 생산되고, 기사와 병사도 많이 늘었다. 이제는 대영지 수준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저 균열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지셀의 군대가 와야 균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야만인들은 아멜리아가 막고 있겠다고 했던가?”
“네, 레이폴드에서 군대를 움직였다는 소식이 막 도착했습니다.”
“다행이군. 그 아이가 직접 움직일 줄이야.”
동맹이었던 레이폴드 백작이 자리에서 쫓겨난 뒤에 관계가 꽤 서먹해진 건 사실이었다.
아멜리아가 반란을 일으킨 뒤로 결혼 얘기는 쏙 들어가 버렸다. 가신들은 그런 무서운 여자를 페르디움가의 며느리로 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교류도 거의 안 하고 있었는데 이런 위기에서 움직여 줄 줄이야.
“그래, 그 아이도 북부 사람이지. 그렇고말고.”
지셀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멜리아가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봐 온 즈발터는 그 도움이 기꺼웠다.
“최선을 다해 균열을 처리해야 한다. 아멜리아 혼자서 그 많은 야만인을 막기는 쉽지 않을 거야.”
균열과의 전투가 우선이다. 균열을 처리하는 동안만 아멜리아가 버텨 주면 된다.
페르디움은 이미 전군이 모여 준비를 끝냈다. 펜리스의 총관이 보낸 1만의 지원군과 병기들도 도착한 상태였다.
거리가 멀지 않기에 서부에 있던 기동군보다 더 빨리 올 수 있었던 것이다.
푸른 안개는 시시각각 요새 쪽으로 밀려왔다. 이 속도라면 일주일도 되기 전에 요새를 덮칠 것이다.
요새의 모든 병력이 긴장한 채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안타깝게도 이곳에는 균열과 싸운 경험이 있는 이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젠장, 소문으로는 저 안에 50만은 있을 거라는데…….’
‘정말 우리 힘으로 막을 수 있을까?’
‘그 정도 수면 그냥 덮치기만 해도 요새가 무너지는 거 아냐?’
‘이게 다 스코반 때문이라는데……. 그 새끼 좀 찝찝하긴 했어.’
균열의 위험함을 익히 들어왔기에 다들 조금씩 겁을 집어먹었다.
미지의 적은 무서운 법이다. 모두가 공포에 조금씩 잠식되고 있었다.
전투 전에 사기가 떨어지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즈발터는 굳이 사람들을 독려하지 않았다.
‘펜리스군은 눈빛이 다르다.’
겁을 조금 먹은 페르디움군과는 다르게 펜리스군은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그들도 잔뜩 긴장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두려움은 크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알고 있기에 즈발터도 조용히 기다렸다.
과연 분위기는 며칠 뒤 지셀이 도착하자 완전히 바뀌었다.
“대공자님이 오셨다!”
“우리 영주님이 오셨다!”
“펜리스 기동군이 왔다!”
철컹, 철컹, 철컹.
지셀을 위시한 그의 측근들과 기동군이 요새 안으로 들어오자 사람들이 만면에 화색을 띠었다.
펜리스는 불패의 군대였다. 그들을 이끄는 지셀이야말로 불패의 군주라 할 수 있었다.
이미 수많은 균열을 없앤 그가 오니 저절로 사기가 올라갔다.
“아버지.”
지셀이 즈발터 앞에 서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즈발터는 흐뭇한 미소로 아들과 그 측근들을 둘러보았다.
벨린다는 즈발터의 시선을 피해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본인은 내버려두고 그 아들을 북부 대공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이 그렇게 떳떳한 건 아니었다.
즈발터는 지셀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지휘를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말은 길지 않았다. 즈발터는 예전처럼 직접 지휘하겠다고 나설 생각이 없었다.
아들은 이미 자신의 실력을 차고 넘칠 정도로 증명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또 모르지만, 균열과의 싸움은 지셀이 지휘해야 한다. 모두가 그걸 바랄 것이다.
지셀은 요새 위로 올라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힘 있는 말투로 모두에게 말했다.
“전군, 전투를 준비하라.”
“와아아아!”
단지 그 한마디뿐이었음에도 병사들은 함성을 내질렀다.
이길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지셀이 주는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병사들이 각자의 자리에 섰다. 펜리스군은 갈바니움 투석기 100대를 요새 위에 배치했다.
끼이이이익…….
페르디움에서 준비한 투석기 수십 대도 요새의 벽 뒤에 배치했다.
두 영지는 그간 만들어 온 것들을 박박 긁어모았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영지는 순식간에 초토화할 수 있는 양이었다.
드드드득.
요새 위에 있던 대형 발리스타 10대가 장전을 끝마쳤다.
기동군을 따라온 마법사 100명과 80여 명의 사제도 요새 위의 안전한 곳에 자리 잡았다.
준비를 끝마칠 즈음, 푸른 안개도 상당히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눈으로 보기에 조금 거리는 있지만 투석기의 공격은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
카아아아아!
사방에서 균열인들이 지르는 괴성이 들려왔다.
병사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된 표정으로 명령을 기다렸다.
지셀 또한 저 푸른 안개가 이곳을 덮고 균열인들이 달라붙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그가 손을 앞으로 뻗으며 명령을 내렸다.
“쏴라.”
“쏴라!”
기사들의 복명복창과 함께 투석기가 맹렬하게 돌들을 쏘아 보냈다.
콰아아아앙!